인터뷰

수술 없이 요실금·생리통 치료, 세계 최초 방식 개발

더 비비드 2024. 7. 15. 08:56
 여성용 치료기기 '닥터유로' 개발한 칼라세븐 김남균 대표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절박성 요실금 치료기기 ‘닥터유로’ 개발한 칼라세븐 김남균 대표. /더비비드

어떤 일이나 때가 가까이 닥쳐서 몹시 급한 상황을 두고 ‘절박하다’고 한다. 이 말이 참으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화장실 신호가 올 때다. 소변이 마려운 느낌을 참을 수 없어서, 미처 속옷을 내리기도 전에 소변이 나오는 증상을 ‘절박성 요실금’이라고 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소변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 불안 속에 살게 된다.

절박성 요실금을 치료하는 의료기기를 개발한 국내 기업이 있다. 칼라세븐은 가시광선으로 절박성 요실금을 치료하는 ‘닥터유로’를 개발했다. 이어폰처럼 생긴 두 줄 끝에는 소리 대신 가시광선이 나온다. 칼라세븐 김남균 대표(66)를 만나 빛 두 줄기가 우리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들었다.

◇이어폰처럼 생긴 요실금 치료기기

절박성 요실금 치료기기 ‘닥터유로’. /더비비드

칼라세븐의 닥터유로는 절박성 요실금 치료기기다. 저출력 가시광선을 활용한 팜스(PAMS) 기술로 방광·요도에 있는 평활근에 미세한 자극을 준다. 평활근은 각종 장기조직에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근육으로 사람이 의지로 통제할 수 없다. 닥터유로는 가시광선 자극을 통해 산화질소 분비를 촉진, 평활근의 손상된 세포를 회복시켜 절박성 요실금 증상을 치료한다.

생김새는 지금은 거의 사라진 MP3 플레이어 같다. 이어폰처럼 생긴 광선 프로브(probe·기계와 직접 닿아 센서에 신호를 보내는 부분)를 배꼽 아래에 손가락 2개만큼 띄워서 부착하면 된다. 20분이 지나면 꺼진다. 국내 대학병원 두 곳에서 임상시험을 마쳤다. 사용자의 약 82%가 ‘절박성 요실금 횟수가 감소했다’고 답했다.

◇프랑스 유학파 의공학 교수

프랑스 유학시절 실험실 근처에서. /김남균 대표 제공

전북대에서 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시절 의과대학 실험실을 제집처럼 드나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어렴풋이 의학과 공학의 콜라보(collaboration, 협업)를 생각했어요. 공학기술을 의학에 적용하면 인류의 건강·질병 문제 해결에 한걸음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당시 한국엔 의공학이란 개념이 없었어요. 그래서 의공학과가 있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 대학원에서 학업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프랑스의 교육 방식에 적응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여태 필기시험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프랑스에서는 구술시험이 보편적이었습니다. 통상 1인당 10~20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 시간 안에 문제에 대한 답을 말해야 했죠. 공식만 외워선 안 됐어요. 공식의 의미와 풀이 과정만 보여주면 될 줄 알았는데 그 공식의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식이었습니다. 덕분에 프랑스어 공부 하나는 지독하게 했습니다.”

전북대 바이오메디컬공학부 교수 재직시절. /김남균 대표 제공

1988년 한국으로 돌아와 전북대 의과대학 의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의공학은 의학과 공학의 중간에 있는 학문입니다. 의공학자로서 의과대학 학생들에게 의료기기에 대해 가르쳤어요. 그 시절 의료기기는 대부분 미국과 독일, 프랑스가 주름잡고 있었는데요. 강단에서 CT, MRI뿐만 아니라 각종 초음파 장비의 역학이나 원리를 알려줬습니다.”

10년 뒤엔 동대학의 바이오메디컬공학부 교수로 옮겨 개인적인 연구도 병행했다. 최대 관심사는 빛과 색이었다. “특정 빛이나 색에 대해 인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했어요. 일본 닛산자동차와 협업해 시각·청각·후각을 통해 운전자 졸음을 방지하는 방법을 찾는 실험도 했죠. 2007년 ‘SBS스페셜’이란 프로그램에 색채 공학 전문가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빨간색을 보면 혈압이 상승하고 녹색을 보면 부교감신경이 자극된다는 내용이었죠.”

2007년 ‘SBS스페셜’에 색채 공학 전문가로 출연한 모습. /SBS ‘SBS스페셜’ 캡처

방송을 보고 누군가 찾아왔다. 훗날 칼라세븐을 함께 설립한 박경준 대표였다. “박사과정을 하고 싶다더군요. 제 발로 걸어들어온 제자를 그냥 보내는 교수는 없을 겁니다. 그날부터 연구실을 함께 쓰는 사이가 됐어요. 박 대표는 평소 관심 분야였던 ‘생리통’에 대해 연구하고 싶어했죠. ‘색과 빛으로 생리통을 완화할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일에 함께 몰두했습니다.”

PAMS 기술 개발 당시 피험자 시험하는 모습. /김남균 대표 제공

생리통의 원인부터 짚어봤다. “생리통이 자궁 평활근의 수축·이완 기능이 원활하지 못해 생기는 통증이라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 기능을 정상화하는 방법으로 가시광선을 떠올렸죠. 피부 표면에 가시광선을 쬐어주면 미세혈관을 타고 내부 장기에 있는 평활근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습니다. 기술에 PAMS(Photo-Activated Modulation of Smooth muscle)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열과 성을 다해 얻은 연구 결과를 현실로 옮길 방법을 궁리했다. 결론은 ‘사업’이었다. “생리통을 호소했던 여학생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PAMS 기술로 생리통 치료기기를 만들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함께 연구했던 박 대표와 함께 손을 잡았어요.”

◇칼라세븐 닥터유로 창업 노트

2013년 산부인과의사회 앞에서 생리통 치료기기를 소개하는 모습. /김남균 대표 제공

2010년 3월 ‘칼라세븐’을 설립했다.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이란 뜻을 담았다. PAMS 기술을 적용할 생리통 치료기기는 ‘WSF(Woman Stress Free)’라는 이름을 지었다. 여성들이 월경 때마다 느끼는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길 바란다는 의미다.

1. 생리통으로 시작해 요실금으로 확장

가시광선을 쬐어줄 위치를 잡기 위해 한의학 문헌까지 뒤졌다. /김남균 대표 제공

가시광선을 어떤 지점에 쬐어줄 것이냐가 관건이다. “의학 논문은 물론 한의학 문헌까지 뒤졌습니다. 공통적으로 꼽히는 지점이 7~8곳이 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기기를 부착했을 때 겉으로 티가 나지 않고 서로 가까운 두 곳을 골랐습니다. 배꼽 아래 2㎝, 또 그 아래 2㎝ 지점이죠.”

WSF에서 나오는 가시광선은 3㎽/㎠(밀리와트 퍼 제곱센티미터)로 햇빛에서 나오는 가시광선의 1/200 수준이다. 오렌지색 가시광선을 방출하는 LED를 두 개의 유닛으로 만들었다. “모든 빛이 피부를 그슬리는 건 아닙니다. 가시광선은 380~780㎚ 범위의 파장을 가진 전자파인데요. 그중에서 400㎚ 내외 파장의 빛이 피부를 타게 만드는 자외선입니다. WSF에 적용한 주황색 가시광선은 700㎚ 내외의 파장입니다.”

기기를 부착했을 때 겉으로 티가 나지 않고 서로 가까운 두 곳을 골랐다. /김남균 대표 제공


아랫배 두 지점에 주황색 가시광선을 쬐었더니 뜻밖의 결과가 나타났다. “시제품을 만들어 임상시험을 하던 도중 요실금 증상을 완화하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는 후기를 들었습니다. 생리통만 고집할 이유가 없었죠. 요실금 치료기기까지 확장하기로 했습니다.”

2. 특허와 허가증은 다다익선

2016년 독일 뒤셀도르프 의료기기 전시회(왼쪽), 2017년 두바이 의료기기 전시회(오른쪽)에 참가한 모습. /김남균 대표 제공

2011년부터 지금까지 국내에 등록한 특허만 해도 20건이 넘는다. ‘광 에너지를 이용한 휴대용 요실금 및 생리통치료기’, ‘인체의 평활근 이완장치’를 골자로 한다. 수출을 위한 준비의 일환으로 유럽·중국·일본·미국에도 특허를 등록했다. “지금껏 다뤄왔던 진단장비나 의료장비와 비교하면 정말 간단한 원리입니다. 예비 경쟁자의 진입을 막는 장치가 꼭 필요했죠. 대기업은 전담 조직을 둘 정도로 특허를 체계적으로 관리합니다. 원천기술이 있다면 특허 등록은 필수입니다.”

해외에서 판매 허가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2014년부터 미국·독일 등에서 열리는 의료기기 박람회에 참가했습니다. 2017년 독일 뒤셀도르프 국제의료기기 전시회에서 한 중국 바이어를 만났어요. 중국에서 WSF를 팔고 싶다면서 첫해에 1만대, 그다음부터는 1년에 10만대씩 수입하겠다더군요. 그 말만 믿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본인 회사 이름으로 중국의 허가를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죠. 공식 문서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3. 의료기기 필수 단계, 임상시험

요실금 환자가 닥터유로를 사용하는 모습. /김남균 대표 제공

의료기기나 치료기기라는 명칭은 함부로 쓸 수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가 필요하다. 관련 절차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2~3년은 족히 걸린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단계는 ‘임상시험’이다. 대학병원과 식약처에 임상시험 계획 승인을 받은 뒤 시험대상자를 모집하고 3개월에 걸쳐 시험을 하며 경과를 기록해야 한다.

“서울대병원과 이화여대병원에서 닥터유로 임상시험을 했습니다. 2016년 9월 임상시험 계획 승인을 받았어요. 요실금 증상이 있는 환자 169명을 모았습니다. 이후 약물이나 수술 이력 등의 요건을 확인하는 단계를 거쳤습니다. 변수를 최소화해 시험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죠. 이들에게 닥터유로를 하루 한 번씩 20~30분간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시험 대상자는 정해진 주기마다 병원에 방문해 증상의 변화 정도를 기록했죠.”

시험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기기를 3개월간 정해진 규칙에 따라 사용한 67명(PP군)의 82%인 55명이 절박성 요실금 증상이 5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낱났다. 55명 중 43명은 요실금 증상이 아예 사라졌다. 임상시험 결과를 근거로 2021년 5월 닥터유로는 식약처의 치료기기 허가를 획득했다.

4. 사용자 테스트로 가늠해 본 소비자의 반응

5개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해 사용자 테스트에 나섰다. /김남균 대표 제공

임상시험 다음 단계는 실전 테스트다. “요실금 치료기 닥터유로를 들고 작년 1월부터 6개월간 사용자 테스트를 했습니다. 사용자 테스트는 임상시험보다 모집단의 조건이 덜 까다로워요. ‘비슷한 증상이 있는 사람들’ 정도면 충분하죠. 임상시험과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임상시험은 닥터유로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단계라면, 사용자테스트는 제품 출시 후 소비자의 반응을 미리 엿볼 수 있는 절차라고 볼 수 있죠.”

전남 목포시, 충남 부여군, 경북 포항시 등 5개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해 사용자 테스트에 나섰다. 해당 자치단체 소재의 주·야간 위탁시설과 공공요양시설에 있는 과민성 방광 및 절박성 요실금이 있는 고령자 남녀 115명이 대상이었다. 매일 닥터유로를 1회 20분씩 3회 연속해서 1시간 사용한 결과, 3개월 뒤 사용자의 88.6%가 ‘절박성 요실금 횟수가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매일 닥터유로를 1시간씩 사용한 결과, 3개월 뒤 사용자의 88.6%가 ‘절박성 요실금 횟수가 감소했다’고 응답했다. /김남균 대표 제공

“기존에 요실금은 ‘사후 처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번 테스트에서 기저귀 사용량도 확인했어요. 기저귀를 하루에 2~3개 이상 사용하는 77명의 경우, 치료 전 1일 기저귀 사용 개수가 210개였는데 3개월 치료 후 84개로 줄어들었습니다. 단순 돌봄을 넘어서서 치료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만류했던 제자가 지금은 조력자로

닥터유로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김남균 대표. /더비비드

교수직을 내려놓고 창업에 뛰어드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당시 제자들에게 PAMS 기술로 치료기기를 만드는 사업을 할 거라고 했더니 다들 말리더군요. WSF 임상시험을 하고 싶다고 찾아갔을 땐 ‘선생님 왜 그러세요’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내 선택이 옳다’곤 못 해도 ‘후회 없는 선택’이라고는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때 만류했던 제자가 지금은 제 연구를 돕고 있어요.”

제자들과 함께 PAMS 기술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35명을 대상으로 한 시험에서 가시광선을 목덜미 특정 부위에 쬐면 경도 인지장애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담은 논문이 SCI에 등재됐고 국제 학술지 ‘J. of Alzheimer’s Disease(저널 오브 알츠하이머)’ 온라인판에도 실렸죠. 앞으로도 빛 두 줄기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할 겁니다. 가시광선을 활용한 알츠하이머 치료기기엔 어떤 이름을 붙일지 고민해 봐야겠어요.”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