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5번 실패, 인생 걸고 만든 누워서 하는 목마사지기

더 비비드 2024. 7. 15. 08:55
자동 견인 마사지기 모겐탑 플러스 개발한 알카나인 김태중 대표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모겐탑 플러스 개발한 알카나인 김태중 대표. /김태중 대표 제공

알카나인 김태중 대표(53)는 학창시절 헤비메탈 밴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음악을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고민이 들었다. 음악이 밥벌이가 되는 순간부터 음악을 온전히 즐길 수 없으리라 생각도 들었다.

음악을 뒤로 하고 취업을 했다. 그렇게 4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 창업에 뛰어들었다. 동력은 음악이었다. 돈을 벌어 안정적으로 기타를 연주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폐업 신고만 5번 했다. 마지막 신고를 할 때 목덜미를 잡았다. 그때 잡은 목덜미가 6번째 창업 아이템이 됐다. 누워서 하는 목 마사지기 ‘모겐탑 플러스’를 개발한 김 대표를 만나 여정을 들었다.

◇누워서 하는 목 마사지

모겐탑 플러스. /김태중 대표 제공

목의 뻐근함을 없애려 도수치료를 받으러 가면 꼭 하는 동작이 있다. 천장을 보고 편안하게 누운 상태에서 목을 위로 들어 올리는 견인 동작이다. 알카나인 모겐탑 플러스는 누워서 하는 경추 마사지 기기다. 목을 자동 견인해 건강한 경추의 형태인 C자 커브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

경추 위치에 맞춰 세 개의 피스톤 지압 장치가 있다. 공기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피스톤을 움직여 목을 마사지한다. 사람마다 다른 목의 형태에 따라 마사지기에 들어가는 공기량이 달라져 성인은 물론 아이와 노인도 사용할 수 있다. 척추 마사지용 피스톤 지압장치에 대한 특허 외 9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쉽지 않은 사업가의 길

김 대표는 신발 전문 회사를 거쳐 1998년 창업에 뛰어들었다. /더비비드

1994년 오산대 제화공학과를 졸업하고 신발 전문 회사 ‘고려’의 유통사업부에 입사했다. “상품 기획, 개발, 분류 관리, 생산 관리 등 신발을 유통하는 전 과정을 한 번씩 훑으며 일을 배웠습니다. 짜장면 한 그릇에 2000원 남짓하던 시절, 월급으로 68만원을 받았죠. 그렇게 3년을 일하다가 중소기업 공동브랜드 ‘귀족’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습니다. 봉급을 2배 가까이 준다는 말에 고민 없이 이직했죠.”

귀족은 유명 대기업에 신발을 납품하던 70여개 중소 구두업체의 공동브랜드였다. “국내는 물론 중국 등으로 수출도 했어요. 그런데 물건을 먼저 보내고 나중에 돈을 받는 방식으로 운영하다보니 대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 외에도 경영상의 문제가 많았습니다. . 2~3개월 정도 월급을 받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져 입사 1년 만에 퇴사했어요. 머지않아 회사는 부도가 나더군요.”

코레방화복, 산림기능인 작업복, 숲가꾸기 작업복. /김태중 대표 제공

1998년 창업에 뛰어들었다. 회사명은 코레(KOLE). 코리안 리더라는 뜻이다. “귀족을 나와 다른 회사에 취업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신발을 기획하고 만드는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거든요. 알고 지내던 신발 공장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앞으로 제작할 신발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곤 신발들을 사줄 이들을 찾아 나섰죠.”

뜻밖의 거래처를 만났다. 난연 소재로 만든 신발을 제작했는데, 산림청이 관심을 가진 것이다. “담당자에게 산불 진화 작업을 할 때 이만한 신발이 없을 거라고 설명한 것이 통했나봐요. 거기에 더해 ‘벌목작업에 쓸 옷과 신발, 장갑, 모자’까지 만들어달라더군요. 전기톱이 닿아도 뚫리지 않는 옷을 만들기 위해 특수 메시 소재를 이용했습니다. 톱날이 닿으면 엉겨 붙어서 0.6초 이내에 서게 만들었습니다.”

김 대표(왼쪽)는 선풍기 개발을 위해 중국으로 출장을 갔다. /김태중 대표 제공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연평균 매출이 15억원에 달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좋은 시간은 짧았다. “경쟁사가 많아지면서 점차 주문량이 줄어들었습니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공장에서 생산했는데요. 처음엔 유명 도시인 청도에서 제작하다가 점점 더 시골로 들어가야했어요. 결국 북한·러시아 국경과 인접한 지역인 훈춘까지 밀려난 후 두손 두발 다 들었어요. 이렇게까지 사업을 해야 하나 회의감이 몰려왔죠. 더 이상 재미를 볼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운이 다한 걸까. 이후엔 손대는 일마다 미끄러졌다. “중국 공장 생산 경험을 살려 국내 선풍기 회사와 손을 잡고 신제품을 개발했는데요. 2억원 넘게 투자했지만 제품 출시 후 투자금을 회수해야 할 시점에 계약이 틀어져 빚만 떠안았습니다. 이후 USB 원격 제어 프로그램, 살구씨를 활용한 바이오 신물질 등으로 사업을 이어 나가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어요. 당뇨까지 얻고 나니 제 40대가 벌써 다 지나있었습니다.”

◇모겐탑 플러스 창업 노트

특별히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목 주변 근육을 수시로 풀어줄 수 있는 기기의 필요성을 느꼈다. /더비비드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었다. 다시 0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제대로 된 사업 아이템을 찾기로 했다.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제품을 갖고 싶었습니다. 동시에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길 바랐죠. 그때 떠올랐던 게 ‘목’이었습니다. TV에서 ‘스마트폰 출시 이후 거북목 증후군 환자가 크게 늘었다’는 뉴스가 나왔고, 저도 그중 하나였거든요.”

연이은 사업 실패 이후 정형외과·재활의학과를 전전하며 도수치료·충격파 치료를 받은 터였다. 목에서 시작된 통증은 팔·날갯죽지까지 내려왔다. “한 정형외과 의사가 스트레칭 방법을 알려줬지만 꾸준히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특별히 노력을 들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필요했어요. 병원에서 견인치료를 받을 때처럼 누워서 사용할 수 있어야만 했죠. 그렇게 경추 질환 없는 세상을 꿈꾸며 2018년 알카나인을 세웠습니다.”

1. 마사지기기 본체 제작

목 마사지기를 개발하기 위해 목과 관련한 책을 찾아보고 카이로프랙틱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구했다. /김태중 대표 제공

가장 먼저 할 일은 공부였다. 목과 관련한 책을 찾아보고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약물 없이 지압으로 척추질환을 고치는 의술) 전문가를 만나 조언을 구했다. “목에 있는 7개의 경추가 C자 모양을 유지하면서 약 5㎏ 무게의 머리를 지탱하는데요. 거북목은 C자가 거꾸로 휜 상태를 말합니다. 고개를 앞으로 15도 기울일 때마다 목이 지탱해야 할 무게는 5㎏씩 더해져요. 다시 바른 C자 모양으로 돌려놓는 것이 중요하죠.”

기존에 경추 스트레칭을 돕는 기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직접 사서 써보니 단점이 명확히 느껴졌습니다. 넓은 면적으로 목을 단순히 들어 올리는 ‘견인 동작’에 그치더군요. 7개의 경추를 마치 하나로 인식하는 듯했죠. 손가락으로 지압하듯 좁은 부위를 촘촘히 만져주는 마사지기를 만들면 경쟁력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3개의 피스톤이 튀어나오면서 경추의 C자 형태를 만들어 주는 형태를 고안했다. /김태중 대표 제공

7개의 경추 위치에 맞춰 피스톤이 튀어나오는 형태를 고안했다. “1~2번 경추, 3~5번 경추, 6~7번 경추가 있는 자리에 하나씩, 총 3개의 피스톤을 뒀는데요.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는 것처럼 공기 유압을 통해 피스톤이 순차적으로 상승하고 하강하도록 했죠. 양쪽 승모근을 눌러주는 지압봉까지 달았습니다.”

편하게 목을 마사지하려면 누워서 쓸 수 있어야 했다. “베개처럼 누울 수 있는 목 마사지기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머리만 들어 올릴 땐 5~6㎏면 충분하지만 가슴까지 펴 올리도록 하려니 12㎏은 버틸 수 있어야겠더군요. 그 힘을 내기 위해 에어백의 부피를 최대화할 수 있는 U자형으로 모양을 잡았습니다.”

2. 개발과 동시에 특허 출원

2021년부터 ‘척추 마사지용 피스톤 지압 장치’를 시작으로 ‘경추용 마사지 장치’, ‘승모근 지압형 마사지 장치’에 대한 특허를 연달아 출원·등록했다. /김태중 대표 제공

제품의 기본 틀을 잡은 후엔 특허 출원에 목숨을 걸었다. “중소기업일수록 원천 기술에 대한 소유권 등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2021년부터 ‘척추 마사지용 피스톤 지압 장치’를 시작으로 ‘경추용 마사지 장치’, ‘승모근 지압형 마사지 장치’에 대한 특허를 연달아 출원·등록했습니다. 지금까지 9건을 등록했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PCT 특허도 출원해 둔 상태입니다.”

3. 마사지 프로그램 개발

새로운 마사지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고 싶을 때마다 원하는 바를 직접 엑셀로 만들 수 있다. /김태중 대표 제공

마사지 코스가 다양할수록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으로 봤다. 저마다 목의 모양이 조금씩 다를뿐더러 마사지하길 원하는 부위와 강도도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목이 짧은 경우와 긴 경우 그리고 경추 견인, 경추 마사지, 승모근 지압 등 마사지 종류별로 구분했습니다. 유형별로 마사지 프로그램을 짜고 스포츠 마사지사에게 자문을 구했죠. 작동 순서를 표로 만든 다음 프로그램 코드 전문 회사에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한시가 급한데 프로그램 제작사는 깜깜무소식이었다. “한 달이 넘어가자 참을 수 없어 전화를 걸었더니 수작업이 많다고 하더군요. 제가 문서로 전달한 시간표를 엑셀로 옮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때부터 시간표를 엑셀로 직접 만들었습니다. 빨리 만들고 싶은 마음에 며칠 밤을 새워 가며 엑셀을 만들어 넘겼더니 프로그램 제작사가 10분 만에 코드를 만들어냈습니다. 이후부터는 새로운 마사지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하고 싶을 때마다 원하는 바를 직접 엑셀로 만들고 있습니다.”

4.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름과 로고

물리치료실에서 모겐탑 플러스를 사용하는 모습. /김태중 대표 제공

2022년 2월 그토록 바랐던 누워서 하는 마사지기기를 만들어 냈다. 목에(모겐) 제일 좋다(top)는 뜻을 담아 ‘모겐탑 플러스’라 이름 지었다. “건강한 경추의 모양을 말할 때 ‘C자 커브’란 표현을 자주 쓰는데요. 이 C 3개를 합쳐 얼굴과 목, 턱이 연상되는 그림으로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모겐탑 플러스를 베개처럼 베고 누운 다음 리모컨으로 코스를 선택해 작동하면 30분동안 수기치료를 받듯 목 주변을 마사지할 수 있습니다. 정자세는 물론 옆으로 돌아누워 측면부 근육까지 풀어줄 수 있죠.”

마사지샵, 재활치료센터 등에 납품해 지난해 약 6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23년 매출의 경우 상반기에만 8억원을 넘어섰다. “에어백을 이용하다 보니 피스톤이 내려갈 때마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납니다. 이런 소리가 긴장을 이완하는 데 도움을 준다며 잠이 잘 온다고 말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았습니다.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셈이죠.”

◇5번의 폐업 그리고 6번째 창업

김 대표는 모겐탑 플러스의 3, 4, 5세대까지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 /더비비드

모겐탑 플러스 출시 이후에도 계속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지금은 모겐탑 플러스가 일반 마사지기로 분류돼 있지만 의료기기 시험 허가 신청을 위한 기술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곧 모겐탑 2세대도 출시를 앞두고 있어요. 머릿속엔 이미 3, 4, 5세대까지 그려져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온 국민의 척추 건강을 진단하고 데이터화해 치료하는 기기를 만들 계획을 하고 있어요”

수십 년간 사업을 하면서 폐업 신고만 5번을 했다. “이번이 6번째 창업입니다. 남들이 보면 미련해보일지도 몰라요. 반백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건 제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나의 불편함에서 출발해 지금까지의 노하우를 집약해 나만의 제품을 개발했으니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이 넘칩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