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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국 임신부들 열광시킨 서울대생 뜻밖의 아이디어

'지속가능한 마심' 꿈꾸는 달차컴퍼니

창업 기업은 한 번 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달차컴퍼니의 정유찬 대표. /달차컴퍼니 제공

커피 공화국 대한민국이다. 출근해서 마시고, 점심 먹고 마시고, 회의할 때 마신다. 한편으론 걱정이 든다. 카페인의 각성효과가 지나치면 신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디카페인 커피가 있지만, 아무리 디카페인을 해도 소량이나마 카페인이 남는다.

스타트업 달차컴퍼니는 카페인 걱정 없이 건강하게 즐길 수 있는 ‘페이크 커피’를 개발했다. 검정 보리, 치커리 등을 조합해 관성적인 커피의 맛을 냈다. 당연히 카페인은 제로. 지난해 10월 제품을 출시해 현재까지 단일 항목으로 1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달차컴퍼니의 정유찬(33)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기존 음료 산업에서 찾은 문제의식

달차컴퍼니의 검정보리 시리즈. /달차컴퍼니 제공

달차컴퍼니에서 만든 무카페인 커피는 국산 신품종이자 검정 보리의 한 종류인 ‘흑다향’으로 만든 음료다. 연한 아메리카노 맛이 나는 ‘검정보리 오리지널’, 커피라떼 맛의 ‘검정보리 라떼’, 바닐라빈을 추가한 ‘검정보리 바닐라라떼’로 총 3가지의 제품이 있다.

정유찬 대표는 서울대학교 영어교육학과 08학번이다. 대학 졸업 후 바로 대기업에 입사했다. 2017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효성그룹 무역팀에서 실무를 익혔다. 미주지역 B2B 업무를 담당했다.

- 창업의 꿈을 갖게 된 계기는요.

“다니던 직장에서 무역 실무를 경험하며 '내가 직접 사업을 해도 해외 영업이나 수출 분야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수출을 염두에 둔 사업 아이템을 찾아다니면서, 평소 제가 좋아하는 ‘식음료’부터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어린 시절 유리병에 보리차나 옥수수차, 결명자차 같은 차 음료를 직접 끓여 물 대신 냉장고에 두고 마시던 것. 다들 기억하실 거에요.

한식하면 다들 김치나 비빔밥만 떠올리는데요. 그에 비해 ‘한국의 차 문화’는 삶 속 깊이 내재해 있는 것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통역병으로 군 복무하면서 해외 경험이 많은 동료들과 어울리며 좋은 식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꿈을 그린 적도 있습니다. 국내 음료 산업에서 사업 소재를 찾기로 했습니다.”

달차컴퍼니 정유찬 대표. /달차컴퍼니 제공

- 당시 음료 산업이 해소하지 못하는 부분은 어떤 것이었나요.

“기성 음료의 문제점을 인지했어도 개선할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합성 감미료, 당, 카페인이 많은 음료가 지나치게 많았고요. 유당불내증을 가진 소비자가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다양하지 않은 등 소수의 소비자, 혹은 가치 소비를 위한 음료가 없었어요.”

- 왜 그런 부분이 해소되지 않았을까요.

“창업을 결심하고 음료 산업에 관한 공부를 1년 동안 했는데요. 한 제품의 생산 라인 만드는 데만 정말 많은 자본이 들어가더라고요. 수익을 창출하려면, 무조건 대중성을 갖춰야 하는 구조였어요. 그래서 값싸고 자극적인 맛이 제품의 주를 이루게 된 거죠. 판매도 콜라, 커피 등 익숙한 맛이 제일 잘 되기도 하고요. 제품 생산을 위해 필요한 최소발주수량(MOQ)도 커서 중소기업은 음료 사업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제로 카페인’에 꽂혀 맨땅에 헤딩

사업 초기 공유오피스 등에서 검정보리 시리즈, 무 카페인 차 등으로 시음회를 열었던 정유찬 대표. /달차컴퍼니 제공

-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도전을 했나요.

“맛과 건강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음료를 만들기로 했어요. 물론 저에 앞서 이런 시도를 한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사업적으로 차별적인 성과를 내고 싶었어요. 2018년 6월 퇴사 후 직접 발품 팔면서 1년 간 카페·차 사업하는 곳을 찾아다녔어요. 그러다 지인 소개로 경기도 분당에 있는 한 차(茶) 브랜드 대표님과 R&D 센터장님을 알게 됐고, 감사하게도 그 분들 도움으로 전문 지식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 왜 ‘커피’였나요.

"현대인이 가장 즐기는 음료이면서, 동시에 ‘페인 포인트(Pain point: 고충점)’가 분명한 음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작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니까요. 카페인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하는 임신부도 많고요. 카페인에 예민한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해도 몸에 일어나는 이상 반응 때문에 섭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투병 등의 이유로 커피를 즐기지 못하는 이들도 있죠. 심지어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조차 건강을 걱정하는 분이 많아요. 커피 맛을 살리면서 카페인이 아예 없는 커피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검정보리 시리즈 주 원재료인 흑다향과 오르조. /달차컴퍼니 제공

- 본격적으로 사업을 전개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퇴사 후 공부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커피를 대체할 재료를 찾아다녔어요. 커피로 유명한 이탈리아에서 이미 카페인 없는 커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더군요. ‘오르조’가 대표적이었어요. 보리로 커피 맛을 낸 거죠. 그런데 직접 마셔보니 익숙한 커피의 맛과는 좀 달랐습니다.

- 커피 맛을 내기 위해 어떻게 했나요?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에서 독자 개발한 검은색 겉보리 신품종 ‘흑다향’을 알게 됐어요. 삼양패키딩의 R&D팀과 함께 흑다향과 오르조, 치커리 등을 블렌딩해보니 커피 고유의 맛이 나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어요.”

- 바로 제품화를 했나요.

“식품 관련 인맥도, 전공자도 없었기에 공모성 프로그램을 위주로 도전했어요. 2019년 말 농심이 주최한 푸드테크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농심테크업플러스’ 창업경진대회가 열렸어요. 음료 제조 스타트업에게 다시 없을 기회였죠. 한국 백자 항아리인 ‘달항아리’와 차를 결합한 ‘달차컴퍼니’라는 사명까지 준비하고 출전해 지원 대상에 올랐고요. 6개월간의 육성 기간(엑셀러레이팅)을 거쳐 투자까지 받게 됐습니다.”

◇임산부도 먹을 수 있는 ‘진짜’ 페이크 커피

달차컴퍼니의 제품과 정유찬 대표. /달차컴퍼니 제공

2020년 10월 3가지의 정식 제품을 내놨다. 검정보리 오리지널은 아메리카노 맛이 난다. 검정보리 라떼는 카페라떼 맛인데, 락토프리 우유를 써 우유 속 유당을 소화하지 못해도 맘껏 마실 수 있다. 바닐라라떼 맛인 ‘검정보리 바닐라라떼’까지 합쳐 지금까지 60만병이 팔렸다. 매출로는 10억원에 달한다.

- 디카페인 커피도 있는데, 커피 대용 음료가 주목받는 이유는요.

“디카페인 커피에도 극소량의 카페인이 남아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습니다. 추출하는 과정에서 화학적 용매를 사용하는 경우도 잦죠. 검정보리 시리즈를 개발하면서, 주 고객층으로 예상했던 소비자는 임신부와 수유부였어요. 시음회를 열어 의견을 많이 들었는데요. 디카페인 커피가 과학적으로 안전한지 여부와도 별개로, 그 자체로 선호하지 않는 소비자가 많았습니다.

달차컴퍼니의 검정보리 시리즈는 삼양패키징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달차컴퍼니 제공

- 스타트업이 연구 개발, 제조를 직접 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저희가 하루아침에 음료 제조 공장을 차릴 순 없죠. 기존 공장과 시스템을 적절히 활용해야 합니다. 달차컴퍼니의 음료는 전부 삼양패키징에서 만들어요. 코카콜라를 위탁 제조(OEM)하는 국내 음료 제조 1위 기업이에요.”

- 대기업의 위탁 생산을 하는 기업이 스타트업의 음료를 제조한다니 생소한데요.

“처음 삼양패키징의 문을 두드린 건 달차컴퍼니의 차 브랜드 ‘CIHY’의 차 카토캔(친환경 종이 소재 음료 용기) 버전의 테스트 제품 생산을 의뢰하기 위함이었어요. 규모도 작고 신생이지만, 준비하고 있는 ‘페이크 커피’분야가 기존에 없던 발상이기도 하고,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있다고 설명하니 긍정적인 반응을 해주셨어요.

현재는 상품 개발도 삼양패키징의 R&D팀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는 농업기술실용화재단으로부터 흑다향 관련 가공 기술을 이전받기도 했어요. 더 커피에 가까운 맛을 내기 위해 계속 연구 중입니다.”

◇한국 재료로 글로벌 ‘페이크 커피’ 시장 정조준

12월부터 아마존에서도 검정보리 시리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달차컴퍼니 제공
/더비비드, 달차컴퍼니

검정보리 시리즈와 별개로 차 브랜드인 ‘CIHY(Caffeine I Hate You의 약어)’브랜드를 론칭해 캐모마일, 사과, 파인애플, 마리골드, 팥 등을 이용해 무카페인 차를 5종으로 블렌딩해 판매하고 있다. 공유오피스 위워크에 독점으로 티백을 공급하고 있다. 12월부터는 미국 대형 유통 플랫폼 아마존에서도 검정보리 시리즈를 팔기 시작했다.

- 한국에서 제품 출시 1년 만에 해외 진출이네요.

“검정보리 시리즈는 처음부터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제품입니다. 오히려 더 한국적인 원재료를 찾은 이유이기도 하죠. 이전 직장에서 익힌 실무적인 부분도 도움이 많이 됐고요. 검정보리 시리즈를 알리기 위한 오프라인 매장도 한국과 미국에 준비 중입니다. 또 미국에 법인 설립과 현지 파트너사와의 계약을 완료했고, 동부 및 서부 출장을 통해 필요한 일들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미국 임산부 박람회에서 반응이 좋았던 검정보리 시리즈(좌)와 아마존에 입점된 검정보리 음료(우). /달차컴퍼니 제공

- 검정보리 시리즈가 해외에서 수요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나요.

“지난 10월 뉴욕의 임산부 박람회와 밀라노의 식품전시회에서 ‘페이크 커피(Fake coffee)’라는 이름으로  검정보리 시리즈를 소개했고, 반응이 꽤 좋았어요. 국내에서는 식품법상 원두가 없으면 ‘커피’라고 명명하지 못해요. 그래서 검정보리 시리즈도 ‘액상차’로 분류돼 있죠. 하지만 미국은 달라요. 커피 대용 음료에 ‘페이크 커피’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무관하죠. 미국은 대체 음료 시장이 우리나라의 수백배에 달해요. ‘커피’라는 단어를 써서 마케팅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으면서 시장도 큰 해외 진출은 필수 불가결한 선택입니다.”

- 예비 창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좋게 말하면 블루오션을 찾는 과정이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개척하는 과정이 쉽진 않았어요. 제품 출시 이전에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각오해야 합니다. 창업이 망설여진다면, 관련 분야의 기업에서 근무해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이전 직장에서 배운 무역 실무들이 실제로 사업에 도움이 됐거든요. 내가 하는 일에서 창업 아이테임을 찾아 보세요. 성공 확률이 올라갈 겁니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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