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어머니 휜 발가락이 마음 아팠던 직장인이 내린 결단

창업가 개발노트 훔쳐보기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옆집 창업가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에버바디 이상일 대표, 무지외반증 교정기. /더비비드, 본인 제공

모르면 넘어갈 수 있지만 알고 난 뒤에는 그냥 넘기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엄지발가락이 두 번째 발가락 방향으로 과도하게 휘는 무지외반증이 그렇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의하면 연간 6만명 넘는 인원이 무지외반증 때문에 병원을 찾는다. 부모님 세대에서나 발병하는 질환 정도로 여겨 무시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갈수록 젊은 세대 발병률이 높아지면서 무지외반증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의료기기 브랜드 ‘에버바디’는 무지외반증 치료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에 주목해 무지외반증 교정기를 제작했다. 이상일 대표(40)를 만나 개발기를 들었다.

◇유명 아이크림 대박 낸 후 결정한 선택

에버바디 무지외반증 교정기 착용 모습. /본인 제공

에버바디의 무지외반증 교정기는 엄지발가락이 두 번째 발가락 쪽으로 15도 정도 기울기 시작했을 때부터 착용하면 교정에 도움을 준다. 예방을 목적으로 착용하기도 한다.

제품은 본체(지지대)와 발 전체를 감싸는 이중 벨크로 밴드 그리고 실리콘 쿠션 패드로 구성돼 있다. 착용 시, 엄지발가락이 안쪽 발가락으로 휘면서 튀어나온 뼈 옆에 있는 조절식 노브가 돌출된 뼈인 종족골을 눌러준다. 휘어 있던 엄지발가락과 발이 일직선이 되면서 원래 발 모양을 되찾는 원리다. 증상의 정도에 따라 조절식 노브로 강도를 조절할 수 있다.

화장품 회사 재직 시절 해외 박람회 방문한 이 대표. /본인 제공

에어바디를 개발한 이상일 대표는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2007년 졸업했다. 졸업 후 한 화장품 회사의 구매팀에서 일했다. 기획부터 생산, 수출, 홈쇼핑 판매 관리 등 화장품 판매와 관련한 모든 과정을 경험했다. 아이크림을 대박내기도 했다. 공을 인정받아 임원으로 승진했다.

국내 화장품 시장의 전반을 꿰뚫고 나니, 한국 화장품의 세계화에 관심이 갔다. 2014년 첫 회사를 퇴사한 후 화장품 무역회사로 이직했다. 5년간 해외 시장까지 섭렵하며 화장품 전문가로 거듭났다. 하지만 13년간 화장품 업에 종사하다 보니 다른 영역에 관심이 생겼다. ‘화장품만큼 사람들의 일상을 개선하는 제품은 무엇일까’ 고민에 빠졌다.

-어떤 결론을 냈나요.

“화장품을 판매하며 가장 많이 한 고민이 ‘소비자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일까’ 였어요. ‘불편함’에서 답을 찾았죠. 보통 피부 어딘가가 불편해서 화장품을 이용하잖아요. 다른 물건도 마찬가지예요. 일상에서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목적에 맞는 제품을 구매해서 사용하잖아요. ‘일상에서 불편함을 느껴서 구매하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비자와 제품 제공자로서 최상의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무지외반증 교정기 개발할 당시 팀 회의 모습. /본인 제공

-하필 무지외반증 교정기에 주목한 이유는요.

“어머니의 발 때문이었어요. 옛날부터 무지외반증을 앓고 계셨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어요. 진작 교정을 했으면 이 정도로 악화하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어요. 무지외반증은 외형적 변형이 커지기 전까진 통증이 거의 없거든요. 그러다 갑자기 심각성을 깨닫고 수술받아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죠.

-무지외반증은 일부 사람에게 발병하는 거 아닌가요.

“무지외반증은 생각보다 흔한 질환이에요. 선천적인 요인도 있지만, 발볼이 좁은 운동화나 구두를 장시간 신는 등 후천적인 요인으로 생길 확률이 더 높아요. 엄지발가락 관절을 자극할수록 발가락뼈가 틀어지게 되거든요. 변형된 지 모른 채 잘못된 걸음걸이로 생활하면 갈수록 악화되는 거죠.”

◇무지외반증 교정기 개발기


1. 시장조사와 샘플링으로 사업 시작 (2021년 3월 24일~)

제품 개발 후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 대표. /본인 제공

작년 3월 창업을 결심하자마자 사업자 등록부터 했다. 제품 개발부터 판매까지는 약 6개월이 걸렸다. 단시간에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화장품 구매팀에서 일하던 시절의 업력을 발휘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걸 했나요.

“무지외반증 관련 의료 데이터들을 찾아봤어요. 관련 시장이 확대 추세라 교정기는 이미 많더라고요. 다만 국내외에서 생산되는 교정기 제품들을 수십 개를 직접 구매해 뜯어 본 결과, 제품 종류에 비해 만족도는 낮은 편이었어요. .

시장조사를 하면서 생산 준비에도 착수했어요. 화장품 회사 재직 시절, 중국에 출장을 다니면서 알게 된 현지 파트너가 있어요. 회사 다니던 시절 쌓은 인맥을 활용해 중국 제조 공장과 컨택했죠. 여러 공장에서 다양한 시제품을 받아봤어요. 그중 가장 마음에 든 공장과 생산 계약을 맺었습니다.”

2. 기존의 제품 문제점 개선해 개발(2021년 5월 3일~)

교정기의 다이얼 노브로 조이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본인 제공

샘플 제품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개선할 점을 쭉 나열했다. 상표 출원에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지난해 5월 에버바디 상표를 바로 출원했다. 의료기기업 등록과 의료기기 품목 등록 신고 절차를 준비해 7월에 등록을 완료했다.

-어떤 문제를 개선하기로 했나요.

“사람마다 무지외반증을 겪는 정도가 달라요. 심하게 튀어나온 경우 교정기로 강하게 압박하고, 덜 튀어나왔으면 적당히 교정하면 됩니다. 이처럼 증상에 따라 교정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다이얼을 달았어요.

인체공학적 설계를 하는 데에도 신경 썼어요. 교정기를 착용하고 걸을 수 있으려면 기기가 위아래로 부드럽게 움직여야 해요. 곡선인 발 모양에 맞춰서 신으면 발을 폭 감싸주는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발을 고정하는 벨크로 스트랩 부분도 일자가 아니라 곡선 형태로 설계되어 있어요. 덕분에 발 밀착력이 좋죠.”

-의료기기 인증은 무엇인가요.

“제품의 안전성과 기능적인 부분을 입증하기 위한 행정 절차라고 보면 돼요. 이를 승인받기 위해 제품의 작동 원리와 구조, 치수 같은 세부 스펙, 원재료와 사용 목적 등 제품의 정보를 담은 문서가 많이 필요합니다.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제품이다 보니 신체에 위험을 가할 요인은 없는지 판단하기 위해서죠. 발 벨크로 밴드, 실리콘 등 기기에 사용된 모든 원재료는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성분으로만 구성돼 있다는 것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1등급 의료기기 인증을 받았습니다.”

3. 실용성에 집착해 소비자의 마음을 얻어라 (2021년 6월 2일~ )

제품 검수 및 포장하는 모습. /본인 제공

보기 좋은 제품이 쓰기에도 좋다. 외양이 중요한 제품은 아니지만, 의료기기 특유의 딱딱하고 지루한 이미지를 덜기 위해 디자인에도 신경 썼다.

-어떻게 디자인하는 데 중점을 뒀나요.

“5월에 디자이너를 고용해서 전문적인 디자인 과정을 거쳤어요. 우선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다이얼은 제품의 핵심 기능이라 크기와 색에 신경 썼어요. 너무 튀지 않는 크기에 검은색으로 하는 게 가장 깔끔해 보였어요. 실리콘과 제품 패키지 색감은 민트색으로 했는데, 이것도 의료기기로서 정갈하고 세련돼 보일 수 있도록 의도한 겁니다.”

-또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발이 닿는 부분은 실리콘으로 돼 있어요. 여기까지는 시중 제품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다만 일체형이 아니라 분리형이라는 점에서 차별이 됩니다. 본체와 패드가 일체형이면 세척하기 힘들잖아요. 더러워지면 금방 씻을 수 있게 탈부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실리콘은 걸을 때 충격도 흡수해주고, 냉장고에 넣어 차게 사용하면 통증 완화에도 도움 됩니다.”

5. 제품력으로 카카오 메이커스에서 1주 만에 매출 1억(2021년 10월 29일~)

제품을 양발에 착용하고 걸어도 무리없다. /본인 제공

작년 5월 제품 개발을 완료하고 6월부터 판매 전략을 짰다. 자사몰을 만들고 구매층 조사에 들어갔다. 주요 타깃은 30~60대지만 최근 무지외반증을 겪는 연령대가 다양해진 것을 고려해 20대 중반부터 70대까지를 타깃으로 삼았다. 우선 젊은 층을 타깃으로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고령층이 접근하기 쉬운 오프라인 판매의 물밑 작업도 했다.

작년 10월 카카오 메이커스에서 제품 판매를 했다. 1시간 만에 생활 카테고리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당시 초도 물량 2000개가 바로 팔려 출시 1주 만에 매출 1억원을 기록했다. 그 기세는 지금까지 이어져 꾸준히 매출 성과를 내고 있다. 광고를 전혀 하지 않고 제품으로만 승부한 결과다.

-단기간 최고 매출을 찍을 수 있던 요인은 뭔가요.

“초반부터 광고보다는 기존 제품과의 차별화에 신경 썼어요. 무지외반증 진행 상태에 따른 맞춤 교정이 가능한 조절식 노브가 있는 걸로 특허 출원(제 20-2021-0002330)을 낸 상태예요. 편안하게 착용하면서도 교정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 것이 매출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제품으로 무지외반증 질환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게 목표다. /더비비드

-앞으로 계획은 뭔가요.

“올해 상반기에는 오프라인 채널에서도 제품을 판매할 예정이에요. 약국에서도 구매할 수 있게요. 의료기기여서 입점 절차만 받으면 가능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어디서든 쉽게 구입해 무지외반증이라는 질환을 인지하고, 조기에 치료할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예비 창업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요.

“품질을 보증하지 않은 제품을 함부로 만들면 안 돼요.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라 소비자들은 금방 알아봐요. 의료기기 인증을 받아서 안정성과 효과를 입증하려고 했던 것도 제품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서였어요. 그렇다고 진입 장벽이 마냥 높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계단씩 차근차근 올라가다 보면 문제는 해결되기 마련이거든요.”

이상일 에버바디 대표 주요 경력
-1982년생, 2007년 대학교 마케팅학과 졸업
-2007년 국내 화장품 회사 구매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 후 기획운영부문 총괄 역임
-2014년 화장품 무역 회사 기획운영부문 총괄 담당
-2019년 발 각질 제거기 판매 주식회사 공동 창업
-2021년 주식회사 에스컴바인드 법인 설립
-2021년 에버바디 상표 등록 후 ‘무지외반증 교정기’ 개발 및 판매


/윤채영 에디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