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부모 걱정 없앤 한국 기업의 기특한 아이디어

2024. 7. 4. 10:01인터뷰

비접촉식 생체 신호 모니터링 기기 개발 '피플멀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AI하틴루'를 개발한 피플멀티 박훈웅 대표. /피플멀티, 더비비드

일상 건강 관리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건강 정보의 네트워크화 필요도 키우고 있다.

사물인터넷(IoT. 사물에 센서를 부착해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 스타트업 '피플멀티'는 비접촉 생체신호 모니터링 기기 ‘AI하틴루’를 개발했다. 수면 상태를 측정하고, 질병의 전조증상이 될 수 있는 생체 신호 분석도 해준다. 혼자 사는 노인의 돌발 상황을 챙기는 데도 활용된다. 피플멀티의 박훈웅 대표(47)를 만났다.

◇몸에 차고 있지 않아도 생체신호 측정

AI하틴루 기기를 벽에 설치한 모습 /피플멀티

AI하틴루는 60GHz 초고주파를 통해 생체신호를 측정한다. 몸에 착용하지 않고 공간에 달아 놓는 비접촉 방식이 핵심이다.
방에 기기를 달아 놓으면, 기기가 몸이 내는 호흡수, 심박수, 뒤척임 같은 움직임 등을 측정해 수면 시간 등을 분석한다. 방 안의 온도, 습도, 조도 등 실내 환경 상태도 알려준다. 정보는 최종적으로 인공지능(AI)이 적용된 앱이 사용자 맞춤형으로 분석한다.

쓰임새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혼자 사는 노인의 돌발 상황 예방이다. 호흡수, 심박수 등으로 정상 상태인지 판별해 이상이 생기면 보호자에게 알림이 뜬다. 또 질병 징후를 포착해 미리 건강 검진을 받게 할 수도 있다. CCTV 등으로 사생활 침해를 하지 않고도 대상자가 수면이나 휴식 등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둘째로 사용자의 수면 정보 분석 및 수면 효율 개선이다. 렘수면(REM. 근육 경련을 수반하는 얕은수면 상태), 깊은 수면 등 단계 별로 사용자의 수면 상태를 분석해 정보를 제공해 수면 건강 개선을 돕는다.

◇가공 목재 공사 업체가 IT에 문 두드린 이유

코넥스 상장 기업 제이엠멀티도 운영하고 있는 박훈웅 대표. /제이엠멀티 제공

피플멀티는 제이엠멀티의 자회사로 출발했다. 제이엠멀티는 코넥스 상장 기업으로, 목재 데크(인공 건축 구조물) 등 가공 목재 설치 공사를 주 사업으로 한다. 설립 15년 만에 매출 300억원의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성장하는 데 현실적인 제약이 많았다.

미래 먹거리가 필요했다. “조경사업은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데크를 설치할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으니까요.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펼쳐야 했죠. 최신 산업 트렌드를 읽기 위해 여러 지인을 자주 만나고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던 중 물리적 제약이 없는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통신기술)분야에 눈이 갔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부모의 상태를 원격 확인하는 모습. 피플멀티는 고주파를 통한 생체신호 측정 등에 관한 14종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피플멀티 제공

이왕이면 독자 기술을 개발해 경쟁자 없는 시장을 만들고 싶었다. “전국 각지의 전기·통신 분야 연구소를 돌며 많은 사람을 만났어요. 투자할만한 신기술을 찾아다닌 거죠. 목재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연고 없이 시작했기에 새로운 도전이 어렵진 않았어요.”

'60GHz 초고주파를 통한 생체신호 측정기술’이 눈에 들어왔다. GHz는 주파수의 단위로 주파수가 높을수록 신호에  대한 인식 속도가 빠르고 정밀하다. “레이더 센서는 보통 사람이나 사물을 감지하는 용도로 많이 쓰입니다. 가로등, 자동차 후방감지 센서 등이 대표적이죠."

"고주파 전문 연구진에게 자문해 보니 60GHz 레이더 센서를 활용하면 mm 단위의 떨림부터 심박수, 호흡과 같은 생체정보까지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겠더군요. 머릿속에서 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이 마구 떠올랐어요. 산업, 의료부터 IoT 기기까지 적용 분야가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령사회의 ‘고독사 문제’에 주목

곧바로 연구진을 영입하고 2018년 9월 피플멀티를 설립했다. “60GHz 레이더 센서 관련 특허 출원부터 시작했습니다. 원천 기술을 확보한 후에는 관련 제품 개발에 착수했어요. 그 과정에서 14건의 특허를 확보했습니다. 다만 처음 나온 제품은 모두 평범했어요. 레이더를 활용한 디지털 계수기(사람이나 사물의 수를 세는 기구)나 동물 심박 측정, 분만 신호 측정 기기 등이었죠.”

돌파구를 찾기 위해 주목한 게 노인 문제였다. “정부의 독거노인 돌봄 사업의 주안점 중 하나가 고독사 방지에요. 60GHz 레이더 센서는 카메라를 활용하지 않아 개인의 사생활은 보장하면서 독거노인의 생체신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신변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제3자가 바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착용할 필요 없는 스마트 워치

피플멀티의 첫 헬스케어 제품 'AI하틴루.' /더비비드

센서로 노인의 생체신호를 모니터링하는 ‘AI하틴루’ 개발에 착수했다. “고독사를 찾아내는 게 아니라, 미리 증상을 파악해 건강을 관리하는 제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단순 움직임 이상의 호흡수, 심박수, 수면 시간 등 생체신호를 정밀하게 포착하니, 사후 발견이 아닌 사전 예방이 가능하죠. 예컨대 심박수나 수면 시간이 평소와 다를 경우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문의 상담을 받을 수 있어요. 노인성 불면증이나 높은 심박수가 치매의 전조 증상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많거든요. 노인뿐만 아니라 불면증과 같은 수면 질환을 겪는 현대인도 많아서 제품 수요가 분명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관건은 제품의 형태와 사용 방식이었다. “벽에 부착할 수 있는 소형 기기에 60GHz의 레이더 센서, 온·습도 센서, 조도 센서 등을 적용하는 형태로 만들기로 했어요. 제품의 부착 위치와 방식을 결정하는 과정이 핵심이었습니다. 제품 설계에 따라 레이더가 닿을 수 있는 최대 거리, 감지 범위가 달라지거든요. 제품의 예상 부착 위치, 벽 등 장애인 유무를 따져가며 최적의 기기 모형과 크기, 부착 위치를 찾았습니다.”

'AI하틴루' 전용 앱 활용 예시. /피플멀티 제공

기기로 수집한 정보를 분석하는 애플리케이션도 개발했다. “수집한 대상자의 건강정보와 환경정보를 인공지능(AI) 머신러닝(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한 컴퓨터가 예측을 수행하는 기술)으로 분석해 보여주는 앱이에요. 움직임, 호흡, 심박, 수면 분석 등의 건강 기록 외에도 공간 내 온도, 습도, 조도,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 인체에 유해한 발암물질로 알려짐)의 정보를 알려주죠. 분석 결과는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어요."

건강 이상 징후가 발견됐을 때는 앱에서 보호자 등에게 알림이 간다.  "심박, 호흡 등을 분석해 13가지로 알림 조건을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보일러를 잘 틀지 않는 경우까지 감지해 알림을 보내죠. 곁에 있지 않아도 곁에 있는 것처럼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겁니다."

젊은 사람은 수면 정보 분석 등에 활용할 수 있다. "깊은 수면, 렘수면(REM. 근육 경련을 수반하는 얕은수면 상태), 뒤척임 등 수면 정보는 물론이고 기간별 분석 그래프도 제공하죠. 정보 유출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요. 수집된 정보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클라우드 망인 ‘애저(Azure)’에 보관돼 높은 보안성을 자랑합니다.”

벽에 부착 후 전원선만 연결하면 된다. /피플멀티 제공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을 위해 사용 방법을 최대한 단순화했다. “스마트 워치 등 다른 헬스케어 기기와는 달리 AI하틴루는 비접촉식 기기입니다. 다른 기기처럼 착용하거나 충전할 필요가 없죠. 벽에 부착하기만 하면 모니터링 공백 없이 건강 정보를 측정해줍니다.

설치법도 쉬워요. 전원선과 연결 후 앱과 연동만 하면 됩니다. 한 기기당 최대 5m 거리, 상하좌우 120도 범위로 대상자를 인식할 수 있어요. 방이나 웬만한 원룸, 거실까지 사용할 수 있는 정도죠. 레이더 센서의 전파인증과 유해성 시험도 완료했습니다.”

◇코넥스 넘어 코스닥 상장 목표

'AI하틴루'는 CJ온스타일 홈쇼핑을 통해 제품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피플멀티 제공

제품을 완성하는데 꼬박 3년이 걸렸다. 자본금 5억원으로 시작한 사업에 무려 35억원의 투자금이 들었다. “완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각종 시범 사업부터 했어요. 2020년부터 서울 영등포구, 경기 안산, 시흥시의 ‘홀몸 어르신 돌봄 서비스’ 시범 사업에 참여했고요. SH공사와 ‘1인 가구 위기 대응 서비스’를 주제로 하는 시범 사업을 펼치기도 했죠. 시범 사업으로 습득한 정보도 머신 러닝 데이터에 포함돼 보다 정교한 알고리즘 구축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2020년 6월에는 서울창업허브의 스타트업챌린지 육성 기업에 선정돼 홈쇼핑 출연 기회를 얻었다. 1년여의 품질 개선 과정을 거쳐 2021년 9월, CJ온스타일 홈쇼핑에서 ‘AI하틴루’를 정식 출시했다. “당시 5000만원의 매출을 냈습니다. 이후 오픈 마켓, 공공 분야 납품 등을 통해 출시 6개월 만에 1억원 매출을 달성했죠. 혼자 사는 어르신, 낮에 혼자 지내는 자녀, 수면 질환을 겪거나 건강 관리에 관심이 많은 1인 가구 등 다양한 소비자들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AI하틴루' 제품을 소개하는 피플멀티 박훈웅 대표의 모습. /더비비드

기기 판매뿐만 아니라 보유한 기술의 활용처를 넓히는 데도 주력할 계획이다. “60GHz 센서를 이용한 의료기기를 개발하기 위해 서울아산병원, 유명 다이어트 병원과 협력하고 있습니다. 의공학자에게 의료기기 사용적합성을 자문했고, 수술 중인 환자의 심박·호흡 모니터링 시스템 개발을 위해 공동연구도 진행했죠. 의료기기 개발 외에도 수면 측정 베개나 매트리스 등의 신제품도 출시할 계획입니다. 코넥스 상장을 발판 삼아 이제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업을 일정 궤도에 올린 창업가도 늘 미래 먹거리를 구상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업가라면 산업 전반의 흐름과 유망한 사업 아이템에 관한 관심을 놓치면 안 됩니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많이 만나 보면서 견문을 넓히세요. 확신이 드는 아이템이 있다면, 주저 말고 추진해야 합니다. 남들이 이미 시작한 사업에서 후발 주자로 성공하는 게 더 어렵거든요. 사업 초기 해당 분야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외부 인력이나 서비스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