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바다장어 풍년 난리난 통영 "이렇게 싸진 건 우리도 처음 봐"

더 비비드 2024. 7. 4. 09:25
경남 통영 바닷장어의 쫄깃한 맛

바닷장어를 들어보이는 김봉근 근해통발수협 조합장. /더비비드

동물이 사람의 보살핌을 받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을 두고 ‘손을 탄다’고 표현한다. 바닷장어는 좀처럼 손을 타지 않는다. 시중에서 볼 수 있는 바닷장어는 모두 바다에서 잡아 올린 자연산이다. 포획 순간부터 사람이 주는 먹이를 거의 먹지 않아 양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봉근 근해통발수협 조합장(63)은 40년 넘게 바닷장어를 잡았다. 그런 베테랑에게도 바닷장어는 늘 어렵다. 그냥 봐서는 몇년산인지 추정조차 힘들다고 한다. 베일에 싸인 바닷장어는 비밀이 많은 만큼 숨겨진 매력이 많은 어종이다. 경상남도 통영시의 근해통발수협을 찾아 김 조합장에게 자연산 바닷장어 이야기를 들었다.

◇경남 통영산 바닷장어

통영산 바닷장어가 힘차게 꿈틀거리고 있다. /더비비드

바닷장어는 붕장어, 아나고(붕장어의 일본어 발음)라고도 불린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붕장어를 두고 ‘배 안이 묵색(墨色)으로 맛이 좋고 정력에 좋다’고 기록했다. 허준의 ‘동의보감’도 ‘붕장어는 영양실조와 허약체질에 좋고 각종 상처를 치료하는 데도 효력이 있다’고 쓰고 있다.

경남 통영의 근해통발수협은 국내 유일 바닷장어 전문 수협이다. 우리나라 붕장어의 약 80%가 이곳을 거친다. 통발에서 잡아 살아있는 활장어를 수매하고 손질·가공한다. 순살로 손질된 바닷장어는 국내는 물론 미국·일본·동남아 등으로 수출한다. 바닷장어의 제철은 여름이지만 연중 맛의 차이가 크지 않다. 필수 아미노산, 오메가3, 비타민A 등 영양소가 풍부해 보양식으로도 활용되는 식재료다. 수협은 현재 온라인몰 미스타피쉬(https://mistarfish.co.kr/)를 통해 바닷장어 최저가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바닷장어 양식 불가능한 이유

통영 앞바다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더비비드

김 조합장은 통영의 한 섬마을 출신이다. 마을에 중학교가 없어 학교를 가려면 배를 타야만 했다. 사춘기 시절부터 하루 두 번씩 배를 탔으니 바다가 무서울 리가. 19살부터 붕장어 배에 승선해 뱃사람이 됐다. 1983년 선장이, 그로부터 7년 뒤엔 선주가 됐다. 지금은 근해통발수협의 조합장이다. 2015년부터 딱 10년을 채웠다.

- 민물장어와 바닷장어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일반적으로 내륙 지방에서는 민물장어를, 해안가 지역에서는 바닷장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접근성의 영향을 받은 거겠죠.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양식이냐, 자연산이냐 여부입니다. 민물장어는 치어를 잡아 육상에서 키우는데요. 바닷장어는 성질이 고약해서 키울 수가 없습니다. 어민들이 먼바다까지 나가서 직접 잡아야 하죠. 흔히 말하는 바닷장어는 대부분 붕장어입니다. 그 외에도 먹장어가 있는데 꼼장어(부산 방언)라 불리기도 합니다.”

출항을 앞둔 바닷장어잡이 배. 미끼로 쓸 멸치와 선원들이 먹을 물·라면이 한가득 쌓여 있다. /더비비드

- 바닷장어는 어떻게 잡나요.

“한번 출항하면 15일 정도 걸립니다. 뭍에서 300~400㎞ 떨어진 조업지까지 가는 데만 24~30시간이 걸려요. 조업지에 도착하면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8시간 동안 통발을 바다에 던집니다. 이걸 ‘투망’이라고 하죠. 5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통발을 걷어 올려야 합니다. 이 작업은 ‘양망’이라고 해요. 8~9시간에 걸쳐 양망을 하면 딱 하루가 지나죠. 그렇게 하루 한 번씩 약 열흘간 조업을 한 뒤에 다시 육지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합니다.”

- 보름에 걸친 조업을 하려면 배가 커야겠네요.

“근해통발수협의 바닷장어 어선은 46척입니다. 10톤 이상이어야 근해 어업 허가를 받을 수 있어요. 작게는 12톤부터 크게는 99톤까지 다양한 규모의 어선이 있습니다. 저도 80톤 규모의 바닷장어 배로 조업을 하고 있어요. 채산을 맞추려면 조업 나갈 때마다 1000㎏ 이상은 잡아야 합니다. 한번 조업을 나갈 때마다 물, 라면, 미끼로 쓰는 멸치 등을 한가득 챙기죠.”

바닷장어 선박에서 1톤 트럭으로 장어를 옮기는 모습. /더비비드

- 통영은 언제부터 바닷장어로 유명했나요.

“일제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부산·통영 앞바다에서 바닷장어를 잡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시절엔 대나무로 만든 통발을 이용했다고 전해지는데요. 지금은 가벼운 플라스틱 통발이 쓰이고 있죠. 통영을 중심으로 바닷장어 산업이 활성화되면서 전국에서 가장 바닷장어를 많이 취급하는 지역으로 성장했어요. 지난 5월엔 제1회 통영 바닷장어 축제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복잡한 손질은 공장에서 끝

경남 통영의 근해통발수협 전경. /더비비드

매일 아침 9시 근해통발수협 1층에서는 바닷장어 경매가 열린다. 어선에 있던 바닷장어를 크레인에 연결된 대형 뜰채를 이용해 트럭에 싣고, 수협 내 위판장 수조에 옮기길 수십번. 34개에 달하는 수조에 바닷장어가 채워지고 그 위에는 배 이름이 적힌 나무 조각이 둥둥 떠다닌다. 낙찰된 장어는 곧장 다시 차에 실려 떠난다. 6월 24일 하루 거래량은 1만2000㎏에 달했다.

- 최근 바닷장어 가격은 어느 정도인가요.

“오늘(6월 24일)을 기준으로 하면 1㎏에 8500원에서 1만3000원 정도의 가격대였어요. 어민의 입장에서는 1만2000원 이상의 가격이 형성돼야 채산성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 이하의 경우 선박 감가상각비, 보험료, 미끼값 등을 제하고 나면 실제 소득이 남지 않기 때문이죠. 1만원 이하는 적자라고 봐야 합니다. 많이 잡을수록 손해인 상황이죠.”

수협은 현재 온라인몰 미스타피쉬(https://mistarfish.co.kr/)를 통해 바닷장어 최저가 공동구매 행사를 하고 있다.

해썹(HACCP) 위생관리 시스템 인증을 받은 근해통발수협의 바닷장어 가공공장. 내장·뼈를 제거하고(왼쪽) 영하 42℃에서 급속 동결(오른쪽)한다. /더비비드

- 가격이 맞지 않아 팔리지 않은 장어는 어디로 가나요.

“위판장 수조에서 하루에 보관할 수 있는 물량은 약 68t입니다. 사흘 이상 팔리지 않은 물량은 수협에서 전량 수매하죠. 해썹(HACCP) 위생관리 시스템 인증을 받은 가공공장에서 선별·손질·포장까지 합니다. 영하 42℃에서 급속 동결해 진공포장하면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대만 등 수출도 가능합니다. 활어 정리에 6명, 손질·포장에 10명 등 전담 인력만 16명이에요.”

- 바닷장어를 어떻게 가공하나요.

“먼저 길이를 기준으로 대·중·소로 나눕니다. 55~65㎝는 대, 45~55㎝는 중, 그 이하는 소로 분류하죠. 가공은 곧 순수하게 살만 남기는 작업을 말합니다. 머리와 내장, 뼈를 모두 제거해요. 가정에서 손질없이 바로 조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죠. 이렇게 손질해 유통되는 양이 연간 100만t에 달합니다. 간편함이 가장 큰 무기인 셈이죠.”

바닷장어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김봉근 근해통발수협 조합장. /더비비드

- 흔하지 않은 바닷장어 요리를 소개한다면요.

“보통 미역국 하면 ‘소고기미역국’을 떠올리죠. 통영에선 미역국을 끓일 때 꼭 바닷장어를 넣습니다. 바닷장어의 통통하면서도 쫄깃한 맛이 참 잘 어울리거든요. 김치찌개에 돼지고기 대신 바닷장어를 넣어도 맛이 좋습니다. 바닷장어는 육고기를 대신할 만큼 맛과 영양이 뛰어나답니다.”

- 바닷장어와 함께한 지난 45년을 돌아본다면.

“장어는 맨손으로 잡기 참 어려워요. 끈적끈적하고 미끄러울 뿐만 아니라 힘이 좋아 자꾸 손에서 빠져나가거든요. 그런 바닷장어가 제 인생에 이렇게 깊이 들어올 줄은 몰랐습니다. 바닷장어 없이 산 세월보다 함께한 세월이 훨씬 더 기네요. 지난 4~5년간 어려움을 겪기도 했어요. 수요가 부족해 재고가 많이 쌓였죠. 하지만 우리 어민의 마음은 늘 한결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을 위한 먹거리를 생산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