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장어 식품회사 창업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장어는 원기 회복의 대명사로 불린다.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도 장어의 효능이 적혀있을 만큼 예로부터 기력 충전에 좋은 식재료로 알려졌다. 다만 비싼 음식이란 인식이 강하다.
은장어 전문 식품회사 ‘세인트브로스홀딩스’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모로코산 ‘은장어’를 취급하는 업체다. 은장어 수입, 가공, 생산, 유통 과정을 효율화해 가격을 낮췄다. 서울 유명 일식집, 김밥 프랜차이즈와 산후조리원에도 은장어를 납품한다. 누구나 쉽고 저렴하게 장어를 먹을 수 있게 은장어 밀키트도 개발했다. 세인트브로스홀딩스의 성기모(39) 대표를 만나 은장어의 세계에 입문한 이유를 들었다.
◇쉽게 즐길 수 있는 장어 요리
세인트브로스홀딩스는 은장어 수입부터 제조, 유통까지 아우르는 기업이다. 은장어 독점 수입망과 생산시설을 확보했다. 다양한 식당이나 기관에 식재료를 납품하고, 신메뉴를 공동 개발하면서 몸집을 불리는 중이다.
일반 소비자를 겨냥한 온라인 전용 브랜드 ‘어느긴밤’도 운영하고 있다. 대표 상품은 은장어 구이, 죽, 어묵 밀키트 등이다.
◇구조조정에 지친 인사담당자
2009년 건국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대기업 인사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학창 시절 아나운서를 꿈꿨는데 잘 안됐습니다. 그래도 인사팀에서 직원 교육 등의 행사를 진행하며 못다 이룬 꿈을 실현했죠. 초반에는 회사 생활이 즐거웠습니다. 2011년부터 중앙대 MBA(경영전문대학원) 과정을 밟으며 경영 지식도 채웠죠.”
창업의 꿈을 품기 시작한 건 2015년 무렵이다. “인사팀에 있다 보니 경영 효율화를 위한 구조조정 작업을 자주 했어요. 동료에게 정리 해고를 통보하는 일도 몇 번 있었죠.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회의감을 느꼈어요. 마침 MBA를 수료한 지 얼마 안 된 상태라 배운 걸 실천해보고 싶었어요.”
4대째 이어온 가업이 눈에 들어왔다. “외가에서 오랜 기간 수산업을 했어요.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한 민물장어 수입 회사를 외삼촌이 운영하고 계셨죠. 활어 상태의 민물장어를 항공 직송으로 들여와 유통처에 공급하는 곳이었어요. 덕분에 귀한 음식으로 꼽히는 장어를 어린 시절부터 자주 접했어요. 식당에서 사 먹으려면 비싸잖아요. 조리법도 다양하지 않아 구워 파는 곳이 대부분이었고요. ‘장어 조리법을 다양화해서 대중에게 널리 알리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스쳤어요.”
2017년 퇴사하고 창업 준비에 들어갔다. 장어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국내 수산업 유통 구조를 익히기 위해 주말마다 삼촌을 따라다녔다.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민물장어의 어종은 대부분 ‘자포니z(Japonica)’였습니다. 장어구이 식당에서 먹는 그 장어죠. 일본에서 주로 서식하는 어종이라 붙은 이름입니다. 국내에서도 양식이 가능해 보편적으로 소비되고 있었죠. 그런데 하루는 삼촌이 ‘아는 사람만 먹는 것’이라며 새로운 어종을 소개해줬어요.”
그때 처음 ‘은장어’에 눈을 떴다. “은장어는 지중해에서 서식하고, ‘앙귈리아(Anguila)’라는 학술 명을 가진 어종입니다. 호기심을 느껴서 은장어에 대해 파헤치기 시작했어요. 불포화지방산(필수 지방성분. 체내 콜레스테롤 비율을 낮추고 세포막을 구성하는 요소) 함유량이 78.5%로 일반 민물장어보다 20%가량 높고, 오메가3도 더 풍부하더군요. 그러면서 가시는 적어 고소함과 감칠맛이 훨씬 뛰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자포니카보다 보편적이지 않은 이유는 양식이 어렵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자주 수입하기엔 채산성이 떨어졌어요. 살아있는 장어를 항공으로 들여야 하니 운송비가 많이 들거든요."
◇서울 ‘일식 4대문파’ 문 두드려 얻은 것
그래도 더 맛있는 식재료를 발견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2019년 은장어 가공 식품회사 유니앰퍼샌드 법인을 설립했다. “국내 장어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를 발견했어요. 장어의 소비자 가격이 비싼 가장 큰 이유는 유독 긴 중간 유통 과정에 있어요. 이해관계자를 줄여야 소비자가를 낮출 수 있는 구조더군요. 장어 공수, 완제품 제조, 유통 등 전 과정을 아울러 원가를 절감하기로 했습니다. 식당에 갈 필요 없이 언제든 장어를 먹을 수 있게 ‘어느긴밤’이라는 은장어 밀키트 브랜드도 론칭했어요. ”
자본금 5억원을 들여 경기 평택에 생산 시설을 구축했다. 한 달에 4톤 규모의 은장어를 취급할 수 있는 규모다. “먼저 외삼촌의 회사를 통해 모로코 현지 협력처에서 활어 상태의 은장어를 항공편으로 가지고 옵니다. 산소 포장 방식을 활용해 은장어가 살아있는 채로 도착하죠. 이후 평택 공장으로 옮겨져 필렛(fillet. 생선이나 고기의 뼈 없는 조각) 상태로 가공합니다. 뼈는 따로 분리해 육수로 활용되죠. 가공된 은장어 살은 밀키트로 만들어져요. 초벌, 스팀, 직화 등 전 조리 과정이 자동으로 이뤄집니다.”
중점을 둔 부분은 조리법 개발이었다. “‘일식 4대문파’라고 불리는 국내 유명 셰프를 직접 찾아갔어요. 이충현, 임홍식 셰프에게 자문했죠. 장어의 맛을 보여드린 뒤 은장어를 알리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도움을 주셨어요. 장어 요리로 유명하다는 곳은 무작정 찾아가 은장어 요리를 맛보게 하고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조리법만 반년 넘게 준비했어요.”
2019년 7월, 은장어 밀키트를 출시했다. 취향별로 먹을 수 있게 구이, 죽, 어묵 형태로 만들었다. “누구나 장어를 먹을 수 있도록 가격을 합리적으로 책정하는 데 주안점을 뒀어요. 장어가 비싸서 못 먹는 일은 없길 바랐죠. 외삼촌의 회사를 통해 은장어를 수입한 덕에 MOQ(최소구입수량)를 조율할 수 있었어요. 모로코 협력사에서 은장어를 알리겠다는 비전을 높게 평가해준 덕입니다. 중간 유통비를 아껴 가격을 1~2만원대로 책정했죠.”
대표상품은 구이 키트다. 오리지널, 솔향 콩장, 간장, 매운맛 네 가지 제품으로 구성했다. “은장어는 잔가시가 없어 구이로 섭취했을 때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지방의 비율이 높아 밥 위에 올려 먹으면 밥알에 기름기가 코팅되며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죠. 식감은 아주 부드러운데요. 냉동으로 유통하면 식감이 온전히 전달이 안되더라고요. 품질 유지를 위해 생산 8일 이내의 냉장 제품만 유통합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35가지 유해 검사에서 적합 판정도 받았죠.”
◇초라한 첫 성적표, B2B로 반전
기대가 너무 컸을까. 공들인 것에 비해 초반 성과가 미미했다. 출시 후 1년 동안 4000만원 치 팔렸다. “처음부터 최종 소비자를 타깃으로 하니 마케팅 과정이 만만치 않았어요. 은장어라는 식재료가 생소하잖아요. 막대한 홍보비용을 들이지 않으면 제품을 알리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지지부진하던 때에 B2B 사업에서 활로를 찾았다. “일식당, 건강식품 브랜드, 산후조리원 등으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어요. 자사 메뉴나 제품에 은장어를 쓰고 싶다고요. 장어를 주력 메뉴로 하는 밀키트 브랜드가 거의 없다 보니 눈여겨 봤나봐요. 은장어 대중화라는 창업 계기를 실현하면서 양적으로도 성장할 절호의 기회였어요. 은장어 수입망과 생산 시설을 독점적으로 확보해둔 상태라 전략적으로도 유리한 면이 있었고요.”
협업으로 만든 첫 제품이 장어김밥이다. “작년 3월 김밥 프랜차이즈 ‘로봇김밥’과 ‘장어김밥’을 출시했습니다. 김밥 위에 장어를 올린 제품인데요. 김밥 프랜차이즈에는 고급화 전략이지만, 장어 회사 입장에선 대중화를 이룬 셈이니 파트너끼리 목표가 딱 들어맞았죠.”
협업 제안 문의가 밀려 들어오면서 올해 초 B2B 전용 법인 세인트브로스홀딩스를 설립했다. “로봇김밥 말고도 하즈밴, 네기다이닝, 코슌 등의 고급 일식 브랜드에 은장어를 공급하고 있습니다. 송도에 위치한 산후조리원의 보양 식단에도 은장어가 활용되고 있습니다. 은장어가 원기 회복에 특효인 건 물론이고요. 토코페롤이 풍부해 항산화 작용이 뛰어납니다. 여성의 난소 작용을 강화한다는 한의학 연구자료도 있죠.”
◇장어의 나라 일본에도 출사표, 은장어 식당 개점 목표
한국을 넘어 다른 나라에도 은장어를 전파하고 있다. 장어의 나라 일본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작년부터 은장어의 일본 내 유통이 허용됐어요. 중개 무역형식의 수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은장어 원물과 머리뼈 육수를 일본에 수출할 계획이에요. 일본의 유명 상사와 협의 중입니다. 은장어를 넣은 보양죽은 이미 상가포르에 수출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와의 접점을 최대화하기 위해 꾸준히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요즘에는 장어 육수를 활용한 삼계탕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메뉴 개발을 완료하면 은장어 요리 전문점을 개점할 계획이에요. 또 은장어의 점액에서 ‘뮤신’이라는 성분이 나오는데요. 혈액 순환과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물질입니다. 이 성분을 활용한 건강기능식품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식품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강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식품업에서 어려운 점은 ‘맛을 객관화할 수 없다’는 거예요. 모든 소비자의 입맛을 맞출 수 없죠. 식품 사업에 도전하고 싶다면 ‘틈새’를 노려보세요. 경쟁 제품보다 뛰어난 요소가 하나라도 있다면 도전해 볼 만 합니다. 자포니카보다 은장어의 상품성을 높게 산 제가 이 일에 뛰어든 것처럼요. 단, 그 요소가 경쟁 제품보다 월등히 뛰어나야 해요. 그럼 소비자들이 찾아줄 겁니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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