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코코퍼레이션 ‘언더싱크 직수 정수기’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옆집 창업가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코리아!”
2009년 말 아제르바이잔에선 한국의 한 중소기업 직원들을 대접하겠다며 잔치가 열렸다. 정수 설비 구축 공사가 끝난 기념으로 아제르바이잔 주민들이 감사 표시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터키와 이란 사이에 있는 아제르바이잔은 당시만 해도 마땅한 정수 시설이 없어서, 머리에 큰 통을 이고 수십km 걸어야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걸어도 구할 수 있는 물이라곤 흙탕물 뿐이었다. 이런 나라에 한국의 중소기업이 깨끗한 물을 구해준 것이다.
중소기업 와코코퍼레이션에서 18년간 물 연구를 해온 김진욱 CPO(Chief Production Officer·최고생산책임자)의 회상이다. 2009년 와코코퍼레이션은 1년 반에 걸쳐 아제르바이잔 75개 마을에 정수 설비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와코코퍼레이션은 전 세계 65개국에 정수기, 수동식 비데 등 제품을 수출한다. 주력 제품은 ‘와코 언더싱크 직수 정수기’다. 따로 정수된 물을 저장해놓았다가 공급하는 방식이 아니다. 필터를 거쳐 나오는 수돗물을 곧바로 사용하는 직수 방식이다. 김진욱 CPO를 만나 한국 정수기의 세계 시장 공략기를 들었다.
◇김진욱 와코코퍼레이션 CPO의 ‘언더싱크 직수 정수기’ 개발 노트
‘와코 언더싱크 직수 정수기’는 주방 싱크대 밑에 설치해 사용한다. 흐르는 수돗물을 바로 정수해 식수로 만든다. 물을 저장해놓을 필요가 없어 전기를 쓰지 않는다. 가격도 저렴해 10만원도 하지 않는다. 6개월마다 필터만 교체하면 된다.
김진욱 CPO는 2004년 와코코퍼레이션이 처음 만들어질 때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어간 회사가 됐다.
1. 이제 막 성장하는 시장에 진입해라 (제품 시장조사 및 출시: 2004년~)
와코는 처음부터 수출을 목표로 했다. 주방 밑에 설치하는 직수 정수기를 주력 제품으로 정했다. 한국에선 낯선데 외국에선 널리 쓰이는 방식이다.
“비 개발 지역은 돈 주고 사 먹는 페트병 생수도 이물질이 동동 떠 있는 경우가 많아요. 물 때문에 질병에 시달리거나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죠. 직수정수기는 설치가 간편하고, 사용법이나 관리도 편합니다. 정수 설비가 잘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도 쉽게 쓸 수 있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2. 빈틈을 노려라 (수출 확장: 2005년~)
바누아투, 모리셔스 등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제3국에 진출해 직수 정수기를 팔았다. “시장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대기업에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니라들이에요. 중소기업으로서 대기업과 차별화하려면 이런 틈새를 파고드는 게 필요한 전략이라 생각했습니다.”
현지 회사나 대리점과 계약해 제품 판매를 맡기는 방식으로 유통채널을 확보했다. 온라인 판매도 적극적으로 했다. “판매·유통을 외부에 맡기면서, 제품 생산과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사이 미국, 스페인 등 선진국 진출에도 성공했습니다.”
수도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라는 대규모 정수 설비 공급도 추진했다. 사업을 확장하고 매출 규모를 키우는 계기가 됐다.
3. 직접 부딪히며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아라 (제품 문제 발견: 2008년~)
2008년 아제르바이잔에 정수시설을 지을 때 예기치 못한 문제점을 발견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별로 수질 차이가 크게 나타난 것이다.
“한 달 만에 막혀서 물이 안 나온다는 곳이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필터 안에 머드 성분이 가득 차 있더군요. 수돗물을 틀어 물 색깔을 봤을 땐 우리나라 물처럼 투명했는데도 예상치 못했던 머드 성분이 있었던 거죠. 결국 머드 성분을 제거하는 필터를 추가한 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어요.”
4. 사소한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든다 (제품 점검 및 관리: 2012년~)
지역별로 다른 수질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필터를 개발하기로 했다. ‘지역별 맞춤 필터’다. 전 세계 대리점에서 데이터를 받아서 수질을 분석해 그에 맞게 필터 구조를 설계했다. 수질 맞춤형 필터 여재(여과지) 개발에 성공했다.
어느 지역에서 수출 문의가 들어오든 자신 있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개발이 덜 된 나라의 산골 오지까지 다니며 수질 분석을 했기에 이쪽 분야에서는 전문가가 됐다고 자부해요. 정수 전후 물을 직접 취식까지 해가며 분석했거든요. 덕분에 세계 어느 수질 환경에서도 최적의 정수 솔루션을 개발했다고 자부합니다.”
5. 선택과 집중으로 강점을 길러라 (제품 개선: 2013년~)
해외 수출만 하던 언더싱크 직수 정수기를 올해 한국에서도 팔기 시작했다. 렌탈비, 전기요금 등 관리 부담이 큰 기존 정수기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해외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 오신 분 중에 저희 제품을 찾는 경우가 많아요. 비싼 다른 정수기는 사치품이라 말씀하시는 분도 있죠. 기본에 충실한 저희 제품에 확실한 자신감이 있습니다.”
한국 수질 상황에 맞게 정수 필터를 설계했다. “한국에선 염소 냄새와 녹물 제거가 핵심입니다. 필터를 4단계로 구성했어요. 우선 '침전필터'인데요. 오래된 배관에서 나오는 녹물을 일차적으로 걸러줍니다. 이후 염소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선 '선카본 필터'를 달았고, 각종 세균을 걸러주는 '중공사막 필터'와 물맛을 부드럽게 하는 '후카본 필터'로 이어집니다.”
설치와 관리 부담이 없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필터를 손쉽게 돌려서 탈부착할 수 있는 ‘인터록 방식’ 덕분이다. “다른 정수기는 필터를 뺄 때 누수 위험이 있어서 전문가가 직접 할 수밖에 없었어요. 반면 인터록 방식은 필터를 빼는 즉시 원수가 자동으로 잠기는 원리에요. 편리함과 안정성 둘 다 충족하죠.”
‘와코 언더싱크 직수 정수기’로만 한해 30억원대 매출을 낸다. 코로나 사태로 수출 물량이 늘어 경기도 포천에 두 번째 공장을 세울 예정이다. 3년 안에 80개국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새로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경쟁자가 널려 있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략 포인트는 분명히 있습니다. 한국의 정수기 시장이 그렇죠. 20년 전에는 사람들이 일반 정수기만 알았기 때문에 저희가 파고들 틈이 없었지만, 이젠 직수 정수기에 대한 인식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틈이 생기고 있어요. 적절한 성장의 타이밍을 계속 잡아가겠습니다.”
/임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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