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기반 온라인 판매·마케팅 통합 솔루션 개발기, 스타트업 헤드리스
창업 기업은 한 번 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온라인 판매자들은 여러 채널을 운영하면서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는 전략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채널이 늘면 신경 써야 할 게 한 둘이 아니다. 자칫 한 개 운영하느니만 못한 부작용이 날 수도 있다.
‘헤드리스 주식회사’는 AI(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온라인 판매·마케팅 통합 솔루션을 개발했다. 다양한 채널의 고객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 솔루션을 제공해 마케팅을 돕는다. 가능성을 인정받아 1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남궁지환(39) 대표를 만나 전자 상거래 시장에 주목한 이유를 들었다.
◇브랜드 입장 돼 마주한 불편함
2002년 한동대학교 전산경영학과에 진학했다. 학부시절부터 각종 마케팅 공모전에 참가하며 브랜드 경영에 대한 지식을 키워나갔다. 2009년 패션회사 위주로 컨설팅·투자를 하는 회사에 입사했다. 신사업 육성 업무를 맡아 패션 브랜드와 유통사, 온라인 쇼핑몰과의 역학관계를 배웠다.
11번가나 G마켓 같은 오픈마켓에 입점해 상품을 팔았다. 이미 회원이 많은 기성 오픈마켓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분명했다. “판매자들은 보통 수수료 문제부터 얘기하시는데요. 저는 ‘데이터’를 온전히 소유하고 이용할 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픈마켓을 이용하는 기업이 얻을 수 있는 고객의 정보는 성별, 연령대 그리고 고객들이 작성한 구매후기 정도예요. 입점 업체가 아니라 오픈마켓의 회원이기 때문에 나머지 정보는 모두 오픈마켓이 갖게 되는 거죠.”
반면 자사몰을 이용하면 세부적인 고객 행동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 “고객이 자사몰에 어떤 경로로 접속을 했는지, 무슨 단어로 검색해서 들어왔는지, 고객이 이전에 조회했던 상품들은 무엇인지 등 회원들의 행동 데이터를 모두 얻을 수 있어요. 고객들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앞으로의 제품 판매 전략 및 마케팅 방향을 개선할 수 있죠. 또 자사몰에선 문의, 후기, 쿠폰 발급 등으로 고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어 고객 만족도를 올리는 장점도 있습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우선 홈페이지 개발비가 들죠. 홍보도 어렵고요. 또 모든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대신, 회사에 데이터 수집 및 분석 기술력을 보유한 인력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정보를 활용할 수 있고 마케팅 전략도 짤 수 있습니다. 고객 데이터를 온전히 소유해도 마케팅에 활용할 수 없다면 데이터 축적에만 그치게 됩니다.”
수많은 기업 컨설팅을 진행하며 파악한 문제점을 바탕으로, 자사몰 운영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사몰, 오픈마켓 모두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브랜드가 오랜 기간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선 자사몰을 운영하는 게 더 유리하다는 결론이 내려졌어요. 수중에 있는 고객 데이터 분석을 통해 마케팅 전략을 개선하고 더 나아가 회원제로 충성 고객도 모을 수 있으니까요. 자사몰 운영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고객 데이터 통계 분석 문제를 해결해 마케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해 주는 건 어떨까’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답은 ‘헤드리스 커머스’
해결책을 고민하던 중, 전 직장 동료였던 최진욱 현 CMO(마케팅 총괄 이사)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기업의 자사몰 운영 솔루션을 함께 고안해 보기로 했다. 해외 전자 상거래 시장의 트렌드로 급부상한 ‘헤드리스 커머스’ 기술을 발견했다.
헤드리스 커머스는 백엔드와 프론트엔드가 분리된 개발 환경을 말한다. 쇼핑몰에서 백엔드는 결제, 재고 관리, 고객 데이터 수집 등 핵심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을 의미한다. 고객은 접근할 수 없고 판매자만 접근하는 페이지다. 프론트엔드는 고객이 쇼핑몰 접속 시 마주하는 홈페이지 화면 등의 사용자 환경(UI)과 경험(UX)을 뜻한다.
기존에는 백엔드와 프론트엔드를 연결해 개발했다. 세 개의 채널을 운영한다면 세 개의 백엔드와 세 개의 프론트엔드를 모두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여러 판매 채널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 또 기존 개발 방식으로는 화면에 노출되는 상품 디자인이나 카테고리 하나만 바꾸려 해도 백엔드에 영향이 갔다. 판매 페이지를 바꾸려고 백엔드도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자사몰 홈페이지 수정에 매번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면의 문제가 심각했다.
프론트엔드는 시시각각 변하는 고객들의 선호를 반영해야 한다. 고객이 선호하는 제품,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유행하는 웹 디자인 등 시장 트렌드와 고객 취향이 급변하는 시대인 까닭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쇼핑몰에 접속하자마자 보는 메인 페이지의 디자인과 노출 상품 등을 수시로 바꿔야 한다. PC·모바일 등 다양한 판매 채널의 화면도 각각 다르게 구성해야 한다. 쇼핑몰 외형 수정이 잦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헤드리스 커머스 기술을 활용하면 백엔드와 프론트엔드를 별개로 관리할 수 있다. “하나의 백엔드에서 여러 채널의 상품, 재고, 고객 데이터를 모두 관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 채널에 한꺼번에 대응할 수 있는 거예요. 자사몰 운영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이라 확신했어요.”
◇백엔드 하나로 쇼핑몰 모든 정보 한 번에 관리하기
2021년 4월 헤드리스 커머스 기술을 적용해 하나의 백엔드에서 자사몰이 활용하는 여러 채널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자사몰, 소셜 미디어 등에서 고객과의 직접적 접점을 늘리는 ‘그로스해킹(상품 및 서비스의 개선사항을 수시로 반영하는 온라인 마케팅) D2C(Direct to Consumer) 솔루션’을 고안한 것이다.
고객 데이터를 수집 및 분석하고 제품 키워드를 자동으로 생성할 수 있는 기술만 추가로 적용한다면 자사몰 운영의 단점을 모두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슬랙스 제품을 구매할 때 어떤 소비자는 네이버 쇼핑에서 ‘여성 슬랙스’를 검색하고, 또 다른 소비자는 카카오 쇼핑에서 ‘검정 슬랙스’를 검색하죠. 여러 채널의 고객 행동 데이터를 수집해 다양한 검색 키워드를 추가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어요.”
실시간으로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 빠른 고객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을 사용하기로 했다.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하며 최 이사의 전 직장 개발자였던 서동우 현 CTO(최고기술경영자)와 함께하게 됐다. 패션 플랫폼의 CTO이자 개발자로 근무하면서 AI 활용 데이터 수집 기술 및 클라우드 기술 개발을 경험한 전문가였다.
2021년 10월에 법인을 설립하고 ‘헤드리스 SasS(Software as a Service·기업용 서비스형 소프트웨어)형 솔루션’ 베타서비스를 내놨다. 헤드리스 솔루션을 이용하면 단 한 개의 백엔드를 통해 여러 채널에서 축적된 각종 데이터를 분석하고, 상품 관련 콘텐츠를 관리할 수 있다. 이곳에서 고객의 행동 분석이 모두 이뤄진다.
또 검색 플랫폼에 상품이 노출될 수 있도록 자동으로 카테고리 및 키워드 설정을 돕는다. 핵심 기능 ‘카탈로그 솔루션’이다. “인공지능이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 올라와 있는 유사 제품의 속성값을 모두 분석해 자사 제품에 적용합니다. 동시에 고객들이 어떤 검색어를 통해 판매 사이트에 유입됐는지도 클라우드에 수집해요. 이를 종합한 속성값을 가진 제품을 아웃링크(해당 정보를 제공한 본래 사이트로 이동)가 가능한 플랫폼(네이버, 페이스북, 구글 쇼핑 등)에 실시간으로 자동 등록합니다. 제품이 포털 사이트에 노출되지 않을 염려를 없애주죠.”
“예컨대 ‘린넨 재킷’을 판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선 자사 제품의 이미지를 등록하면 인공지능이 ‘유사도 측정’ 기능을 활용해 기존에 올라와 있는 유사 제품을 모두 수집해요. 원래 저희 제품에 등록된 속성값이 ‘린넨’ 하나였다면, 그 제품들이 가지고 있는 속성값인 ‘반팔’, ‘여성용’, ‘회색’ 등도 수집해서 저희 상품에 등록하죠. 이후 네이버 쇼핑 검색창에 ‘여성용 재킷’을 치면 저희 제품도 노출되는 원리예요. 인공지능이 자사몰 제품을 자동으로 플랫폼에 등록해 주니까요.”
◇베타서비스로 여성복 브랜드 자사몰 매출 5배 증가 달성
기존에 브랜드 컨설팅을 했던 일부 기업에 베타 솔루션을 제공해 비즈니스 실현 가능 여부를 검증 중이다. 2021년 10월 베타서비스를 이용한 여성복 회사의 자사몰 매출이 전년 대비 5배 증가했다. 자사몰 회원 수는 2배 늘었고 전체적으로 온라인 매출도 2배 뛰었다.
정식 출시 이전인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과를 냈다. “저희 서비스가 마케팅 전략 수립에 도움을 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AI가 알아서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줘서 한눈에 고객 성향 파악이 가능해요. 그걸 바탕으로 리타게팅(잠재고객의 재방문 유도) 광고를 기획할 수 있죠. 또 분석한 상품 데이터를 가지고 실시간으로 광고 상품을 골라주는 기능도 있습니다. 신규 고객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데도 기여했다고 생각해요.”
제품을 구상하기 시작한 지 1년 만인 올 4월에 정식 서비스 출시를 앞두고 있다. 수익모델은 월 구독료다. 판매자는 한 달에 일정 금액을 내고 헤드리스의 솔루션과 브랜드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비교적 빠른 시간에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로 ‘정확한 문제 인식’을 꼽았다.
“창업을 실행하려면 내가 해결하려는 문제점은 무엇이고 그걸 위해선 어떤 기술이나 방법이 필요한지 완벽히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창업자의 이전 커리어가 중요한 이유라 생각해요. 저는 패션, 쇼핑 업계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점을 발견한 뒤엔 오히려 수월했어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과 기술이 모이고, 결국엔 좋은 사업을 일궈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지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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