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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LG 부장이 회사 사표 내고 퀵서비스 기사 된 이유

수수료 절반으로 줄인 퀵서비스 플랫폼 창업기

창업 기업은 한 번 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가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디버의 장승래 대표. /더비비드

“기회는 다시 오지 않잖아요. 주어졌을 때 부딪혀 봐야죠.”​

퀵 배송 플랫폼 스타트업 ‘디버’를 설립한 장승래(50) 대표에게 창업을 결심한 이유를 묻자 덤덤히 한 답이다. 창업에 뛰어들 때 장 대표는 40대 후반 대기업 부장이었다. 무언가 새로 시도하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게 많은 위치였다.​

도전의 계기는 2018년 LG유플러스 사내벤처 공모전이다. 공모전 당선팀으로 출발해, 설립 2년 만에 매출 19억원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올해 목표 매출액은 50억원이다. 23년간 한 회사에서 일하던 회사원의 늦깎이 창업 스토리를 들었다.​​

◇육아휴직 중 창업, 사내벤처하면서 피봇

인터뷰하는 장 대표, 장 대표 육아휴직 중 막내와 함께 /더비비드, 본인 제공

디버는 중개 수수료를 경쟁업체의 절반 수준으로 줄인 퀵서비스다. 주문 접수, 기사 배정, 물류 배송 확인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했다. 주문 고객과 가까운 기사에게 주문이 전달돼, 기사가 선택하는 방식이다. 두 명 이상의 기사가 동시에 같은 주문을 선택하면 평점순으로 배치된다. LG 유플러스, 마켓컬리, 스포티파이 등 800여 기업이 디버를 이용하고 있으며, 누적 배송 건수가 50만 건을 넘어섰다.​

1995년 LG유플러스의 전신인 데이콤에 공채로 입사했다. 우직하게 회사를 다녀, LG 유플러스 네트워크 부장 자리까지 올랐다. 승진한 건 좋았지만 일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주 업무가 통신 관련 현장을 감독하고 민원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창의성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어요.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지루했죠. 회사 생활에 대한 권태감으로 찬 머릿속을 창업으로 채웠어요.”​

/디버 홈페이지

-창업에 대한 꿈은 부장 되고서 처음 가졌나요?​

“아뇨. 그 전부터 있었어요. 12년 전 예상치 못한 축복이 생겼을 때예요. 첫째와 둘째가 이미 초등학생일 때, 셋째가 태어났어요. 육아 휴직을 썼는데, 아마 LG유플러스에서 최초로 육아휴직을 쓴 남자였을 거예요. 휴직하니 배움에 대한 욕심이 샘솟더군요. 학사 학위를 야간대학으로 취득한 경험을 살려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 석사 과정에 진학했어요. 낮에는 육아를, 밤에는 수업을 들으며 공부했던 게 창업을 위한 시작이 됐어요.”​

-창업의 구체적인 계기가 있다면요.

​“사업 계획서를 만드는 과제가 있었어요. 특정 방송사나 엔터테인먼트의 굿즈를 만드는 콘텐츠 사업이었죠. 과제 제출에 그치지 않고 그 사업을 현실화 해봤어요. 2012년 시작해 복직 후에도 이어나갔죠. 3개월 만에 매출이 8억원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돈이 벌리기 시작하니까 그만할 수 없어서 5년 간 이중생활을 했어요. 평일에 고객을 만나는 상황이 생기면 연차를 써야 했죠. 그런데 실속이 없었어요. 매출이 잘 나와도 투자 비용이 너무 커서 수익이 안 났거든요. 두 일을 동시에 하는 게 버겁기만 했습니다.”​

사내벤처 초기 멤버. 한 명은 LG유플러스로 복직했다. 맨 오른쪽(박규태 이사)은 현재 디버 임원진이다. /본인 제공

-그렇다고 안정된 직장을 접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사내벤처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어요. 사내벤처 공모전은 회사의 지원을 받으며 창업의 꿈을 이어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죠. 진행하던 사업은 성장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해 새 아이디어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퀵 서비스’가 눈에 들어왔어요.”

​-‘퀵 서비스’에 주목한 계기는요.​

“회사에서 퀵 서비스를 이용할 일이 많았어요. 대부분 빠른 시간에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문서들이었죠. 아무리 IT(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해도 물건 주고받는 일은 계속되겠다 싶었어요. 당시(2018년) 누구나 하루 1~2시간 짬을 내서 배달 기사로 일할 수 있는 음식 배달 중개 앱이 생기고 있었어요. 퀵 서비스에 크라우드 소싱(대중 참여로 해결책을 얻는 방법)을 접목하면 재밌는 사업이 되겠다 싶었죠.”​​

◇수수료 반으로 낮추고, 거리와 평점 감안한 기사 배정​

비를 맞으며 새벽 배송을 하는 장 대표(왼쪽)와 지하철을 타고 물건 배달 중인 디버 박규태 이사(오른쪽) /본인 제공

크라우드 소싱을 접목한 퀵 서비스 플랫폼 아이디어로 가능성을 인정받아 LG유플러스 사내벤처 1기로 선정됐다. 본격적인 사업에 앞서 주변 시장부터 샅샅이 살폈다. 퀵은 물론이고 대리운전 같은 유사 플랫폼의 기사로 직접 활동했다. “비슷한 플랫폼은 다 경험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5000건 정도 뛰었어요. 폭우 속에서 배달할 때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죠.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그땐 정말 힘들었어요. 당사자가 돼 보니 몰랐던 문제들이 눈에 들어왔죠.”

​-어떤 문제를 발견했나요.

​“기사 입장에서 가장 큰 불만은 과한 수수료였어요. 업체가 퀵 요청을 받아 기사를 배정하는 데 소요되는 인건비와 운영비인데요. 보통 퀵비에서 23%를 공제해요. 퀵비가 1만원이면 기사는 7700원을 가져가는 거죠. 결국 수수료를 제하고도 원하는 수입을 올리기 위해선 하루 많은 양의 배송을 처리해야 해요. 지치고 힘들죠. 직장 다닐 때 기사들에게서 ‘빨리 좀 내려와서 물건 받아 가라’는 짜증 섞인 전화를 자주 받았는데, 그 심경이 이해가 갔어요. 높은 수수료로 인한 악순환은 소비자 효용도 떨어뜨려요. 한 건 끝내기 무섭게 다음 배송지로 가야 하니 배송 정확도가 떨어지기 쉽거든요. 기사도, 이용자도 모두 불만족스런 상황이었죠. 이런 비효율성에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디버 초창기 개발 회의. 법인 설립 당시 5명으로 출발했다. /본인 제공

​-해결책은요.​

“중개 수수료를 10%대로 반 토막 냈습니다. 퀵 주문 접수, 기사 배정, 물류 배송 확인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해서 운영비를 줄이고 수수료는 적게 받는 시스템을 고안했습니다. 2019년 9월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어요. ‘퀵 서비스 이용이 훨씬 간편해졌다’, ‘수수료가 저렴해서 좋다’는 평을 받았어요. 자신감을 얻어서 같은 해 11월에 바로 정식 서비스 출시와 함께 법인을 설립했어요.”​

-다른 퀵 배송 플랫폼과의 차이점은 뭐라고 설명하나요.​

“우선 기사의 자율성이 보장돼요. 파트너(디버는 기사를 ‘파트너’라고 부른다)가 앱에서 거리, 무게 등을 확인해 주문을 선택하는 방식이니까요. 자가용, 대중교통, 오토바이 등 본인이 편한 수단으로 선택한 주문만 완료하면 돼요. 이용자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비용이 절감됩니다. 큰 물건은 추가 비용이 드는 용달차를 찾느라 애를 먹는데, 디버에선 해당 차량을 가진 파트너가 주문을 가져가게 됩니다. 모든 주문은 가까이 있는 기사에게 먼저 추천되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 모두 아낄 수 있어요. 기존 퀵 서비스보다 비용이 15% 정도 절감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서비스 품질은 어떻게 관리하나요?​

“두 명 이상의 기사가 동시에 같은 주문을 선택하면 평점순으로 배치가 돼요. 평점은 사람이 매기는 게 아니고 배송 속도, 정확도를 고려해서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매겨져요.”​

디버는 이용자에게 기사 정보, 실시간 배송 위치, 배송 과정 사진을 제공한다. /디버 회사소개서 캡처

-주 고객은 누구인가요.

​“기업을 타깃으로 만든 플랫폼이라 초기에는 기업만 이용했어요. 요즘은 꽃과 케이크를 다루는 소상공인들도 디버를 이용해요. 고객에 대한 배송용이죠. 케이크는 모양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히 배송해야 하는데, 배송 과정 사진을 제공하니 안심하고 쓸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습니다.”​

낮은 중개 수수료 덕분인지 창업 3년 만에 파트너 수 2만명을 돌파했다. LG 유플러스, 마켓컬리, 스포티파이 등 800여 기업이 디버를 이용하고 있으며, 누적 배송 건수는 50만 건이다.​​

◇문서수발함 대행으로 다각화

​2020년 1월부터 문서 수발실(회사에서 발신하거나 수신한 문서 및 물류를 관리하는 곳)을 디지털화한 물류 관리 플랫폼 ‘디포스트’를 시작했다. 전용 사이트와 모바일 웹, 키오스크(터치스크린 형식의 무인 단말기)로 물류를 수령하고 택배와 퀵을 접수할 수 있다.​

디버 사무실이 있는 프론트원(창업지원기관) 1층에도 디포스트가 입점돼 있다. /더비비드, 본인 제공

​-디포스트는 어떻게 출범하게 됐나요?

“‘디버 생태계’ 확장의 일환으로 출발했어요. 주 이용자인 기업의 퀵 건수를 늘리려면 문서 수발실을 공략해야겠더라고요. 대부분의 기업이 장부에 수기로 서명을 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써요. 우리가 문서 수발실을 관리해서 그 기업이 자연스럽게 디버의 퀵 서비스를 이용하게 하면 어떨까 싶었죠. 잘 공략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디포스트를 이용하면 어떤 점이 편리한가요.

​“수기 장부보다 유실 위험이 훨씬 적죠. 모든 정보가 프로그램에 저장되어 있으니까요. 보안 기능으로 개인정보도 보호할 수 있고요. 오늘 어떤 물류가 들어왔고 누가 받아 갔는지, 수령하지 않은 물건은 어떤 건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어요.”
​디포스트는 현재 프론트원과 LG 유플러스 사옥 3곳, 위워크코리아 6곳 등 총 10곳에서 지점을 운영 중이다. 올해 안으로 30개소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도전할 수 있을 때 도전하세요”​

디버 직원 단체 사진. /디버 제공

​-앞으로 목표는요?​

“사용자에게 시간을 선물하는 기업’으로 인정받고 싶어요. ‘디버와 디포스트를 이용해서 시간이 많이 절약됐다, 생활이 편리해졌다’는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듣고 싶어요. 지금은 마케팅 비용이 월 100만원 밖에 안 들어요. 앞으로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해서 파트너 수도 늘리고, 일반 대중이 퀵을 신청할 수 있게끔 사업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지금처럼 계속 성장하다 보면 퀵 배송 플랫폼의 일인자가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창업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려요.​

“도전할 수 있을 때 도전하세요.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해요. 안 그러면 고민만 하다 세월이 흘러가더라고요. 요즘에는 창업 지원 정책도 잘 돼 있고 디캠프(은행권창업청년재단) 같은 지원 기관도 많아요. 그리고 사내벤처를 적극 활용하세요. 혹여나 성과가 좋지 않아도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에요.”

​/장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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