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걸이형 의류관리기 '클로젯메이트' 개발기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드레스룸은 아름답기만 한데, 현실 속 내 옷장은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감도 안 온다. 여러 번 입은 옷, 안 입은 옷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바쁜 아침이 반복되면 어느새 옷장 바닥에 옷이 잔뜩 구겨져 있다.
음식을 제대로 보관하지 않으면 상하는 것처럼, 옷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옷 관리는 냄새를 유발하고 옷감도 상하게 한다. 꿉꿉한 습기, 독한 좀약 냄새 등 여러 냄새가 뒤섞인 옷을 입다 보면 금방 새 옷을 사고 싶어진다.
케이블러썸의 이선교(50) 대표는 코로나19로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무방비 상태의 옷장을 발견했다. 방마다 옷을 관리하는 가전제품을 사자니 지출이 너무 커 신개념 의류관리기를 직접 만들었다. 이선교 대표를 만나 옷걸이형 의류관리기 ‘클로젯메이트’의 개발노트를 엿봤다.
◇방마다 있는 옷장, 어떻게 관리할까
클로젯메이트는 250g의 무게를 갖춘 충전식 옷걸이형 의류관리기다. 옷걸이와 유사한 외형을 갖고 있다. 일반적인 크기(가로 너비 800~1200mm 정도)의 옷장을 하나의 기기로 관리할 수 있다. 본체 속 팬이 30분에 한 번씩 알아서 돌아가, 옷장 내부 공기를 순환시킨다.
바람이 통하는 팬 앞부분에 항균필터, 헤파필터, 프리필터, 향기 필터가 일체형으로 구성된 카트리지를 배치했다. 옷장 내부 공기를 정화하는 효과뿐만 아니라 별도의 섬유탈취체를 뿌리지 않아도 옷장 속 옷들에 은은한 향기가 밴다.
3000A(암페어)의 배터리를 탑재해 한번 충전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다. 필터와 제습제는 3개월에 한 번씩 교체하면 된다. 지난 7월부터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했다. KC 인증(국가통합인증마크)을 받아 제품 안전성을 확보했다. 5건의 시험 성적서를 통해 항균 필터의 99.9% 균 억제 능력을 입증했다. 가격은 6만9000원. 대기업 의류 관리기와 비교하면 무척 저렴하다. 자주 입는 옷을 거는 옷장에 두고 쓰면 좋다.
서울과기대 시각디자인학과, 이화여대 시각디자인 대학원을 나와, 동화책 출판사를 차렸다. “유아용 그림책 등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입니다. 대학원 졸업 시기와 1997년 외환위기가 겹쳤는데, 사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죠. 지금까지 유아용 그림책을 1500권 정도 출판했어요.”
2019년 말, 코로나19로 강제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살림은 장비빨’이라는 신조를 지니고 살았는데 유일하게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 옷장이었다. “워킹맘으로 살다 보니 가사를 가족과 분담했어요. 저는 늘 하던 요리만 했죠. 코로나19로 집에 오래 머무르면서 가사 분담을 재정비할 기회가 있었는데, 집안을 둘러보니 옷장이 전혀 관리돼있지 않더라고요. 특히 아이들 옷장이 심했죠. 입은 옷과 안 입은 옷의 분류도 전혀 안 돼 있고, 종일 밖에 있다 오니 냄새도 심했어요. 방마다 고가의 의류관리기를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습기 제거제만으로는 역부족이었죠.”
◇옷걸이형 의류관리기 ‘클로젯메이트’ 개발노트
1. 내가 느낀 불편 한 번에 해결하는 제품 없나(제품 발상: 2019년 12월)
옷장 전체를 전반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제품을 찾았다. 찾아보니 습기제거제뿐이었다. 제습과 공기 순환, 향기까지 한 번에 아우르는 제품은 없었다.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다. “찾아 보니 의류관리기와 습기제거제 중간 단계의 제품이 없었던 거에요. 새로운 시장을 발견한 셈이죠. 더군다나 코로나19로 항균, 살균에 대한 수요가 늘었으니 옷장 관리에 대한 수요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공을 살려 제품을 디자인했다. “‘옷장마다 설치할 수 있는 미니 의류관리기’를 떠올렸어요. 경쟁 제품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으니 백지에서 출발했죠. 그때 ‘옷걸이’가 떠올랐습니다. 옷걸이처럼 걸어두는 의류관리기라면 이동이 편하면서, 옷장 중간에 제품을 걸면 옷장 속 옷들 모두 관리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옷걸이 형태로 외형을 구상하고, 본체 내부에 팬을 달았다. 옷장 속 공기 순환을 위해서다. “팬을 달면 옷장 속 공기가 순환되면서 방을 환기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겠다 싶었어요. 자연스럽게 옷의 세균이 제거되고 냄새도 빠지는 거죠. 옷장은 보통 침대와 함께 있어 소음도 고려했어요. 그래서 정밀 기계에 사용하는 저소음 팬을 장착했죠.”
2. 직접 걸어보고 찾은 황금 비율(제품 설계: 2020년 2월 ~ 2021년 12월)
3D프린터를 적극 활용했다. 제품 규격의 황금 비율을 찾기 위해서다. “공기 순환의 효과를 보려면 옷장 내 공기의 흐름이 원활해야 했어요. 본체가 옷 속에 파묻히면 공기 순환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찾은 해법이 제품을 걸었을 때 어깨선보다 제품이 높게 위치하게끔 설계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고리 부분에 본체를 최대한 높게 붙이면 범용적이지 않아요. 옷걸이 봉이 두꺼운 옷장에는 걸리지 않았으니까요. 3D프린터로 30여개의 고리와 본체 사이의 거리를 달리한 케이스를 출력했습니다.”
지인과 직원들의 옷장에 걸어봤다. “고리의 길이를 3cm부터 8cm까지 다양하게 만들어봤는데요. 7~8cm로 길게 하면 고리에 달린 본체가 옷의 어깨선보다 내려와 기능 발휘를 못 하더군요. 50번 이상의 실험 끝에 대부분의 옷장에 걸리면서 최대한 본체가 높이 위치하는 길이인 4cm로 정했습니다.”
제품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찾았다. “옷장 공기 순환 기능만으로는 제품의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기능을 부가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팬 앞부분에 항균필터와 향기 필터를 장착했다. “공기가 순환하면서 필터를 통과하게 되는데요. 공기청정기에도 사용되는 헤파필터와 프리필터를 달았습니다. 황색포도상구균, 폐렴간균, 대장균, 살모넬라균 등 인체에 유해한 균을 대부분 억제합니다. 여기에 향기도 첨가해 일체형으로 만들었는데, 항균과 향기 필터를 일체형으로 만드는 데만 수개월 걸렸습니다. 자체 디자인팀과 연구 인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죠. 필터를 합치는 방법은 디자인 특허 출원 중입니다.”
본체 하단에는 항균 제습제를 다랐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옷장용 습기제거제와 원리는 같아요. 직육면체가 아닌 비닐 형태로 걸 수 있게 했죠. 제습제에는 항균 성분을 추가해 제습제를 통해 모인 물의 변질을 막았어요. 이로써 기기 하나로 항균, 공기 순환, 향기, 제습 모든 관리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3. 선구안으로 부품 직매입(제품 생산 시작: 2021년 11월 ~ )
제품 설계가 마무리될 무렵, 소형 가전에 사용되는 회로기판과 반도체 칩의 가격이 오른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지를 발휘해 위기를 극복했다. “제조 공장을 정한 상태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작년 7월부터 가전용 반도체 칩도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죠. 공장을 결정하기 전이었지만, 회로 기판인 PCB판과 반도체칩을 5000개 정도 우선 매입했습니다. 가격이 더 오르면 소비자 가격도 올려야하는데 그런 상황을 예방하는 차원이었습니다. 어차피 만들 제품이니 투자하는 셈으로 수입하기로 했죠.”
제품은 모두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다. “미리 확보한 반도체 기판을 들고 공장을 수소문했어요. 소형 가전 제조⋅조립 공장 위주로 인터넷에서 찾은 곳과 지인의 추천을 받은 곳으로 여러 곳 방문했죠. 부품을 미리 마련해둔 게 긍정적으로 작용했어요. 세계적인 물류난으로 부품 수급이 어려워 공장 가동을 축소하는 곳이 많았거든요. 재료를 들고 찾아가니 공장 입장에서는 환영이죠. 본체 케이스를 다양한 색상으로 만들 수 있는 곳과 계약해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4. 깐깐한 소비자 눈높이 맞춘 꼼꼼한 준비(판매 준비: 2022년 1 ~ 7월)
향기 카트리지에 들어갈 향을 결정할 때도 100개 이상의 향기 샘플을 받아 테스트했다. “클로젯메이트만의 향을 조향사에게 의뢰해 ‘매그놀리아’향을 만들었어요. 카트리지는 3개월마다 재구매가 일어나야 하는데, 향이 좋아야 소비자들이 재구매를 할 거로 생각했거든요. 호텔에서 사용하는 향수, 백화점 향수, 디퓨저 등 다양한 샘플을 맡아보고 조향사와 협의해 만들었습니다. 이미 보편적으로 쓰이는 향기를 수입해오는 게 훨씬 쉽지만, 장기적인 관점으로 과감히 투자했습니다.”
상세페이지도 10번 넘게 수정했다. “소비자에게는 생소한 제품이니 직관적인 이미지와 설명이 중요했습니다. 제품이 드레스룸과 옷장에 걸린 모습, 필터를 통해 공기가 순환하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을 글보다는 이미지로 만들었죠. 피부에 직접 닿는 옷을 관리하는 제품이라 성능에 대한 시험 성적서, KC 인증 등 안전성 여부도 꼼꼼하게 담았어요.”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 메모부터
클로젯메이트를 개발하는 데 약 2억원이 들었다. 7월 크라우드 펀딩에서 3주 만에 약 940만원의 매출을 냈다. 올해 안에 제품 본체와 향기 카트리지 다양화를 계획하고 있다.
생활 속에서 불편한 걸 찾아보라고 강조했다.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메모하고 검색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저도 살림이나 업무를 보다가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검색해보고, 특허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봅니다. 70%는 이미 있거나, 상품화하기 어려운 발상이 많아요. 혹시 모르죠. 남은 30%의 메모 중에제2의 인생을 펼쳐줄 아이디어가 있을지요.”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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