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0대 여자가 골라주는 옷에 3050 아저씨들이 열광

더 비비드 2024. 7. 2. 11:20
3050 남성 직장인 패션 플랫폼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테일러타운의 김희수(23) 대표. /더비비드

거리가 멋쟁이들로 가득하다. 멋쟁이들의 옷장을 채워주는 패션 커머스 플랫폼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어느 때보다 멋 부리기 좋은 세상이다.


의(衣) 생활 전성시대에도 '사각지대'는 있다. 3050 남성이다. 어릴 적부터 누군가 골라준 대로 입는 것에 익숙했던 이들은 사회인이 되고서야 스스로 옷을 고르는 상황에 처한다. 1020대나 여성과는 달리 그들을 대표하는 패션 커머스 플랫폼도 없다. 스타트업 테일러타운은 틈새시장을 겨냥해 3050 남성을 위한 패션 스타일링 플랫폼 ‘댄블’을 개발했다. 테일러타운의 김희수(23) 대표를 만나 20대 여성이 3050 패션에 주목한 이유를 들었다.

◇누구보다 옷을 사랑했지만 체구가 작아 서러웠던 의류 전공생

댄블의 콘텐츠와 추천 코디 세트 예시. /테일러타운

테일러타운은 3050 직장인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의류 큐레이션 커머스 ‘댄블(DANBLE)’의 운영사다. 댄블은 이용자의 신체 사이즈, 체형, 선호 스타일 등을 취합해 맞춤형 스타일링을 해주는 서비스다. 한 달에 한 번, 코디 세트 4개를 추천해 준다. 소개팅이나 웨딩촬영 같은 특별한 행사를 앞두고 따로 요청사항을 전달하면, 맞춤형 스타일링도 해준다.

​색상뿐만 아니라 사이즈까지 골라주기 때문에 이용자는 댄블이 만들어준 코디 세트를 보고 구매결정만 하면 된다. 5분이면 내 몸에 딱 맞고 내게 어울리는 의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매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어릴 적 신체 사이즈보다 큰 교복 핏이 불만이었다. /더비비드

체구는 작지만 누구보다 당찬 학창시절을 보냈다. “중학생 때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어요. 신체 사이즈보다 큰 교복 핏도 불만이었죠. 학생 신분에 수선비는 부담스러워서 교복을 직접 뜯어고치기로 했어요. 옷을 다 뜯어서 다른 다음 밤새 손바느질을 했죠. 고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에 출전했어요.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충전하고 결제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해 대상을 받았죠. 지하철 탑승 중 휴대폰 배터리가 닳아서 불편함을 느낀 경험에서 착안한 것이었어요. 두 경험 모두 제게 닥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한 최초의 시도이자 좋은 추억으로 남았어요.”

​2018년 연세대 의류환경학과에 진학해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다. “어릴 적 교복을 손수 뜯어고친 손 맛을 잊지 못해 의류학과에 진학했어요. 누구보다 옷을 좋아하고 옷의 역할을 중시해요. 옷 입는 방식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진다고 믿을 정도죠. 다 큰 성인이 키를 더 늘릴 현실적인 방법은 없지만 옷으로 키가 더 커 보이게 할 수는 있어요. 옷은 인상과 신체에서 아쉬운 점을 보완해 주는 큰 역할을 하죠. 전공 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만족스러운 의생활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의류학을 전공하며 새로운 옷의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칠 수 있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사이즈였다. “선호하는 브랜드의 옷들이 대체로 길어서 꼭 수선을 거쳐야 했어요. 그런데 수선 과정이 만만치 않아요. 문을 언제 여는지도 모르고 가격도 제각각이죠. 적어도 수선만큼은 편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교내 창업경진대회 공고문을 봤어요. 이번 기회에 오래 시달려온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결심하고 비대면 수선 플랫폼 아이디어로 경진대회에 참가했죠.”

◇졌지만 잘 싸웠던 첫 창업

첫 아이템이었던 리사이즈 서비스 기획 과정. /테일러타운

2학년 2학기였던 2019년 11월, 경진대회에서 수상했다. 자신감을 얻어 2020년 1월, 디자이너와 기획자를 섭외해 ‘리사이즈’라는 이름의 팀을 꾸렸다. “창업 자금이 필요해서 소셜벤처 창업 부스트업이라는 육성 프로그램에 지원했어요. 처음으로 시장조사를 해보고, 시장 관계자 인터뷰를 하고, 사업계획서를 써봤죠. 프로그램에 합격해서 지원금으로 플랫폼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비가 유독 많이 쏟아졌던 2020년 여름, 서울 전역의 수선소를 돌아다녔다. “연락처가 없거나 포털에 등록 안된 수선소가 많아서 무조건 찾아가야 했죠. 박카스를 드리면서 플랫폼 입점 제안을 했습니다. 수선 시장 평균연령이 높아서 그런지 ‘이런 거 필요 없다’며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어요. 물론 어린 친구들이 기특한 일 한다며 호의를 보이신 분들도 일부 있긴 했습니다. 10곳 중 2, 3곳 꼴로 입점을 받아서 여름 동안 약 50곳의 수선실과 입점 계약을 맺었어요.”

​MVP(최소기능제품)까지 만들었다. 접수를 하면 옷을 수거해 가서 수선 후 가져다주는 비대면 서비스였다. 그런데 이 영역을 파고들수록 한계점이 명확히 보였다. “아이템을 접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첫번째 이유는 저만큼 사이즈 문제를 수선으로 해결하는 사람의 수가 많지 않았어요. 타깃 시장이 크지 않았죠. 두번째 이유는 수익성이 부족했어요. 수선비 자체가 높지 않은데, 수선비에 택배비까지 더하니 단가가 맞지 않았죠. 세번째 이유는 대체재 시장이 이미 존재했다는 점이에요. ‘키 작은 여성 쇼핑몰’ 등 특정 체형의 소비자를 겨냥한 쇼핑몰이 활성화돼 있었어요. 들인 노력에 비해 저희가 설자리가 작았죠.”

◇’3050 남성 직장인’의 의생활에 주목한 이유

피보팅 후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수요 조사를 실시했다. /테일러타운

2020년 12월, 피보팅(사업 모델 전환)을 결심했다. 관건은 ‘팀원들이 모두 흥미를 가지면서,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영역’을 발굴하는 것이었다. “첫번째 아이디어는 사이즈 고민을 물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었잖아요. 두번째는 방향을 틀어서 ‘몸에 맞는 옷을 골라주는 것으로 사이즈 고민을 해결해 주는 건 어떨까’ 생각했어요. 또 실패해선 안 되니 시장 검증부터 들어갔습니다.”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수요 조사를 실시했다. “1020의 경우 자기 취향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스타일링 추천이 놀이에 그치는 경향이 있어요. 비즈니스로 발전시키는 데 한계가 있는 거죠. 타깃을 좀 세분화해서 한 유명 직장인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했어요. ‘어울리는 옷을 추천해주고 사이즈까지 골라주는 서비스를 만들려고 하는데 인터뷰이가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죠. 100명이 넘는 직장인이 인터뷰 신청을 했어요.”

테일러타운의 구성원들. 김 대표는 동료들이 큰 버팀목이라고 강조했다. /테일러타운

응답자 비중은 남성 반, 여성 반이었다. 100명을 일일이 인터뷰해 의류 생활의 고민을 들었다. 여기서 남성과 여성의 고민의 결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챘다. “여성분들의 경우 체형이 굉장히 다양해요. 키와 체중이 같아도 체형이 완전히 다를 수가 있어서, 다수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옷을 추천 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웠어요. 지향하는 스타일도 러블리, 시크, 페미닌 등으로 세분화돼 있죠. 게다가 의류 커머스 플랫폼이 잘 구축된 상태였어요.”

​남성 직장인 시장은 정반대 상황이었다. “남성분들의 경우 키, 몸무게, 체형(근육량) 정도만 알아도 사이즈를 정확하게 추천할 수 있겠더라고요. 추천 받고 싶어 하는 아이템도 상의, 하의, 아우터 정도로 단순했고 추구하는 스타일도 단순 명료했어요. 깔끔한 비즈니스룩을 선호했죠. 여성보다 유행에 민감하지도 않고요. 반면 고민은 더 깊었어요. 오프라인으로 옷을 구매하는 이들의 훨씬 많았고, 온라인으로 구매하더라도 단골 몰이 없는 분들이 80% 이상이었어요. 유명 패션 플랫폼에서 쏟아지는 옷을 구경하다가 뭘 사야할지 몰라 그냥 나오는 게 일상이었대요. 이 시장이라면 도전할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던 첫 구매 금액

댄블은 꼼꼼한 시장조사와 사용 후기를 바탕으로 개발됐다. /더비비드

‘3050 남성 직장인을 위한 의류 추천 커머스 플랫폼’을 구상하고 밑작업에 들어갔다. “설문에 응해준 분 중 40분의 집에 일일이 방문해 그분들의 신체 치수를 측정했어요. 그분들의 선호도와 원하는 바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를 나눴죠. 모두 옷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옷을 잘 입고 싶어 하는 욕구가 강한 분들이었어요.”

​유난히 더웠던 2021년 여름에는 남성복 브랜드를 탐방하느라 바빴다. “타깃 이용자가 선호하는 스타일을 보유하면서도 그들의 지불 용의에 맞는 의류를 보유한 브랜드를 찾아야 했어요. 저희가 골라준 옷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더라도 가격대가 예산에 맞지 않으면 구매로 이어지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남성복 시장 전반을 파악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습니다. 백화점, 보세 상점, 동대문 등 옷을 다루는 곳이라면 어디든 다니며 범위를 좁혔어요.”

같은 해 9월 클로즈 베타 버전의 ‘댄블’을 출시했다. “설문에 응하고 신체 사이즈를 제공한 분들에게 1페이지 이내의 코디 세트를 전송했어요. 사실 큰 기대는 안 했어요. 구매가 발생하는지, 발생 시 브랜드 반응도는 어떤지 테스트가 목적이었거든요. 베타 공개 이튿날 첫 주문이 들어왔어요. 80만원을 훌쩍 넘는 결제 건이었죠. 별도의 결제 수단이 없어서 현금박치기(계좌이체)로 옷을 사겠다는 분이었어요. 우리가 설정한 가설이 통했단 걸 인정받은 것 같아서 행복했어요. 그달에만 총 600만원 가량의 거래액이 발생했어요. 기대 이상이었죠.”

클로즈베타를 사용한 모든 이들에게 전화를 해서 만남을 제안했다. 3개월 동안 피드백을 받으며 서비스를 고도화했다. “사용 후기를 바탕으로 이전에 구매한 옷과 새로 추천받은 옷을 매칭해볼 수 있는 ‘모바일 옷장’ 기능을 추가했어요. 추천 제품 카테고리에 신발도 포함시켰죠. 코디 세트를 꾸려주는 알고리즘도 개발하기로 했어요. 처음엔 저희가 일일이 코디 세트를 짜 줬는데, 그렇게 하면 하나 만드는 데 40분이 걸리거든요. 그 방식을 유지하면 스케일업을 할 수 없죠. 의류학과 출신과 컴퓨터과학과가 머리를 맞대고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갈아 넣어가며 알고리즘을 구축했습니다.”

◇’마네킹이 입은 옷들 그대로 주세요’ 비대면으로 가능해요

댄블의 사이즈 선택, 스타일 퀴즈 예시 화면과 추천 코디 세트. /테일러타운

지난 1월, 댄블 오픈 베타 서비스를 출시했다. “처음 가입하면 ‘스타일 퀴즈’를 진행해요. 여러 가지 스타일을 보여줘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선택하게 해서 선호도를 파악합니다. 그 후 키와 몸무게, 체형, 평소 입는 사이즈 등의 정보를 받아요. 이용자에게 적합한 스타일 추천을 위해서 직업 정보도 묻습니다. 2~3분 남짓한 시간을 투자해서 정보를 기재하면, 월에 한 번 맞춤형 코디 세트 4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색상과 사이즈까지 골라주니 보고 구매하는데 5분밖에 안 걸려요. 서비스 페이지 내에서 모든 결제 수단으로 결제 가능합니다. 아직 웹으로만 이용 가능한데 곧 앱 서비스도 출시할 계획이에요.”

​지난 2월 500명이던 활성 이용자 수가 6월 기준 2만5000명까지 늘어났다. 사이즈 추천 정확도는 88%, 이용자의 재구매율은 70%에 달한다. “코디 세트를 제공하다 보니 평균 객단가가 30만원 수준으로 높은 편이에요. 백화점에서 ‘마네킹이 입은 그대로 주세요’라고 하는 것과 유사한 소비 패턴이라고 보면 됩니다. 기존의 탐색형 커머스와는 달리 저희는 경로를 명확히 제시하는 게 강점이에요. 이용자 후기도 재미있어요. 저희가 추천해준 대로 입고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분도 있었어요. 이용자의 실제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아 뿌듯했죠.”

최근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디데이)에서 우승했다. /테일러타운

치열한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도 존재감을 입증했다. 지난 3월 액셀러레이터 파인드어스로부터 시드투자를 유치한데 이어, 최근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디데이)에서 우승했다. “피봇팅 후에는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이나 공모전에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이용자에게만 집중하기로 했거든요. 그렇게 서비스를 만들어서 출시하자마자 좋은 성과를 얻어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세상이 필요로 하는 좋은 서비스를 하고 있다는 걸 객관적으로 인정받은 기분이었어요. 그저 뿌듯하고 감격스러웠죠.”

‘가장 체류시간이 짧은 커머스 플랫폼’이 되는 게 목표다. “다른 커머스에서는 긴 체류시간을 중시하지만 저희는 정반대에요. 디자인, 사이즈를 제대로 골라줄 테니 한 달에 한번 단 몇 분만 투자하라는 게 저희의 모토죠. 현재 5분인 이용자의 체류 시간을 3분으로 줄이는데 주력하고 있어요. 시간을 단축하려면 알고리즘 정확도를 높여야 하죠. 요즘 향수 추천을 해달라는 분들도 많은데요. 패션 뿐만 아니라 뷰티까지 분야를 확장해 그루밍 영역 전반을 아우를 구상입니다. 남성분들이 주체적으로 의생활을 하고, 이를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디딤돌 같은 서비스가 되고 싶어요.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위한 선물 같은 5분, 아니 3분을 주는 서비스가 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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