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9살 군면제 최연소 대학 교수를 만든 아버지의 선택

더 비비드 2024. 7. 2. 11:26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한국폴리텍대학 교수까지

저 직업은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저 일을 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궁금한 일이 있으셨나요. 직업별 궁금증을 해소하는 '그 일이 알고 싶다' 시리즈. 이번 편에선 기능인의 교수 도전기를 소개합니다.

한국폴리텍대학 포항캠퍼스 융합산업설비과 원현우 교수. /더비비드

“공부를 더 해서 기술 분야 대학교수에도 도전할 생각입니다.” 2013년 원현우 씨가 국제기능올림픽대회 금메달 획득과 대회 최우수 선수(MVP) 선정 후 남긴 소감이다.

9년 후 원 씨는 스스로 한 말을 지켰다. 현대중공업에서 11년 재직하다 지난 1월 한국폴리텍대학 포항캠퍼스 융합산업설비과 교수가 됐다. 만 29세에 임용돼 ‘폴리텍대학 설립 이후 최연소 교수’ 타이틀을 얻었다. 한국폴리텍대학 포항캠퍼스를 찾아 원 교수를 직접 만나고 왔다.

◇최연수 교수, 천직이었다

신중년특화단기과정 정재학 학생과 원 교수. /더비비드

경북 포항시 포항역에서 차로 20분쯤 가면 한국폴리텍대학 포항캠퍼스의 모습이 보인다. 포항제철소 부근 포항철길숲 건널목을 지나야 한다. 가끔 포항제철소로 가는 석탄 화물열차도 보인다. 실습실에 들어가니 제철소 못지않게 용접과 기계 설계에 열중인 학생들의 열기로 뜨겁다.

교내 최고령 학생인 정재학(72) 씨가 원 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열정적인 최연소 교수와 최고령 제자의 만남이다. “제자들의 연령대와 배경이 무척 다양해요. 동종 업계에서 일하다 오신 분도 있고,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다 오신 분도 있죠. 처음 배우는 학생을 기준으로 최대한 쉽게 지도하려고 노력합니다. 심화로 가면 1:1로 기계를 같이 다뤄보며 자세를 교정하죠.”

◇아들의 손재주 보고 던진 아버지의 충고 한마디

입학하자마자 판금 우수기능반에 입성해 재능을 보인 원 씨. /원현우 교수 제공

삼부자가 고등학교 동문이다. 아버지와 원 씨, 남동생까지 모두 인천기계공업고등학교 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장난감을 분해하는 걸 좋아했어요. 제 손재주를 알아보신 아버지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인천기계공고에 데려가셨죠. 견학 삼아 간 건데, 판금 연습실 창문 넘어 보이는 작업물에 매료됐어요. 바로 진학을 결심했죠.”

아버지의 안목이 맞았다. 입학하자마자 판금 우수기능반에 들어갔다. “매일 새로운 구조물을 만드는 게 재밌었어요. 판금은 얇은 철판을 다양한 모양으로 가공하는 일인데요. 물체의 정면⋅후면⋅측면이 그려진 도면이 제시되면, 각자 전개도를 그린 후 철판으로 구조물을 완성하는 훈련을 했어요. 밤낮없이 철판을 찍고, 잘라내고, 구부리고 조립하는 일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2010년 9월 19살의 나이에 큰 성과를 얻었다. “전국기능경기대회 판금 분야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습니다. 동시에 현대중공업 입사가 확정됐죠. 물론 최종 목표는 전국 1등이나 대기업 입사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국제기능올림픽을 준비했습니다.”

기능올림픽 국가대표로서 대회를 준비하던 모습. /원현우 교수 제공

국제기능올림픽은 만 22세 이하 기능인들이 분야별 직업기능 실력을 겨루는 대회다. 2년에 한 번씩 열린다. 68개국에서 1300명 이상의 선수들이 참여하는데,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입상할 경우 스포츠 올림픽 입상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메달을 따면 포상금과 함께 병역 특례의 혜택이 주어지고, 특히 금메달을 따면 매년 1000만원 가량의 연금도 받는다.

최선을 다했지만 국가대표 자리를 얻는 건 쉽지 않았다. “올림픽은 2년에 한 번 열리는데 종목 별로 딱 한명씩 나가요. 반면 전국대회는 매년 열리는데, 입상한 3명에게 국가대표 선발전 참가 자격이 생기죠. 그래서 한 자리를 두고 6명이 겨루는 시스템입니다. 잠자는 시간 빼고 종일 실습실에서 훈련했어요. 하지만 최종 선발전에서 모교 1년 선배가 1등을 하고 저는 2등을 했습니다. 정말 아쉽게 국가대표 자리를 놓친 거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 제대로 살렸다

기능올림픽 국가대표로서 대회를 준비하던 모습. 1mm의 오차만 발생해도 감점된다. /원현우 교수 제공

2010년 11월 약속됐던 현대중공업에 입사했다. “바로 현장에 배치됐어요. 1년 동안 조선소 현장에서 파이프를 만들고, 기계 장치를 도면에 맞게 설계하는 일을 했죠. 현장에서 사수한테 일을 배우다 보니 부족한 점을 알게 됐어요. 그럴 때마다 ‘아, 이렇게 했으면 선발전에서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들곤 했죠.”

현대중공업 1년 근무 후 군입대를 결심했다. 입대하기 2주 전, 회사 기술교육원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직종을 철골구조물로 변경해 기능올림픽에 한 번 더 도전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어요. 회사에 소속돼 지원받으며 훈련을 이어가보란 겁니다. 마지막 기회를 잡기로 했습니다.”

국제기능올림픽 재수 생활이 시작됐다. “입대를 위한 송별회까지 한 상태였는데 바로 복귀해선, 1년 넘게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습했습니다. 철골 구조물은 판금, 용접, 배관까지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주어진 구조물을 똑같이 구현해내는 작업인데요. 매일 목표치를 두고 방법을 터득할 때까지 반복했어요.”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원 씨의 모습. /원현우 교수 제공

제42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철골 구조물 부문 금메달을 땄다. 점수는 100점 만점에 98.94점. 전체 참가자 중 최고 득점자에게 수여하는 ‘알버트 비달상(Albert Vidal Award)’을 받았다.

실무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실무 작업을 하다, 다시 정형화된 시험공부를 하려니 준비과정에서 슬럼프를 겪기도 했어요. 실전에 가니 실무로 터득한 감각이 실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작업물의 정확도가 높아졌거든요. 구조물을 만들면 문제로 나온 구조물과의 수치 차이는 없는지 캘리퍼스로 확인하는데요. 단 1mm의 오차도 내지 않기 위해 반복해서 연습한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경기 결과 발표 전에도 자신감이 있었어요.”

◇교육자의 꿈 품게 된 계기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서 신입직원교육을 담당했던 원 교수의 모습. /원현우 교수 제공

대대적인 환영이 있었다. “특진이 됐더군요. 당시 최연소 진급 사원으로 기억합니다. 그렇다고 생활이 달라진 건 없었어요.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액화천연가스(LNG)선과 컨테이너선을 만드는 일을 했죠. 선박 기계 장치, 배관 조립을 주로 했어요. 2014년 3월부터는 사내대학인 현대중공업 공과대학 조선해양과에 입학해 이론을 배웠습니다.”

사내대학을 다니며 공부에 대한 욕심이 더 생겼다. 2016년 기능올림픽 준비 시절 몸 담았던 사내 기술교육원으로 복귀했다. “기술 연수생 양성훈련과 재직자 직무능력 향상 훈련, 신입 직원 연수, 직무 전환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담당했어요.”

포항캠퍼스 뿌리기술융합센터에서도 지도를 이어가고 있다. /더비비드

교육을 담당하며 가르치는 일에 매료됐다. 교육자의 꿈을 갖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스스로 효율적이고 쉬운 교육법을 고민하는 모습을 발견했어요. 기술은 정형화된 커리큘럼 없이 도제식으로 전수되던 분야거든요. 내가 가진 기술을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에게 쉽게 알릴 수 있을지 늘 고민했습니다.”

2016년 사내 대학을 졸업한 원 씨의 모습. 바로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원현우 교수 제공

교육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전문학사와 2018년에 취득한 판금 기능장, 배관 기능장 국가 기술 자격을 활용해서, 2019년 동아대학교 교육대학원 기계교육과에 입학했습니다. 회사와는 왕복 200km의 거리였어요. 울산에서 부산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오가면서 학업을 이어갔죠. 마지막 논문을 쓰는 시기에 둘째가 태어나 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원을 졸업하던 2021년 말, 한국폴리텍대학 포항캠퍼스의 교수직 공고를 발견했다. “실무 현장에서 15년 이상 근무하신 선배가 다른 캠퍼스의 교수로 계셨는데요. 다양한 학생이 한국폴리텍대학을 거쳐 유능한 기술인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 기술이 취업에 도움이 된다면 뿌듯함이 배가 될 것 같더군요. 바로 지원해 면접을 봤습니다.”

◇연내 모든 제자 취업하는 게 목표

실습실에서 각종 기기를 다루는 학생들의 모습. 실습수업 제자들 60명을 올해 안에 모두 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원 교수의 목표다. /더비비드

2022년 1월 5일, 한국폴리텍대학 융합산업설비과의 정식 교수로 임용됐다. 포함캠퍼스의 전문기술과정의 제자들에게 기계 설비, CO2 용접, 가스 절단 및 용접 등의 다양한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실습수업 제자 60명이 올해 안에 모두 취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제자들의 자격증 취득에 집중하고 있어요. 늦은 시간까지 실습실을 돌며 연습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노력합니다. 성적은 결과물로만 판단하지 않아요. 노력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더 높게 평가하죠. 궁극적으로는 현장에서 대우받으며 근무하는 유능한 기능인이 늘어나 기술 분야도 더 많은 관심을 받길 바랍니다.”

원 교수는 미리 준비해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조언했다. /더비비드

준비해두니 기회가 찾아왔다고 했다. “제가 대학이나 대학원에 갈 때 어떤 기회를 미리 알고 있었거나 구체적인 목표를 둔 게 아니었어요. 단지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대략적인 구상만 있었을 뿐이죠. 기능올림픽의 두 번째 출전 기회가 찾아왔을 때, 인생의 기회는 꼭 찾아온다는 직감이 들었어요. 그 이후부터 어떤 일이든 미리 준비해서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 합니다.”

/더비비드 X 한국폴리텍대학 공동기획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