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판’ 밖에 모르던 사람의 온라인셀러 도전기
오픈마켓 전성시대입니다.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누구나 창업할 수 있고, 직장 다니면서 투잡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오픈마켓 셀러를 꿈꾸는데요. 하지만 막상 실행하려면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성공한 오픈마켓 셀러들을 만나 노하우를 들어 보는 ‘나도 될 수 있다, 성공 셀러’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국세청 통계자료를 보면 2011년 이후 폐업 신고한 사업체가 한 해 평균 87만9090개에 달한다. 1년마다 적게는 79만개, 많게는 92만개 업체가 사라졌다. 폐업 절차는 개업 못지않게 복잡하다. 구청이나 세무서에 통합폐업신청을 하고 사업자등록증을 반납해야 한다. 중고로 팔 수 있는 사무집기나 설비·기계를 처분하고 사무실이나 공장의 부동산 계약 해제도 매듭지어야 한다.
40년간 이어온 가업이라 해도 매달 3000만원씩 적자를 본다면 폐업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사이즈오브 이동진 대표(35)의 아버지가 그랬다.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 내려온 가구 사업이 위기를 맞으며, 이 대표는 폐업 절차를 돕기 위해 아버지의 가구 공장에 처음 출근했다.
바로 반전이 찾아왔다. 폐업하려던 가구 공장을 이 대표가 다시 일으켜 세웠다. 타개책은 온라인 판매였다. 기업·정부 기관에 대규모로 납품하던 방식을 과감히 버리고, 개인 소비자 시장을 공략했다. 개개인의 신체 사이즈에 맞는 의자를 만들어 온라인에서 판매하며, 2021년 연매출 40억원을 달성했다. 이 대표를 만나 폐업 위기를 넘어선 비결을 들었다.
◇가업을 다시 일으키려면
할아버지를 잘 따르는 평범한 손자였다. 어슴푸레 기억이 있다. 6살 때부터 가구 공장을 들락거렸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산을 깎아 만든 수천 평 규모의 공장이었어요. 주로 책상, 의자, 캐비닛 같은 철재 가구를 만들었죠. 그 공장에서 며칠을 논 적도 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는 가구 공장의 위기로 이어졌다. “물건을 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 아닌 가격이 됐습니다. 1000원에 여러 생활용품을 살 수 있는 ‘천냥마트’가 동네마다 들어섰죠. 가구도 마찬가지가 됐어요. 저렴한 수입 제품이 쏟아진 거죠. 국내 인건비·설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 사세가 계속 기우는 중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됐다. “뇌종양으로 크고 작은 수술을 세 차례 받으셔서, 더 이상 공장을 운영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당시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토목 회사에서 현장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요. 아버지의 폐업을 돕기 위해 2009년 3월부터 가구 공장에 출근하게 됐습니다.”
그 와중에도 몇 건씩 주문이 들어왔다. 공장 기계를 처분하기 전에 생산할 수 있는 주문은 최대한 받자고 한 것이 폐업 시점을 점점 늦추게 했다. 대한항공 하청을 받아 300여 개의 의자를 만들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웠습니다. 가구를 만드는 노하우가 있고, 공장이 있고, 주문도 꾸준히 들어오는데 꼭 폐업만이 답은 아닐 것이라 생각이 든거죠.”
인터넷 뉴스를 보다 돌파구의 힌트를 찾았다. “B2B(기업 간 거래)에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로 사업모델을 바꿔 중견기업으로 도약한 의자 전문 브랜드 P사의 얘기였습니다. 대규모 납품 방식은 주문 건당 거래액이 큰 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문이 없으면 운영상 위험부담이 생기죠. 저희도 P사처럼 안정적인 B2C에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을 낼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온라인 판매로 방향을 잡았어요.”
◇그림판과 혼신의 힘을 담은 마우스 클릭
2016년 여느 때처럼 PC방에 자리를 잡았다. 친구들이 옆에서 게임을 하는 동안 이 대표는 그림판을 켰다. “상세페이지를 만든다며 그림판과 씨름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던 친구들이 혀를 끌끌 차더군요.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면서 모두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줬습니다. 그 친구들이 지금의 최창훈·강태규 디렉터입니다.”
어도비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루던 최 디렉터가 상세페이지 제작을 담당했다. 강 디렉터는 상세페이지에 들어갈 사진을 촬영했다. 장난감 회사에 다니며 제품 사진 촬영에는 도가 텄다. 더 이상 이 대표가 이미지 배경을 제거하겠다며 파워포인트를 켜고 수십번 마우스를 클릭할 필요가 없게 됐다.
대신 이 대표는 시장 조사를 위해 거리로 나갔다. “강남역, 선릉역, 잠실역 길 한복판에 의자를 세워놓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앉아보라고 권했어요. 얼마면 사겠냐고 물었더니 생각보다 턱없이 적은 금액을 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많아 봤자 10만원 정도였죠. 의자는 으레 집이나 회사에 있는 물건이라서 직접 구매해 본 경험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제값 받고 팔자고 결심했다. 그러자니 사이즈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비싼 원단과 좋은 재료로 의자를 만들어도 사이즈에 맞지 않으면 불편해서 오래 앉아있기 어렵습니다. 먼저 온라인 커뮤니티에 ‘의자 상담해드립니다’란 글을 올리고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의자를 팔기 시작했어요.”
◇신체 사이즈가 다르니 의자 사이즈도 달라야
2017년 9월 6일. 사이즈오브(SIZE OF)로 상호를 변경했다. 누구나 자기 몸에 꼭 맞는 의자에 앉을 수 있게 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제품군은 크게 두 종류로 구분했다. 공부 전용 ‘몰입체어’와 컴퓨터 작업용 ‘사이즈오브체어’다. 몰입체어는 단일 사이즈지만 사이즈오브체어는 맞춤 제작 방식이다.
“주문받을 때 키·몸무게·앉은키·성별 정보도 받습니다. 국가기술표준원 사이즈코리아에서 분류한 한국인 표준 체형 통계자료를 이용하면 4가지 정보만으로 팔다리 길이, 어깨너비 등 다양한 신체 치수를 예측할 수 있어요. 그 값을 기준으로 의자를 만듭니다. 가령 허벅지 길이에 따라 좌판 크기를 정하고 어깨너비를 기준으로 팔걸이 간격을 정하는 식이죠. 총 8가지 파츠(parts·부품)를 조합해 4만6656가지 사이즈의 의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2019년 쿠팡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했다. “온라인 판매에 익숙하지 않아서, 입점 과정이 간단하고 판매 관리 시스템(쿠팡 윙)이 직관적으로 구성된 플랫폼을 찾았습니다. 의자를 가장 많이 쓰는 사람은 학생이지만 가장 많이 구매하는 사람은 학부모라는 점에서 타깃층과도 잘 맞는 곳이었어요.”
쇼핑만을 위한 플랫폼이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포털 사이트와 연계된 판매 채널은 일반 검색과 물건을 사기 위한 검색이 뒤섞여 있어요. 쇼핑하려고 검색했다가도 다른 페이지로 빠져나가기 쉽죠. 쿠팡은 한 번 접속하면 웬만해선 다른 플랫폼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 안에서 구매하고 결제까지 끝나죠. 그런 점에서 신규 브랜드가 제품을 알리기에 좋은 채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재택근무가 늘면서 편한 의자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갑자기 집에서 일하게 된 직장인들 사이에서 ‘그냥 식탁 의자에 앉아 일하다가 결국 의자를 구매하게 됐다’는 등의 평이 나오더군요. 이후 월 매출이 2020년 5월 1400만원에서 2022년 2월 1억500만원으로, 2년 만에 7배 이상 뛰었습니다.”
◇바른 자세는 의지보다 의자의 문제
몇 시간 동안 앉아 있으면서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일은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쉽지 않다. “사이즈오브에서 의자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70~80%가 이미 허리·무릎에 통증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의자에 앉으면 일반 의자에 앉을 때보다 힘을 덜 들이고도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어요.”
작년엔 사이즈오브 의자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을 마련했다. “온라인 주문 방식과 동일하게 키·몸무게·앉은키 등의 정보를 받고 맞춤 의자를 바로 제작해 앉아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무공간처럼 꾸며둔 곳에서 실제로 앉아볼 수 있죠. 맞춤 제작 상품도 제작 시스템을 잘 갖춘다면 얼마든지 온라인으로 판매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소비자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입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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