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국 간호대생, 한국 돌아와 다시 대학 갔더니 달라진 회사 수준

더 비비드 2024. 7. 2. 10:43
10년 유학 생활 접고 늦깎이 기술 교육,
코스닥 상장 기업 입사 성공

코로나 사태로 실물 경제가 큰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힘든 고용상황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어려움 속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취업난을 극복하고 있는 청년들을 통해 희망을 전하는 ‘2030 취업 분투기’를 연재합니다.

프린터 제조 기업 ‘딜리’의 해외 CS팀에서 일하는 정현수(30)씨는 원래 간호대생이었다. 미국에서 간호학 공부를 할 때 이미 스스로 맞지 않는 진로를 택한 걸 깨달았다. 하지만 몇년 동안 선뜻 길을 틀지 못했다. 심신이 모두 지쳐 한국으로 귀국했다가, 고민 끝에 한국폴리텍대학 충주캠퍼스 드론전자과에 입학했다. 진로 변경은 삶에 활기를 불어 넣는 계기가 됐다.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는 정현수 씨를 만나 취업 성공 비결을 들었다.

미국에서 간호학 공부를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산업용 프린터를 만드는 '딜리'에서 근무하는 정현수 씨. /더비비드

◇심신 지치게 한 오랜 유학 생활

2009년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모두 인도네시아로 이민 길에 올랐다. 정 씨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였다. 한국인 재학생이 있는 자카르타에 있는 국제학교에 진학했다. 짧은 인도네시아 생활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2011년 5월, 미국 뉴저지의 버겐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했습니다. 먼저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유학생용 영어 수업) 과정을 듣고 전공을 정하는 순서였죠. 이미 학창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서 그런지 영어 습득이 어려웠어요. 한국에서는 외향적이던 성격이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첫 영어 발표 수업에서 손발이 떨렸던 기억이 생생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공을 선택하기도 전에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여러 번의 수술과 재활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가족과 떨어져 있던 상황이라 미국에서 혼자 병원 신세를 졌죠. 2년 동안 병원에 살았어요. 그때 병원에서 받은 도움을 돌려줘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퇴원 후 의료 분야 공부를 하고 싶었죠.”

다니던 대학에는 의료 관련 전공이 없었다. 퇴원 후 바이오 해부학 전공을 택해 공부하다가, 간호학과가 있는 뉴저지의 펠리시안 대학교로 편입했다.

(왼쪽부터) 어린 시절 미국 유학할 때 모습, 간호대학에서 공부했을 때 모습. /정현수씨 제공

예상치 못한 복병이 찾아왔다. “2학년이 되던 해,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제가 살던 곳 전역이 셧다운(shutdown)됐어요. 마트와 주유소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폐쇄됐죠. 학교도 마찬가지였어요. 집에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됐죠. 그렇게 혼자 있으니 부모님께 의지해야 하는 경제적인 상황과 외국인이라는 신분의 제한이 새삼 절실히 느껴졌습니다.”

비대면 수업이 수업이 계속되면서 학업의 고충이 배가 됐다. “전에는 모르는 게 있으면 친구나 교수님께 물어보면서 해결했는데, 질문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졌어요. 수업 진도는 계속 나가는데, 점점 따라잡는 데 한계를 느꼈습니다.”

한계점을 느낄 무렵 고향에 대한 향수가 몰려왔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미국에서 살아가는 게 맞는 지 고민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맞지 않는 공부를 억지로 지금까지 끌고 온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렇게 귀국을 결심했습니다. 10여년간의 해외 생활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아 망설임이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기에 미련은 없었습니다.”

◇이방인 생활 청산, 귀국 후 다잡은 마음

정현수씨는 미국 유학 생활을 했지만 적성을 찾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정현수씨 제공

2020년 여름, 심신이 지친 상태로 한국 땅을 밟았다. 백지상태에서 미래에 대한 계획을 다시 세워야 했다. “이전 경력을 살려 다시 한국의 간호학과로 편입하거나 아예 새로운 진로를 찾는 방법 중에 고민했어요. 늦은 나이에 학비로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진 않더군요. 일단 일자리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죠.”

진로를 고민하던 중 친한 지인이 폴리텍대학을 추천했다. “미국에서의 생활을 모두 알고 있던 친한 친구였어요. 학비 부담도 적고 과정이 길지 않아 바로 취업하기 좋겠다며 추천하더군요. 40개 캠퍼스의 홈페이지를 모두 들어가 보면서 전공을 찾았습니다.”

새로 공부할 분야를 ‘드론’으로 정했다. “특수 분야의 희소 인력이 돼야 취직이 빠를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드론전자과’라는 특이한 전공 이름에 눈길이 갔죠. 입학 전 직접 학교에 방문해 학교도 둘러보고, 교수님을 뵙고 상담도 했어요.”

한국폴리텍대학에 입학한 후 6개의 자격증을 땄다. /정현수씨 제공

드론 뿐 아니라 전기⋅전자과에서 배우는 기본적인 이론과 기술들을 모두 배우는 학과였다. “상담해보니 개인의 역량에 따라 전기⋅전자 분야의 다양한 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어요. 학생들과 교수님 모두 열정적으로 학업에 임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죠.”

2021년 한국폴리텍대학 충추캠퍼스 드론전자과에 입학했다. 공부하면서 유학 생활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전자회로 이론 및 실습, 전자캐드, 전기실습, 드론조종기술 등 다양한 과목을 배웁니다. 여러 과목을 동시에 배우다 보니 복습할 시간이 부족했죠. 친구들과 함께 매일 실습실에서 밤 10시까지 공부하다가 기숙사로 돌아갔습니다. 고등학교 야간자습처럼요. 힘들 때면 ‘언어가 안 통하는 곳에서도 공부한 것에 비하면 이 정도는 거뜬하다’는 생각을 되뇌었죠.”

1년의 전문기술과정에 재학하면서 6개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전자기기 기능사, 승강기 기능사, 정보처리 산업기사, 의료전자 기능사 등 6개의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전기⋅전자 관련 자격증 시험을 시험 일정 순서대로 쭉 나열했어요. 1년 동안 공부 과목이나 시험 일정이 겹치지 않게 딸 수 있는 최대 개수가 6개더군요. 그래서 6개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뒀습니다. 시험 일정에 맞춰 일일 이론 암기량과 실습 목표를 세우고, 하루도 빠짐없이 목표를 지켰죠.”

재직중인 회사에서 기계를 다루고 있는 모습. /정현수씨 제공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 작성부터 했다. “언제 희망 기업의 채용 공고가 뜰지 모르니 자기소개서는 최대한 빨리 준비해뒀습니다. 유학 경험과 한국에 돌아와 공부에 매진한 경험을 자세히 기술했죠. 진로를 바꾼 이유와 지금 전공에 대한 애정을 솔직하게 드러냈어요. 또 학교에서 자기소개서 작성에 도움되는 특강을 자주 여는데요. 매번 참석해 조언을 구했어요. 처음엔 학업에서의 노력을 중심으로 작성했어요. 이후 피드백을 받아 학교에서의 구체적인 실무 경험을 보완했죠. 세 번 정도 퇴고를 거치고 나니 범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자소서가 완성되더군요.”

학교 인프라를 적극 활용했다. “수료가 임박할 무렵부터 교학처에 밥 먹듯 찾아갔어요. 찾은 채용 공고에 대한 상담을 받으러 방문했죠. 교학처장님과 함께 공고를 찾기도 했어요. 모의 면접을 치르기도 하고요. 취업 준비 기간에는 최대한 많은 사람과 만나보면서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면접에서 나올 여러 질문을 다각도로 대비할 수 있죠.”

◇돌아왔지만 후회는 없다

어린 시절 방황하다 뒤늦게 적성을 찾은 정현수씨. /더비비드

지난 2월, 산업용 프린터 전문 기업 ‘딜리’에 입사했다. “딜리는 페트병에 붙이는 라벨이나 고무, 유리 등의 특수한 표면에 인쇄하는 프린터를 제작합니다. 수출을 주로 하는 코스닥 상장 기업이죠. 공고로 올라온 직군은 해외 기술 영업 직무였어요. 저에게 딱 맞죠. 해외 거주 경험과 귀국 후 취득한 자격증을 기반으로 전문성을 강조한 점이 주효해 입사에 성공했어요.”

사택에서 지낸다. 고객사 교육, 프린터 설치, 현장 수리 업무, 출장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고 있다. 벨기에 협력사에서 회사를 찾아 오자 통역업무를 맡은 일도 있었다. 근무하고 있는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는 것이 목표다. “산업용 프린터 관련 공부에 매진해서 업계에서 인정받는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주말엔 회사 근처 공터에서 드론을 날리고 있어요. 덕분에 즐거운 취미도 생긴 거죠.”

길을 찾는 데 돌고 돌았지만, 후회는 없다. “포기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까 겁났어요. 그런데 막상 겪고 나면 별거 아니더라고요. 실패한 경험에서도 분명 배울 점이 있었죠. 제가 결국 영어 실력을 살려 취업하게 된 것처럼요. 실패도 다음 성공 경험의 탄탄한 기반이 돼주죠. 성공했을 때의 뿌듯함은 더 크고요.”

/더비비드 X 한국폴리텍대학 공동기획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