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촌 디스코장 인테리어 돈 떼였다가 퍼뜩 정신 들어 시작한 일”

더 비비드 2024. 6. 27. 14:38
수용성 차량용 코팅제 만든 올비 정성덕 대표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요즘 MZ세대가 있다면, 1990년대엔 ‘386세대’가 있었다. 올비 정성덕 대표(54)는 30대에 인테리어 회사를 차렸다가 5년만에 부도를 맞았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현장 작업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였고, 결정적으로 500평대 디스코장 인테리어를 맡았다가 잔금을 받지 못해 회사 문을 닫아야 했다.

어느덧 ‘586세대’라 불릴 만큼 세월이 흘렀다. 20여 년 만에 그는 다시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유통사로 출발한 ‘올비’는 2022년 차량용 코팅제 포팩을 출시했다. 나프타, 실리콘 오일 등 기름 성분을 일절 배제하고 수용성 물질만으로 만든 차량용 코팅제는 포팩이 세계 최초다. 정 대표를 만나 386세대와 586세대의 창업은 어떻게 다른지 들었다.

올비 정성덕 대표는 세계 최초 수용성 차량 코팅제를 개발해 20년 만에 다시 창업에 도전했다. /더비비드

◇아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

올비 차량용 광택 코팅제 ‘포팩(4 effect)’은 4가지 효과를 한 번에 낸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스크래치 방지, 벌레·타르 제거, 외관 광택, 타이어·휠 광택이 주 기능이다. 유리·거울을 제외한 문손잡이, 범퍼, 트렁크, 사이드미러, 휀다(바퀴와 차체 중간 부분) 등에 뿌리면, 간편하게 차량 광택틍 내면서 표면에 이물질이 달라붙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스프레이 타입으로 사용이 간편하다. 물기가 없는 차체에 포팩을 뿌리고 2~3분 정도 자연 건조하면 차량 코팅이 끝난다. 수용성 물질로 만들었기 때문에, 도포 이후 차량이 더러워지면 물만 뿌려도 이물질이 쉽게 떨어진다. 손등에 뿌려도 될 정도로 인체에 무해하다.

‘포팩(4 effect)’은 스크래치 방지, 벌레·타르 제거, 외관 광택, 타이어·휠 광택 등 4가지 효과를 한 번에 낸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더비비드

1993년 한양대 전산학과 졸업과 동시에 인테리어 회사에 취직했다. “캐드를 이용해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기 시작하던 때였어요. 카페·학원 같은 공간 인테리어 도면 작업을 맡았죠. 그러다 직장 선배와 500만원씩 모아 회사를 나와 인테리어 회사 ‘애당 아트하우스’를 차렸습니다. 제가 설계·시공·영업을 맡았고, 선배가 경영 전반을 관리했죠.”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 “동업하는 동안 돈 관리는 선배가 잘해줄 것이라 믿었는데 1년 뒤 서류를 살펴보니 숫자가 안 맞더군요. 선배와 갈라서서, 혼자 노래방·치과 등 인테리어 일감을 받는 회사를 차려 사업을 꾸려나갔죠. 길게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신촌에 있는 500평짜리 록카페 디스코장 인테리어를 맡았는데 그 지인이 잠적했거든요. 결국 부도를 맞았습니다.”

애경 백화점 재직시절 중국 출장길에서의 모습. /정성덕 대표 제공

2001년 구로 애경백화점(현 구로 NC백화점)에 영업직으로 입사했다. 기업체에 선물 세트를 납품하는 일이었다. “당시엔 명절마다 회사에서 샴푸·린스 세트를 나눠주곤 했죠. 금융사·언론사 등 대기업 총무 부서를 다니면서 직원용 선물 세트 계약을 따냈습니다. 저 혼자서 1년에 100억원 넘는 매출을 낸 적도 있어요.”

그 사이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 결혼 11년 만에 찾아온 쌍둥이 아이들을 보며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다. “회사에 100억원 매출을 안겨주는 동안 연봉 6000만원을 받으니 손해 보는 기분이 들더군요. 유통업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만든 제품이라도 B2B(기업 간 거래) 판로를 뚫어 매출을 낼 자신이 있었어요.”

◇올비 창업노트

6년 전 판매했던 실리콘 와이퍼 ‘레인싹’. 직접 실험하는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다. /정성덕 대표

2012년 B2B 전문 유통사 ‘올비’를 세웠다. 올비(All.b)는 어떤 제품도 브랜딩하고 판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포구 서교동에 1~2명이 상주할 작은 사무실을 냈다. 회사에 다닐 때 알고 지내던 제조업체를 공략했다. 나이키, 아디다스, 락앤락, 행남자기 등의 제조사에서 총판권을 가지고 와서 기업에 대량으로 납품했다.

“하루는 실리콘으로 자동차 와이퍼를 만들었다는 지인이 찾아왔어요. ‘자동차 제조사 납품용으로 무조건 되겠다’는 생각에 2억원을 내고 독점판매권을 샀습니다. 그런데 그게 실수였습니다. 기존 납품업체들의 틈을 뚫고 들어갈 틈이 없었죠.”
2억원의 수업료로 얻은 건 경험이었다. “금형(동일 규격의 제품을 생산할 때 쓰는 금속 틀)과 사출(금형을 이용한 대량 생산방식)도 모르던 제가 1년간 공장을 드나들다 보니, 직접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작 의뢰를 받아 제습기, 핸디형 선풍기 등을 만들면서 기반을 다졌죠. 언젠가 ‘내 제품’을 만들겠다 다짐하면서요.”

1. 물만 뿌려도 벗겨지는 코팅제

포팩으로 차량을 코팅한 후 고압수를 뿌려주면 코팅제와 함께 차에 붙은 이물질이 쉽게 떨어져 나간다. /올비

아이디어는 뜻밖의 순간에 찾아왔다. “지방 출장길을 다녀오고 나니 차에 벌레 사체가 덕지덕지 붙어있더군요. 고압수를 뿌리고 걸레로 닦아도 잘 지워지지 않았죠. 차에 발랐던 코팅제를 살펴보니 주성분이 ‘실리콘 오일’이었습니다. 기름 성분이라 닦아내려면 세제가 필요했죠. 물만 뿌려도 이물질이 쉽게 떨어지는 코팅제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차를 아끼는 지인들에게 평소 어떻게 차를 관리하는지 물었어요. 손세차를 하는 건 물론이고 차량 전체에 왁싱·코팅 제품을 바르는 데 100만원 넘게 쓴 친구도 있었죠. 그렇게 코팅하더라도 비가 오거나 때가 묻으면 다시 세차장에 가서 거품 목욕을 시켜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수용성 코팅제’를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2. 원료 배합 비율 찾기

포팩의 주 성분은 메틸메타크릴레이트와 에탄올이다. 적절한 배합 비율을 찾기까지 2년이 걸렸다. /정성덕 대표

2018년 봄, 원료 연구에 돌입했다. 유성 성분은 모두 제외하고 수성 성분으로만 후보 물질을 추렸다. ‘빨리 마를 것’, ‘건조 후엔 광택이 날 것’, ‘물에 녹을 것’ 등의 원칙을 세웠다. 시너(thinner), 톨루엔(toluene) 등 화학 물질을 모아놓고 비율을 바꿔가며 실험했다. 종이나 플라스틱에 먼저 뿌려본 다음엔 실제 차량에 직접 뿌려보기도 했다.

“노하우가 없어서 실험을 하느라 차 2대를 버렸어요. 그해 여름에 한 대, 가을에 한 대를 보냈습니다. 차량의 기능엔 문제가 없었어요. 코팅제가 2~3일 뒤에 얼룩덜룩하게 굳어버려 어떤 세제를 써도 지워지지 않는 게 문제였죠. 마침내 찾아낸 물질이 메틸메타크릴레이트입니다. 플라스틱 렌즈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물질이죠. 여기에 에탄올을 섞어 빨리 건조되도록 했습니다. 적절한 배합 비율을 찾기까지 2년이 걸렸네요.”

3. 헤어스프레이처럼 뿌리는 코팅제를 만들자

스펀지로 문지르거나 직접 바르는 방식인 기존 코팅 제품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포팩은 스프레이로 제작했다. /더비비드

사용성을 높이기 위해 스프레이로 제작했다. 원료를 배합한 후에 캔을 만드는 제관 업체에 배합물을 보내고, 배합물이 들어간 캔을 LPG 충전소로 보내 가스를 충전했다. “기존 코팅 제품은 스펀지로 문지르거나 직접 바르는 방식으로 씁니다. 나프타(naphtha) 같은 기름 찌꺼기를 도포하는 과정이죠. 반면 포팩은 헤어스프레이를 뿌리듯 차에 대고 뿌리기만 하면 됩니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OTITI)에 의뢰해 안전기준을 확인받았다. 코팅제는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위해성 여부를 확인받아야 한다. “신청서, 시료와 함께 30만~40만원 남짓의 시험 비용을 내면 2주 정도 뒤에 결과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신고 증명서 발급까지 2개월 정도 걸렸어요.”

4.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자

포팩이 안전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팔에 직접 뿌리는 모습. /올비

2022년 4월 포팩 2만개를 최초 생산했다. 개당 가격은 1만6000원대로 정했다. “지금까지 약 2억원 어치를 판매했는데요. 대량으로 양산할수록 단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점차 생산량을 늘려보려고 합니다. ”

영업하는 방법이 진화하고 있다고 느낀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말이 참 많았어요. 바디워시 선물세트가 왜 필요한지 끊임없이 설명하면서 설득했죠. 포팩을 영업할 때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예요. 가령 제 팔에 포팩을 뿌리면서 성분의 안전성을 보여주고, 빳빳한 종이에 포팩을 뿌리고 볼펜으로 글씨를 쓴 후에 물티슈로 쓱쓱 지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돌아서려던 사람도 붙잡는 제 나름의 노하우예요.”

◇실패해서 오히려 다행

정 대표는 4년간 한 제품 개발에 푹 빠질 만큼 끈기가 있다고 자부한다. /더비비드

30대 시절의 창업과 50대의 창업은 나이만 다른 것이 아니다. “과거엔 제 약점을 지나치게 인식한 것 같아요. ‘현장 작업반장보다 어리니까 내 말은 안 듣겠지’, ‘나는 경영에 약하지’ 같은 생각들이 저를 더 나약하게 만들었죠. 이젠 제 강점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4년간 한 제품 개발에 푹 빠질 만큼 끈기가 있고, 그런 노력으로 만든 제품을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PR 능력도 갖췄어요.”

인테리어 회사 문을 닫을 때만 해도 ‘사업 운은 없구나’ 싶었다.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결국 사업할 팔자구나’ 싶죠. 팔자를 만드는 건 결국 자기 자신입니다. 빨리 실패한 게 차라리 다행이란 생각도 해요. 그 덕분에 다시 자금을 모으고 역량을 키워서 창업할 수 있었습니다. 준비가 됐다 싶으면 일단 뛰어들어보길 권하고 싶어요. 실패에서도 분명 배우는 게 많습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