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순간

몇 안 남은 한국의 시계 장인, 35년 장인의 맞춤 시계 조립

더 비비드 2024. 6. 26. 13:12
직업의 모든 것(6) 시계 장인

커스벤의 오토매틱 시계 조립 과정. /더비비드

우리나라도 한때 시계 강국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지금은 중국산 저가 시계가 시장을 점령하면서 한국 시계의 입지가 좁아졌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기업이 시계를 만들 정도로 우리나라 시계 시장의 규모가 컸습니다.

한국의 시계 산업 호시절과 침체기를 모두 겪은 이가 창업한 기업이 있습니다. 커스벤은 1985년 아남산업에서 시작해 국내 시계 산업에 30년 이상 몸담았던 경진건 대표가 2020년에 설립한 한국 맞춤 시계 브랜드입니다. 한국 시계의 명맥을 잇겠다는 포부로 처음부터 끝까지 시계 장인이 국내에서 직접 손으로 조립한다는데요. 커스벤의 시계 조립가 이성순(64) 씨의 시계 조립 과정을 담아왔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참아지는 시계 조립 과정

커스벤의 시계 조립가 이성순 씨. /더비비드

시계 조립 장인 이성순 씨는 경진건 대표와 아남산업에서 함께 근무했습니다. 경 대표는 시계사업부에서, 이 씨는 시계기술부에서 근무했죠. 경 대표가 창업하면서 이 씨를 조립가로 채용했습니다.

커스벤의 아라베스크 컬렉션. /더비비드

오늘 조립할 시계는 커스벤의 ‘아라베스크’ 컬렉션 시계입니다. 배터리가 필요 없는 오토매틱 시계입니다. 오토매틱이란 신체 움직임의 진동을 동력으로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다이얼 내부가 훤히 보이는 노출형 디자인이 인상적인데요.

시계 조립에 필요한 도구들과 부품들을 갖추면 조립 준비가 끝납니다. 그 다음은 작업대에 앉아 조립할 시계의 도안을 살필 차례입니다. 케이스부터 다이얼, 핸즈(시간을 나타내는 바늘), 시곗줄까지 모두 주문을 받아서 제작합니다. 소비자 요청 사항을 숙지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죠.

본격적으로 조립하기 전에 확대경을 착용합니다. 각 부품을 결합하기 전 최종 점검하는 절차도 생략해선 안됩니다. 부품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나무 막대로 다이얼 표면에 묻은 얼룩도 제거합니다. 한 톨의 먼지도 들어가지 않게끔 심혈을 기울여야 하죠.

이성순 조립가가 시계의 초침을 포개는 모습. /더비비드

이제 시곗바늘인 핸즈를 조립할 차례인데요. 시침, 분침, 초침을 서로 닿지 않게 조심히 포갭니다. 조립이 잘 됐는지 확인할 때는 핸드 어셈블리 툴(시계 전용 조립 도구)에 시계를 올려서 수평을 확인합니다. 작업 시간을 줄이고 정확도를 올려주죠.

시계에 흠집이 나지 않게 핀셋으로 세밀하게 핸즈를 만져주고, 용두를 돌려보면서 수평을 확인합니다.

작은 시계 부품을 들여다보느라 깊어진 이 씨의 미간 주름과 여유로운 손끝에서 그동안 쌓은 연륜이 느껴집니다.

이제 시계 뚜껑을 결합할 차례입니다. 케이스 안에서 부품들을 꽉 잡아주는 ‘홀더’를 장착하고 나사를 끼웁니다. 드라이버로 나사를 꽉 조이고, 케이스에 이탈리아산 가죽으로 된  시계줄을 걸어주면 끝. 순식간에 멋진 시계가 완성됐습니다.

◇장인 손길로 탄생한 나만의 시계

핸드 어셈블리 툴 위에 올려진 시계. /더비비드

이성순 조립 장인의 빠른 손 덕분에 커스텀 시계 제작에 3일 안팎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커스벤의 시계는 홈페이지에서 직접 맞출 수 있습니다. 14종의 제품 컬렉션, 2개의 시계 케이스, 다이얼 6개, 핸즈 6개, 스트랩 18개, 버클 4개 중에서 맘에 드는 것을 골라 조합할 수 있죠. 경우의 수로 따지면 10만종 이상의 시계 종류가 나옵니다.

/김영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