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억원 서울대 장비 고장 내며 개발한 세상에 없던 영양제

더 비비드 2024. 6. 25. 16:00
영양제 생체 흡수율 증가시키는 바이오 조성물 개발한 '퓨어'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현미를 이용해 영양제 생체 흡수율을 높이는 바이오 조성물을 개발한 퓨어 박병수 대표. /더비비드

많은 사람이 효율을 따진다. 이동할 때는 ‘최소환승’, ‘최단거리’를 따지고, 물건을 살 때는 ‘가성비’를 고려한다. 들인 노력·시간·비용 대비 만족스러운 결과를 기대한다.

영양제를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체내 흡수를 최대치로 올려주는 영양제 조합을 찾거나, 시간대별 영양제 먹는 순서도 고려한다. 공복엔 유산균, 식후엔 지용성 비타민, 잠들기 전엔 칼슘·마그네슘 같은 식이다.

퓨어 박병수 대표(32)는 시간을 지키는 것보다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다. 영양성분을 0.001㎝ 크기로 쪼개고 화학 코팅을 입혀 체내 흡수율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코팅제의 원료는 국산 현미에서 채취했다. 박 대표를 만나 현미로 만든 코팅제 이야기를 들었다.

◇칼슘에 코팅이 필요한 이유

퓨어 엘더하이 /퓨어

퓨어(Pure)는 영양제의 체내 흡수를 돕는 가공 기술 BMC(Brown-rice Micro Coated) 공법을 개발한 스타트업이다. 잘 흡수되도록 잘게 쪼갠 유효성분 조각들은 특수 코팅 처리를 하지 않으면 금세 다시 뭉치고, 우리 몸은 이 덩어리를 쓰레기로 인식해 배출해 버린다. 시중에서 코팅제로 쓰이는 합성화학물질은 대장암 등을 유발하고, 천연 유래 성분도 내열성이 약하거나 설사·구토 등 부작용을 일으킨다. 유효성분에 BMC 공법을 적용하면 몸에 흡수될 때까지 유효성분을 보호하면서, 인체에 해로운 작용을 하지 않는다.

BMC 공법의 일등 공신은 ‘현미’다. 현미에서 추출한 효소가 잘게 쪼개진 유효성분 조각을 감싸준다. 퓨어는 2022년 자체 개발 상품 ‘엘더하이 젤리 스틱’을 시장에 내놓았다. 독감 예방에 좋다고 알려진 딸기류의 식물 ‘엘더베리’가 주원료다. 유아의 면역력 개선에 도움을 주는 아연 등 유효성분을 BMC 공법으로 가공했다. 아이들이 거부감 없이 섭취할 수 있는 젤리 형태다. 엄마들 사이에서 천연 감기약으로 소문 났다.

어린 아이가 젤리 제형의 퓨어 엘더하이를 먹는 모습 /퓨어

부모님이 회사로 출근하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제과점 프랜차이즈를, 어머니는 한식 프랜차이즈 점포를 운영했다. “어렸을 때부터 ‘사장님’이란 말이 익숙했어요. 그래서인지 제 미래를 그릴 때 직장생활을 하는 모습은 통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때마다 부모님은 ‘왜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느냐’며 나무라셨죠.”

건국대 축산식품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2018년 서울대 대학원 바이오식품공학과에 입학했다. “골다공증을 앓고 계시던 할머니를 보면서 막연히 뭐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요. 자주 드시던 칼슘·마그네슘·비타민D 같은 영양제의 효과를 더 높일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공부가 더 필요하단 생각에 석사 과정을 밟기로 했어요.”

서울대 대학원 바이오식품공학과에 입학한 이후 연구실에 틀어박혀 지냈다. /박병수 대표 제공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연구실에 틀어박힌 하루의 연속이었다. “주로 CJ·오뚜기 등 대기업과 협업하며 신소재를 다뤘습니다. 설탕 대체재로 쓰이던 물질이 떫은맛이 나면 효소제를 이용해 그 맛을 개선하는 식이죠. 동시에 2~3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정신없이 연구하다가 한 대에 2억원이나 하는 분석 장비를 고장 낸 적도 있어요. 1000만원에 달하는 수리비에 아찔했는데, 교수님 덕분에 학교 예산으로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본래 관심을 뒀던 영양제 흡수율 개선 방안도 연구했다. “잘게 쪼갤수록 흡수가 잘 되는 건 당연합니다. 관건은 그 입자를 어떻게 코팅하느냐에 달려있죠. 코팅이 잘 안되면 서로 좋아하는 물질끼리 뭉치게 됩니다. 이렇게 집합체가 형성되면, 몸의 소화기관에서 소화액과 만나는 표면적이 줄어들어 흡수율을 낮아지게 됩니다.”

박 대표(가운데)가 서울대 석사 학위를 받아들고 웃고 있다. /박병수 대표 제공

2020년 석사 학위를 딴 뒤에도 ‘코팅제’ 찾기에 혈안이었다. “기존에 쓰이던 글리세린지방산에스테르 같은 합성화학물질은 대사증후군·대장암을 유발합니다. 천연 유래 성분인 카제인·레시틴·아라비아검도 저마다 단점이 있었어요. 내열성이 약하거나 산성에 취약하거나 설사·구토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죠. 또 모두 수입해야 하는 원료예요. 적합한 천연 성분을 찾기 위해 옥수수, 무화과 등 눈에 보이는 식물을 모두 추출물로 만들어봤습니다.”

그렇게 찾은 원료가 ‘현미’였다. “기능성 물질을 0.001㎝ 크기로 쪼갠 다음 현미에서 추출한 6가지 효소를 이용해 코팅하는 것이죠. 현미는 단백질·다당류·인지질이 적절히 섞여 있어 물에 잘 녹고 유화 반응도 안정적이었습니다. 또 누구나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부작용 걱정도 덜 수 있었죠. 완벽한 원료를 찾은 이상 사업에 뛰어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사례가 없다면 만들면 되지

2021년 개인 사업자를 내고, 1년 뒤 투자 유치를 위해 법인 사업자로 전환했다. /더비비드

2021년 ‘퓨어(Fure)’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를 등록했다. 순수한 상태를 뜻하는 퓨어(pure)에서 첫 글자만 ‘F’로 바꿔 ‘미래(Future)’란 의미를 더했다. 현미를 활용한 코팅제·코팅방법에도 BMC(Brown-rice Micro Coated)라는 이름을 붙였다. 연구실에서 확인한 현미의 활용성을 공식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식품연구원에 BMC칼슘의 수용성에 대한 분석을 의뢰했다. 기존 칼슘에 비해 수용성이 1152% 증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국가식품클러스터 기능성평가지원팀의 분석 결과도 고무적이었다. 골다공증이 있는 쥐에게 5일간 BMC칼슘을 급여했을 때 일반 칼슘을 급여한 경우와 비교해 골밀도가 1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론상으로는 칼슘 외에도 오메가3, 글루타치온 등 대부분의 영양성분을 BMC 처리할 수 있습니다.”

BMC칼슘을 현미경으로 확대한 모습. /박병수 대표 제공

BMC 공법은 영양제의 가성비를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 “코팅이 잘 안 된 영양제는 영양성분끼리 뭉치는데요. 우리 몸은 이런 덩어리를 폐기물로 인식해 그대로 배출해버립니다. 반면 BMC 공법을 활용하면 하루에 2~3알 먹어야 하는 영양제가 1알로 충분해질 겁니다.”

이론만으론 돈이 되지 않았다. 제약사, 식품회사를 찾아가 연구 결과를 들이댔지만 시큰둥한 반응 일색이었다. “적용한 실제 사례가 없으니 믿을 수 없다는 이유였죠. 고민 끝에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 상품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 기술을 이렇게 적용해서 제품화할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주려면 이 방법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고칼슘 현미 두유 현숙씨C의 제조 과정. /박병수 대표 제공

두유처럼 마실 수 있는 현미 음료 개발에 돌입했다. “칼슘 함유량에 특히 공을 들였습니다. 한 팩만 마셔도 성인 하루 권장량인 700㎎의 60% 이상을 섭취할 수 있길 바랐죠. 분명히 배합 공식에서는 65%가 나오는데 샘플 제품을 만들 때마다 50%를 하회하더군요. 맛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맛은 ‘아침햇살’이었는데 영 싱거웠어요. 연구만 하다가 사업을 하려니 이런 부분에서 턱턱 막혔죠.”

꼬박 1년간 개발한 끝에 2021년 12월 고칼슘 현미 두유 ‘현숙씨C’를 출시했다. “제품 하나 만드는 데 6000만~7000만원이나 들 줄은 몰랐어요. 현숙씨C로 4000만원 가량의 매출이 발생했는데요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죠. 그럼에도 콩깍지는 벗겨지지 않았습니다. 너무 어른 입맛을 타깃으로 한 게 아닐까 싶어 어린이를 위한 제품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어요.”

젤리 제형의 퓨어 엘더하이 /퓨어

이번엔 소비자의 목소리에서 힌트를 얻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 53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어요. 아이의 건강 중 가장 많이 신경 쓰이는 부분은 면역력(38.8%)이었습니다. 여기 착안해 독감 예방에 좋다고 알려진 엘더베리를 BMC공법으로 가공했습니다. 2022년 10월 어린이 건강 주스 ‘엘더하이’를 출시했는데요. 이후 젤리 형태로 진화해 히트를 쳤습니다. 그해 매출은 엘더하이가 견인했죠.”

아무리 많이 팔아도 대기업은 못 쫓아간다. “어디까지나 실제 사례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였어요. 저는 대기업의 영향력을 믿어요. 자체 상품인 엘더하이를 아무리 열심히 만들어 판다고 하더라도, 뽀로로 음료에 원료를 공급하면 훨씬 많은 아이가 BMC 원료를 접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말해 더욱더 효율적으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죠. 이제 시장성을 입증했으니 대기업과 협업을 본격 추진할 계획입니다.”

◇우리 아들이 만든 거야

2022년 4월 은행권 청년창업재단이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 본선 무대에서 BMC공법에 대해 설명하는 박 대표. /박병수 대표 제공

화학물질 대신 천연물질인 현미를 이용해 영양성분을 감싸는 코팅제를 만들었다는 점은 대외적으로 인정받기에 충분했다. 지난 4월 은행권 청년창업재단(디캠프)이 주최하는 창업경진대회(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또 ‘현숙씨C’, ‘엘더하이’의 힘을 받아 식품·제약 분야 대기업과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대교홀딩스·롯데중앙연구소·CJ제일제당 등과 기존 제품에 생체흡수율 증가 원료를 접목하는 실험을 하고 있어요. 2023년이 가기 전에 BMC원료 판매 계약을 맺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여전히 사업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껏 한 번도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현숙씨C’나 ‘엘더하이’를 집에 가져가면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죠. 그런데 알고 보니 저 몰래 친구분들에게 자랑하며 돌렸다고 하시더군요. ‘우리 아들이 만든 거야’라면서요. 그 얘길 들으니 의지가 더 샘솟았어요. 부모님께서 그토록 반대하시던 ‘사업’을 통해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릴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