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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명량 바다에서 잡은 전복, 일본 수출해 연매출 250억원

전남 해남 청해전복수산 신용섭 대표

 

전남 해남에서 전복수매업을 하는 청해전복수산 신용섭 대표. /더비비드

명량대첩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좁고 빠른 물길을 이용해 단 12척의 배로 일본 전함 31척을 파괴하며 승리를 거뒀다. 이 전투가 벌어진 곳이 전라남도 해남군과 진도군 사이를 지나는 해협이다. 거친 물살 때문에 ‘울돌목’이라고도 부른다.

배가 휘청일 정도로 거친 물살이 일면 바닷속에서는 전복들의 잔치가 열린다.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를 먹이로 삼는 전복은 조류가 빠른 바다에서 잘 자란다. 거센 파도에도 바위나 산호에 딱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이런 환경 덕분에 남해안에는 전복 양식장이 많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1년 전국 전복 생산량의 99%가 전라남도에서 나왔다. 전남 해남·진도·완도 등에서 잡아 올린 전복을 수매해 전국으로 납품하는 청해전복수산 신용섭 대표(44)를 만나 전복에 대한 모든 것을 들었다.

◇빠른 물살이 만드는 단단한 육질

‘땅끝 마을’ 전남 해남 앞바다는 조류가 빠르고 해조류가 풍부해 전복 양식의 최적지다. /더비비드

전라남도 해남군은 한반도 최남단으로 ‘땅끝 마을’이라고도 불린다. 해남은 고구마·호박·배추 같은 농산물로 유명하지만 수산물도 그에 못지않다. 해남의 수산물 중에서도 최고는 단연 전복이다. 조류가 빠르고 해조류가 풍부한 해남 앞바다는 전복 양식의 최적지다. 해남 전복은 유기질이 풍부한 갯벌에서 자라 육질이 단단하고 맛이 담백하다.

단백질과 아미노산, 칼슘 등이 풍부한 전복은 천연 보약이다. 과거 전복은 산모들이 젖이 나오지 않을 때 고아 먹는 등 약재로 쓰였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전복을 두고 ‘종기를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쓰기도 했다. 과거엔 말린 전복 위주로 유통했지만 전복을 오랫동안 살려서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발전하면서 활전복 공급이 크게 늘었다.

◇귀향 그리고 귀어

신 대표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서울로 올라갔다가 2018년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더비비드

신 대표는 땅끝 마을 해남의 바로 아래에 있는 섬, 완도에서 나고 자랐다. 전남 완도군은 신 대표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하다. 신 대표는 안정적인 직장을 찾아 서울로 올라갔다가 2018년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 사이 아버지와 동생은 해남에서 전복 치패(새끼) 사업을 꾸려가고 있었다. 장남으로서 집안에 하나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귀어길에 올랐다.

- 현재 영위 중인 전복 ‘사업’은 전복 ‘양식’과 다른 건가요.

“전복은 시장에 나와 우리 밥상에 오르기 전까지 상상 이상으로 많은 단계를 거칩니다. 아버지께서는 생산 사슬의 앞단인 전복 치패를 키우는 일을 하셨어요. 전복 성체에서 받은 씨로 인공수정을 하면 치패가 탄생하는데요. 치패가 2~3cm 정도로 클 때까지 약 6~10개월간 인공 수조에서 키운 다음 가두리 양식장에 파는 일이었죠. 그렇게 키운 치패가 1년에 500만마리에 달했습니다. 바다에 들어간 치패는 2~3년간 성장해 ‘전복’이 됩니다. 전복 생산은 출하까지 3년 이상 소요되는 장기전이죠.”

4.5톤 활어 트럭에 전복을 싣고 도·소매 업체 등 거래처로 운반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더비비드

- 귀어를 결심하고 어떤 일부터 했나요.

“아버지께서 치패를, 동생은 수매를 담당하고 있었어요. 다 큰 전복을 양식장에서 사 와서 소비자에게 파는 일이죠. 전 활어차 운전부터 했습니다. 4.5톤 트럭에 전복을 싣고 부산 도·소매 업체 등 거래처를 오갔죠. 틈틈이 치패 양식장에서도 일손을 도왔습니다. 동시에 천천히 자립할 준비를 했습니다.”

◇전복을 수조에 계류하는 이유

전복 계류장의 수조에는 끊임없이 물이 들어오고 나간다. 모두 해남 앞바다에서 길어올린 바닷물이다. /더비비드

2019년 전복 수매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청해전복수산’의 방향키를 쥐었다. 전복 수매업은 가두리 양식장에서 꺼내 올린 전복을 사들여 계류장에 일정 기간 보관한 후 판매하는 일을 말한다. 4억~5억원을 들여 가로 2미터, 세로 5미터짜리 수조와 제반 시설을 마련해 계류장을 세웠다.

- 다른 일도 아니고 왜 ‘수매업’을 택했나요.

“처음엔 가두리 양식을 할까도 고민했는데요. 양식을 하려면 어촌계에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일종의 바다를 사용하는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 절차가 까다로웠거든요. 또 전복 양식을 하면 2~3년간의 기다림을 견뎌야 해요. 마라톤보다 100미터 달리기가 적성에 잘 맞다고 느껴 전복 양식의 다음 단계인 수매업을 하기로 결심했죠.”

해남·진도·완도 등 인근 지역에서 전복을 양식하는 어민의 연락을 받으면 빈 트럭을 타고 부둣가로 달려간다. /더비비드

- 전복은 어디에서 어떻게 사 오나요.

“해남군 내는 물론 진도, 완도 등 인근 지역에서 전복을 양식하는 어민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습니다. ‘전복 들어간다’는 연락이 언제 올지 모르니 늘 스마트폰 음량을 늘 크게 키워둬요. 연락을 받으면 빈 트럭을 타고 부둣가로 달려갑니다. 배에서 전복의 수량과 상태를 간단하게 확인하고 트럭에 싣죠. 한 번에 적게는 700㎏에서 많게는 2톤까지 매수합니다.”

- 가져온 전복은 바로 소비자에게 판매하나요.

“적어도 이틀 이상 수조에 계류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전복이 폐사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죠. 전복을 수조에 넣은 첫날은 수온을 20도로, 둘째 날은 14도로 맞춥니다. 전복은 시원한 물에서 더 활력이 생기거든요. 수조의 한쪽엔 물이 계속 나오고 다른 쪽에서는 물이 빠져나가도록 길을 만들어뒀는데요. 바다에서 길어온 물을 정수해 그대로 공급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전복이 육지 환경에 적응합니다. 해감도 되죠.”

이틀에 한 번씩 2인 1조로 수조에 들어가 전복을 이사시킨다. /더비비드

- 수조는 어떻게 관리하나요.

“이틀에 한 번씩 전복을 이사시킵니다. 원래 있던 수조에서 바로 옆 수조로 옮기면서 수조를 청소하기 위해서죠. 전복은 물에 담가놓기만 해도 개흙(갯바닥에 있는 고운 흙)이 나와서 물이 탁해지거든요. 2인 1조로 물옷(장화가 달린 전신 방수복)을 입고 수조로 들어갑니다. 한 명은 이사 전 수조, 다른 한 명은 이사 후 수조에 들어가죠. 전복이 담겨 있는 플라스틱 바구니 수십 개를 옮기는 데 30~40분 정도 걸립니다. 이때 활력이 떨어졌거나 죽은 전복은 밖으로 꺼내 폐기합니다. 수조 하나를 청소할 때마다 버리는 전복이 양동이 하나를 꽉 채울 정돕니다.”

- 전복 수매업자는 어떻게 돈을 버나요.

“판매량에 따라 매출이 결정되고 여기에서 수매가격과 인건비 등 고정 비용을 제하는 게 저희 몫입니다. 어민과 소매업자·소비자 사이에서 마진을 많이 남길수록 순이익이 커지는 구조인데요. 중간 마진은 10% 내외예요. 전복 성장 기간이 3년으로 길다 보니 안정적으로 공급·수요 비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서 크게 욕심을 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2022년 연 매출은 250억원이었고 순이익은 3~4% 정도입니다.”

◇성깔 있는 전복이 좋은 전복

전복은 1kg에 몇 마리인지를 기준으로 선별한다. /더비비드

전복을 분류할 때는 저울이 꼭 필요하다. 1㎏에 몇 마리인지를 기준으로 선별하기 때문이다. 가령 저울에 8마리를 올렸을 때 1㎏이 됐다면 ‘8미’라고 하고, 20마리를 올렸을 때 1㎏이 되면 ‘20미’라고 부르는 식이다. 숫자가 작을수록 전복 크기는 커진다. 가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10미 이하는 ‘대’, 14~15미는 ‘중’, 18미 이상은 ‘소’로 분류한다.

- 전복은 어떻게 판매하나요.

“온오프라인으로 모두 판매하고 있습니다. 대형마트, 지역 마트에서 도매로 주문이 들어오면 박스 단위로 활어차에 실어 보내는데요. 지나던 길에 들렀다며 직접 전복을 확인하고 사 가는 손님도 있죠. 최근엔 부쩍 온라인 판매 비중이 늘어 전체 매출의 80%에 육박할 정도예요. 일본으로의 수출도 꾸준합니다. 연간 20억원 정도는 수출하고 있죠.”

살아있는 전복을 신선하게 배송하기 위해 바닷물을 넣은 뒤 공기 주입구를 통해 산소를 주입한 뒤 아이스박스에 담는다. /더비비드

- 살아있는 전복을 어떻게 택배로 보내나요.

“먼저 전용 비닐에 바닷물과 함께 전복을 담아 밀봉합니다. 공기 주입구를 통해 산소를 주입한 다음 아이스박스에 담죠. 전복이 죽거나 활력을 잃지 않도록 아이스팩을 넣고, 손질을 위한 솔도 함께 넣어요. 오후 1시까지 들어온 주문은 바로 포장해 택배 마감 시간인 4~5시에 출고합니다. 별일이 없다면 다음날 바로 받아 전복을 맛볼 수 있습니다.”

- 싱싱한 전복을 알아보는 노하우를 알려주세요.

“살이 활짝 퍼져있다면 이미 죽었다는 뜻입니다. 떼기 쉬운 전복이라고 덥석 집어 드는 건 추천하지 않습니다. 엉겨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는 전복이 활력이 좋고 싱싱한 전복이죠. 전복 껍데기 크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살이 통통하고 육질이 충분히 단단한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벽이나 바닥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전복이 활력이 좋고 싱싱한 전복이다. /더비비드

- 전복은 손질하기가 까다롭지 않나요.

“생각보다 간단해요. 억센 솔로 전복에 붙은 이물질을 닦아준 다음 숟가락을 이용해 껍데기와 살을 분리해 주세요. 딱딱해서 먹기 힘든 이빨과 내장 옆에 있는 모래주머니만 제거하면 끝입니다. 버터구이를 해 먹거나 삼계탕에 함께 넣어 먹거나 그냥 그대로 썰어서 회로 먹는 걸 추천합니다. 전 삼겹살과 함께 구워 먹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

◇복 많은 전복

전복은 고급 식재료라는 인식이 있다. 가격 부담 때문인지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전복을 찾는 사람이 확연히 줄어든다. 최근 들어 원전 오염수 등으로 수산물 수요가 전반적으로 줄었고 전복도 그 영향을 받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9미 1㎏에 9만~10만원대였지만 6월엔 3만원대에 팔렸다. 그나마 9~10미를 찾는 소비자는 많지만 중·소 크기는 찬밥 신세다. 전복은 생물이기 때문에 재고로 쌓이면 그대로 폐기할 수밖에 없다.

- 재고가 쌓이면 어떻게 하나요

“계류장에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기껏해야 2주에 불과합니다. 전복이 폐사하기 전에 수매가보다 낮은 가격이더라도 팔아넘겨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전복 장조림’ 같은 가공식품 분야까지 확장하고 싶어요. 전복 손질을 어려워하는 젊은 세대가 보다 쉽게 전복을 접하게 할 방법으로 떠올린 아이디어였는데요. 전복을 헐값에 넘기면서 생기는 손실을 막아주리란 기대도 하고 있죠.”

- 귀어를 후회한 적은 없나요.

“힘든 시기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믿고 있던 거래처에 전복을 5억원 어치 보냈다가 미수금을 못 받은 적도 있고, 요즘처럼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으로 전복을 폐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제겐 전복 수매업이 유일한 선택지였습니다. 2018년 고향에 내려오면서 첫째 아들을 얻었고 지금은 세 아이의 아빠가 됐어요. 어려움이 닥쳐도 굳건히 버텨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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