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진짜 무릉도원,
감곡면 8000평 복숭아 과수원 다녀왔습니다
“제 얼굴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고요, 아내가 잘 나온 사진으로 골라줘요.”
애처가였다. 7월의 아침에 방문한 충북 음성군 감곡면 상우리. 복숭아 과수원에서 50대 동갑내기 농부 부부가 수확에 열중이었다. 금실 좋은 부부가 가꾸는 과수원이라 복숭아 향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남편인 홍춘호(52) 농부가 사다리 위에서 복숭아를 따면, 아내인 임경옥(52) 씨가 열매를 받아 운반기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 두는 일을 반복했다.
감곡농협 소속 홍춘호 농부는 20년의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나이 마흔이던 2010년, 아내의 고향인 충북 음성으로 내려와 복숭아 농사에 뛰어들었다. 3000평 남짓의 땅을 임대해 농사에 도전한 홍 농부는 13년 만에 8000평 규모의 대형 복숭아 과수원을 운영하는 대농(大農)으로 성장했다. 복숭아밭 안쪽 그늘에 모여 앉아 홍 농부의 복숭앗빛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달콤한 과실만 자라는 감곡 땅의 비밀
6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만 맛볼 수 있는 여름철 대표 과일 복숭아는 과육이 부드럽고 단맛이 강해 모두에게 사랑받는 과일이다. 수분이 많고 비타민 A·C가 풍부해 혈액순환과 피로회복에 좋다. 백도, 황도, 천도 등 종류가 다양하다. 품종에 따라 식감이나 향, 수확 시기가 조금씩 다르다.
복숭아 중에서도 감곡면에서 나는 복숭아는 예로부터 특산품으로 인정받았다. 감곡면 지명의 한자는 ‘달 감(甘)’에 ‘골짜기 곡(谷)’ 자를 사용한다. 풀어 쓰면 ‘달콤한 골짜기’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감곡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당도가 높고 향이 좋다.
지명의 한자 풀이가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감곡면은 해발 200~300m의 고도에 자리 잡고 있는 준고랭지에 해당한다. 주변 지역보다 일조량이 많고 일교차가 커 과실의 당도가 오르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췄다. 감곡면에서만 약 800 농가가 복숭아를 기른다. 매년 약 9000톤의 복숭아가 감곡농협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20년 직장 생활 청산하고 귀농 결심
1971년생인 홍춘호 농부는 군 제대 직후인 1990년, 수원의 반도체 공장 설비 운용팀에 취직했다. 아내와는 입사 동기였다. 7년 동안 연애하다 1997년 1월에 결혼했다. 아이가 셋이 되면서 아내는 전업주부로, 홍 씨는 직장인으로 고군분투했다.
-귀농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도시 생활도 좋지만, 나이가 들면 농촌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막연히 하고 있었어요. 양가 부모님께서 모두 농사를 하십니다. 100세 시대에 정년 없이 일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고, 닮고 싶다 생각했어요. 회사에서 직급이 올라가니 업무량이 많아졌고,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2010년 빠른 귀농을 결심하게 됐어요.”
-안정적인 급여와 수도권의 장점을 뒤로하는 데에 고민은 없었나요.
“영화관을 40분 동안 운전해 가야 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불편함보다 걱정되는 건 자녀의 학교 문제였습니다. 첫째, 둘째는 이미 중학생, 초등학교 고학년이라 새로운 학교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없었어요. 다만 초등학교 2학년이던 막내아들이 걱정이었죠. 같은 학년 친구가 6명뿐인 데다 남학생이 없더라고요. 사귈 수 있는 친구의 폭이 좁아졌다는 점에서 아직도 아들에게 미안해요. 대신 제가 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풍부한 햇살 받고 탐스럽게 영근 복숭아
땅 임대 비용, 1년 치 최소 생활비, 각종 농업용 설비 마련 비용 등으로 목돈 1억원을 준비했다. 집의 경우 감곡면의 헌 집 하나를 헐값에 빌린 뒤 직접 리모델링하는 식으로 마련했다.
새 터전에서 과일을 기르고 싶었다. 음성군에서 복숭아를 기르던 장인을 따라 근처에 터를 잡고 복숭아를 심기로 했다. 2010년 퇴사 직후 여주농업전문대학교에서 귀농인 과정을 수료하며 기초적인 농업 지식을 익혔다. 가족들이 수원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는 동안 먼저 감곡면으로 내려와 장인에게 기본적인 복숭아 과수원 관리법을 배웠다.
헌 집에서 출발해 현재 감곡면에서 6개의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면적으로 따지면 총 8000평 규모다. 보통 10평당 1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열매 맺을 준비가 덜 된 어린나무와 냉해 피해를 본 곳을 제외하면 약 600그루의 나무에서 복숭아 열매가 열리고 있다. 4월부터 6월 중순까지 모두 끝마쳐야 하는 적과 작업(자잘한 열매를 솎아내는 일)과 열매를 봉지로 감싸는 작업을 제외하곤 모두 홍 농부 부부가 직접 한다.
-어떤 품종을 재배하시나요.
“백도와 황도를 재배합니다. 세부 품종으로 따지면 몽부사, 천중도, 엘바트, 산정백도 등 10종 이상의 다양한 복숭아를 기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과수원이 그럴 겁니다. 복숭아는 저장해 두고 유통할 수 있는 과일이 아니라서, 6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계속 수확하려면 저마다 수확 시기가 다른 품종을 여러 종 길러야 합니다. 매년 기후에 따라 품종별로 당도나 병충해 피해 정도도 다르기 때문에, 여러 품종을 동시에 길러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것이죠.”
-타 작물과는 다른 복숭아만의 특징이 있나요.
“복숭아는 인공 수정 작업이 없어도 알아서 꽃도 잘 피우고 열매도 잘 맺히는 작물입니다. 개화한 꽃의 수 대비 수확하는 열매는 10%도 안 될걸요. 대신 복숭아는 열매의 크기가 클수록 당도가 높고 값이 비싼 편이라, 맺힌 열매의 일부만 남기는 적과 작업이 중요합니다. 모든 열매를 온전히 키우지 못할 거라면, 과감히 쳐내고 남은 열매에 집중하는 거죠.”
-복숭아 재배 과정이 궁금합니다.
“매년 4월 10일 전후로 복숭아나무에서 꽃이 핍니다. 5월까지 적뢰(꽃봉오리를 솎아내는 일)·적화·적과 작업을 모두 마무리해야 합니다. 6월쯤 되면 열매가 작은 살구 크기로 성장해요. 이때 흰 종이로 열매를 감싸줍니다. 열매를 봉지로 감싸면 껍질의 색이 잘 나고, 해충도 막을 수 있거든요. 이 과정을 ‘봉지 작업’이라고 하는데요. 이 업무는 저희 부부가 모두 할 수 없어 인부의 도움을 받습니다. 봉지 작업을 모두 마치면 7월 초부터 10월까지 열매를 수확합니다. 수확이 끝나면 비료를 뿌려 땅을 관리하고, 나무 가지치기, 어린나무 수형 잡기 등의 작업으로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해요.”
-재배 과정 중 가장 까다로운 작업은 무엇인가요.
“수확입니다. 수확만큼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모두 직접 합니다. 워낙 무른 과일이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듯 쥐고 따야 합니다. 손가락에 힘을 주면 몇 시간 뒤에 껍질이 손가락 모양을 따라 갈색으로 변할 정도로 예민해요. 수확할 때는 꼭지를 살짝 남겨야 오래 보관할 수 있습니다. 또 수확 적기를 남한테 설명하기도 참 애매해요. 껍질 색이 ‘밝고 맑게’ 올라왔을 때 따면 되는데, 아내랑 저만 아는 표현이라 묘사하기 어렵죠. 여러모로 신경 쓸 부분이 많아 다른 사람 손에는 못 맡기겠더군요.”
-농부님만의 재배 요령이 있다면요.
“무농약 농가는 아니지만, 최대한 자연적인 방법으로 해충을 제거하려고 노력합니다. 요즘 제가 잘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 ‘막걸리 트랩’입니다. 과수원 곳곳에 막걸리와 설탕이 담긴 페트병을 걸어두면 해충을 효과적으로 유인할 수 있어요.”
◇복숭아, 골라 먹지 않아도 다 맛있는 이유
이날 홍 농부가 수확한 복숭아는 ‘몽부사’다. 7월 초에 수확하는 백도 계열 품종으로, 사과향이 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홍 농부의 개인 선별장에서 즉석에서 당도를 측정한 결과 14.5브릭스의 당도가 나왔다.
홍 농부는 7월 초부터 10월 초까지 하루 평균 100박스의 복숭아를 수확한다. 한 박스에 들어간 복숭아의 무게는 4kg이다. 과실의 크기에 따라 한 박스에 8~15과가 담긴다. 이날 홍 농부는 115박스의 복숭아를 수확했다. 매년 홍 농부의 과수원에서 수확하는 복숭아의 양은 약 6000박스, 24t 내외다. 홍 농부가 수확한 복숭아는 매일 오후 감곡농협으로 입고된다.
-복숭아의 선별·포장 과정이 궁금합니다.
“농가에서 당일 수확한 복숭아는 매일 오후 햇사레과일조합공동사업법인 소속 감곡농협 산지유통센터(APC)로 입고됩니다. 복숭아가 입고되면 먼저 중량을 기준으로 선별합니다. 4kg 용기에 담기는 과일의 개수를 기준으로 8~20과로 나누죠. 이후 비파괴 당도계를 거쳐 11브릭스 이상의 과실만 한번 더 걸러냅니다. 마지막으로 유통처의 요구 사항에 따라 4kg, 2kg으로 소포장해 유통합니다. 복숭아는 시간이 지날수록 당도가 오르기 때문에, 소비자가 먹을 시점에는 평균 14브릭스의 당도가 나옵니다.”
-선별·포장 과정에서 가장 주의할 점이 있다면요.
“최대한 과실의 손상 없이 선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복숭아는 수분 함량이 높아 구르거나, 움켜쥐는 순간 바로 상해요. 최대한 손이 덜 가도록 기계를 통해 선별하고 있지만, 중간중간 손을 이용해 과일을 옮길 때는 아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만집니다.”
-유통 준비를 마친 복숭아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오후 4시까지 선별·포장 작업을 마치고, 가락시장 경매장, 농협하나로마트, 대형마트 등으로 바로 유통합니다. 유통처에서 가장 선호하는 크기는 4kg 박스 기준 11~13과입니다. 백화점에선 9~10과의 큰 열매도 선호하죠. 요즘 같은 시기에는 감곡농협 산지유통센터에서 출하하는 복숭아만 매일 2만박스가 넘어요. 감곡면에서만 연평균 450억원어치의 복숭아가 유통되고 있습니다.”
-올바른 복숭아 보관법이 궁금합니다.
“일단 복숭아를 감싼 모든 포장지를 벗겨주세요. 이후 키친 타올이나 신문지로 한 알씩 감싸서 서늘한 곳에 2~3일 후숙 후 먹으면 됩니다. 냉장고에 넣어둬도 괜찮은데요. 대신 드실 때는 냉장고에서 꺼낸 후 최소 30분 후에 드세요. 차가운 데 있다가 바로 먹으면 단맛이 잘 안 느껴지거든요.”
◇주먹구구식 접근은 금물, 농사도 직장처럼
농사도, 직장 생활도 저마다 힘들지만 농사가 더 적성에 잘 맞다고 느낀다. 노력과 성과가 비례하지 않는 직장생활과는 달리, 농사의 경우 그 해 투입한 열과 성에 따라 열매의 맛과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귀농 후 삶을 진단한다면요.
“복숭아 농사의 경우 성과가 눈에 보이니까 더 노력하게 되고, 재미를 붙이게 되더군요. 무엇보다, 한해 농사를 마치고 겨울에 1~2주간 쉬는 방학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어요. 가족들과 여행을 다닐 때면 ‘아, 귀농하길 잘했다’ 생각하게 되죠.”
-연 매출이 궁금합니다.
“1억원 초중반대입니다. 여기서 농업에 필요한 제반 비용으로 약 35~40%를 씁니다. 나머지는 순수익이라고 볼 수 있죠. 복숭아 팔아 자식 3명 모두 대학에 보냈으니 이 정도면 성공한 농부라고 생각해요.”
-귀농에 도전하려는 이에게 조언이 있다면요.
“‘일단 부딪혀 보자’는 마음가짐으로는 하기 힘든 게 농사 같아요. 철저한 계획과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접근하다간 1년 농사를 통째로 망칠 확률이 높거든요. 귀농에 관심이 있거나 키우고 싶은 작물이 있다면, 해당 분야에 관한 공부를 먼저 하세요. 귀농 후의 마음가짐도 중요합니다. 최소 2년 동안은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접어둬야 합니다. 그 말인즉슨, 2년 정도 버틸 수 있을 만한 최소 생활비는 비상금으로 마련해 두고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에요.”
/김영리 에디터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꿈꿨던 증권사 입사했는데 '아뿔싸' 바로 시작한 일 (0) | 2024.06.25 |
---|---|
5분 짜리 유튜브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대화가 오가게요? (0) | 2024.06.25 |
명량 바다에서 잡은 전복, 일본 수출해 연매출 250억원 (0) | 2024.06.25 |
"싫증 난 중고 가전 주세요, 갖고 싶던 아이패드 드릴게요” (0) | 2024.06.25 |
아버지 대를 이어 만든 신발, 워킹화의 애플이 되겠다는 한국 청년 (0) | 2024.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