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상용차 주차장 서비스 트럭헬퍼 개발기
오늘 저녁에 주문한 물건을 내일 새벽에 받을 수 있는 세상이다. 물류 혁신은 우리 일상을 통째로 바꿔 놨다. 하지만 물류 혁신의 주축인 화물차주들은 매일 밤 15분씩 공회전을 한다. 단속과 민원 우려가 없는 주차 공간을 찾기 위해서다.
빅모빌리티의 서대규 대표(41)는 물류 인프라는 성장했지만, 물류를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인프라는 개선되지 않은 현실에 주목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화물차 주차장 서비스 ‘트럭헬퍼’를 개발한 계기다. 도심에 방치된 데드 스페이스(Dead Space)를 발굴해서 주차장으로 만들기 때문에 지역민과의 충돌 가능성도 없앴다. 서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박수 칠 때 떠난 한국타이어 직원
경북대에서 독어독문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에서 14년 근무했다. 재직 당시 그는 1등 직장인이었다. 31살 최연소 주재원으로 스웨덴에 다녀왔고, 32살에 사내 최연소 핵심 인재로 뽑혔다. 건실한 직장 생활은 예고된 성취였다. 과거의 그는 최고의 마케터를 꿈꾸는 대학생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대외활동을 했다. 당시 명함이 7개일 정도였다.
직장에서 이루고 싶은 건 다 이뤘다. 하지만 임원 승진 대신 창업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마흔을 앞두니 나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아이에게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회사 다녔을 때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어요. 스웨덴으로 발령이 나서 론칭을 못하고 접었는데, 미련이 남았나 봅니다. 원래 도전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주재원 당시 연 매출 1000억원 수준의 법인을 이끌어 본 경험도 있으니 자신 있었어요.”
책임질 가족이 있으니 회사의 사내벤처 제도를 활용하기로 했다. “사내 아이디어 공모전에 30개의 아이디어를 냈어요. 마케팅 본부의 직원이 100명이고, 1년에 제안되는 아이디어가 30개 안팎이니 저 혼자 아이디어를 낸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죠. 이런 열정을 보고 회사에서 기회를 줬습니다. 첫 아이템은 물류 사업이었어요. 상부에서 ‘아이디어는 좋지만 확장성이 아쉬우니 다른 아이템을 찾아보는 게 좋겠다’는 피드백이 돌아왔어요. 그 일에 6개월을 쏟았는데, 현직으로 돌아가려니 아쉬웠어요. 그래서 미친척하고 물었어요. 관심있는 영역을 짚어 주면 거기에 맞춰서 다시 해보겠다고 했죠.”
당돌한 제안은 ‘한국타이어 최초의 신사업기획팀 신설’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오너가 상용차 시장에 관심이 많다는 힌트도 함께 떨어졌다. “경쟁이 심한 승용차 대신 상용차 쪽에서 기회를 찾아보라는 조언이었어요. 4개월 동안 상용차 시장과 관계가 있는 기업 50곳의 담당자를 만나고 다녔습니다. 신차 판매, 중형차, 대출, 주유, 세차, 정비, 보험, 주차 등 모든 섹터를 훑고 50장짜리 상용차 시장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드디어 ‘기회가 보인다’는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신사업기획팀이 사라졌지만, 당시의 제겐 너무나도 소중한 요람이었습니다.”
치밀한 시장조사 끝에 가능성을 발견한 분야는 화물차 주차와 세차 분야였다. “화물차주끼리 주차장과 세차장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요. 워낙 부족해서 주변에 알려지면 자기 몫이 사라질까봐 그러는 거죠. 하지만 세차는 사람이 꼭 투입돼야 하는 인간집약적 사업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의존하는 비즈니스는 원하지 않았어요. 대신 화물차 주차장에 주목했습니다. 화물차주 대부분이 승용차로 출퇴근해요. 화물차 주차 공간에 가면 낮에는 승용차, 밤에는 상용차가 주차돼 있어요. 이용자가 최소 차량 2대를 모는 거죠. 여기서 큰 가능성을 봤습니다.”
◇화물차주의 억울한 처지에 주목
자비로 화물차 주차장을 만들어서 3개월간 시장 검증을 했다. 주차장을 내자마자 만차였다. 이 데이터를 가지고 투자자들을 설득하고 나섰다. 본엔젤스파트너스가 시드투자를 해주기로 했다. 2023년 5월, 정든 회사를 떠났다. 탐색의 기회를 준 회사에 감사의 의미로 커피차를 보내고 아름답게 이별했다. 자유인이 된 후 빅모빌리티를 설립했다. 화물차, 승합차, 특수차 등 대형 상용차를 위한 서비스라는 의미다.
그는 화물차주들이 놓인 억울한 상황에 주목했다. “국내에 등록된 2.5톤 이상 영업용 화물차는 약 34만대입니다. 하지만 전국의 공영주차장과 화물터미널은 단 2만2000면 밖에 없습니다. 단 6%죠. 동일한 주차문제를 겪는 승합차와 특수차, 캠핑카, 카라반까지 따져보면 필요 면수의 단 4% 수준만 공급되고 있어요. 전체의 96%는 불법주차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죠. 여기에 자가용 화물차 400만대까지 더하면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 이 분들이 양심과 염치가 없어서 불법 주차를 하는 게 아니에요.”
뿌리깊은 편견은 화물차주들의 삶을 갉아먹는 족쇄가 됐다. “화물차 밤샘 단속에 걸리면 2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합니다. 과태료를 피하기 위해 아주 멀리 나만의 주차 공간을 만들어주죠. 그런데 다른 화물자추가 그 자리를 꿰차기라도 한 날엔 공회전을 하면서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어두운 산길을 걸어서 퇴근하는 건 고사하고, 집에 와서도 사고가 나지 않을까 단속 당하지 않을까 벌벌 떨어요. 고통의 강도가 이토록 높은데, 이들의 고충을 해소할 서비스는 전무했습니다. 화물차주는 일꾼이지 고객이 될 수 없다는 선입견 때문이죠. 하지만 그들은 한달 평균 900만원을 벌고, 차량 유지 및 관리 매달 평균 550만원을 쓰는 큰 손입니다. 큰 돈을 쓰고도 손님 대접을 못 받아요. 달리 보면 블루오션인거죠.”
◇노는 땅 이용해 화물차 주차장 운영
화물차주들의 고충을 담아 화물차 주차장 서비스 ‘트럭헬퍼’를 개발했다. 트럭헬퍼를 이루는 두 축은 오프라인 주차장과 반응형 웹 서비스다. 이용자의 연령대를 고려해 다운로드 절차가 필요 없는 웹사이트를 구축한 것이다. 화물차주는 웹사이트에서 가까운 주차장을 검색해서 월 정기 주차권을 결제할 수 있다.
주차공간은 이른바 ‘노는 땅’으로 만들었다. 화물차주가 주거지로부터 10km이내에서 주차공간을 찾는다는 점에 착안해 서울, 수도권, 광역시 중심으로 노는 땅을 찾아 나섰다. 지난 9월 공정거래위원회에 가맹업 신고를 완료했다. 프랜차이즈 사업 형태로 전국 토지주들을 화물차 주차장 토지주로 유치하는 중이다.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운영하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처음에는 40개가 넘는 토지의 토지주들을 만났는데요. 화물차 주차장을 하겠다는 말을 듣더니 모두 ‘NO’라고 했습니다. 선입견 때문이죠. 간신히 토지를 확보했지만 화물차 주차장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해 애를 먹었어요. 차가 몇 대 들어가지 않아 손해를 보기도 했었고, 차량의 크기와 회전각도, 진입로 등을 잘못 계산해 차가 못 나가서 새벽에 출동하는 경우도 많았죠. 현재는 화물차 주차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토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토지 선택 기준표’를 정립했습니다. 토지 계약을 동일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죠. 손해가 나지 않는 적정 마진도 설정했고요.”
도로 위의 미운 오리 취급을 받던 화물차주들은 서 대표에게 이미 백조 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고민의 순간마다 결정적인 힌트를 줬다. “화물차주들의 어려움을 경험하기 위해 한 화물자주의 차량을 선탑해서 현장을 돌아다닌 적이 있어요. 그때 그분이 ‘전단지 홍보’ 아이디어를 줬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오픈한 주차장 반경 2km 내에서 야간에 불법주차한 차량에 일일이 전단지를 붙였어요. 두 달간 그렇게 했는데 확실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론 입소문이 났어요. 현재는 우리나라 최대 화물차주 온라인 커뮤니티와 협업해서 온라인 중심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화물차 주차장과 노는 땅을 접목한 아이디어로 많은 이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우선 화물차주들은 건당 20만원의 과태료의 압박으로부터 해방됩니다. 주차공간 물색 시간도 아낄 수 있어요. 화물차주의 근로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죠. 애물단지였던 밤샘 불법주차를 예방해준다며 지자체에서도 반기는 분위기입니다. 인근 주민들 역시 안전한 도로환경을 누릴 수 있고요. 토지주들은 노는 땅을 활용해 수익을 거둘 수 있습니다. 방치된 토지가 관리되니 토지 가치가 상승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창업 초반의 냉대가 무색하게, 자기 땅을 활용해달라는 문의가 먼저 들어오고 있어요. 트럭헬퍼가 잘 된다고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어요. 견제 받을 이유가 없어서 빠르게 성장한 것 같습니다.”
◇설립 2년 만에 흑자 전환, 오프라인 비즈니스의 힘
11월 말 기준으로 32곳의 화물차 주차장을 운영 중이다. 약 400대의 트럭과 버스가 쉼터를 찾았다. 최근 6개월 간의 이탈률이 3%에 불과할 정도로 이용자의 만족도와 충성도가 높다. 재무적으로도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다. 지난 8월, 법인 설립 2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뾰족한 사회 문제를 겨냥한 덕에 큰 주목을 받았다. 상반기에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으로부터 ‘우수 창업인 표창’을 받았다. 지난 10월에는 기아 스타트업 챌린지에서 대상을, 11월에는 국내 스타트업들의 등용문이자 꿈의 무대인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의 데모데이에서 성장트랙 부문 대상을 받았다.
내년까지 60곳, 후년까지는 100곳의 화물차 주차장을 확보하는 게 목표다. 관건은 토지 확보다. “국토부 스마트시티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심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개발제한구역이나 전, 답, 임야를 활용해 실증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주차장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겁니다. 추후 화물차 주차장을 상용차를 위한 거점지로 활용할 구상입니다. 주차장에서 출장 세차, 정비, 타이어 교체까지 할 수 있도록 다른 기업들과 협업하고 있어요. 적게는 10대, 많게는 50대의 상용차를 한데 모았으니 기업 입장에서 출장 서비스를 제공할 만한 환경을 구축했다고 봅니다. 봅니다. 저희 회사의 핵심은 현장에 있어요. 오프라인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이 빅모빌리티만의 특장점이죠.”
창업 후 평생 들을 감사 인사를 다 들은 것 같다. “화물차주의 가족으로부터 종종 소소한 선물이나 편지를 받곤 합니다. 20년 넘게 불안 속에서 잠을 청했던 아빠가 발 뻗고 주무실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맙다는 자녀분의 편지가 기억에 남아요. 트럭헬퍼 덕분에 마음 하게 퇴근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는 부부도 있었어요. 살면서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일이 없었는데, 이 일을 시작하고 매일같이 듣고 있습니다. 화물자주 분들은 본업에 집중하세요. 화물차주들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도록 하는데 일조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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