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 생검 플랫폼 개발 스타트업 엘엠엔틱바이오텍 류동환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암’은 수십 년째 한국인의 사망 원인 1위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 국가암등록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 수명인 83.6세까지 살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8.1%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수록 암과의 전쟁터에 내몰리는 셈이다.
암 치료는 장기전이다. 재발·전이가 잦기 때문이다. 암 사망자의 대부분이 ‘전이’로 고통받다 세상을 떠난다. 엘엠엔틱바이오텍 류동환 대표(23)가 ‘암세포’에 주목한 이유다. 단일 세포를 콕 집어내고 원하는 대로 제어하는 기술을 활용해 암을 정복하겠다고 나섰다. 류 대표를 만나 암 정복기의 첫 장을 들었다.
◇스승의 마음을 얻는 법
타고나길 관계 지향적인 성향이었다. “누군가 꿈을 물으면 ‘직업’보다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100% 신뢰할 수 있는 동료와 함께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 창업이라고 생각했어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 성인이 되자마자 실천에 옮겼죠.”
2020년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 입학했다. 그 해 10월 고교 동창, 대학 동기와 함께 창업팀을 만들었다. “온라인, 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자료를 조사하며 사업 아이템을 찾아다녔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하죠. 학교 안에 훌륭한 교수님과 연구원들이 모여 있고, 그분들이 이미 검증했지만 상용화하지 못한 기술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학내에서 창업 아이템을 찾기로 했어요.”
자금부터 확보했다. ‘실험실 특화형 창업선도대학 사업’이라는 국가 과제를 수주했다. 학교에 있는 기술로 창업할 수 있도록 지원금을 주는 사업이었다. “이 과제를 핑계로 화학물리학과 김철기 교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간 발표하신 논문을 바탕으로 구상한 사업화 전략을 설명했죠. 감사하게도 교수님은 그런 저희를 기특하게 봐주셨어요. 그 자리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김 교수는 자성학의 세계적 권위자로 2020년 아시아자성연합회(AUMS)가 주관하는 AUMS상을 받은 바 있다. “주 연구 분야는 나노 자성과 바이오 의료를 융합한 ‘나노 바이오 메디컬 마그네틱스(Nano-Bio Medical-Magnetics)’입니다. 암과 혈관 질병의 특이적인 세포 포집, 고분해능 자기센서 분야에서 선도 연구를 수행하고 계시죠. 저희는 자성을 띠는 미세한 조각을 이용해 단일 세포를 원하는 대로 떼어내고 이동시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세포를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을 상용화하기로 했습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2022년 1월 본격적인 사업화 과정에 돌입했다. ‘원소(element)’의 영어 발음에서 착안해 ‘엘엠엔틱바이오텍’을 설립했다. “최대한 빨리 상용화할 수 있으면서도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분야가 ‘암’이라고 봤습니다. 암 환자의 혈액에는 종양 세포가 떠다녀요. 그 세포가 다른 장기에 붙어 전이되는데요. 이런 과정을 더디게 하려면 종양 세포를 면밀히 분석해야 합니다. 어떤 항암제나 치료법이 효과적인지 알기 위해서죠.”
‘혈액 속 순환종양세포(CTC)로 암을 진단하는 서비스’로 사업 방향을 구체화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진단’은 치료법을 정하기 위한 ‘동반 진단’이나 치료 후 예후를 확인하고 완치 환자의 재발을 감시하는 ‘추적·감시 진단’을 말한다. “과거엔 항암 치료를 하면 탈모, 혈구 감소증 같은 후유증을 유발했는데요. 표적항암제가 나오면서 그런 부작용이 크게 줄었습니다. 특정 유전자의 세포 전달 경로를 차단하는 방식이죠. 동반 진단은 표적이 될 암세포와 그에 대응하는 항암제를 찾기 위한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단순화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상했어요.”
김 교수의 기술을 활용해 혈액 속 종양 세포를 추출하기로 했다. “10㎖의 피에 적혈구 10억개, 백혈구 100만개가 있다면 종양 세포는 1개뿐입니다. ‘나노 바이오 메디컬 마그네틱스’ 기술을 이용하면 그 1개를 분리해 내는 일이 어렵지 않아요. 특정 패턴을 새긴 칩 위에 혈액을 흘린 다음, 자기장과 힘의 차이를 이용해 세포를 움직이는 원리입니다. 칩은 일종의 반도체 회로와 같은 역할을 하죠.”
기존 세포 분리 기술과 비교할 때 순도·수율 측면에서 효율적이다. “순도가 높다는 건 불순물이 덜 섞인다는 뜻이에요. 원하는 세포를 빠짐없이 뽑아냈을 때 수율이 높다고 하죠. 기존엔 거름망처럼 입자 크기에 따라 걸러내거나, 밀도에 따라 뜨거나 가라앉는 원리를 이용하는 등의 방식을 사용했는데요. 자기장으로 세포를 정밀하게 제어하면 순도와 수율을 90%까지 높일 수 있습니다.”
2023년 8월 서울바이오허브에 입주하며 탄력을 받았다. 서울바이오허브는 서울시가 조성하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고려대가 운영하는 바이오·의료 창업 혁신 플랫폼이다. “창업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정보에 취약한데요. 서울바이오허브를 통해 투자 유치나 의료기기 인허가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작년 하반기엔 ‘서울-바젤 액셀러레이션 프로그램’으로 2주간 스위스에 다녀왔어요. 이 프로그램에서 현지 파트너사를 만나 함께 연구 과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암을 완전히 굴복시키는 날까지
엘엠엔틱바이오텍은 김 교수의 연구를 상용화할 수 있는 디바이스로 만들었다. 내년 상반기 시제품을 완성할 계획이다. 새로운 치료 전략을 연구하고 싶어 하는 임상의나 연구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미 구매의향서를 10건 이상 확보했다. “2025년부터 의정부성모병원과 실증 연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실제 혈액 속 종양 세포 분리가 잘 되는지 확인하는 연구예요.”
불가능할 것만 같던 암을 정복할 날을 꿈꾼다. “암 환자들부터 의료진, 제약회사까지 모두가 암과 대항해 열심히 싸우고 있죠. 엘엠엔틱바이오텍의 기술은 그 전장의 기틀을 닦는 역할을 하리라 믿어요. 가령 혈액 속 종양 세포의 양에 따라서 예후를 달리 진단할 수 있습니다. 미래엔 암 전이의 원리나 원인에 대해 더 정밀한 분석이 가능할 수도 있죠. 원인을 알고 나면 전이를 완전히 차단하는 방법까지 연구가 이어질 겁니다. 아직 먼 얘기 같겠지만 그리 머지않은 미래일지도 몰라요. 그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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