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 농·축·수산물 유통사 엠디 손동은 대표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본보기가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손이 가네, 손이 가!” 글자만 봐도 멜로디가 들리는 듯한 이 말은 한 과자 광고에 쓰인 문구다. 자꾸만 손이 갈 만큼 맛있다는 뜻이다.
국내산 농·축·수산물 유통사 ‘엠디’를 운영하는 손동은 대표(40)도 이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비슷한 뜻으로 브랜드명을 지었다. 주력 제품인 한우를 중심으로 한 브랜드 ‘손가네 한우’다. 손 대표를 만나 바쁜 소비자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발로 뛰는 이야기를 들었다.
◇충남 홍성에서 키운 투뿔한우
손가네한우는 엠디의 한우 브랜드다.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키운 1++등급 한우만 취급한다. 한우 부위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부위인 등심, 적당한 두께와 부드러운 맛으로 아이와 함께 먹기 좋은 안심, 고소한 풍미로 소고기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채끝살 등의 부위로 모둠 세트를 구성했다.
식품안전관리인증인 해썹(HACCP) 인증 시설에서 위생적으로 소고기를 생산한다. 이 외에도 소고기 이력제로 상품을 관리하고 있다. 소의 출생부터 도축·포장·판매까지 관리하기 때문에 위생·안전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다.
◇평생직장과 이별하고 찾은 꿈
혜천대학교(현 대전과학기술대학교) 신발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대전 은행동 지하상가에 있는 신발 가게에서 일했다. “친구들이랑 약속을 잡거나 쇼핑을 할 땐 늘 은행동에서 만났어요. 남녀노소가 모두 모이는 곳이었죠. 학생, 아주머니 등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에게 저마다 어울리는 신발을 권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한 달에 이틀 쉬며 월급으로 70만원을 받았습니다.”
2009년 SKT 자회사인 PS마케팅에서 첫 직장생활을 경험했다. “지금은 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으로 사라졌지만 당시엔 통신사에서 나오는 지원금이 매일 달라졌어요. 휴대폰 판매점에 영업을 다니면서 번호 이동 고객을 유치하려 애썼죠. 계약직으로 입사해 2년 만에 시험을 보고 정규직으로 전환됐습니다.”
두 번째 직장은 생수 회사였다. 어느덧 고민이 들었다. “10년간 근무하면서 차장까지 승진했어요. 마음속은 늘 갈팡질팡했습니다. 평생직장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내심 내 꿈을 향해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어요. 사실 오래전부터 개인 사업을 하고 싶은 꿈을 품었지만 결혼하고 아이까지 생기니 두려움이 앞서더군요. 더 늦기 전에 도전해 보자며 2023년 여름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초기 자본금은 약 7000만원. 유통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신발 같은 공산품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갔지만 대형 플랫폼에 비해 경쟁력이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 뉴스에서 먹거리 관련 기사를 접했습니다. ‘중국산 섞어팔기’가 문제였죠. 누구나 믿고 먹을 수 있는 국내산농·축·수산물을 취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소비자의 재구매율이 높을 것이란 기대도 있었죠.”
◇손가네한우 브랜드 개발 노트
그해 가을 국내산 농축수산물 유통사 ‘엠디(MD)’를 설립했다. 상품기획자(MD·Merchandiser)에서 따온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매일 밥상을 차리는 모든 소비자를 위한 MD가 되겠다는 각오를 담았다. 첫 제품으로 ‘한우’를 택했다. 각종 온라인몰에서 판매하는 한우의 부위·가격·포장 등을 조사했다. 상세페이지를 비교하며 구매하고 싶은 순위를 매겨보기도 했다.
1. 나를 믿을 수 없다면 전문가를 믿어라
인근 지역에서 한우로 가장 유명한 지역으로 찾아갔다. 충남 홍성군이었다. 홍성의 옛 지명은 우견현(牛見縣), 목우현(目牛縣)이기도 하다. “글, 영상 자료를 찾아보며 소고기는 도축 후 7일 이상의 숙성이 필요하다거나 정형사의 기술이 고기 맛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홍성군의 소고기 가공장을 방문해 현장에서 어떻게 고기를 관리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죠.”
한우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인정했다. “일반인이 고기의 품질을 한눈에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죠. 소비자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축산물품질평가원 소속의 축산물품질평가사가 한우의 등급을 직접 판정합니다. 근내지방도·지방색·성숙도 등에 따라 1++, 1+, 1, 2, 3의 5개 등급으로 나누죠. 이른바 투뿔등급인 1++급은 7, 8, 9급으로 한 번 더 구분합니다. 가장 높은 등급은 투뿔 9등급이죠. 가공장과 협의 끝에 투뿔한우 중에서도 8~9등급 위주로 납품받기로 계약했습니다.”
2. 계절이 주는 힌트를 따라 상품 준비
첫 제품인 투뿔한우를 내세우며 ‘손가네한우’라는 브랜드명을 지었다. 그렇다고 한우만 취급할 순 없었다. “계절에 따라 제품군을 하나씩 늘려나갔습니다. 가령 여름엔 복숭아나 옥수수, 가을은 사과나 절임배추를 많이들 찾죠. 사람들이 바로 사 먹을 수 있으려면 최소 2달 전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현장감 가득 담은 사진으로 상세페이지를 구성하고, 필요에 따라 예약 판매하기도 했어요.”
올여름 입점한 옥수수가 대표적이다. “옥수수는 상시 따는 작물이 아닙니다. 수확 기간은 길어야 일주일이죠. 여름이 오기 한 달 전 판매창을 열고 예약을 받았어요. 미리 안내한 배송 일정에 맞춰 주문 순서대로 출고했습니다. 출고와 판매는 한 달도 안 걸렸어요. 옥수수 판매가 끝나고 바로 한우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명절을 앞두고 어떤 부위를 어떻게 구성할지, 포장은 작년과 어떻게 다르게 할지 등을 정하고 상세페이지를 재구성했죠. 이렇게 계절의 흐름에 맞춰 일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3. 입점하기 전 생산지 확인은 필수
농·축·수산물은 공산품처럼 정형화된 제품이 아니다. 정해진 공장이 있는 것도, 유명한 브랜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전국 각지에 있는 밭이 모두 납품처 후보예요. 입점하고 싶은 농산물이 있으면 그 농산물을 특산물로 내세우는 지역을 찾아가 각 농가의 문을 두드립니다. 논산의 표고버섯, 목포산 참조기, 진도산 전복을 모두 그렇게 찾아 입점할 수 있었어요.”
농부를 만나 온라인 판매를 제안하면 열에 아홉은 손사래를 친다. “매일 들어오는 주문에 따라 제품을 포장하고 택배로 보내는 일을 버거워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인건비가 더 든다며 단가를 확 올려버리기도 하죠. 완곡한 거절의 뜻이라 생각하고 돌아설 수밖에요. 입점 최종 관문은 배송 과정 확인입니다. 소비자가 됐다는 생각으로 주문해서 배송을 받은 다음 상온에 하루 정도를 놔둬요. 하루 지난 상태를 관찰하고 맛을 본 다음 ‘괜찮다’ 싶은 제품은 최종 입점하는 방식이죠. 그렇게 들어온 제품이 총 10여 개 정도 됩니다.”
4. 식품이라면 ‘당일 수확 당일 발송’은 당연
농가와 소비자 사이의 연결 고리 역할 톡톡히 한다. “산지에서 직접 소비자에게 발송하기 때문에 중간 유통 과정이 줄고 소비자 가격도 더 낮아집니다. 가령 정육점에서 투뿔 한우 400g을 살 때 7만원의 값을 치러야 한다면, 손가네한우에서는 5만원에 구매할 수 있어요. 농가에는 새로운 판로를 열어주고 소비자에겐 합리적인 가격에 신선한 농·축·수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준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당일 수확 당일 발송을 원칙으로 한다. 그럼에도 품질에 불만을 표하는 고객이 있게 마련이다. “배송 서비스에 대한 컴플레인이 가장 힘들어요. 식품 특성상 100% 환불이나 교환밖에는 대응할 방법이 없습니다. 반품돼 돌아온 농산물을 직접 먹어보기도 하는데요. 외형이나 맛에 문제가 없는 경우엔 허무하기도 하죠. 반품에 들어가는 비용은 오롯이 제가 감당해야 하니까요.”
◇재구매율에서 발견한 희망
2023년 약 4개월간 운영해 벌어들인 매출은 4000만원 남짓이다. 2024년 예상 매출액은 5억원이다. “비용을 제했을 때 제 월급이라도 가져가려면 연 매출 10억원은 넘어야 합니다. 매출보다 의미 있는 숫자는 재구매율이에요. 손가네한우에서 구매한 소비자 10명 중 7~8명은 재구매하고 있습니다. 첫 구매가 만족스러웠다는 뜻이라 생각하니, 더 열심히 하고 싶은 의욕이 샘솟아요.”
야근은 없다. 대신 매일 아침 4시에 눈을 뜬다. “농·축·수산물은 주로 새벽에 경매가 열리고, 배송 관리도 그때부터 시작해야 해요. 휴대전화를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하기 바쁘죠. 대신 야근은 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더이상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뒤로 미루고 싶지 않아서요. 우리 아들, 딸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국산 농·축·수산물이 앞으로 더 활발하게 생산되고 또 소비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영지 에디터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만까지 잡는 꿈의 골다공증 치료제, 성큼 다가선 경희대 한의대 교수 (5) | 2024.12.06 |
---|---|
도로 곳곳 불법으로 세워진 화물차, 드디어 전용 주차 서비스 나왔다 (6) | 2024.12.04 |
배추 한 포기 세상에 내놓기 위해 농부들은 이런 노력을 합니다 (1) | 2024.11.25 |
완판 또 완판, 탈모샴푸 만든 카이스트 교수 (6) | 2024.11.18 |
"돈이 듭니까. 힘이 듭니까. 이렇게 좋은 걸 왜 안하나요" (2) | 2024.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