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경제

퇴직하고 툭하면 화부터 냈던 60대 은퇴자의 반전

더 비비드 2024. 7. 18. 10:30
행복한 은퇴생활을 위한 자세

‘은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반백살이 넘어 은퇴가 코앞으로 다가오면, 막연한 불안과 이유 모를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꿈꾸고 기다리는 대상이 아니라, 두렵고 피하고 싶은 대상으로 여긴다는 사실은 데이터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플리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에 따르면, 50대 중산층이 생각하는 ‘은퇴 이미지’는 ‘재정 불안, 건강 쇠퇴, 외로움, 타인 의존, 지루, 하찮음’ 등과 같은 부정적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일본 노년행동과학회장을 지낸 노년학 전문가인 사토신이치 전 오사카대학교 대학원 노년행동학 교수는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인생 후반기에는 퇴직으로 인한 사회 단절과 경제 불안, 부모와 배우자 사망, 질병과 노화 등 부정적인 사건들이 많이 벌어진다”면서 “내게 어떤 일이 닥칠 것인지 미리 알아두고,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미리 생각해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년 퇴직, 궁핍한 가계, 노부모 수발, 부모 사망, 배우자 질병·죽음... 60대 이후 인생 후반기에는 이런 부정적인 생애 사건(life event)들이 연달아 발생합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누구나 언젠가 마주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하지만 아직 경험해 보지 않은 미지의 사건들이라서 사람들은 애써 외면합니다. 그런데 늙는다는 것이 ‘상실’만 존재하는 부정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채움’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돈보다 마음의 준비가 더 필요한 이유입니다.

/플리커

사토신이치 교수는 “퇴직 후엔 사회와의 관계가 크게 달라진다"며 "이 시기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노년 행복감이 크게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그는 "퇴직을 앞두고 ‘이제 내 인생은 9회말 2아웃’이라며 절망하던 선배가 있었는데, 정년퇴직 축하연에는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급여는 없지만 새로 생긴 모 연구센터에서 ‘특별초빙교수’란 직함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의욕이 충만해 있었다고 합니다. 잃어버릴 뻔했던 미래 비전이 생기면서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뀐 것입니다.

퇴직 이후 일에서는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야’란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돈으로 성과를 추구하기 보다는 시간을 즐기는 것을 우선해야 합니다. ‘돈은 못 벌어도 꼭 해보고 싶다’거나 ‘돈을 들여서라도 해보고 싶다’고 느끼는 일이야말로 퇴직 이후 내가 꿈꿀 수 있는 진정한 미래 비전입니다. ‘대기업 부장 출신인데... 은행 지점장이었는데...’ 이렇게 퇴직 후에도 본인 체면만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는 일자리에서 대접 받길 원한다면, 비참한 인생 말로만 기다리고 있을뿐입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라서 ‘사회에 받아 들여지고 싶다’는 근본적 욕구가 강합니다. 그런데 정년퇴직은 그야말로 사회적 정체성을 잃는 일입니다. 마치 자기 자신을 잃는 것과 같은 의미이므로, 일터를 떠나 관계가 단절되면 고독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회사원이라는 정체성에 집착하고 명함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없습니다. ‘나를 헌신짝처럼 버리다니...’ 하면서 회사를 원망하고 신세를 비관해봤자 소용없는 것이죠.

/플리커

일본에선 한때 화를 내거나 욕설을 퍼붓는 일명 ‘폭주노인’이 화제였습니다. 평소엔 온화한 사람이 갑자기 욱해서 화부터 낸다거나 학력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고령자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며 버럭 소리부터 지르는 식입니다.

사토신이치 교수는 "폭주노인이라는 사회 현상은 말 그대로 정년 퇴직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며 "‘ΟΟ회사의 부장’이라는 사회적 신분을 잃고 ‘그냥 사람’이 되어 버린 자신에 대한 분노를 엉뚱한 곳에 폭력이라는 형태로 표출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온화해지고 성숙해진다는 통념이 있지만 폭주노인은 전혀 다른 양상입니다. 퇴직 후 부하가 해주던 일을 스스로 하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쌓이고,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폭발한 것입니다.

회사 다닐 때의 ‘일하는 시간’은 답답하기도 하지만 기쁨과 보람,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이런 일상이 있어야 비일상도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퇴직 후에는 평일과 주말, 일하는 날과 쉬는 날 구별이 없어집니다. 평일 아침에도 휴대폰 알람은 울리지 않고, 나를 찾는 전화도 거의 걸려오지 않습니다. 현역 시절 일할 때처럼 충실한 일상을 보내기가 어려워집니다.

/게티이미지

일본에서 ‘퇴직하면 무엇을 가장 하고 싶냐’는 질문을 하면 1위 대답은 늘 ‘여행’입니다. 사토신이치 교수는 "제약회사 임원이던 한 지인은 회사 다닐 땐 바빠서 못 가지만 퇴직하면 한 달에 한 번씩 꼭 호화로운 여행을 떠나자고 아내와 약속했다"며 "그런데 실제로 하니 처음 한두 번은 무척 즐거웠지만 반년도 지나지 않아 시큰둥해지고 질려버렸다고 한다"고 전했습니다.

여행은 일상 생활권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그는 이렇다 할 ‘일상’이 없는 퇴직자였기에 여행에서 큰 의미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매일 한가롭다며 괴로워했던 그 지인은 제약회사와 관련된 병원을 소개받아 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어느새 본업인 양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활력을 되찾았고 부부 여행도 다시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토신이치 교수는 "회사원 시절에 주말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신문을 읽으면 재미있다"며 "바쁜 일상이 있는 와중에 경험하는 비일상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갈 곳이 없어 의무적으로 도서관에 가야 한다면, 그리고 그게 일상이라면 과연 즐거울 수 있겠을까요?

일상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미래 비전을 가져다 줄 알찬 일상이어야 합니다. 가령 도서관을 다니는 것이 일상이라면 본인 스스로 관심 있는 주제를 찾고 ‘블로그에 공유하기, 유튜브로 알리기, 지역 대회에 참가하기’ 등 구체적인 세부 목표를 세우고 실천해나가면 좋을 것입니다.

/이경은 객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