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꺼리는 건설사들
건설사들이 주택사업 수주를 기피하면서 재건축 조합들이 시공사 선정에 애를 먹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원자재 값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와 미분양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최근 재건축 시장 동향을 알아봤다.
◇과천주공 10단지 단독 입찰 가능성
DL이앤씨는 최근 과천주공10단지 재건축 조합에 사업 참여가 어렵다는 내용의 공지문을 보냈다. DL이앤씨는 “최근 건설경기 및 수주환경 등 외부 환경에 여러 변화가 있었고 수주 방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며 “긴 내부 논의를 거쳐 부득이하게 사업 참여가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DL이앤씨가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은 공사비 때문이다. DLC 관계자는 “지난해 시공사를 선정한 주변 단지의 공사비 수준과 최근 시장환경을 고려했을 때, 조합이 만족할 만한 수준의 공사비를 우리가 제안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과천주공10단지는 1984년 6월 준공한 632가구 규모 단지다. 과천 일대 마지막 재건축 사업장이면서, 용적률이 86%로 낮다. 현재 용적률이 낮을수록 추가로 많은 집을 지을 수 있어 수익률이 올라간다. 건설사들의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최종적으로 삼성물산과 DL이앤씨의 경쟁 구도로 예상됐다. 하지만 DL이앤씨가 빠지면서 삼성물산 단독 입찰 가능성이 높아졌다.
◇강북은 관심조차 안 보여
이뿐 아니다. 서초구 방배신동아도 당초 포스코이앤씨와 현대건설의 대결이 예상됐지만, 현대건설이 막판에 입찰을 포기하면서 포스코이앤씨의 수의계약으로 진행됐다. 양천구 신정4구역도 시공사 선정 입찰에 두 번 연속 대우건설만 참여해 수의계약으로 진행됐다. 현행법상 두 번 연속 경쟁 입찰이 성립되지 않으면 수의계약을 허용하고 있다.
강북에선 시공사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아 조합이 자발적으로 공사비를 올리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중구 신당9구역 재개발 조합은 2차 입찰공고에서 공사비를 3.3㎡당 840만원으로 1차 입찰(743만원)보다 100만원가량 올렸고, 광진구 중곡아파트도 1차 입찰에서 650만원이던 공사비를 2차 입찰에서 800만원으로 올렸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의 도시정비사업(재건축·재개발) 신규 수주액은 4조5242억원으로, 전년 동기(6조7786억원)보다 33.3% 줄었다.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롯데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등 4곳은 올해1분기 정비사업 수주를 단 한 건도 하지 않았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수주를 할수록 손해인 데다, 조합과 공사비 갈등이 불가피해 일단 올해는 정비사업 수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작년과 상반된 분위기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형 건설사들은 재건축·재개발 수주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대형 건설사 10곳 중 6곳은 창사 이래 재건축·재개발 수주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과열 경쟁이 빚어지면서 작년 10월 서울 용산구 ‘한남2구역’ 재개발 수주전에선 대우건설과 롯데건설 사이 경찰 고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다 작년 하반기부터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 우려가 커진 데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건설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공사비가 폭등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금리로 인한 금융 비용까지 감안하면 아파트 건설에 따른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게 됐다.
건설사들의 주택 부문 원가율(매출액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년만 해도 80%대 초반이었지만, 최근엔 90%를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어도 남는 게 별로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공사비는 앞으로 더 오를 수 있다. 사업성을 장담하기 계속 어려운 것이다. 오는 7월부터 서울에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는 시점이 ‘사업시행인가’에서 ‘조합설립인가’로 앞당겨져 100곳 넘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장들이 일제히 시공사 선정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미리 힘 뺄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도 있다. 여기에 대형 건설사들은 충분한 자체 일감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주요 건설사들 대부분 4년치 이상 일감을 확보해둔 상태여서 무리한 경쟁은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순우 객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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