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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2억 매출에서 백수 전락, 아버지 벌꿀통에서 찾은 기회

2대째 꿀농사 잇는 '이희철 진꿀'

오픈마켓 전성시대입니다.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누구나 창업할 수 있고, 직장 다니면서 투잡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오픈마켓 셀러를 꿈꾸는데요. 하지만 막상 실행하려면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성공한 오픈마켓 셀러들을 만나 노하우를 들어 보는 ‘나도 될 수 있다, 성공 셀러’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아이고, 내 새끼들 다 죽네!”

벌이 꿀에 빠져 익사하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뜰채를 가져다 댄다. 땅끝 마을 해남에서 45년째 양봉업을 해온 이희철 대표(70)는 꿀을 채취할 때마다 벌 구출 작전을 벌인다. 꿀 채취를 위해 훈연기를 피웠지만 도망가지 않고 그대로 있던 벌들이다. 꿀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벌을 건져 숲에 옮겨 놓으면 절반 정도는 빠져나와 다시금 날갯짓한다.

채취한 꿀에서 부산물을 걸러내고 있다. /이창석 부대표 제공

그의 아들 이창석 부대표(41)는 벌에 쏘일까 무서워했던 평범한 소년이었다. 어릴 때는 벌 몇 마리에도 마음을 쏟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도와 벌통에 밥을 주면서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나가서 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지금은 그 역시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다. 도소매로만 판매하던 꿀에 ‘이희철진꿀’이란 이름을 달아 온라인으로 판매하면서부터, 꿀에 누구부터 큰 애정이 생겼다. 한 포씩 뜯어 먹을 수 있는 스틱 형태의 소포장 방식을 도입해 2022년 추석을 앞두고 하루 매출을 600만원까지 올렸다. 벌 떼가 날아다니며 내는 ‘우우웅’ 하는 소리가 ASMR처럼 느껴진다는 이창석 부대표를 만나 벌을 향한 내리사랑을 품게 된 사연을 들었다.

◇꿀벌 여행 전국 일주

(왼쪽부터) 이창석 부대표의 어머니와 아버지, 1980년대 신문 광고를 내고 꿀을 판매했을 때 지면 모습. /이창석 부대표 제공

50여 년 전 갓 군에서 제대한 아버지 이희철 대표는 동네 어르신의 권유로 양봉을 배웠다. 6년이 지나 1978년 15~20군의 벌통으로 자신만의 농장을 차렸다. 벌통 1군에 평균 2~4만 마리의 벌이 산다.

벌통이 늘면서 일손이 부족질 때는 어린 아들의 고사리손까지 빌려 확장했다. 이창석 부대표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아카시아꽃이 주로 5월에 피는데요. 꽃 개화 시기에 맞춰 트럭에 벌통을 싣고 아버지를 따라 전국 일주를 했어요. 인천 강화도, 경기 동두천, 경북 울진·경주, 충북 제천을 돌고 마지막으로 전남 지역을 돌아 영암으로 돌아왔죠.”

전남 해남·영암·장흥 등 세 곳에서 벌통 800~1000군을 관리하고 있다. /이창석 부대표 제공

겨울에도 꿀벌 공동 육아는 이어졌다. “벌이 꽃에 다녀올 때마다 다리에 화분(꽃가루) 알갱이를 묻히고 와요. 벌통 입구에 화분 채취 키트를 설치해두면 벌이 벌통에 들어가면서 화분 알갱이를 떨어뜨립니다. 이 화분을 모아뒀다가 화분떡을 만들어 새끼를 치는 벌의 먹이로 줬죠. 단순하지만 같은 일을 1000번 한다고 생각하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이희철 대표와 이창석 부대표는 현재 전남 해남·영암·장흥 등 세 곳에서 벌통 800~1000군을 관리하고 있다.

이창석 부대표는 1999년 조선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 그의 진로는 ‘꿀’도 ‘법’도 아니었다. “대학 졸업하기 전에 외국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호주에서 3~4년간 유학 생활을 했어요. 유학을 하면서 안타까운 사연을 많이 접했습니다. 당시 유학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유학원이 많이 생겨났는데요. 그만큼 사기 사건도 잦았습니다. 호주 유학 경험을 살려 유학 절차를 돕는 유학원을 차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카시아꽃 개화 시기에 맞춰 트럭에 벌통을 싣고 전국일주를 한다. /이창석 부대표 제공

사업은 탄탄대로였다. 2008년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는 ‘화상 영어’를 병행하며 버텼고 한국장학재단 파란 사다리(국내 대학 저소득층 해외 연수 프로그램), 대학생 단기 해외연수 지원 프로그램 B2B(기업 간 거래) 등 사업으로 사세를 키워나갔다. “2016년부터는 해외에서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학생들도 유치했습니다. 연 매출 12~13억원을 기록했죠.”

2020년 1월 우리나라에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호주 시드니에서 거래처와 미팅을 마치고 한국으로 들어갈 비행기를 알아보던 중이었어요. 중국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예약해뒀었는데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인천 직항으로 비행편을 급히 바꿨죠. 그게 사태의 시작점인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결국 그해에 유학사업을 완전히 접었습니다. 예약금 명목으로 미리 지급했던 학생들의 숙소비용 등을 모조리 날렸습니다.”

◇3000만원에 걸었던 기대

3000만원을 들여 큰맘먹고 구입한 스틱 포장 기계. /이창석 부대표 제공

10억원대 매출을 내던 사장님이 하루아침에 백수가 됐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아버지의 말씀이 귀에 꽂혔다. “아버지께서 ‘누구네 집 딸래미는 온라인으로 꿀을 판다더라’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당장 일이 끊긴 마당에 부모님 일이라도 제대로 도와드려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수십 년간 팔아온 꿀이지만 이대로 온라인 마켓에 입점할 순 없었다. “투박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꿀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아요. 포장 방법을 고민하던 중 아내가 홍삼 스틱을 내밀더군요. 1회분을 스틱 형태로 한 포씩 포장하면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겠다 싶었죠.”

꿀 종류에 따라 최상품인 아카시아꿀부터 야생화꿀·피나무꿀·때죽나무꿀,밤꿀 등 종류를 나눴다. /이희철진꿀

3000만원을 들여 스틱 포장을 위한 장비를 마련했다. “첨엔 외주 업체 포장을 알아봤어요. 그런데 아무리 청결한 곳이라 해도 땅콩·복숭아·메밀 등 알레르기 유발 제품과 같은 제조시설에서 생산할 수밖에 없는 구조더군요. 게다가 어렵게 딴 귀하 꿀을 남에게 맡기는 게 꺼림칙했습니다. 초기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부모님을 설득해 농장에 포장 설비를 직접 설치했습니다.”

명절 선물을 염두에 두고 패키지를 꾸렸다. 꿀 종류에 따라 최상품인 아카시아꿀부터 야생화꿀·피나무꿀·때죽나무꿀·밤꿀 등 종류를 나눴다. 2020년 9월 추석을 앞두고 쿠팡 마켓플레이스에 입점했다. 입점 직후 하루 매출 200만원을 기록했고 명절 택배 마감일엔 600만원을 달성했다.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을 처음 경험해봤어요. 꿀은 최적의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해 채취 직후 드럼통에 밀봉해두는데요. 적어도 명절 2개월 전에는 드럼통을 개봉하고 포장 작업을 시작해야 합니다. 미리 포장해 둔 꿀이 다 떨어지고 주문을 더 이상 받지 못하는 경험까지 했습니다.”

◇온라인에서 소비자를 만날 준비

작업자들이 꿀을 따는 모습. 면포를 쓰고 있어 벌에 쏘일 위험이 적다. /이창석 부대표 제공

지금은 2023년 설날 준비에 한창이다. “명절을 6번 지나왔습니다. 그간 판매량 통계를 보니 명절마다 1억원 이상의 매출을 냈더군요. 이번엔 1억2000만원 정도로 예상해서 드럼통 13~14통을 이미 개봉해뒀습니다. 부산물을 걸러 스틱 포장지에 담아 선물 세트로 차곡차곡 쌓아두는 중입니다.”

명절 대목마다 쿠팡의 ‘기획전’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 “신학기·크리스마스·설날·추석 등 굵직굵직한 시즌마다 쿠팡 마켓플레이스에서 기획전이 열리는데요. 여기에 참여하면 해당 시즌에 열린 특집 기획전 카테고리에 상품을 노출할 수 있습니다. 별도 광고비를 지출하지 않아도 소비자를 쉽게 만날 수 있죠.”

온라인 시장에 처음 뛰어드는 판매자에게 쿠팡 등 오픈마켓 입점을 꼭 권한다. “가장 큰 장점은 공평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쿠팡은 신생 업체도 노출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른 곳도 상품을 등록해 봤지만 바로 상단에 노출되지 않았는데요. 쿠팡에서는 돈과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아도 판매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꿀벌이 살 수 없는 지구라면

이창석 부대표는 꿀벌을 마치 개·고양이같은 반려동물로 여기는 부모님의 마음이 이제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이창석 부대표 제공

쌀, 배추 같은 작물처럼 ‘꿀’에도 ‘농사’라는 표현을 쓴다. “자연이 주는 것이란 공통점이 있죠. 꿀 농사에도 풍년·흉년이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꿀은 자연이 주는 것이니 흉년이 들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하시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벌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꿀벌 실종 사건’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는데요. 실종 사건의 원인은 ‘사람’입니다. 노력이 필요합니다.”

꿀벌을 마치 개·고양이 같은 반려동물로 여기는 부모님의 마음이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농장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을 즐깁니다. 벌들이 ‘우우웅’ 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져요. 꿀벌을 괴롭히는 말벌이 나타나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잠자리채를 휘두릅니다. 꿀벌이 살아야 제가 사니까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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