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펜 서비스'에 열광하는 사람들.... '라이너' 개발사 아우름플래닛 우찬민 공동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불자들은 소원 성취를 위해 108배를 올린다. 3명의 한국 청년은 글로벌 진출이라는 목표를 위해 108개의 아이템을 가지고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월 최대 1000만명이 사용하는 정보 큐레이션 플랫폼 라이너(LINER)를 개발한 스타트업 아우름플래닛 이야기다.
픽사 창업자 에드윈 캣멀, 트위터 공동 창업자 비즈 스톤, 넷플릭스 부사장 같은 유명 글로벌 리더가 라이너의 구독자다. 한국 청년들은 어떻게 해외 유저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우찬민(32) 공동대표를 만나 글로벌 서비스 개발기를 들었다.
◇정보의 호수 속에서 맑은 샘물만 떠다 줄게요
라이너는 모바일 앱과 웹 브라우저 확장 프로그램이다. 서비스는 크게 세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는 일종의 형광펜 기능인 ‘하이라이트’다. 웹페이지나 PDF 파일 등에서 접한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을 하이라이트로 수집하고, 수집한 정보들을 한 데 모아서 볼 수 있다.
두번째는 검색 보조기능이다. 검색 엔진에서 특정 검색어를 입력하면 이용자의 하이라이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차례 거른 정보를 표시해준다. 유저가 관심 가질 만한 정보를 먼저 추천해주도 한다. 세번째는 커뮤니티다. 유저끼리 빠르게 하이라이트를 공유할 수 있다. 존경하거나 관심 가는 인물의 계정에 가서 그들의 하이라이트도 엿볼 수 있다.
영어,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4개 국어로 서비스 중이다. 이용자의 90% 이상이 해외 유저고, 그 중 50% 이상이 미국인이다. 긴 호흡의 텍스트를 즐겨 읽는 이들이 주요 타깃이라 대학원생이나 연구자는 물론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 직종 종사자들이 즐겨 찾는다.
◇해외 진출, 번역이 능사는 아니었다
도전과 모험 가득한 RPG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연세대 진학 후 사업가를 꿈꿨다. “언젠가 나만의 사업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어요. 전역 후 복학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중 선배의 권유로 연세대, 고려대 연합 창업 학회에 가입했습니다. 같은 조원 중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있었어요. 바로 김진우 공동대표였습니다. 김 대표와 함께 여러 공모전에 참여했어요. 상금을 탄 적도 있었죠. 그렇게 합을 맞춰 나갔습니다.”
2012년 아우름플래닛을 설립하고 첫 사업에 도전했다. “첫 아이템은 미술 작가들을 위한 플랫폼이었습니다. 싸이월드의 미술작가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작가들이 자력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꽤 잘됐어요. 오프라인 전시회도 진행했고 굿즈를 팔아 수익화까지 했죠.”
아시아 100대 벤처 기업으로 선정됐다. 상을 받기 위해 떠난 이국 땅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발견했다. “홍콩에서 각 국가의 벤처 기업을 만났는데요. 이들의 매출액과 서비스 규모에 놀랐습니다. 저희가 익숙했던 숫자에 0이 한 두개 더 붙더라고요. 유저 100만명도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몇 천만 단위의 유저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큰 충격이었죠. 글로벌 시장으로 무대를 넓히기로 했어요.”
로컬라이제이션(현지화)를 시도했다. 기존 서비스의 영어 버전을 출시했다. “동시 접속자수를 확인했는데 1명 혹은 2명에 불과하더군요. 서비스 언어를 한국어에서 영어로 번역하는 게 끝이 아니었어요. ‘글로벌 진출을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를 두고 팀원들과 고민에 빠졌어요. 삽부터 떠보는 접근이 필요했어요. 하던 서비스를 접고, 저희가 잘하는 IT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에서 재도전 하기로 했습니다.”
◇실리콘밸리로 떠난 세 청년이 바지 주머니에서 발견한 것
2015년 초, 그동안 번 4200만원을 들고 창업 멤버 3명이서 실리콘밸리로 떠났다.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구하고, 이케아 가구로 사무실을 꾸몄다. 108개의 아이디어를 8개로 줄인 후, 일주일에 하나씩 개발해 보기로 했다. 그중 가장 시장 반응이 좋은 것을 택하기로 했다. 라이너는 그 중 세번째였다.
라이너 아이디어는 김진우 공동대표의 바지 주머니에서 출발했다. “김 대표는 항상 읽을거리를 찾는 활자 중독이에요. 청바지에 형광펜을 꽂고 다니며 읽은 내용에 밑줄 긋는 게 습관이죠. 인터넷에는 형광펜 역할을 하는 툴이 없어서 아쉬웠대요. 직접 만들고 싶었지만 사소한 문제인 것 같아 사업화에 의문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소한 불편함에 보편적인 문제의식을 접목하니 큰 아이디어가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검색 엔진이 불편하게 느껴졌어요. 예컨대, ‘머신러닝’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20억개의 정보가 쏟아집니다. 일일이 찾아보기엔 방대한 양이죠. 고심해서 고른 웹페이지에서 내가 찾는 정보가 없을 확률도 높습니다. 만약 평소 중요하다 생각하는 정보를 ‘온라인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팅하고, 정보를 한데 모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쌓은 이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검색 엔진에서 필요한 정보만 보여준다면? 초개인화 정보 큐레이션 플랫폼 아이디어는 그렇게 탄생했어요.”
◇글로벌 진출의 키, 습관을 관찰하라
중요한 대목을 기록할 ‘인터넷 형광펜’부터 만들기로 했다. 일주일 만에 브라우저 앱을 개발한 후 시장 반응을 살폈다. “하이라이트 기능과 하이라이트 한 부분을 한데 모아주는 기능만 갖춘 단순한 형태였어요. 첨엔 큰 기대 하지 않았는데 출시하자마자 하루 만에 400건이 다운로드 됐어요. 가능성을 발견했죠.”
글로벌 진출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초기부터 해외 이용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구글, 애플의 개발자들이 모여 있는 실리콘밸리 스타벅스 같은 장소에 가서 불특정 다수에게 저희 서비스를 보여주고 사용을 권했습니다. IT 분야 종사자들이라 그런지 아주 상세하게 살펴보고 후기를 알려주더군요.”
언어 못지않게 중요한 건 해외 사용자의 읽기 습관이었다.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한국인들은 버스, 지하철 등에서 모바일로 긴 텍스트를 읽습니다. 하지만 땅이 넓은 미국은 직접 운전해서 이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모바일로 긴 텍스트를 접할 일이 별로 없어요. 모바일보다는 PC로 긴 글을 읽더라고요. 미국 유저들이 PC를 하면서 쓸 수 있게 라이너의 웹 브라우저 확장 프로그램도 개발했습니다.”
관찰과 분석을 토대로 서비스를 다듬어 나갔다. “유저들의 사용 습관을 분석했어요. 구글 검색 결과 못지않게 유튜브 제목을 하이라이팅 하는 유저가 많더군요. 유튜브로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이 많아진 영향이었죠. 그래서 영상 하이라이팅 기능을 추가했습니다. 포맷을 확장해 이미지와 PDF 파일도 하이라이팅 할 수 있도록 구현했고요. 형광펜의 색깔을 바꾸거나 표시한 곳에 메모를 추가할 수도 있어요.”
◇형광펜으로 출발해 지식인들의 아고라로 확장
하이라이팅 툴로 출발해 정보 큐레이션 플랫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효율적인 정보 수집을 돕는 검색 보조 기능을 제공한다. “구글에서 특정 검색어를 입력하면 유저가 그동안 밑줄 그은 내역을 분석해서 유저가 흥미를 가질 만한 정보만 표시해 줍니다. 같은 검색어를 입력해도 이용자에 따라 노출되는 정보가 다를 수밖에 없죠. 유저가 찾는 정보에 부합하는 필터링해주는 기능도 있어요. 물론 구글도 중요도에 따라서 검색 결과를 나열합니다. 라이너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중요한 페이지만 보여주고 그중에서도 중요한 문장을 표시합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요소도 더했다. “알 수도 있는 사람을 추천하고, 하이라이팅 한 부분을 친구에게 즉각적으로 공유할 수 있어요. 보여주고 싶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웹페이지 링크나 캡처 이미지를 주고받아야 했던 수고를 덜어주죠. 하이라이팅한 정보들은 폴더별로 정리할 수 있는데요. 추후 폴더에 커머스 요소를 더할 구상입니다. 일론 머스크 같은 유명 인사가 평소 하이라이팅한 내용을 비용을 내서 볼 수 있는 식으로요.”
보편적인 문제를 시원하게 긁은 덕에 여러 기관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서울산업진흥원(SBA)의 기술상용화지원사업에 선정돼 기술,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SBA의 지원 덕분에 보다 과감하게 기술 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같은 스타트업에게는 너무 감사한 기회죠. 최근에는 11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스타트업 혹한기에 무사히 펀딩을 마무리해서 뿌듯합니다.”
◇유저의 흔적이 초개인화의 출발점입니다
‘개인화’를 넘어 ‘초개인화’를 지향한다. “구글 검색에 대한 피로가 쌓이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검색 엔진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유튜브도, 알고리즘도 완전하다고 볼 수는 없어요. 요리 콘텐츠를 보면 요리와 관련된 영상만 추천하니까, 이용자가 되레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추천 내용을 전환하는 경우도 많아요. 사용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서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인터넷 형광펜, 커뮤니티 등으로 라이너 세계관의 밑그림을 보여줬다면 이제는 큰 그림을 제시할 차례다. “약 5년간 누적한 하이라이팅 데이터를 토대로 초개인화 추천모델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쉽진 않지만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궁극적인 목표는 초개인화 검색 엔진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시의적절한 정보 추천과 정확한 검색,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읽는 서비스가 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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