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넛컴퍼니 김승민 대표의 '라벨 프린터' 창업노트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이 젖병 언제 처음 썼더라?”
아기 용품을 꼼꼼히 관리해야 하는 육아 부부, 수 십 명의 제자를 동시에 관리하는 교사들에게 견출지는 필수품이다. 손글씨를 기입해야 하는 시중의 견출지는 잉크나 종이가 쉽게 번진다는 단점이 있다.
피넛컴퍼니의 라벨 프린터는 이런 불편함에서 착안됐다. 글씨가 물에 닿아도 번지지 않아 오래 쓸 수 있고, 활용 범위도 넓다. 피넛컴퍼니의 김승민(37) 대표를 만나 육아 아빠의 라벨 프린터 개발기를 들었다.
◇9평 오피스텔에서 출발, 5년 만에 이룬 성과
피넛컴퍼니는 소형 가전 등을 제조 유통한다. 200가지 넘는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 라벨 프린터를 출시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아담한 사이즈로,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에 출력을 희망하는 문구를 기입하면 된다. 이후 출력된 라벨을 원하는 곳에 붙이면 된다. 4만원대 가격으로 가성비를 갖췄다.
스마트폰이 막 보급되던 시절, 모바일 액세서리 유통사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되던 시절이라 휴대폰 주변 기기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어요. 이 산업이 계속 성장하겠다고 판단하고 뛰어들었죠. 아이폰3와 갤럭시2가 출시됐던 시절 입사해 6년을 근무했습니다. 전성기일 땐 회사 매출액 100억원 중 80억원이 저를 통해서 발생했습니다. 팀장까지 승진했죠.”
업력이 쌓이니 휴대폰 주변 기기의 유통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인맥도 탄탄히 쌓았겠다, 용기를 얻어 2017년 피넛컴퍼니를 설립하고 개인 사업자로 사업을 시작했다. “소형 가전이나 디지털 주변 기기 판매 업체였어요. 보증금 1000만원, 월세 60만원짜리 9평 오피스텔에서 출발했죠. 온라인에 거래처의 제품을 하나 둘 올려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애플사의 무선 이어폰 ‘에어팟’ 유통권을 확보한 덕에 설립 초기부터 10억원대의 매출을 냈다. 연이어 중국의 전자 상거래 플랫폼 알리바바에서 발굴한 ‘탄소광 거치대’로 대히트를 쳤다. “스탠드 형태의 스마트폰, 태블릿PC 거치대였습니다. 지금은 보편적이지만 당시엔 생소한 형태의 제품이라 시장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어요.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 때 대박이 났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QR체크’ 정책이 도입되면서 거치대 수요가 폭증했거든요. 관공서나, 대형 식당 등으로부터 한 번에 수 십 개를 구매하는 주문이 쏟아졌어요. 연매출이 20억원대로 뛰었죠.”
◇아기 젖병 관리하다 떠올린 아이디어
생활 속에서 신규 아이템을 발굴하는 편이다. 라벨 프린터 아이디어는 육아 중에 떠올렸다. “2022년 아빠가 됐습니다. 아이가 생기니 견출지 쓸 일이 많아지더라고요. 젖병의 경우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해서 첫 사용 시기를 표기하는 게 좋거든요. 용기에 담으면 구분하기가 어려운 설탕, 소금 같은 양념도 가족의 건강을 위해 따로 표기해야 했죠. 아이가 커서 어린이집에 보낼 때가 되면 자잘한 모든 비품에 이름표를 부착해야 하고요.”
손글씨로 문구를 기입해서 부착하는 스티커형 견출지는 여러 한계가 있었다. “물에 닿으면 잉크가 쉽게 번져서 식기나 젖병에 쓸 수가 없었어요. 가장 필요한 곳에 부착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게다가 종이라서 수명이 턱없이 짧았어요. 수분이나 외부의 힘에 취약했죠. 보다 편리하고 오래 쓸 수 있는 견출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1. 타 브랜드 제품 분석해 차별점 확보
그가 주목한 것은 라벨 프린터다. 말 그대로 사용자가 희망하는 텍스트를 스티커 용지 위에 인쇄해주는 기기다. “유명 프린터 브랜드에서 출시한 제품이 있긴 했지만 사이즈가 너무 컸어요. 그만큼 큰 용지를 출력할 수 있겠지만 휴대성이 부족했죠. 가격도 비쌌고요.”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최대한 작게 만들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그립감’을 중시했어요. 70X90X30(mm)의 아담한 규격에 140g의 경량으로 설계했습니다. 색상은 흰 색으로 결정했어요. 모든 장소에 어울리고 시각적으로도 깔끔하고 예쁜 색상이니까요.”
잉크가 필요 없는 감열식 프린터다. “감열식이란 열에 감응하는 특수 용지에 프린터 핀을 접촉시켜서 핀이 닿은 부분을 변색해서 인쇄하는 방식입니다. 잉크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정 인쇄할 수 있고 번지지도 않죠. 한 번 완충하면 300번까지 인쇄 가능합니다. 다만 저희 제품과 호환하는 라벨지만 써야 합니다. 방수가 잘 돼 화장실, 부엌 등 물이 쉽게 닿는 곳에 부착해도 괜찮아요.”
타 브랜드 제품 사용자들이 주로 호소하는 불편에 귀를 기울였다. “많은 분들이 문구 인쇄 후 사용할 부분을 칼이나 가위로 따로 잘라내는 게 귀찮다고들 하더라고요. 여기 착안해 인쇄구 하단에 슬라이드형 버튼을 적용했습니다. 버튼을 올려서 손쉽게 종이를 자를 수 있죠. 버튼을 내리면 프린트기의 한 면이 활짝 열립니다. 이 면을 통해 라벨지를 교체하면 됩니죠.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제품의 사소한 불편함만 개선해도 큰 차별점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2. 3번의 품질관리 테스트로 불량률 최소화
제조 공장은 발로 뛰어서 찾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증국 현지에 상주하는 두 명의 직원이 꼼꼼하고, 실력이 좋은 공장을 발굴했어요. 업체 선정 시 중점을 둔 것은 당연히 품질인데요, ‘디테일’에도 신경 썼습니다. 직원들이 제시한 공장 중 패키지까지 예쁘고 튼튼하게 제작하는 공장을 선택했어요. 네모난 상자 형태의 박스에 포장돼 상품 수령 시 선물 받은 기분을 느낄 수 있죠.”
품질은 브랜드 신뢰도와 직결된다. 불량률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했다. “처음엔 조약돌 형태를 구상했지만 디자인을 과감하게 바꿨습니다. 좌우 대칭이 맞지 않으면 불량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거든요. 품질관리(QC) 테스트를 꼼꼼하게 진행했어요. 현지에서 생산 직후, 포장 완료 후 선적 전에 마지막으로 한국 입고 후 총 3번 QC를 실시합니다. 그렇게 불량률을 1% 미만으로 맞췄습니다.”
3. 쓰는 재미 더하는 소프트웨어 결합
하드웨어에 소프트웨어를 결합해서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기기의 전원 버튼을 누른 후 전용 앱 마크라이프(marklife)를 켭니다. 그후 인쇄할 용지의 형태와 규격을 택한 후 희망하는 문구를 입력하면 됩니다. 인쇄 버튼을 누르면 2초 만에 견출지가 뽑혀요.”
‘쓰는 재미’를 위해 다양한 콘텐츠를 결합했다. “폰트만 40가지에 달합니다. 매달 추가하고 있으니 앞으로 더 많아지겠죠. 유치원, 집, 회사 등 사용할 장소에 따라 다른 무드를 적용하는 재미가 쏠쏠할 겁니다. 보다 다채롭게 사용하고 싶다면 다른 디자인, 규격의 라벨지를 직접 구매해도 되고, 기본 라벨지에 무료로 제공하는 프레임을 인쇄해서 사용해도 됩니다. 400가지 넘는 아이콘과 사진, 손글씨도 삽입할 수 있어요.”
이용자의 사용 패턴을 고려해, 자주 사용하는 문구는 클라우드에 저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교사가 저희 라벨 프린터를 사용한다고 가정합시다. 보통 몇 십 명에 달하는 제자의 이름을 출력할 텐데 이를 매번 입력하려면 아주 번거롭겠죠. 앱에 자주 쓰는 텍스트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저장된 문구를 손가락으로 클릭하면 바로 출력이 되죠.”
4. 선생님, 은행원들 사이에서 인기, 일본 수출 시작
지난 1월부터 온라인 몰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클릭 광고로 소비자와의 접점을 만드는 중이다. “광고비를 무리하게 지출할 우려가 있는 바이럴 마케팅 대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의 클릭 광고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초보 사업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인플루언서나 블로거에 큰 돈을 쓰는 일인데요. 클릭 광고부터 집행해보세요. 제품을 구매하든 안 하든 일단 웹페이지에 유입되는 순간 제품 홍보 효과가 발생하거든요. 저희는 ‘프로정리러 주목’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반응이 좋다. “7만~8만원인 타사 제품 대비 가격이 4만원대로 저렴합니다. 지금까지 8000개 이상이 팔려 총 3억5000만원의 매출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선생님, 전업주부, 은행원 사이에서 인기가 많습니다. 어린이집 같은 교육 기관에서도 많이들 구매합니다. ‘사용 후 아이들 이름을 반복적으로 기입할 일이 사라졌다’는 한 선생님의 후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상품이 적재적소에 쓰일 때 큰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일본 수출을 시작했다. “일본 업체로부터 먼저 제안을 받아서 현지 대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마쿠아게에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마쿠아게를 시작으로 일본 소매 채널로도 확대할 구상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인구도 많고 시장이 큽니다. 온라인 쇼핑이 이미 고도화된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 온라인 쇼핑몰 시장은 아직 성장의 여지가 많아요. 큰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일본 시장에 진출하는 게 목표였는데 창업 만 6년 만에 첫 수출 실적이 발생했네요. 꿈을 이뤄서 뿌듯합니다.”
◇데이터 분석은 기본, 때로는 감을 믿어보세요
취급 품목이 200개가 넘지만 매번 고심해서 신상품을 발굴한다. “시장 조사 차 주기적으로 중국 선전, 광저우의 대형 시장을 방문합니다. 아마존, 알리바바 같은 전자 상거래 사이트의 소형 가전, 생활 용품, 모바일 액세서리 카테고리도 수시로 살펴봅니다. 새로우면서 눈길이 가는 제품을 추린 후 각 제품의 리뷰 숫자를 확인하고 구매자 후기를 꼼꼼하게 읽어봐요.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요.”
신제품은 꼭 써본다. “중국 업체들이 자금을 투자해서 개발했다는 건 그만큼 시장성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썼는데 불편한 점이 하나라도 발견된다 싶으면 판단을 보류해야 합니다. 경험상 그런 제품은 잘 안 팔렸거든요. 물론 너무 생소한 제품은 감에 의존해야 할 때도 있어요. 감도 데이터가 쌓여야 발동하니 뭐든 많이 보고, 체험하세요.”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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