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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6만원 침대, 1만원 책장...종이 가구로 연매출 11억원

종이로 가구 만드는 스타트업 페이퍼팝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계산해 주세요”

재벌가의 주인공이 이런 대사와 함께 백화점 옷걸이를 한 손으로 훑는 장면은 드라마 단골 장면으로 꼽힌다. 이를 보는 시청자가 ‘저 사람은 절대 보통 사람은 아니겠거니’ 짐작하게 만든다.

억만장자가 아닌 이상에야 물건을 살 때마다 누구나 고민을 한다. 살까? 말까? 물건의 가격이 높을수록, 평균 사용 기간이 긴 품목일수록 고민의 시간도 길어진다. 대표적인 품목이 가구다. 한 번 사면 최소 몇 년씩 쓰고 튼튼하고 좋은 제품은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8만원대 침대 프레임을 온라인에서 살 수 있다면 어떨까. 단 재료는 종이다. 페이퍼팝 박대희 대표(37)는 이사가 잦은 1인 가구, 자취생을 타깃으로 쉽게 조립해 쓰고 종이로 재활용해 버릴 수 있는 종이가구를 만든다. 엄연히 가구인데, 오프라인 매장없이 온라인 쇼핑몰에서만 2021년 한 해에 11억원의 매출을 냈다. 인테리어 시장에서 박 대표만의 전략은 무엇인지 들었다.

종이로 책장, 침대프레임, 책상, 의자 등 못만드는 가구가 없는 박대희 페이퍼팝 대표. /더비비드

◇종이 가구, 강점을 살린 새로운 전략으로

박 대표는 2009년부터 4년간 식품 포장재 회사에 몸담았다. 양질의 종이들이 한 번 쓰고 버려지는 것에 아쉬움을 느껴 2013년 종이가구를 직접 만들었다. 처음 만든 제품은 종이 책장이었다. 2018년 스타트업 ‘페이퍼팝’을 창업해 정식으로 종이 가구 제작에 돌입했다.

낯선 개념인 ‘종이 가구’를 대중에게 선보이기 위해 발로 뛰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종이 가구에 익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코엑스 DIY 전시회, 기프트쇼, 디자인 관련 박람회에 참가했고 성수동에서 팝업스토어를 열기도 했죠. 하지만 큰 성과는 없었습니다. 물이 닿아도 젖거나 흐물흐물해지지 않고 사람이 올라가도 튼튼하다는 점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전시했지만 ‘신기하다’는 반응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했죠.”

페이퍼팝 종이 가구 중 가장 큰 제품은 침대프레임 '보리'다. /박대희 대표 제공
페이퍼팝 종이가구는 언뜻 일반 골판지처럼 보이지만 물이 투과되지 않고 종이를 4겹으로 덧대어 더욱 튼튼하다. /박대희 대표 제공

일반적인 개념의 ‘가구’와는 다른 판매 방식을 찾기로 했다. “전략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고객들이 가구를 구매할 때, 직접 보고 심사숙고해 결정하곤 했어요. 페이퍼팝 종이가구는 쓰임새는 비슷하지만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것이 장점입니다. 가격대는 기존 가구의 1/10도 되지 않죠.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종이 가구를 더이상 ‘가구’로 보지 않기로 했다.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위주로 판매 전략을 새로 짜기로 했다. 다양한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하기로 한 것이다. “가구판매점은 당연히 오프라인 매장이 있어야 하고, 고객들은 가구를 직접 보고 만져본 후에야 구매를 결정하죠. 페이퍼팝 종이가구는 쓰임새는 비슷하지만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것이 장점입니다. 가격대는 기존 가구의 1/10도 되지 않죠. 완전히 새로운 제품군으로 보고 전략을 다시 짰어요.”

◇넓은 오프라인과 더 넓은 온라인

종이 가구는 가장 무거운 침대 프레임이 9kg일만큼 가벼워, 책상이나 책장쯤은 가볍게 옮길 수 있다. /박대희 대표 제공

온라인 쇼핑몰 50여 곳에 입점했다. 의외의 결과를 발견했다. “처음엔 인테리어 소품, 문구류를 주로 다루는 플랫폼을 타겟으로 생각했는데요. 오히려 생활용품 전체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플랫폼에서 더 구매율이 높더군요.”

인테리어 전문 플랫폼에서는 오히려 반응이 뜨뜻미지근했다. 원인 분석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테리어 전문 플랫폼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제품의 외형이나 인테리어 소품으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일반 커머스 플랫폼은 무게, 수납 등 실용성에 중점을 둔 고객이 많아 저희의 타깃층과 잘 맞아떨어졌죠. 고객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도 하고요.”

서서책상을 만들고 남은 종이로 장난감을 만들어봤다는 박 대표. 왼쪽에 있는 사람이다. /박대희 대표 제공

종이의 장점을 최대한 드러냈다. “기존 가구를 구입할 때는 숨은 비용이 추가됩니다. 가구 종류에 따라 적게는 1만원, 많게는 4만~5만원의 배송료가 붙는 거죠. 페이퍼팝은 모든 제품을 일반 택배 배송과 동일한 수준으로 맞췄어요. 온라인 플랫폼에 따라 무료배송 또는 3000원의 배송비를 받고 소비자의 집으로 전달됩니다.”

무게가 가벼워서 가능한 일이다. 종이로 만든 7만원 침대 프레임은 9㎏이고, 2만원 짜리 4단 책장은 4㎏밖에 안된다.

베스트셀러는 부피가 작은 책장과 종이 의자다. “페스티벌이나 콘서트 같은 야외 행사를 앞두고 쉽게 쓰고 버리려는 용도로 종이 의자를 많이 찾더군요. 비교적 큰 침대 프레임이나 수납장도 꾸준히 주문이 들어옵니다. 종이로 만들어진 가구라 걱정이 많았는데 사용해보니 튼튼하고 실용적이라는 후기가 기억에 남네요.”

페스티벌이나 콘서트 같은 야외 행사를 앞두고 쉽게 쓰고 버리려는 용도로 종이 의자를 많이 찾는다. /박대희 대표 제공

종이 가구가 ‘유행’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종이 가구는 제가 처음 만든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한지공예로 수납장을 만들었고 1970년대에는 유럽에서도 종이 가구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이 2010년대에 등장했을 뿐이죠. 친환경 바람을 타고 한때 유행처럼 잠깐 반짝이기보다는 잔잔하게 사람들의 생활에 스며들었으면 해요.”

◇가구로 플렉스 하는 사람과 소확행 하는 사람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인테리어 시장은 전에 없던 호황을 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새로운 가구를 장만하거나 인테리어 소품을 찾는 이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엔데믹(풍토병화)으로 전환되며 산업 전반의 질서가 재편되는 분위기다. 인테리어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곧 출시될 신제품인 '워크샵 스툴' 위에 앉은 박 대표. /박대희 대표 제공

“인테리어 시장은 크게 양분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플렉스(Flex·과시)의 끝은 가구 구입이라는 말이 있죠. 고가 가구에 대한 관심이 늘 것으로 봅니다. 좋은 가구는 대를 이어 물려주기도 하니까요. 반면 저렴한 가구는 더 저렴해질 겁니다. 거리두기로 실내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 전보다 더 다양하게 집안을 꾸미고 싶어 할 거예요.”

좋은 가구를 오래 쓰는 게 가장 좋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그럼에도 대안은 필요하다. “1인 가구나 2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는 사람들은 내구성이 떨어지는 가구를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사들인 가구는 재활용이나 중고 거래가 쉽지 않죠. 텀블러도 오래 쓰면 환경에 좋지만, 잠시 쓰고 버려지면 문제가 됩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친환경 종이컵으로 재활용될 수 있게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어요. 페이퍼팝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대표는 고삐를 바짝 당긴다.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짜장면, 치킨 정도만 배달해 먹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마라탕, 김치찜 등 요즘은 배달 안 되는 게 없죠. 가구를 구매하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가구 판매 방식을 오프라인으로만 보고 온라인 쇼핑몰을 눈여겨 보지 않았더라면 시장에서 외면당했을지도 모릅니다. 새로운 시장이 보인다면 일단 뛰어들어 보길 바랍니다. 기회는 다른 사람이 대신 잡아주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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