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단열 필름', 아내가 완성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남편의 장례를 치렀다. 남편이 운영하던 회사 공장 지하, 연구실 책장에 쌓인 자료를 찬찬히 읽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연구개발에 열중하던 남편 모습이 눈에 선했다. 제품 아이디어를 적어둔 노트부터 제품 성능을 검증 받은 국가공인 시험성적서까지. 이대로 그냥 두기엔 너무 아까웠다.
이지숙 로페코 대표가 남편의 뒤를 이어 회사를 운영하기로 결심한 날의 회상이다. 이 대표는 건축학을 전공하고 원래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믿고 의지했던 남편이 떠난 후, 자신의 회사를 접고 남편이 13년 동안 운영하던 회사를 이어가기로 했다. 남편이 미처 매듭짓지 못한 기술을 상용화해 대표 상품으로 일궈낸 이지숙 대표를 만났다.
◇냉방비 줄여주는 단열시트
로페코는 단열 복합 필름 ‘다마거 시트’를 자체 개발한 소재와 기술로 만들었다. 여름철 햇빛과 더위를 막아주고, 겨울에는 한기를 차단한다. 두께가 1mm도 채 되지 않는데, 이중창보다 자외선 차단 효과가 좋다.
주택 ‘단열’은 겨울뿐만 아니라 여름에도 중요하다. 여름철 실내 온도를 높이는 주범은 햇볕인데, 이는 냉방을 위한 전기료를 크게 높인다. 따라서 한여름 태양이 쏟아내는 열기가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막아야 한다. 커튼이나 블라인드로 막을 수도 있지만 이땐 집 안을 어둡게 만든다는 단점이 있다.
다마거 시트는 투명하고 매끈해서 미관을 해치지 않는다. 물로 붙이고 뗄 수 있어서 접착제가 필요 없고 제거 자국이 남지도 않는다. 가정집, 사무실 등에 두루 활용 가능하다. “전문 단열재가 있으면 좋긴 하지만, 문제는 가격인데요. 한 글로벌 기업의 단열재는 기준 면적(1mx1m) 당 30만원을 받는데, 저희는 1만원으로 확 낮췄습니다. 자체 개발 소재로 만들기에 가능한 가격입니다.”
◇16년 된 회사, 3년 차 대표
-남편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공장 지하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연구개발에 열중했던 남편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목표가 무척 뚜렷했습니다. 많은 사람을 편하게 하기 위해 물건을 만든다는 철학이 있었죠. 일상생활의 질을 올리는 데 기여하겠다는 겁니다. 로페코 회사 이름 자체가 그 뜻을 담고 있습니다. ‘리더 오브 프로덕트 에코(Leader of Product Eco)’의 줄임말인데, 편리하면서도 환경에 부담을 주지 않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겠다는 뜻이에요.”
2018년 2월 홍 전 대표가 외근을 나가 일을 하던 중 갑작스럽게 과로로 세상을 떠났다. “전 원래 건축을 전공해서 내장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너무 갑작스럽고 황망하더라고요. 생전에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기술도, 제품도 다 준비돼 있다. 꽃을 피웠고 열매까지도 맺었기 때문에 이를 따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항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생을 달리해버렸어요. 얼마나 아쉬웠을지 가늠하기도 어렵습니다.”
남편 장례를 치르고 남기고 간 각종 자료와 노트를 살펴봤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걸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료마다 그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죠. 한편으로 자랑스럽고 그 열정에 진심으로 공감해주지 못했던 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으려니, 묻히게 할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인테리어 사업을 정리하고 로페코를 이어받기로 했습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사람에게 편리함을 줄 수 있는 회사로 계속 키워나가기로 했죠.”
◇남편이 개발한 단열액을 단열재로 개발
남편은 생전, 사람들이 선크림을 바르듯 가정집 창문에도 무언가를 발라 자외선이나 한기를 차단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단열액’을 개발해뒀다. 노트에 그 아이디어와 원리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액체를 바르는 방식이라 시공하기가 불편했어요. 활용법을 고심하다 단열액에 PVC를 섞어서 시트 형태로 만들기로 했죠.”
나노 세라믹 소재에 PVC(Polyvinyl Chloride·폴리염화비닐)를 로페코만의 특수 비율로 배합했다. 투명해 보기 좋으면서, 선팅지 같은 어두운 기존 단열재 못지 않은 차단 성능을 가졌다. “PVC는 가격이 저렴해 단가를 낮추는 데도 좋었어요.”
간편하게 시공할 수 있도록 쉽게 붙이고 떼어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접착제나 접착 필름 없이 오로지 ‘물’만 이용해 시트를 창문에 붙일 수 있게 했다. 재사용도 가능하다. 코팅 방식으로 만들어진 필름은 한번 쓰면 망가지지만, 다마거 필름은 나노 세라믹이 혼합된 제품이라, 소재 자체가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 사용할 수 있다. “뒤에 접착액이 있는 제품들은 태양 빛을 받으면 열기로 인해서 삭아요. 나중에 이걸 떼어낼 때 창문에 붙어서 제거하기도 힘들죠. 친환경적인 가치도 살릴 수 있도록 재사용이 가능한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성능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에 의뢰했다. 이중 유리보다 단열 성능과 시야 확보가 뛰어나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가격은 훨씬 저렴한데 단열성능과 시야 확보는 더 좋은 거에요. 그간의 고생이 모두 보상 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소재에 8대 중금속이 들어있지 않다는 시험성적서도 받았다.
◇20만m 넘게 판매, 부부 공동의 성공
노력 끝에 탄생한 다마거 시트는 출시 후 2만 개 판매를 돌파했다. 20만m가 넘는 길이다. “세상이 인정해주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다마거 시트 성공 후 제품 라인업을 다양화하고 있다. 건축 업계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최근 방수제 개발에 성공했다. 한국석유공사와 계약을 맺어 납품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시트도 개발했다. 마케팅을 위해 각종 박람회에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목표는요.
“개인적인 욕심은 없어요. 홍 전 대표의 목표는 뭐였을까. 계속 생각해 봐요. 홍 전 대표라면 버는 돈을 대부분 연구개발에 넣었을 거에요. 끊임없는 투자와 시간 노력을 들여 계속 좋은 물건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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