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넘어 창업해서 매출 30억, 외외로 평범했던 시작

2024. 7. 10. 09:55인터뷰

영상 상담 서비스 개발 '페르미' 창업 스토리

아무리 좋은 전자제품이라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작동법이 복잡하면 매뉴얼을 읽어도 어렵기만 하니 누군가 와서 직접 알려줬으면 싶다.

스타트업 페르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뷰(CO-VIEW)’라는 영상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목소리로만 하던 상담이 갖는 문제점을 보완해 실시간 영상 통화 방식으로 상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연금공단, 인천공항공사, NH농협, KB손해보험 등 20곳 이상의 기업과 공공기관이 ‘코뷰’를 통해 고객을 만나고 있다. 페르미 김상범 이사(46)를 만나 ‘코뷰’로 더욱 가까워질 앞으로의 미래를 엿봤다.

◇'우리도 창업해 보자' 4인방 의기투합

김상범 이사 /더비비드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김 이사는 2001년 졸업 후 결제 대행 업체(VAN사)에 입사했다. 신용카드를 결제할 때 실시간으로 고객 정보를 카드사에 전달한 후 카드사에서 결제 인증을 받는 서비스다. 이후 제너시스템즈로 이직해 인터넷 전화 업무 커리어를 쌓았다.

“제너시스템즈 기업사업부 팀장으로 근무하면서 아날로그 전화가 디지털 기반의 음성 서비스로 전환되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세계 최초로 070 인터넷 전화를 만든 곳이었거든요. 디지털 음성 서비스도 언젠가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스템 개발은 늦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각장애인은 전화 상담을 할 수 없으니 수화로 소통할 수 있는 영상 상담이 필수인데, 그런 기술 개발이 전무했어요. 영상상담 서비스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죠“

(왼쪽부터) 김상범 이사, 박용정 팀장, 이치문 상무, 조남홍 대표이사. /김상범 이사 제공

“예전 회사 직장 선배인 조남홍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IT 기술 발전공로로 산업자원부 장관상을 받은 IT 전문가 이신데, 당시 영상 공유 기반의 원격 영상상담 서비스를 기획하고 창업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게 됐죠.”

영상 서비스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같다는 것을 알고 합류를 바로 결심했다. 결제 대행 업체에서 만났던 이치문 기술 이사, 박용정 개발 팀장도 함께 했다. 모두 15년 이상 직장생활을 한 베테랑들로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당시 이 상무는 앱 기반 영상 상담 솔루션을 만든 상태였어요. 소방·경찰 영상 신고 시스템을 개발해 여러 콜센터에 영상 서비스 솔루션을 공급한 경험이 있었죠."

2018년 5월 4일 ‘페르미’ 법인을 세웠다. 페르미는 이탈리아 물리학자의 이름에서 따왔다. “페르미 추정의 의의는 정확한 값을 구하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중시하는 데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인생이지만 그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가자는 뜻을 담았어요.”

◇고객과 상담원이 서로 필요한 모습 보여주며 상담

/페르미 홈페이지 캡처

영상 상담 솔루션 ‘코뷰(Co-view)’는 기존 '앱 기반 영상 상담 솔루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버전이다. 스마트폰 앱을 설치하지 않고도, 실시간 웹 브라우저 통신기술을 이용해 영상 상담을 할 수 있다.

“대부분 앱은 상시 업데이트를 하죠.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메뉴 위치나 기능이 청각장애인에게는 새로운 장애물이 됩니다.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모든 고객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앱을 설치하지 않아도 영상 상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앱 설치 없이 웹브라우저만으로 이용이 가능해야 했다. WebRTC 기술에서 해답을 찾았다. WebRT는 Web-Real-Time-Communication의 약자로, 별다른 소프트웨어 없이 카메라나 마이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말한다.

“WebRTC는 2017년 표준화됐습니다. 하지만 앱에서 작동하던 것을 웹으로 옮기는 실무 작업은 수작업에 가까웠어요. 어떤 버튼을 클릭하면 어떤 동작을 하도록 하는 알고리즘을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김상범 이사 /더비비드

1년 여간의 개발 기간 끝에 ‘코뷰(Co-view)’를 완성했다. 고객 입장에서 화면이 2분화된다. 하나는 내 스마트폰 카메라로 비추는 화면이다. 내 모습을 나타낼 수도 있고, AS 상담을 받으면서 고장난 내 기기를 보여줄 수도 있다. 또 다른 화면은 상담원을 비추는 화면이다. 상담원이 설명을 위해 샘플을 보여주는 것도 가능하다.

첫 고객사는 BC카드다. 2018년부터 4년째 ‘코뷰’를 이용하고 있다. “BC카드 청각장애인 고객이 수화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BC카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수화 상담’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전화 상담 중에 상담원이 문자메시지로 웹 주소(URL)를 보내면, 이를 클릭해 영상상담으로 전환할 수도 있죠. 상담을 위한 별도 인증이나 앱 설치가 필요없는 거죠. 이후 간편하게 서로의 수화를 보면서 상담원과 청각장애인이 대화할 수 있습니다.”

왼쪽 스마트폰이 고객이 보는 화면, 오른쪽 pc가 상담원이 보는 화면. 고객이 고장 부위를 비추면, 상담원이 화면 위로 표시하면서 대처법을 설명할 수 있다. /페르미

수화 상담으로 시작한 코뷰는 AS시장에서 빛을 발했다. “IPTV 회사의 고객 문의 중 40%가 리모컨 조작 관련입니다. 고객이 사용 중인 리모컨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비추면 상담원은 그 화면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할 수 있어요. 고객은 그 화면을 스마트폰으로 보면서 쉽게 작동법을 배우죠. 상담원이 동일한 리모컨을 화면에 띄워 작동법을 안내할 수도 있습니다.”

자동차 사고 처리 과정에서도 ‘코뷰’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고객의 스마트폰으로 차량 파손 부위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보험사 직원과 상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사고 부위를 보여주면 손해보험사 직원이 실시간으로 파손 부분을 보면서 상담에 응할 수 있다. /페르미

영상 연결 중 화면을 확대하거나 실시간으로 녹화도 할 수 있다. “단순히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영상으로 확인하기 때문에 고객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고, 차량 상태를 신속하게 판단할 수 있어서 정비 작업 시간이 단축됩니다.”

‘코뷰의 편리함’이 입소문 나는 데는 1년이면 충분했다. “네스프레소 코리아가 작년 6월에 코뷰를 도입했습니다. 처음엔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고 하더군요. 단 2명의 직원만이 코뷰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그 직원이 조금씩 다른 동료 직원들에게 추천하면서 회사에 입소문이 나게 됐습니다. 지금은 60명이 코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한걸음씩 더 가까워지는 세상

페르미 사무실 입구. /김상범 이사 제공

페르미는 코뷰의 인기를 등에 업고 순항 중이다. 2018년 첫 해 매출은 8000만원이었다. 2021년 올해 예상 매출은 약 30억원에 달한다. 고객사도 꾸준히 늘고 있다.

“디지털 쇼룸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소비자들이 매장에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제품을 체험하고 비교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나만의 홈쇼핑’이라는 개념으로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어요.”

한 건강보조식품 업체에서는 매년 오프라인 매장에서 진행하던 이벤트를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행사로 대체했다. ‘코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참여자들이 각자의 집에서 해당 제품을 먹기 전과 후 몸의 변화를 영상으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여자가 직접 자신의 몸을 cm(센티미터) 단위로 측정해야하는 챌린지여서 참여율이 저조할까 우려했지만, 일주일 만에 수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 4월 롯데하이마트 약 50여개 지점에는 페르미의 키오스크가 설치됐다. 제품을 직접 체험하고 싶지만 비대면으로 전문 상담을 받고 싶은 고객을 위해 도입했다. SK매직, 밀레, 시스기어 등 여러 제조사의 제품 중에서 관심 상품을 선택하면 각 브랜드 담당 상담원과 영상으로 연결해 제품 상세 정보를 문의할 수 있다. /롯데하이마트

“새로움을 추구하는 건 인간 본능입니다. 페르미의 코뷰를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도 계속해서 찾아나갈 계획입니다. 각종 금융 서비스, 중고차 거래, 디지털 쇼룸 등 코뷰의 진출을 기다리고 있는 곳이 한둘이 아닙니다.”

페르미 사무실 입구에는 ‘See it, Share it, Sell it(봐라, 나눠라, 팔아라)’이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적혀 있다. “홈쇼핑이나 라이브 방송은 한방향으로만 정보가 전달되죠. 페르미는 ‘보이는 상담’을 통해서 고객이 원하는 정보를 바로 얻을 수 있도록 해서, 빠른 결정을 유도합니다. 세일즈 솔루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페르미가 그 중심에 서게 될 겁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