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가전 스타트업 리호 김동형 대표 인터뷰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과 글로벌 숙박공유 플랫폼 에어비앤비의 공동점은? 창업주가 디자이너 출신이라는 점이다. 시장 흐름을 읽는 안목과 판단력을 겸비한 디자이너는 자기 브랜드를 독보적으로 키울 힘이 있다.
소형 가전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디자이너 출신의 CEO가 있다. 글로벌 기업에서 모바일 주변기기 디자이너를 활동하다, 창업에 도전한 스타트업 '리호'의 김동형 대표를 만나 창업을 택한 이유를 들었다.
◇미술 신동이 방황한 이유
‘LIHO’(리호)는 소형 가전을 만든다. 디자인이 독특한 핸디 선풍기 트렌디 뷰티 에어가 대표적이다. 핸디 선풍기는 둥근 모양 일색인데, 리호 제품은 각이 졌다. 독특한 느낌을 내면서, 원하는 곳에 바람을 집중시키는 기능적 효과도 있다. 내부 배터리를 통해 스마트폰을 충전시킬 수 있고, 플레시(후레시) 기능도 내장됐다.
회사명 리호는 Lifestyle(생활방식), Interesting(흥미로운), handy(편리한), originality(독창성)의 약자다. “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면서 디자인적으로 차별화된 독창성 있는 제품을 모토로 합니다.”
어릴 적 강원도 지역 사생대회를 휩쓸던 미술 신동이었다. “일찍 저의 재능을 알아보신 어머니 덕에 네 살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6년 내내 온갖 미술대회 상을 휩쓸었어요. 지역 1등은 늘 제 차지였죠. 중학교에서는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미술부 활동도 했습니다.”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림과 멀어지는가 싶었다. 공부에만 전념했다. 그러다 친하게 지내던 중학교 선배가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하자 다시 미술로 관심이 갔다. “그제서야 ‘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건 그림 그리는 거지’란 생각이 들더군요. 미대에 진학하겠다고 가족에게 알렸더니 집이 뒤집어졌어요. 1주일 간의 단식투쟁 끝에 미술학원에 등록해 미대입시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1997년 국민대 공업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통상 산업 디자인은 시각 디자인과 제품 디자인으로 나뉩니다. 평소 사물의 3D 단면을 보고 이해하는 것을 좋아해서 제품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공업디자인학과에 진학했어요. 물건의 외관 뿐만 아니라 기능과 형태를 구조까지 구성하는 법을 배웠죠.”
◇미대 나와 스마트폰 디자이너로 활동
2004년 졸업 후 휴대폰 제조사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유럽과 아시아. 국적을 허물며 일 하면서 배짱을 키웠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당시엔 삼성, 엘지, 팬택 다음으로 꼽히던 규모의 회사였어요."
모바일 디자이너로 열심히 일하던 중 홍콩의 휴대폰 제조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어다. "해외에서 일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해 덜컥 받아들였죠.”
2006년 중국 신천으로 넘어가 2년 일하고 스웨덴 회사로 이직했다. “휴대폰 주변기기를 제조해서 모토로라,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에 납품하는 회사였죠. 2008년 이 회사의 아시아 지역 매니저로 합류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싱가폴 같은 선진 시장까지 관리했습니다.”
2010년 스웨덴 회사를 나와 마음 맞는 사람들과 모바일 주변기기 제조사를 차렸다. “휴대폰 커버, 노트북 가죽 케이스 등을 만들던 회사였어요. 시장에 아이폰이 막 등장했던 시기라 아이폰 액세서리 인기가 대단했죠. 5년 동안 즐겁게 일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계점이 보였습니다. 함께 창업한 분들과 비즈니스에 대한 시각 차가 있었거든요. 그 분들은 이제 일정 궤도에 올랐으니 유지하는데 집중하자고 주장한 반면, 저는 시장 변화에 빨리 대응해야 한다는 쪽이었어요. 결국 각자도생 하기로 했습니다.”
2015년 주식회사 '브릿트'란 이름의 디자인 회사를 설립했다. 제품, 패키지 디자인뿐만 아니라 브랜딩, 디자인 컨설팅까지 하는 종합 디자인 회사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들 중심으로 의뢰를 받았어요. 500만원, 1000만원 단위의 일감을 받았죠. 다행히 회사 운영은 순조로웠어요. 설립 첫 해 디자인한 유아용 식기가 한국디자인진흥원 우수디자인으로 뽑혔거든요. 이후 차츰 거래처가 늘어나 작년부터는 건당 억 원 단위 프로젝트도 들어왔습니다.”
◇자사 브랜드 ‘리호’ 론칭, 핸디 선풍기 개발
회사가 안정기에 돌입하자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솟구쳤다. 소형 가전 중에서도 스테디 셀러인 ‘미니 선풍기’를 첫 상품으로 택했다. “소형 가전 시장은 여름엔 선풍기, 겨울엔 가습기 두 쌍두마차가 이끄는 구조입니다. 포털 쇼핑몰에서 미니 선풍기를 파는 판매자만 80만 명이 넘어요. 출사표 낸 김에 메인 아이템에 도전장을 내밀고 싶었어요. 수요가 꾸준한 ‘소형 선풍기’를 디자인을 달리해서 출시하면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서도 차별화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선풍기는 왜 꼭 동그랗게 생겨야 할까’. 의문점을 발판으로 색다른 모양으로 선풍기를 디자인했다. “동그란 선풍기 날개 대신 터보 팬을 적용하기로 했어요. 일반 팬은 바람을 뒤에서 빨아들여서 앞으로 내보내는 구조인데, 터보 팬은 양쪽에서 흡수한 바람을 앞으로 뿜는 방식이라 부피는 작아도 바람이 세요. 아웃도어 유행 추세에 맞춰 손잡이 아랫부분에 3단 플래시(후레시)도 장착했습니다. 캠핑이나 등산 갈 때 유용하죠.”
디테일에도 신경 썼다. “코로나19 이후 위생에 민감한 소비자를 고려해 안티 박테리아 기능이 있는 재료를 썼어요. 시간이 지나면 박테리아가 사라지는 안티박테리아레진이라는 이름의 재료죠. 덕분에 여러 명이 돌려 써도 걱정이 없습니다. 바람의 유형도 다양하게 설계했어요. 10초 간격으로 바람이 꺼졌다가 켜지는 ‘인터벌’ 기능을 추가했고 연속 바람은 강도 별로 1, 2, 3단으로 구성했습니다.”
10개월의 개발 기간 끝에 7월 제품 출시에 성공했다. “여성 분들이 화장하면서 방금 바른 화장품이나 땀 잘 마르라고 부채질 자주 하잖아요. 그런 습관에 착안해서 ‘뷰티 에어’라고 이름 붙였어요. 계절 상품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서죠. 꼭 여름철이 아니더라도 화장할 때 사시사철 쓰란 의미입니다. 색상은 레트로 4가지, 파스텔 3가지 총 7가지로 준비했습니다.
◇디자이너의 존재가치는 브랜드에서 나온다
출시하자 재밌다는 이용자 반응이 많았다. “낯선 생김새 때문에 이게 선풍기냐며 되묻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림갑이 좋다고 칭찬한 분도 있었죠. 은은한 광택이 감도는 외형이 멋지다는 평가도 들었어요. 디자이너로서 뿌듯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 개점과 해외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다. “소비자가 오프라인 숍에서 직접 뷰티 에어를 접하면 제품 인지도가 더 좋아지리라 확신합니다. 해외의 경우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화장품 무역상들에게 판매를 제안한 상태입니다. 홍콩과 중국 뿐 아니라 미국 진출도 계획하고 있어요. 시장이 큰 국가인 만큼 기대도 큽니다.”
앞으로도 ‘리호’라는 이름을 달고 다양한 소형 가전을 선보일 계획이다. “무드등, 가습기 등 일상에서 쉽게 쓸 수 있는 예쁜 가전을 만들고 싶어요. 제품 가짓수가 많아지면 리호 전용 오프라인 숍을 세계 방방곳곳에 열고 싶어요. 젊은 시절 해외에서 열심히 일한 덕에 해외 각 국에 저를 도와줄 친구들이 있거든요. 이 시너지를 활용하고 싶어요.
옛 말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잖아요. 디자이너는 죽어서 브랜드를 남긴다고 생각해요. 회사를 잘 키운다면 훗날 제가 세상을 떠나도 리호라는 브랜드는 남지 않을까요. 그렇게 된다면 디자이너로서 잘 살았다고 할 수 있겠죠.”
/진은혜 에디터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고기만 안왔다니까요' 진상 소비자 입 꾹 다물게 한 영상 (0) | 2024.07.10 |
---|---|
3000만원이면 이룰 수 있다는 별장 꿈, 농막의 현실 모습 (0) | 2024.07.10 |
주 25시간 근무하고도 저가 노트북 시장 1위하는 한국 기업 (0) | 2024.07.10 |
세계가 기대하고 있는 한국 치매 진단 기술, 시작은 한 노인의 눈물 (0) | 2024.07.10 |
뜻밖에 중동이 반한 한국 동충하초, 암투병 영양사의 집념 (0) | 2024.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