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가 기대하고 있는 한국 치매 진단 기술, 시작은 한 노인의 눈물

더 비비드 2024. 7. 10. 09:31
세븐포인트원 창업 스토리

세븐포인트원 이현준 대표. /더비비드

“20대 때 상경해 한 번도 고향을 가본적이 없어. 고향이 너무 보고싶어.”

서울 종로구에서 독거노인 봉사를 했던 청년이 있었다. 그때 만난 어르신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했다. 당시 청년은 VR(가상현실) 관련 사업을 준비 중이었다. 간단하게 VR 콘텐츠를 만들어서 노인에게 보여줬다. 어르신들의 고향인 평창, 부안, 천안과 관련한 콘텐츠였다. 퀄리티가 높지 않은 콘텐츠였지만 노인들은 너무나도 좋아했다.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 당신의 지난 날을 들려준 이도 있었다. 행복한 경험이었다.

청년은 노인의 곁에서 이들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VR 기반 인지저하 및 우울감 완화 솔루션 센텐츠와 인공지능(AI) 기반 치매 고위험군 선별 솔루션 알츠윈은 그렇게 탄생했다. 두 서비스를 개발한 세븐포인트원의 이현준 대표(40)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꿈 많던 청년이 치매에 눈 뜬 이유

가까운 사람이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이 창업의 기폭제가 됐다. /더비비드

이 대표는 워싱턴대에서 경영(국제 금융)을 전공했다. 미국에 있을 때부터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었다. 그가 졸업했던 2000년대 중반, 뉴욕타임즈 등 주요 신문사의 지면 매출이 하락세인 것을 보고 아쿠아노티스라는 인터넷 광고 기술을 개발했다. 특허도 출원하고 초기 투자도 받았지만 군 복무를 위해 포기하고 귀국했다.

공군 통역장교로 복무한 뒤 2011년 전공을 살려 메릴린치에 입사했다. 선망 받는 직장이었지만 창업에 대한 아쉬움을 떨칠 수 없어 2015년 한 스타트업에 입사했다. 2017년 퇴사 후 세븐포인트원을 설립하고 VR 관련 사업을 준비했다. 가까운 사람이 치매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의 일이다. “치매라는 질병은 원인이 70여가지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그 중 20~30%의 원인은 조기에 진단하면 치료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알츠하이머병 환자도 초기부터 약물 치료 등 관리를 하면 병세의 진행을 상당 부분 늦출 수 있고요. 가까운 사람이 아프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이런 정보를 전혀 몰랐어요.”

센텐츠를 체험하고 있는 노인들. /세븐포인트원

소중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치매에 대해 더 알아야만 했다. 종로구에서 독거노인 봉사를 할 때 치매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 “VR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어르신들이 고향 얘기를 해주셨어요. 서울에 온 이후로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고향을 보고 싶다고요. 간단하게 제작해서 보여드렸더니 어르신들이 너무 좋아하셨어요. 당신들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신나게 이야기도 하시고요. 그 때 알았죠. 2030대 청년층에게 VR은 오락 콘텐츠지만 어르신들에게는 다른 세상을 경험을 할 수 있는 매체라는 걸요.”

어떤 콘텐츠가 어르신들의 마음을 흔들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이 단서가 됐다. “외할아버지와 매우 가까운 관계였어요.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중풍을 앓으셨어요. 그때부터는 대화가 거의 단답형으로만 이뤄져서 답답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어머니, 이모, 외삼촌들로부터 할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전해들을 수 밖에 없었죠. ‘할아버지와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려면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하는 고민이 센텐츠의 방향성이 됐어요.”

◇’그때 그 시절’ 추억을 소환했더니

1980년대 가정의 모습을 구현한 센텐츠 콘텐츠. /세븐포인트원

세븐포인트원의 센텐츠는 VR 기반 인지저하 및 우울감 완화 솔루션이다. VR 콘텐츠를 통해 인생의 가장 빛나던 순간을 떠올리게 하고, 연계된 인지심화 학습을 통해 뇌를 활성화하는 방식이다.

77개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다. 콘텐츠로 응용할 수 있는 데이터만 2만7000여개다. 센텐츠를 접한 어르신들은 청년 시절로 돌아간 듯 신난 모습을 보인다. “에피소드 중에 다방 관련 콘텐츠가 있어요. 체험 후 어르신들은 주로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 이야기를 잔뜩 들려주세요. 경복궁, 덕수궁 돌담길 콘텐츠 후에는 연애담이 꽃 피고 제주도 콘텐츠 체험 후에는 당시 어렵게 갔지만 행복했던 신혼여행 이야기를 신나서 들려주셔요. 한 어르신은 제게 고맙다며 껌 사먹으라며 3000원을 쥐여 주셨었습니다. 그 선물이 어떤 의미인지 아니까 감사하고 뭉클했습니다.”

VR기기를 들고 포즈를 취한 이 대표. /더비비드

병원, 치매안심센터, 복지관, 경로당 같은 기관에서 그룹 혹은 개인으로 센텐츠를 체험할 수 있다. “VR 시청을 끝낸 후 세븐포인트원에서 교육을 받은 오퍼레이터가 어르신들의 회상록 작성을 도와요. 그 후 그룹으로 회상록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죠. 경계심이 높거나 자기 방어 성향이 높은 어르신도 이 시간에는 신나서 이야기를 털어 놓으세요. 원활한 진행을 위해 가상현실 인지활동 지도사 민간자격증을 만들어 오퍼레이터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이 오퍼레이터 역할을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확장할 구상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치매 고위험군 선별하는 솔루션 개발

CES 출품 당시 모습. /세븐포인트원

치매 진단을 받은 어르신들에게 센텐츠가 건강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그 앞단에서 정확하고 빠르게 치매 진단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처음에는 치매 진단을 안구운동으로 접근해보려 했어요. 하지만 시선추적 기기가 없으면 진단이 쉽지 않으니 이 방법은 어렵겠다고 판단했죠.”

보다 쉽게 치매를 진단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중앙치매센터장 김기웅 교수를 찾아갔습니다. 저희가 연구하고 달성한 것들을 들고 무작정 문을 두드렸죠. 처음엔 몇 가지 조언과 덕담을 해주셨는데요. 몇 번 찾아 뵌 끝에 2019년 말부터 저희와 함께 하기로 했어요. 지금까지 큰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AI 기반 치매 고위험군 선별 솔루션 알츠윈을 개발했다. 스마트폰 언어유창성 테스트로 치매 고위험군을 선별하는 솔루션이다. “경기도 광역치매안심센터가 알츠윈을 도입해 3만 여명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치매 테스트를 진행했어요. 그 중 6000여명의 치매 고위험군을 선별해 치매안심센터로 연결했습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치매 고위험군을 선별하는데 투입되는 인력과 비용이 어마어마한데요. 이 테스트로 6000여명의 치매환자를 찾아냈다는 것은 국가 예산 절감과 국민 건강 증진 측면에서 아주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전라북도 전주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주관한 ‘AI 바우처 지원사업’에 최종 선정돼 알츠윈을 공식 도입했습니다.”

◇서울바이오허브 입주, 해외 진출 준비에 박차

이 대표는 서울바이오허브의 지원이 회사 성장에 큰 보탬이 됐다고 말했다. /더비비드

많은 이들이 세븐포인트원의 여정에 손을 보탰다. 네이버, MYSC, 씨엔티테크로부터 투자를 유치했고 서울바이오허브의 지원을 받았다. “서울바이오허브로부터 크게 세 가지 도움을 받았습니다. 첫번째는 입주 공간입니다. 다른 정부지원 공간들은 짧으면 6개월 길어도 1년씩 밖에 머물 수가 없어요. 하지만 서울바이오허브는 최소 2년, 연장하면 4년까지 있을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서울 바젤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유럽 쪽과 연결됐다는 점이에요. 현재도 유럽 보험사, 제약사와 협의 중입니다. 마지막으로 해외 진출 지원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어요. 해외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니 고마운 얼굴이 많다. “이 일을 하며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어떤 공무원들은 주말 근무나 야근까지 불사하면서 함께 고민하고 현장에서의 도입과 개선을 지원했습니다. 이 시스템이 잘 자리잡을 수 있게 앞장서준 일등 공신들이죠. 치매센터를 방문하지 않은 어르신들도 쉽게 테스트할 수 있도록 경기도 3000여곳에 홍보 포스터를 붙이고, 큐알코드나 전화로 링크 보내주는 일을 나서서 해준 분도 있어요.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CES 혁신상 수상, 해외 진출 목표

유럽 파트너와 함께 촬영한 사진. /세븐포인트원

접근성 좋고 정확한 치매 진단 솔루션의 등장에 업계가 환호했다. 세븐포인트원은 세계최대 가전박람회인 CES 2023 디지털 헬스 분야에서 혁신상을 받았고 대통령 표창도 수상했다. 현재 알츠윈은 의료기기 등록을 추진 중이다. 치매 진단을 빠르게 돕는 인지평가 소프트웨어로 등록할 예정이다.

해외 시장을 비롯해 사업 영역을 확장할 구상이다. “올해부터 글로벌 진출이 시작됩니다. 최근 연매출 5조원 규모의 일본 헬스케어 그룹과 정식 계약했어요. 미국 쪽도 논의 중이고요. 하반기에 우리나라 탑 보험사와 관련 보험을 출시할 예정입니다. 유명 글로벌 제약사와도 파트너십을 논의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운영하는 치매안심센터가 260여곳인데요. 현재 그 중 18%에서 알츠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직 연결되지 않은 82%의 치매안심센터와도 순차적으로 함께 하고 싶습니다. 보건복지부나 의료계 협업도 주요 목표입니다. 고령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인만큼, 치매 관련 솔루션 협업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봅니다.”

/김지은 객원에디터,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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