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패킹 김종철 대표 창업스토리 인터뷰
배송된 제품에 하자가 있다는 문의가 들어오면 일단 난처하다. 해당 제품을 받아본 소비자부터 판매자, 담당 택배원 등 세부 과정까지 따지면 관련자가 수십 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단계에서 문제가 생긴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밝히려다 얼굴을 붉히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인베트는 ‘리얼패킹’이라는 이름의 물류 영상 기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다. 제품이 포장되는 순간을 영상으로 기록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서비스다. 코로나19로 물류량이 늘어난 LX판토스, BRANDI(브랜디), LUSH(러쉬) 등에서 리얼패킹을 사용 중이다. 포장 영상 서비스의 세계화를 꿈꾼다는 인베트의 김종철 대표(47)를 만나 ‘리얼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는 세상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김종철 대표는 2000년 졸업 후 한 인터넷 방송국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디자이너로 입사해 서비스 기획실장으로 2년 간 근무했습니다. 독학으로 웹 프로그램을 공부해 둔 덕분에 디자이너와 프로그래머 사이를 오가며 VOD(주문형비디오) 서비스를 기획할 수 있었어요. 영화를 보기 위해서 꼭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고 있다는 점에서 온라인이 오프라인보다 더 큰 시장이 될 것을 예감했습니다.”
한창 사회생활을 하던 2000년대 초반, 벤처 창업 붐과 함께 이베이, G마켓 등 오픈마켓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오픈마켓에서 누구나 창업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부추김이 많았어요. 기본 지식도 없이 뛰어든 사람이 많았죠. 온라인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으로 셀러(판매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상품 포장 과정의 애로점
2006년 인베트(INBET)를 설립하고 이커머스 지원 솔루션 ‘헬프셀러’ 서비스를 개발했다. 헬프셀러는 판매자에게 상품 등록부터 주문 배송, 고객 문의, 재고 관리까지 통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이다.
15년간 ‘헬프셀러’를 통해 1만 5000여 개 업체를 만났다. 판매자들의 고민은 대부분 고객 클레임이었다. “판매자는 갑(甲)도 을(乙)도 아니고 ‘병(丙)’이에요. 고객이 갑입니다. 을은 쇼핑몰이나 플랫폼 사업자죠. 고객에게 클레임이 들어오면 쇼핑몰 측에서는 판매자가 모든 책임을 지도록 합니다. 배송 과정에서 파손된 물건도, 쇼핑몰 전산 오류로 누락된 주문도 판매자가 책임져야 하죠.”
디지털카메라로 제품 사진을 일일이 찍어서 보내도 소용이 없다. “분명 출고 당시엔 하자가 없는 상품이었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사진을 내밀어도 믿어주지 않습니다. 상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출고됐는지 확실하게 증명할 수만 있다면 전부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진짜가 나타났다, 리얼패킹
‘헬프셀러’를 운영하며 들었던 고충을 초석으로 삼아 2016년 ‘리얼패킹’을 개발했다. 사진을 못 믿겠다면 영상을 보내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2011년부터 5년 동안 영상 관리 시스템을 1000번 넘게 업데이트했습니다. 2021년 기준으로는 2000번이 넘어요. 화질이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용량을 최소화하고 이를 고객에게 직접 전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전력을 쏟았습니다.”
제품이 포장·배송되는 과정을 담을 카메라를 찾고자 100여 종의 카메라를 테스트했다. “단순히 화질만 좋은 거로는 역부족이었어요. 자동으로 초점이 맞춰지는 오토포커스 기능이 잘 작동하는지, 하루 10시간 작동시켜도 오랜 기간 쓸 수 있을 만큼 내구성이 충분한지 등을 고려했습니다.”
소비자가 받을 물건이 어떻게 포장됐는지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영상 좌측 상단에는 포장된 날짜와 시간을 적었다. 송장번호와 함께 전산에 기록돼 분실·교환·반품 이슈가 발생해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기존 물류 방식을 이용할 때 드는 시간의 10분의 1이면 돼요.”
영상 보관 기간은 고객사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대부분 한 달 동안 보관하고 자동 삭제되는 옵션을 선택하는데, 1년 동안 보관하는 업체도 있다. “세탁 업체가 대표적입니다. 겨울철 외투 세탁을 맡겼다가 다음 해에 얼룩이 있다며 항의하는 고객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물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수는 다양하다. 여러 식자재를 주문했는데 소고기 같은 고가의 음식 재료만 배달되지 않았다며 항의하는 소비자, 배송 과정에서 분실된 것이 명백한데 일단 발뺌하고 보는 택배기사도 있다. 리얼패킹 전산 기록과 포장 영상이면 분쟁 종결은 시간문제다.
“아프길 바라면서 보험에 가입하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단지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으로 가입하는 게 아니죠. 리얼패킹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나 있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존재해요.”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증거의 힘
리얼패킹이 다루는 포장 건수는 연평균 270% 늘고 있다. 한 고객사에서 한 달 많게는 50만 건까지 촬영한다. 물류 관련 통화 시간은 평균 30% 감소했고, 고객 문의 처리 시간은 99% 줄었다. 고객사의 85% 이상이 2년 동안 꾸준히 리얼패킹을 이용하고 있는 이유다.
2021년 1월부터는 전 세계 190여 개국에 리얼패킹 서비스를 시작했다. 해외배송의 경우 배송 기간이 길고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다 보니 오배송 등의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가 더 까다롭다. 한국뿐 아니라 해외 여러 기업에서 소비자와의 분쟁을 예방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 국어를 지원하고 있으며 추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영상의 힘은 CCTV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골목마다 CCTV가 촘촘하게 설치되면서 연쇄살인, 강도 등 강력범죄가 크게 줄었어요. 영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형사 사건이나 물건 포장 외에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과 노하우로 더욱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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