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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포항공대 출신 은행원, 연 20% 이자 대기업 직원에 놀라서 벌인 일

국내 1호 중금리 대출 플랫폼 개발기

8퍼센트 이효진 대표. /8퍼센트

자금이 급한 이에게 대출은 오아시스다. 하지만 대출 이자가 너무 높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오래된다면, 대출은 족쇄가 된다. 1금융권 문턱을 넘지 못한 이들은 이자가 두 자리 수인 저축은행, 캐피탈, 카드론 등 2금융권 문을 두드리거나 사채를 써야 하는데, 최악의 경우 대출 돌려막기에 허덕이게 될 수도 있다.

신용에 따라 대출 금리 차가 극과극인 ‘금리 절벽’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나선 스타트업이 있다. 국내 최초로 ‘중금리 대출’을 시작한 핀테크 기업 8퍼센트다. 8퍼센트는 자금이 필요한 개인이나 사업자를 다수의 투자자와 바로 연결하는 P2P(peer to peer lending)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온라인으로만 거래해 운영비, 인건비, 임대료 등을 아낀 만큼 대출 이자를 낮췄다. 투자자들에게는 연 평균 6% 내외의 수익을 제공한다. 1금융권 은행원 출신인 8퍼센트 이효진 대표는 왜 중신용자에게 주목했을까. 이 대표를 만나 그 이유를 들었다.

◇은행 퇴사한 포항공대생이 창업 결심한 이유

우리은행 재직 당시 모습과(왼쪽) 일란성 쌍둥이 여동생과 함께한 모습. /본인제공
이 대표의 대학교 졸업 사진. /본인 제공

포항공과대학교 수학과 02학번이다. 스스로를 ‘수학을 전공한 수학포기자’라고 소개했다. “수학은 너무 아름답고 멋진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본격적으로 공부해보니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친구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한때 수학자를 꿈지만 제 길이 아닌 것 같아서 졸업 후 바로 은행에 취업했습니다. 제가 취업했던 2006년엔 금융공학이 각광받던 시절이라 수학 전공자들이 금융업계로 많이 진출했거든요. 2년 정도 창구에서 고객 상담하는 일을 하다가 본점으로 넘어가서 트레이딩, 리스크 모델링 업무 등을 했습니다.”

여느 대기업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가족의 상을 치르면서 ‘삶의 의미’를 스스로 묻게 됐다. “은행원으로 시작해 임원까지 됐다가 퇴직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를 떠올렸는데도 ‘이렇게 살다 떠나면 후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정이 보장된 삶이 아니더라도 인생을 걸고 뛰어들만한 일을 하고 싶었죠. 내게 의미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결심하고 2014년 5월 회사를 관뒀습니다.”

이 대표는 은행 퇴사 후 부산 앞바다(왼쪽)와 안나프루나(오른쪽) 등에서 휴식의 시간을 보냈다. /본인 제공

당장 새 일에 뛰어들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말에 창업 힌트를 얻었다. “‘해외에서 P2P 대출 비즈니스가 각광받고 있다’는 친구의 말이 단초가 됐어어요. 친구가 스치듯 한 말에 밤새 포털 사이트를 검색했습니다. 정보를 접하다 보니 은행원 하면서 만난 고객이 떠올랐어요. 대기업에 재직 중인데도 개인 사정으로 1금융권의 문턱을 넘지 못해 금리가 20%나 되는 대출 상품을 쓰는 분이었죠. 사회 초년생 때 중고차를 사기 위해 연 이자 18%짜리 금융 상품을 쓰는 친구도 있었어요. 중간이 없었죠.”

금리 격차가 큰 이유를 분석했다. “저금리를 제공하는 1금융권 입장에서는 위험을 감당하는 게 부담스러워요. 저축은행이나 캐피탈, 대부업체는 영업비용, 광고비 등에서 발생하는 유통 수수료가 높은 편이라 대출 금리가 높을 수밖에 없죠. 투자자와 대출 수요자를 바로 연결한다면 점포 임대료, 인건비 등의 구조적 비용을 아껴서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업 초기 사이트 폐쇄, 위기 딛고 활개

창업 초창기 한 행사에서 사업 모델을 발표하는 이 대표. /8퍼센트

저금리도 고금리도 아닌 ‘중금리 시장’을 개척하자고 결심하고 2014년 11월 8퍼센트를 설립했다. 시작은 소소했다. “낯선 사람에게 온라인을 통해서 돈을 빌려준다는 게 아주 생소한 개념이잖아요. 빌려준 돈이 떼이지 않을까 걱정도 될 테 고요. 그래서 처음엔 힘을 빼고 시작했어요. 간단한 홈페이지를 만든 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홍보 글을 올리고 친구들에게 공유해달라고 부탁했죠. 첫 상품은 중신용자를 겨냥한 한도 500만원, 금리 8%의 개인신용대출 상품이었어요. 자동화된 프로세스가 아직 없어서 투자자와 대출신청자를 수동으로 받았죠. 이후 비슷한 규모의 상품을 일주일에 하나씩 올리며 몸집을 키웠습니다.”

생소한 비즈니스인만큼 어려움도 많았다. “베타 서비스 시절 불법 사이트로 오인 받고 2015년 2월 사이트가 폐쇄당한 적이 있어요. 누군가가 금융당국에 불법 사금융이라고 신고했더라고요. 무통보 차단이라 ‘아 이대로 사업 못하겠다’ 싶었어요.”

위기가 기회였다. “금융감독원 산하의 핀테크지원센터의 도움을 받아 사업구조를 정비해서 한 달 만에 서비스를 재개할 수 있었거든요. 이어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이 P2P대출 기업에 벤처캐피털투자가 가능해지도록 규정을 마련하면서 P2P 대출 사업이 활성화될 발판이 마련됐습니다.

8퍼센트 서비스 구조. /8퍼센트
설 연휴 때 서울역에서 귀성객들에게 P2P 대출을 알리는 활동을 한 이 대표. /8퍼센트

재정비 시간을 거친 후 같은 해 5월 도곡동 타워팰리스를 담보로 하는 아파트 담보투자 상품을 출시해 호응을 얻었다. 주요 고객은 신용 4~7등급의 중신용자였다. “1금융에서는 대출이 안되고 2금융 쓰기에는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주요 이용자입니다. 저희 스스로는 ‘1.5금융’이라고 정의하죠. 홈페이지에서 대출을 신청하면 1분 만에 금리와 한도, 대출조건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일 신청도 가능합니다. 투자 고객 입장에서 8퍼센트는 ‘중위험, 중수익’ 재테크 상품이라고 보면 됩니다. 연 평균 수익률은 5~7% 정도고, 원금 보장형 상품이 아닌 만큼 분산투자로 리스크를 관리합니다.”

다양한 직업군에 중금리 대출 서비스를 제공했다. 재미있는 사례도 많았다. “개인 대출 건의 상당수가 이자 다이어트를 꾀하는 ‘대환대출’ 고객입니다. 금리 34% 대출을 쓰던 걸그룹 멤버분이 8퍼센트로 갈아타서 대출 이자를 14%로 낮춘 사례도 있죠. 핀테크 공부를 하고 싶다며 이자 8%로 1억원을 빌리고 완납한 국회의원도 있어요.”

8퍼센트만의 ‘관계형 금융’ 문화를 창출하기도 했다. “기업 고객의 대부분은 사업 확장 자금이 필요한 스타트업이었습니다. 공유 차량 스타트업 쏘카는 자동차 구매금으로 23억원을 빌렸어요. 당시 투자자들에 쏘카 이용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진행했죠. 쏘카 입장으로선 유동성을 확보하면서 마케팅 효과를 누린 거죠. 이 외에 공유 오피스 기업 패스트파이브, 숙박 이용 서비스 야놀자 등 유명 스타트업들이 8퍼센트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습니다. 지금 잘 자리 잡은 기업들이죠. 스타트업 생태계와 동반 성장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대부업’ 틀 벗어나기 위해 입법 투쟁, ‘온투법’ 제정 성과

한 행사에서 발언 중인 이 대표. /8퍼센트

8퍼센트가 쏘아올린 공 덕분에 P2P 업체가 증가했다. 이 산업을 주도했다는 뿌듯함은 잠시, P2P 비즈니스를 악용하는 이들이 등장하면서 ‘소비자 보호’가 과제로 떠올랐다. “대출자가 없는 유령 차주를 만들어서, 투자금을 받은 뒤 잠적하는 ‘먹튀’ 사례가 생겨났어요. 투자자 보호를 위해 P2P업에 대한 엄격한 규정과 관리가 시급했죠. 그래야 저희를 비롯한 P2P 업체들이 신뢰를 발판으로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본격적으로 ‘P2P 입법 투쟁’에 들어갔다. 5년 간 동종업계 창업자들과 20회 이상 국회 문턱을 드나들며 P2P 산업 법제화의 당위를 설명했다. “등록된 P2P업체만 이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게 법제화 작업의 골자였어요. 입법 관계자, 시민단체 등에게 중금리 대출 산업을 육성해야 금리 절벽이 무너지면서 금융 소비자의 선택 폭이 넓어지고, 이 산업이 법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체계적인 리스크 관리와 자금세탁 등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죠.”

업계 동료, 박용만 대한상의회장, 박영선 장관과 온투법 통과를 자축하는 모습. /8퍼센트

치열한 설득 끝에 2020년 ‘온투법(온라인투자연계금융법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 올해 8월부터 시행됐다. 이제 정식 등록업체가 아니면 아무나 투자 플랫폼을 세우고 대출을 중개할 수 없다. 8퍼센트는 온투업 1호 등록업체로 선정됐다. “온투법은 세계 최초의 P2P금융 전용 법률이자, 국내에서는 17년만에 제정된 신금융업법입니다. 창업가로서 제가 하는 사업과 관련한 제도가 아예 없다가 법까지 만들어지는 일을 경험하니 뜻깊었어요. 이제 대부업이 아닌 온투업으로 인정돼 토스, 카카오페이, 핀다 같은 빅 핀테크에 대출 상품을 소개할 수 있게 됐어요. 앞으로 제휴 플랫폼을 확대하는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투자자의 경우 일반 투자자, 소득적격 투자자, 전문 투자자로 구분하고 집단 별로 투자 한도를 달리 설정했다. 온투법을 발판으로 은행, 증권, 보험, 저축은행 등의 기성 금융기관과 기관투자 제휴도 논의 중이다. “이들이 온투기업과 대출 채권을 검증하는 역할을 하며 투자에 참여한다면 개인 투자자를 보호하는 효과도 발생합니다. 결국 시장에 대한 신뢰가 상승해 산업이 더욱 발전하게 되겠죠.”

◇한국 고유의 ‘계’문화를 기술에 접목, 금융 사다리 창출하고파

온투업 등록을 반기는 8퍼센트 구성원들. /8퍼센트

그동안 다양한 투자 기관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2015년 5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로부터 첫 투자를 받았어요. 법인 설립한 지 6개월도 안 된 시점에 디캠프가 직접 투자한 1호 기업이 된 거죠. 은행권에서 출자한 재단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게 큰 도움이 됐어요. ‘기존의 금융권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리게 됐으니까요. 이후 KG이니시스, SBI인베스트먼트, 캡스톤파트너스 등의 VC 업체에게 시리즈A 투자를, 2018년에는 DSC 인베스트먼트 시리즈B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누적 대출 신청금액은 27조원. 이 중 1.3%에 해당하는 3630억원만 대출을 집행했다. 수익률과 리스크 지표 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우리 고유의 계 문화를 금융에 접목해 금융 소비자끼리 상부상조하는 시스템을 창출했다. /더비비드

8퍼센트가 ‘금융의 사다리를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자금이 부족한데도 고금리 대출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 대안을 제시했으니까요. 실제로 저희 고객 중에서 대출 고객이었다가 투자자로 돌아온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의 대출자가 투자자가 되는, ‘금융의 선순환’을 이룬 거죠.”

온투업체로 재탄생한 것을 발판으로 국민끼리 상부상조하는 금융 직거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당장은 중금리 대출이 필요한 분들에게 적절한 대출 상품을 공급하는데 주력할 계획입니다. 수치적인 목표는 연간 1000억원의 가계부채 이자를 절감하는 것이에요. 이를 실현하려면 매년 1조원 이상의 대출을 실행해야 하죠.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중금리 대출 시장 규모가 100조원이 넘으니까요. 대출자도 투자자도 모두 만족하는 서비스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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