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성공 취업한 반전 스토리
“공부 머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공부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아침 8시에 학교에 가서 하루 10시간씩 공부했어요. 치열하게 살았죠.”
대기업 신입 사원 송해광(24)씨는 어린 나이에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어릴 적 그는 홀어머니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요리에 재미를 느껴 특성화고 조리학과에 진학했지만 꿈을 펼칠 기회가 없어 이내 좌절했다.
진로 고민에 빠진 그는 한국폴리텍대학 광주캠퍼스에서 길을 찾았다. 1년 반의 치열한 노력 끝에 지난 6월 LG 디스플레이에 취업했다. 송씨에게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는 과정에 대해 들었다.
◇20살 청년이 도피성 입대 택한 이유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나 한부모 가정에서 자랐다. “외아들이라 어머니와 각별합니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게 가장 큰 행복이었어요. 계란말이 같은 간단한 음식만 해드려도 너무 좋아하셨죠. 그렇게 요리에 재미를 붙여서 여수정보과학고등학교 조리과에 들어갔어요. 요리 대회도 나가고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도 취득하며 학창시절을 알차게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2016년 전라남도 광양에 있는 한 호텔에 취업했다. “주방일을 하고 싶었는데 홀서빙을 하게 됐어요. 급여도 적은 데다 적성에 맞지 않아 자괴감이 몰려왔죠. 저를 함부로 대하는 손님도 많았어요. 어린 나이에 욱해서 손님에게 말대답을 했다가 크게 혼난 적도 있었죠. ‘나는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어야 하는데.’ 당시 제 모습이 너무 초라한 것 같아 서글펐어요. 1년 7개월간 근무하다가 2017년 9월 공군에 입대했습니다.”
도피성으로 간 군대에서 인생 설계에 돌입했다. “주어진 자기계발 시간을 십분 활용했어요. 일단은 손에 잡히는대로 공부를 했어요. 한국사,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도 취득하고 책도 읽었죠.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는데 다시 수능 공부할 엄두는 안나서 전문대에 진학해야겠다 마음먹었죠. 할머니 집 근처에 있는 한국폴리텍대 광주캠퍼스도 후보 중 하나였고요.”
◇지인의 취업 성공 소식에 폴리텍대 도전
2019년 8월 전역하고 과거 일했던 호텔에서 용돈벌이 겸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곧 전기가 찾아왔다. “함께 일했던 2살 위 형이 한국폴리텍대를 졸업하고 현대제철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폴리텍대 진학이 선택지에 있었던 터라 호기심이 동했어요. ‘이렇게 잘 될 수도 있구나, 나도 도전해야겠다’ 결심이 섰죠.”
지난해 3월 한국폴리텍대 광주캠퍼스의 자동화시스템과에 2년제 학위과정으로 입학했다. 김준영 교수와는 지도교수와 제자 사이로 만났다. “자동화시스템과는 알고리즘을 짜서 로봇이나 기계를 작동하는 법을 배우는 학과입니다. 전기와 기계를 융합한 학문이죠. 동기들 대부분이 저처럼 기술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더군요. 군대에서 부사관으로 5년 복무하고 정수기 설치기사로 일하다가 입학한 형도 있었어요.”
◇한계점에서 만난 구원의 손길
조리학과 출신에게 ‘전기 저항’같은 개념은 생소하고 어려웠다. 공업 고등학교 출신인 동기들은 나날이 성장하는데 자신만 정체된 것 같아 초조함이 밀려왔다. “자동화시스템과의 특성상 전기·전자·기계·로봇 등 여러 분야를 배워야 합니다. 수학도 못하고 공부머리도 없는 제가 당장 소화하기에 버거운 주제들이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1학년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됐던 터라 상황이 더욱 좋지 않았어요. ‘아 내 길이 아닌가’, ‘나는 아닌가 보다’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어요.”
위기의 순간 김 교수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교수님이 밥과 술을 사주시면서 ‘너는 젊기도 하고, 어떻게 해도 될 사람’이라고 위로해줬어요. 누구에게나 해줄 수 있는 말인데 그 당시에는 정말 큰 힘이 됐죠. 교수님은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셨어요. 학교 러닝팩토리(기계부품의 설계, 가공, 시제품제작까지 가능한 융합실습공간)에 저를 데려가서 기계 사용법을 한 번 더 보여주시고 직접 다루게도 하셨어요. 이해 못하는 원리는 이해할 때까지 설명해 주셨죠. 서울에 있는 교수님의 모교에 함께 놀러간 적도 있어요. 김 교수님 덕분에 학교 생활이 즐거워졌어요.”
다시 학교에 마음을 붙이고 학업에 열중했다. “공부가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전력선을 이용해서 음성과 문자데이터, 영상 등을 전송하는 PLC(전력선 통신), 철을 직접 깎아서 금형을 만드는 실습 등을 하고 2학년 1학기때는 팀 프로젝트를 했어요. 9명이 팀원이 3개월간 학교 창의융합기술센터(러닝팩토리)에 모여 코로나 자동 소독기를 만들었죠. 부품 하나하나를 직접 제작해보니 실력이 부쩍 늘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퍼트를 올려서 기계정비산업기사, 산업안전산업기사 자격증도 취득했어요.”
◇모든 취업 과정 함께한 아버지 같은 교수
기계를 직접 다루고 정비하는 엔지니어가 돼야겠다고 경로를 설정했을 무렵 학과장실을 통해 LG 디스플레이가 구인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지원을 준비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취업 준비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서 막막하더라고요. 김준영 교수님이 언제까지 자기소개서를 써오라고 하셔서 써냈더니 ‘이대로면 너네 다 떨어진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자기소개서에 들어가야 하는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주셨어요.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요.”
김 교수는 모든 순간을 송 씨와 함께 했다. “서류 합격 발표 날 교수님과 냉면을 먹고 있었어요. 합격 소식을 알리니 면접과 인성검사 준비를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김 교수님을 포함한 교수님 세 분과 학생 세명이서 모의 면접을 연습했어요. 실전도 아닌데 너무 떨려서 땀을 뚝뚝 흘렸었죠. 김 교수님이 밤 12시에 사택에 불러서 자세부터 목소리 톤까지 체크하고 면접 복장에 대한 팁을 주신 적도 있어요. 어떤 구두를 신어야 하고, 넥타이는 기업 로고 색깔에 맞추는 게 좋다 등 면접의 모든 과정을 챙겨 주셨죠.”
만반의 준비를 한 덕에 무사히 면접 문턱을 넘었다. 지난 6월 중순, LG디스플레이 오퍼레이터로 최종 합격했다. “합격 전 날 너무 긴장돼서 밤을 꼬박 샜어요. 합격 발표를 받은 후 친구들에게는 무심한 척했지만 심장이 미친 듯 쿵쾅거렸죠. 어머니와 외가댁 가족들 모두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지금은 경기도 파주에서 수습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향에 있는 가족이 보고싶지만 같이 올라온 친구, 동생들과 의지하며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힘닿는 데 까지 하면 꿈은 현실이 된다
절박한 상황일수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원하는 게 있다면 모든 수단을 총동원했으면 합니다. 자존심이 강하거나 내향적인 사람이라도 도움 줄 만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부족한 점을 채웠으면 해요. 저 역시 전공 지식, 취업 정보뿐만 아니라 정장 입는 법조차 몰랐어요. 지도 교수님과 동기 형들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리에까지 못 왔을 거예요. 참 감사합니다.”
받은 것 보다 더 큰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는 게 목표다. “어릴 적 아버지가 안 계셔서 겪어야 했던 불편함이 많았어요. 전구 하나 교체하는 것조차 큰 공사였죠. 현재 근무하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다가, 은퇴 후에는 공업사를 운영하며 저와 비슷한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돕고 싶어요. 전구를 갈고, 문을 교체해주는 사소한 일이라도 그 아이들의 일상에 도움이 된다면 의미 있는 일이지 않을까요.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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