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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단돈 2만원으로 이런 인테리어가, 신박하네

그림 구독 스타트업 '핀즐'

(왼쪽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알료나 보로트니코바의 A1사이즈의 아트 포스터, 그림 정기 구독 서비스 핀즐 창업자 진준화 대표. /핀즐

코로나19 감염병 여파로 크게 성장한 산업 중 하나가 인테리어 시장이다. 오랜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기 때문이다. 리모델링까진 아니어도 가구 배치를 바꾸거나 소품을 활용해 집 분위기를 바꾸는 이들이 많아졌다. 인테리어를 바꾸는 주요 물건 중 하나가 ‘그림’인데, 웬만한 작가들의 그림은 가격이 부담이다. 어떤 그림을 집 안에 걸어야 할 지도 고민이다.

스타트업 핀즐(PINZLE)을 창업한 진준화 대표는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그림 정기 구독’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놨다. 진 대표가 직접 신혼집을 꾸미다 겪은 고민이 창업으로 이어졌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프론트원에서 진준화(36) 대표를 만났다.

◇월 2만원에 취향저격 그림을 집으로 배송

그림 정기 구독 서비스 핀즐을 창업한 진준화 대표. /더비비드

한 달 1만9800원을(6개월 정기구독 기준) 내면, 매달 한 장 씩 A1(594*841mm) 크기의 새 그림을 보내준다. 첫달 보내준 액자에 그림을 매달 교체해 걸면 된다. 지난 그림은 따로 회수하지 않고 고객이 보관하면 된다. 1년이면 12장이다. 핀즐 전속 큐레이터가 그림을 해설한 팸플릿도 함께 온다. 어떤 작가가 무슨 생각에서 그렸는지 알고 즐길 수 있다.

오너셰프인 아버지와 형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사업가를 꿈꿨다. 대학생 때부터 창업에 도전했다. 한양대 경영학과를 휴학하고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카페를 차렸다. 지인에게 투자 받은 돈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은 돈 2500만원이 창업자금이었다. 자신 있었는데 1년만에 폐업했다.

“근처에 여고가 3곳 있는 명당이었는데요. 주말에 손님이 미어터졌는데 평일에는 파리만 날렸어요. 나중에 폐업하고 실패 원인을 분석해보니 카페 영업시간과 학생 등하교 시간이 맞지 않았습니다. 고객이 꾸준히 찾아야 매출이 유지되는데 그러지 못했죠.”

핀즐과 처음 협업한 타쿠 반나이 그림. /핀즐

결과는 실패였지만 앞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데 교훈을 얻었다. “결국 최종책임자는 사장이에요. 화장실 변기가 막히면 직원을 시키는 게 아니라 사장이 뚫어야 해요. 누구나 하기 싫은 일을 손놓고 있으면 아무도 안합니다. 지금도 이 교훈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2010년 졸업 후 신생 스포츠마케팅 회사 '브리온' 초기 멤버로 합류했다. 지분도 받았다. “스포츠와 관련된 각종 신사업 개발을 담당했는데요. 새 회사라 하는 일이 무척 많았는데 재밌어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던 거 같아요.”

◇신혼집 인테리어하다 떠오른 아이디어

핀즐에서 협업한 작가 '베토 퍼미' 그림을 거실에 걸어둔 모습. /핀즐

2015년 결혼을 했다. 아내와 함께 신혼집을 꾸미다 의외에 대목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벽이 허전해서 그림을 걸었으면 했는데 마땅한 게 없었어요. 유명 작가 그림은 가격이 부담스러웠고, 저렴한 그림은 화질이나 품질이 맘에 들지 않았어요. 어렵게 맘에 드는 그림을 찾았는데 몇 개월 걸어두니 또 질리더라고요. 합리적인 가격에 매월 그림을 바꿀 수는 없을까 하는 물음이 떠올랐죠.”

한창 떠오르는 구독경제를 그림에 접목하기로 했다. “시장조사를 하던 중 매월 일정 금액을 내고 다른 그림을 배송해주는 서비스가 외국에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런 사업을 하겠다고 하니까 가족과 지인 중 열의 아홉은 ‘안된다’고 하더군요. 단 1%라 해도 제 스스로 확신이 있다면 밀어부쳐 볼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핀즐과 작업한 작가들. /핀즐

어떤 그림을 배송하느냐를 두고 고민하다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 원화가 아니라 포스터 형태로 배달한다. “원화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내에서 그림을 활용할 유통 권리를 핀즐이 독점적으로 갖는 형태예요. 작가에겐 새로운 홍보 창구가 됩니다. 고객 입장에선 구독 비용을 낮추면서 원화를 설치·소장하는 데 드는 부담을 줄일 수 있어요.”

둘째, 공간 분위기를 바꿔주면서 트렌디한 그림이어야 한다.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그림이길 바랐어요 창업 초기 저희만의 차별점을 위해 주로 해외 신진 일러스트 작가 그림을 주로 물색했어요. 전세계 미술가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비핸스(behance)’를 중심으로 인스타그램 등에서 괜찮은 작가를 추렸습니다. 미주, 유럽, 아시아 등 지역별로 섭외한 작가가 3~4명을 모았어요. 메일을 보내 회사를 소개하고 미팅을 요청했다. 진 대표와 창업 멤버들은 비행기를 타고 작가를 직접 만나러 가겠다고 소개했다.”

매월 그림과 함께 배송되는 팸플릿. /핀즐

서비스 없이 사업 구상만 갖고 미팅을 요청하니 거절당할까 두려웠다. 그런데 생각보다 흔쾌히 허락하는 작가분들이 많았다.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으니 경계하는 분들도 있기는 했는데, 의뢰 작가의 80%는 긍정적이었어요. 만나자고 하면 ‘한국에서 내 그림을 안다고’ 놀라워 하며 긍정적으로 이것저것 물었어요. 나머지는 스케줄이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요.”

원화가 가진 물성을 살리기 위해 그림별로 인쇄할 때 쓰는 종이를 다르게 택한다. 인쇄법도 고민했다. 핀즐에선 오프셋 방식으로 인쇄를 하는데, 기본적인 인쇄법이면서도 다양한 색을 선명하게 뽑아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초고화질로 디지털 파일을 전달 받는데요. 유화의 경후 초고해상도로 스캔해 질감과 붓터치까지 그대로 표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현대카드, 카카오, LG에서도 주목

핀즐과 LG생활건강 비욘드가 협업한 용기 디자인 제품. /LG생활건강

만반의 준비 끝에 2017년 9월 구독 서비스와 낱장 아트포스터 판매를 시작했다. 원화가 아닌데도 수요가 많다. 1500명이 핀즐 구독서비스를 이용한다. 전속 작가도 30명 확보했다. 낱장으로는 작품당 적게는 1000장에서 많게는 3000장 넘게 팔린다. 지금까지 5만장 이상 팔았다.

“쉽게 재밌게 그림 감상을 ‘경험’해보고 싶은 20~30대 트렌드를 반영했다고 생각해요. 어떤 그림을 골라야 할지도 모르는데 비싼 가격에 그림을 구매하기란 어렵죠. 인테리어 목적으로 저희 서비스를 이용했다가, 그림을 즐기게 됐다는 분들이 많아요. 아트포스터를 회수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난 작품은 지인, 가족에게 선물한다는 분이 많고요. 저희는 이런 과정에서 그림이 일상 속에 좀더 스며든다고 생각해요. ‘그림 초보’가 스스로의 그림 취향을 물색할 수 있는 첫발을 내딛게 한다고 생각해요.”

프랑스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아카드레(AKATRE)의 그림. /핀즐

작가에게는 그림을 활용한 스마트폰 케이스, 티셔츠 등 각종 제품을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매출 수익을 공유한다. “대기업과 아트콜라보도 하고 있어요. 저희가 작가들의 한국 유통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최근 7월에 LG생활건강 비욘드에서 나온 바디제품 용기 디자인이 저희와 협업한 결과물입니다.”

성장 가능성도 크다. “미술 복제품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어요. 인테리어 시장이 연간 14조원 정도 되는데 그중 복제품 시장이 7000억원 정도입니다. 그림이 소유의 대상에서 소비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는 겁니다.”

핀즐 그림은 지관통에 넣어 배송된다. 사진은 진준화 대표. /핀즐

대기업에서도 핀즐에 손을 내밀었다. 현대카드 앱에서도 핀즐 서비스를 구독할 수 있다. 카카오메이커스 본사에도 핀즐 그림이 걸려있는데, 홍은택 대표가 직접 지시했다. “최인아 책방이라는 곳에 저희 작품이 걸린 적이 있는데 홍 대표님이 보시고선 메이커스 사옥에 전시를 해주시고 메이커스 판매 기회도 주셨어요.”

핀즐은 진 대표를 포함해 4명이 공동창업을 했는데 지금은 진 대표 혼자 남았다. 직원 수는 7명 정도다. “누군가 공동창업을 하신다면 동업계약서를 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공동의 목표는 같지만, 그 목표를 두고 각자가 생각하는 실행 과정은 다르죠. 어느 누가 잘못하고 그런 건 아니고요.”

사업을 양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속도를 높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림 대중화를 목표로 하는 곳은 있었는데, 막상 꼽아보면 없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그 일을 실현하고 싶습니다.”

/이연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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