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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네이버 관두고 사업 실패, 국밥집 하려다 참지 못하고 벌인 일

예상매출 알려주는 가상창업 플랫폼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 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가상창업 서비스 잇땅을 만든 오아시스비즈니스의 문욱 대표. /더비비드

피땀으로 일군 내 가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영업 생존율이 암환자 생존율보다 낮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창업 준비의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서비스가 있다. 오아시스비즈니스의 ‘잇땅’은 지역·업종별로 예상 매출액을 미리 알려주는 가상창업 서비스다. 잇땅을 만든 문욱(45) 대표는 창업을 준비하며 느낀 고충을 살려 서비스를 개발했다. 자영업자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덕에 매달 5만5000명이 몰린다. 자영업자를 위한 플랫폼 창업기를 들었다.

◇건축통이 공유 주거 사업 빨리 철수한 이유

건축학과 출신인 문 대표는 15년간 건축과 부동산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본인 제공

중앙대 건축학과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 15년 간 건축과 부동산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2004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해외 건설 관련 업무를 했다. 2011년 네이버 건축팀으로 이직, 토지 매입부터 시공까지 네이버의 부동산 개발 업무를 전담했다. 경기도 분당에 있는 네이버 제 2사옥 현장 등에 참여했다. 2015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에 진학해 부동산 산업에 대한 전문성도 키웠다.

-대기업을 그만둔 이유가 뭔가요.

“하고 있던 일에 한계를 느꼈어요. IT회사인 네이버에서 제가 있던 부동산 개발 부서는 비주류였어요. ‘아들이 대학 갈 나이가 될 때까지 이 일을 지속할 자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육아휴직을 내서 1년 동안 제 자신과 커리어를 되돌아 본 후 창업을 실행했죠. 2017년 12월 회사를 다니면서 공유 주거 사업 ‘오아시스쉐어하우스’를 시작했습니다. 딱 1년 뒤 사업이 일정 궤도에 오르자 네이버에 사표를 내고 본격적인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네이버 재직 시절의 모습. /본인 제공

-왜 공유 주거 사업이었나요.

“15년간 했던 일이 전부 건축과 부동산 관련이다 보니 같은 분야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을 찾아야 승산 있겠다 싶었습니다. 점점 비중이 커지는 1인 가구를 모아 임대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셰어하우스(다수가 한집에 살면서 거실·욕실·주방을 공유하는 주거 형태) 사업이 딱이었죠.”

-그만둔 이유는요.

“사업 자체는 잘 됐어요. 사업 2년 차쯤 지점이 13개까지 늘었죠. 이를 기반으로 땅을 사서 대규모로 개발할 구상이었어요. 투자자 모집도 완료했죠. 토지 최종 계약을 하던 날, 땅 주인이 땅값을 10억원이나 올려 부르더라고요. 불가능한 금액이었습니다. 사업 기반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으니 곧 투자가 줄줄이 취소됐어요. 결국 2019년 6월 공유 주거 사업을 마무리해야 했어요.”

◇국밥집 창업 준비하다 목격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민낯

셰어하우스 사업 당시 모습. /본인 제공

공유 주거 사업 정리 후 국밥 장사를 할까 고민했다. 이때 느낀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대한 문제의식이 '잇땅'의 실마리가 됐다.

-자영업 준비를 직접 해보니 어떻던가요.

“시장이 미쳐있었어요. 상업용 부동산은 주택 시세처럼 적정 시세가 딱히 없어서 사기당하는 자영업자가 너무 많더라고요. 원하는 지역의 상가 견적을 받고 선택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어요. 정보가 산재해 있긴 한데 뭘 믿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요. 예비 자영업자에게 너무 불리한 구조였죠.”

오아시스구성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가운데 있는 인물이 문 대표다. /더비비드

-불리하다는 게 어떤 뜻인가요.

“우리나라 자영업자는 권고사직, 해고 등으로 비자발적으로 창업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가게를 열 생각조차 없던 사람들이니 정보가 부족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도 국내 창업자 절반 이상이 준비 기간을 3개월도 채 못 채우는 게  현실이었어요. 준비가 부족하니 개업 3년 뒤에 살아남은 매장이 5곳 중 1군데가 될 수밖에 없지요. 생계를 위해 제대로 된 정보 없이 자영업에 뛰어들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어떤 구상을 했나요.

“실질적인 정보공유에 방점을 뒀어요. 부동산 마케팅 플랫폼과는 다르게 단순 홍보보다는 예비 자영업자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죠. 그들이 가장 원하는 정보가 뭘지 고민해봤어요. ‘매출’이었어요. 창업 성공과 직결되는 요소니까요. 발품만으로는 알기 힘든 데이터들을 기술로 모아서 예상 매출을 예측하는 서비스를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얼마 벌 수 있는지 미리 알려드립니다

잇땅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정보. 회원가입을 하면 예상 매출도 파악할 수 있다. /오아시스비즈니스 캡처

창업 견적과 예상 매출 공유를 골자로 하고, 2019년 10월부터 플랫폼 개발에 돌입했다. 처음엔 단순 정보를 공개하는 형태였다. 2020년 7월에 베타(시험) 버전을 공개했더니 사용자 수는 만족스러웠지만, 페이지 체류 시간이 너무 짧았다. 노하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라 몰입도가 떨어지는 게 문제였다.

고민 끝에 메타버스를 활용해 직접 창업 체험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가상 창업 방식을 도입하자 재방문율이 6배 이상 늘었다.

-서비스 사용법이 궁금합니다.

“앱에 가입하면 원하는 지역, 업종으로 가상의 매장을 만들  수 있어요. 게임처럼 매장명, 운영 시간, 직원 수 등 세부 설정도 가능하죠. 원하는 매출이 나오지 않으면 설정을 바꿀 수도 있어요. 바로 매출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날씨, 유동인구 등 그날 매장의 주변 환경을 반영한 매출을 매일 오전 11시에 확인할 수 있어요. 현재는 데이터 수집이 원활한 서울 지역에서만 서비스가 되고 있는데 수도권, 지방 대도시 등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할 계획입니다.”

창업박람회 참가 당시 오아시스비즈니스의 부스. /오아시스비즈니스

-매출 측정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매출 측정 알고리즘을 만드는 데만 1년이 걸렸어요. 첫 단계는 데이터를 모으는 겁니다. 알고리즘을 구성하기 위해 카드사(인기 소비 목록, 업종 데이터, 대중교통 통계자료 등), 통신사(유동인구 등), 공공기관 등과 협력을 맺고 데이터를 공급받았어요. 매물 조건 등 견적 관련한 내용과 상권 관련 데이터는 지역마다 공인중개사에게 제공 받고 있어요.

예상 매출을 책정하는 과정은 좀 복잡합니다. 현실적으로 과거의 데이터만으로는 미래를 예측할 수가 없어요. 아르바이트 임금, 임대료 지수, 경기 실사지수, 물가 상승률 지수, 대출 금리 등의 변수들을 고려해서 예상 매출을 계산합니다. 현재 250개 항목 정도의 데이터를 모으고 있는데요. 이 데이터들을 응용해서 미래 매출을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생성하고 있습니다.”

-수익구조가 궁금합니다.

“제휴 맺은 공인중개사와 가맹본부에 받는 월 사용료가 주 수익원입니다. 공인중개사에게는 상권 분석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어요. 예비 자영업자 고객을 유치할 때 저희 자료들을 활용하더라고요. 가맹본부에는 프랜차이즈별 창업비용 및 예상 매출 자료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흙수저'가 만든 월 5만5000명 플랫폼

2021 부동산서비스산업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오아시스비즈니스

요즘은 상업시설의 건축계획단계부터 적정한 분양가를 찾아주는 ‘자동화 시스템’과 예상 매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대출상품을 찾아주는 ‘대안신용평가모형’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자동화 시스템의 경우 국토교통부가 주최한 ‘2021 부동산서비스산업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국토교통부)인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앞으로 목표는요.

“부동산 업계는 보수적이기 때문에 정보 공유에 폐쇄적인 분위기에요. 예비 자영업자 입장에서 용어가 어렵고 잘못된 정보도 많죠. 저는 객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정보를 제공해서 창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어요. 작지만 선한 의도에 기술을 접목해서 차근차근 모두에게 더 좋은 창업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제 꿈입니다.”

문 대표는 자신이 '스타트업 흙수저'였다고 소개했다,/더비비드

-창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처음 창업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저는 ‘스타트업 흙수저’였어요. 인맥도 없고, 창업 생태계에도 무지했죠. 불평만 하고 싶지 않아서 무조건 발로 뛰었습니다. 데모데이, IR 행사, 정부 지원 사업 등 ‘도움이 될 것 같다’하면 무조건 참여했어요. 그러다 보니 벌써 외장하드 속 1년 반 동안 쓴 사업계획서 갯수만 270개가 넘어가네요.

투자 심사역(벤처캐피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면 그냥 일단 찾아가보세요. 좋은 말을 못 들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조차 성장의 거름이 되더라고요. ‘세상에 틀린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시야를 넓히시면 좋겠습니다.”

/정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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