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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혼자 아이패드 살 돈 없었던 컬럼비아대 한국인 유학생이 한 선택

신용카드 없이 할부 결제 해주는 서비스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 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선구매 후지불 결제대행 서비스 ‘소비의 미학’을 만든 오프널의 박성훈 대표. /더비비드

취업 준비나 스펙을 쌓기 위해 목돈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엄마 아빠 찬스를 쓰지 못하는 청년들은 과도한 빚을 떠안을 위험이 있다. 신용카드 할부가 가능하면 다달이 아르바이트 등으로 갚아 나가면 되는데, 청년층의 카드 할부에는 제약이 많다.

스타트업 '오프널'의 박성훈(30) 대표는 신용카드가 필요없는 분할 결제 서비스를 만들었다. 박 대표를 만나 창업 스토리를 들었다.

◇미국 명문대 휴학하고 귀국해 창업

유학 시절 모습. /본인 제공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창업 목표가 생기면서 컴퓨터공학과로 전과했다. “자율적이고 주도적으로 일하고 싶어서 창업을 꿈꾸게 됐습니다.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 개념도 잘 모르던 때부터 무작정 관련 행사를 찾아다녔어요. 생태계를 익히고 관련 지식을 체득했죠. 졸업을 한 학기 앞둔 2017년 창업하기 위해 휴학하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겨우 한 학기 남았는데 졸업은 하지 그러셨어요.

“매일 까만 화면을 보면서 코딩을 하자니 너무 재미가 없더라고요. 공부가 창업에 도움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일단 뛰어들어야겠다는 결단이 섰어요. 미국에서 외국인 신분으로 창업을 하면 투자 유치 등에 현실적 제약이 클 것 같아서 한국행을 택했어요.”

박 대표는 과거 경험에 착안해 소비의 미학을 구상했다. /본인 제공

-첫 사업 아이템은 뭐였나요.

"푸드테크(Food-Tech) 사업을 구상했어요. 식당가서 오래 기다리면 싫잖아요. 식당의 빈자리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는 앱을 기획했습니다. 그러려면 식당 주인들을 설득해야 했는데요. 웬걸. 주인분들은 저희와 생각이 달랐어요.”

-어떤 간극이 존재했길래요.

“가게에 사람이 없는 상태를 노출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시더라고요. 얼마를 더 벌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을 감수하며 수수료를 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요. 단순 식당 소비자 시각에서 사업을 기획했다는 한계를 깨닫고, 시장조사 단계에서 사업을 접기로 했습니다.”

◇유학생 시절 '아이패드' 못 산 기억에 착안

인터뷰 중인 박 대표. /더비비드

박 대표와 동업자들이 필요를 공감하는 것, 해외에서 이미 잘 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생소한 것을 찾기로 했다. 호주의 후불 결제 기업 ‘애프터페이’를 발견했다. ‘선구매 후지불’(BNPL.Buy Now Pay Later ) 서비스다. “BNPL라는 개념을 접했을 때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유학생 시절의 서러웠던 경험이 불현듯 떠올랐어요.”

-어떤 경험이죠.

“아이패드를 사고 싶은데 신용카드가 없어서 못 산 적이 있어요. 현금 일시불할 능력이 안됐는데, 유학생에게 카드 할부는 먼 나라 얘기였죠. 당시 전공 서적을 파일로 만들어서 아이패드에 넣고 다니는 게 유행이었는데, 결국 저만 두꺼운 책을 들고 다녀야 했어요. 분할 결제를 못 하니 삶의 선택권이 축소되더라고요. 다른 한국 학생들도 신용카드가 없어서 불편을 겪는 경우가 많았죠. 신용카드와 유사하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결제 수단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실행했나요.

“한국형 애프터페이를 만들어 베타 버전을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이용률이 너무 저조했어요. 한국 소비자에게 너무 생소한 개념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설상가상 자금난이 닥치면서 회사 내부에 위기가 닥쳤어요. 맥이 빠졌죠. 관둘까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서, 각종 행사를 다니며 투자자와 멘토들을 만나 조언을 구했습니다. 덕분에 작년 6월 퓨처플레이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경험하세요, 돈 미리 내드립니다

소비의 미학 서비스 화면. /소비의 미학 홈페이지

작년 9월 ‘소비의 미학’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용카드 없이 분할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다. 사용자 입장에서 두 번에 나눠 물건값을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다. 주 이용자는 20대 초중반대 소비자다.

-구체적인 서비스 이용법이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패드를 11번가에서 구매하는 경우라고 해보죠. 11번가의 아이폰 구매 페이지 캡처를 소비의미학에 등록합니다. 이때 물건 값의 일부를 소비의미학에 납입합니다. 1차 납입이죠. 그리고 나머지 금액을 언제 내겠다는 2차 납입일을 지정합니다. 이게 확인되면 저희가 제품을 대신 구매합니다. 상품을 받아, 이용자에게 상품을 배송하죠. 그리고 이용자는 물건을 받은 후 선택한 2차 납입일에 나머지 금액을 납부하게 됩니다.”

-이용 연령, 한도, 할부 횟수에 제한이 있나요.

“성인 이상만 사용 가능합니다. 총 2회까지만 분할 결제 할 수 있고요. 2차 납부 금액의 한도는 20만원입니다. 이를 넘는 금액은 1차 납입일에 내야 하죠. 27만원 물건이라면, 7만원을 1차에 20만원을 2차에 내게 됩니다. 2차 납입 한도액은 테스트 기간 이용자들의 평균 결제 가격을 보고 결정한 금액입니다. 이용자별 상황에 맞춰 2차 납입액 한도를 다르게 적용하는 ‘대안신용평가모델’을 개발 중입니다.”

-미상환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결하나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인데요. 미상환자 비율은 굉장히 낮습니다.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완납하거든요. 만약 미상환 기간이 길어지거나 상환 의지가 없어 보이면 채권추심 등 법적 조치에 들어갑니다. 미상환자의 추후 상환 성실도에 따라 금융 교육, 일자리 주선 등 다양한 조치를 도입할 계획도 갖고 있어요.”

오프널 구성원들. /오프널

-수익 구조가 궁금합니다.

“결제금액의 1~2.5% 정도의 수수료를 부과해요. 수수료가 없으면 이 서비스의 폭발력이 더 클텐데요. 수수료를 내면서까지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알고 싶었어요. 일종의 시장 검증 용도입니다.”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으면 한계가 있는 모델 아닌가요.

“추후 온라인 판매 플랫폼을 가맹점으로 확보해서 그들에게 수수료를 청구하는 수익 모델을 구상하고 있어요. 해외의 BNPL 사업자들은 가맹점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아 수익을 올리거든요. 가맹점 입장에서는 광고 효과와 사용자 유입을 유도할 수 있고요. BNPL 서비스를 통해 그 가맹점에 재방문하는 소비자가 많기 때문에 수수료를 지불하더라도 BNPL 서비스와 파트너십을 맺길 원하는 추세죠.”

◇'이거 소미로 샀어'가 대중화되는 그날까지

소비의 미학은 지난 9월 디데이에서 우승했다. /더비비드
/오프널

정식 버전 출시 후 단번에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작년 중소벤처기업부의 스타트업 집중 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 선정된 데 이어, 지난 9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 주최 디데이에서 우승했다.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회원 수 18배, 거래액은 약 20배 증가했습니다. 성장을 발판으로 커뮤니티 기능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토스처럼 2030세대의 금융 커뮤니티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앞으로 목표는요.

“시장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는 거요. 대한민국의 결제 시장 규모가 약 1000조원 정도 되는데, 신용카드사가 이 파이를 다 가져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일정 부분은 BNPL이 차지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다만 한국에서는 분할결제 문화가 낯설어서 소비자에게 제대로 알리는 게 급선무에요. '적절하지 않은 소비를 조장한다’는 오해도 많이 받고 있는데요.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책임감 있는 소비’입니다. 기성의 신용평가로부터 소외된 Z세대들이 현명하게 소비하는 것을 돕고 싶어요.”

박 대표는 창업 전에 조직 생활부터 해볼 것을 권했다. /더비비드

-예비 창업자에게 조언 한마디 해주세요.

“창업 전에 팀원으로서 조직 생활을 해보세요. 사수 밑에서 일하는 경험도 쌓아보고요. 저는 사회 경험 없이 대표가 돼 조직 운영 과정 중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의사결정 과정 분석도 해보세요. 어떤 상황에 어떤 근거로 특정 결정을 내렸는지를 정리해 보란 거죠.

좋은 판단이든 나쁜 판단이든 복기해두면 나중에 팀을 이끌게 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동기부여하는 방법, 팀 정체 시기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 수 있는 방법 등 팀원으로서 체화한 노하우가 조직을 이끌 때 자양분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정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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