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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봉 1억원 넘던 광고쟁이가 스스로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유

비개발자의 데이터 예측 솔루션 개발기

텐디(tan.D) 김찬웅 대표는 마케팅 전략을 짜기 위해 소비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연구하다 데이터 마케팅 솔루션 ‘스피어 애널리틱’(Sphere Analytics)을 개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더비비드

타로는 몰라도 사주는 믿을 만 하다는 이들이 꽤 많다. ‘통계’라는 이유에서다. 그만큼 통계는 객관적이고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데 좋다.

통계 자료를 활용해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방법을 개발한 이가 있다. 텐디(tan.D) 김찬웅 대표(43)는 데이터 마케팅 솔루션 ‘스피어 애널리틱’(Sphere Analytics)을 개발했다. 마케팅 전략을 짜기 위해 소비자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연구하다 만들게 된 것이다. 김 대표를 만나 개발 스토리를 들었다.

◇일찍 깨달은 데이터의 힘

스피어 애널리틱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 새로운 마케팅 방법을 제공하는 솔루션이다. /텐디 홈페이지 캡처

스피어 애널리틱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소비자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 새로운 마케팅 방법을 제공하는 솔루션이다. 구매 가능성이 높은 고객을 따로 추출해 판매를 촉진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송하거나 특정 고객군의 이탈 가능성이 높아질 때 고객사에 위험 경고를 보내준다.

코카콜라, KBS, 세븐일레븐 등이 스피어 애널리틱을 이용해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국 보스턴대 재학시절(왼쪽)과 오버추어 재직시절(오른쪽). /김찬웅 대표 제공

김 대표는 2001년 미국 보스턴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원래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예체능은 취업이 힘들단 주변의 조언을 듣고 신방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문과 계열이지만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죠.”

전공을 살려 2005년 3월 광고 회사 오버추어코리아에 입사했다. 오버추어는 검색 결과의 상위 노출 자리를 경매로 판매하는 ‘검색 광고’를 처음으로 도입한 회사다. “신입사원도 꽤 많은 정보를 열람할 수 있었어요. 한 달에 검색이 많이 되는 키워드 TOP100, 키워드 별 입찰자 수 등을 보면서 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습니다.”

데이터는 늘어날수록 잘 관리해야 한다. 2007년 제일기획으로 이직한 이유다. “데이터 관리를 위해 신설된 디지털 본부에 합류했습니다. 첫 임무는 내부 직원들에게 광고 결과를 데이터로 분석하는 시스템을 교육하는 일이었어요. 처음엔 관심을 가지던 직원들이 실무 적용 단계부터는 외면하더군요. 빨리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론칭해야 하는데 언제까지 데이터나 보고 앉아있어야 하냐는 거죠.”

김 대표가 제일기획 재직 당시 스마트폰 초기 광고상품을 기획하는 모습. /김찬웅 대표 제공

고객사에 맞는 데이터 솔루션을 적용해 광고 효율을 늘려보자고 제안했지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돈이 문제였습니다. 솔루션을 적용하려면 기술 검토, 법률 검토, 내부 교육 등에 시간과 비용이 드는데 경영진 입장에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거죠. 할 수 없이 평범한 광고대행사 마케터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보너스까지 끌어모으면 1년에 1억원 정도의 급여를 받았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입사 10년 차가 되면서 스타트업 투자와 제휴 관련 업무를 맡았는데 주도적으로 일하고 있단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더 창의적이고 실무적인 일을 하고 싶었죠. 계속 관심을 두고 있었던 데이터 솔루션 분야로 창업 해보기로 결심하고 2016년 5월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마케터가 데이터를 만날 때

사업 초기 롯데 엑셀러레이터 사무실에서 개발에 열중하는 김 대표(왼쪽). /김찬웅 대표 제공

2016년 7월 텐디(tan.D)를 세웠다. 텐디는 원과 하나의 점에서 만나는 직선이라는 뜻의 탄젠트(tangent)와 이를 시각적으로 나타낸 알파벳 D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데이터에서 의미 있는 지점을 잡아내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솔루션 이름인 스피어(Sphere, 구)도 같은 맥락으로 지었다.

첫 사업모델은 앱 데이터 분석이었다. "2017년 초 버려지는 데이터를 대량으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4000만개의 기기에 어떤 앱이 깔려있는지를 분석해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광고 전략을 연구했습니다. 예를 들어 증권사 앱을 설치한 사람에게 투자 관련 광고를 보여줬을 때 클릭률이 높아지는 식이죠."

개발에 매진하느라 야근을 밥 먹듯이 했다는 김 대표. /김찬웅 대표 제공

2017년 10월 스피어를 출시했다. 영업을 다닐 때마다 긍정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2018년엔 앱 설치 패턴을 분석하는 알고리즘 특허 3건을 등록했다. SKT, 제일기획 등 고객사가 늘어나던 시기에 위기가 찾아왔다. 데이터를 제공해주던 곳에서 직접 데이터 관련 사업을 하겠다며 더 이상 데이터를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모든 것이 중단됐다. 남몰래 두 손을 모아 기도할 만큼 절망적이었다. "사람들이 점집을 왜 가는지 알겠더군요. 하지만 물러설 순 없었습니다. 집에 있는 아내와 세 아이는 물론이고 14명의 직원들까지 저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스스로를 용기있는 세 아이의 아빠라고 소개하는 김찬웅 대표. /김찬웅 대표 제공

새 사업 아이템을 고민했다. 마케터로 일하던 때의 고충이 떠올랐다. “새로운 데이터를 다룰 일이 생기면 ‘박사님’ 같은 전문가를 찾아야 하는 게 일이었어요. 원하는 결과물을 받으려면 2~3일은 기다려야 했죠.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마케팅 전략을 짤 때 더 다채로운 아이디어가 넘쳤을 겁니다. 개발 지식이 없는 마케터를 위한 데이터 분석 솔루션을 개발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죠.”

고객사가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분석 솔루션 개발에 착수했다. “개발 담당 직원에게 개발자가 아닌 사람도 일상적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여러 번 강조해야 했습니다. 개발자의 눈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마케터에겐 고객 데이터를 조회하고 편집하는 일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니까요. 10년 전의 제가 쓸 수 있는 수준에 맞춘다고 생각하면서 개발에 집중했어요.”

◇써 보고 판단하세요

한 해를 꼬박 개발에 전념한 끝에 2020년 1월 ‘스피어 애널리틱’을 정식 출시했다. /더비비드

한 해를 꼬박 개발에 전념한 끝에 2020년 1월 ‘스피어 애널리틱’을 정식 출시하는 데 성공했다. 스피어 애널리틱은 고객사가 자체 앱이나 오프라인 매장, 설문조사, CRM(고객 관계 관리) 등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떤 마케팅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돕는 시스템이다. 고객사가 다루는 데이터 규모에 따라 월 50만원에서 많게는 200만원의 이용료를 받는다.

스피어 애널리틱을 이용하는 마케터는 고객군을 방문자, 가망고객, 예비고객, 활성고객, 충성고객 등으로 정교하게 나누어 관리할 수 있다. 가령 키즈용품 할인 행사 메시지를 전송한다고 할 때 100만원을 들여 모든 가입자에게 보내는 대신 5만원으로 최근 아기용품 구매자에게만 전송하는 것이다.

코카콜라에 데이터 기반 프로모션 전략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김찬웅 대표 제공

정식 출시 2개월 만에 첫 고객사를 유치했다. “코카콜라 관계자를 만나 스피어 애널리틱의 활용성을 설명했더니 ‘일단 써보고 판단하자’는 반응이었습니다. 3개월 동안 사용해보더니 원래 쓰던 글로벌 툴 계약을 해지하고 우리 솔루션으로 전면 교체했어요. 이 과정을 한번 겪고 나니 더욱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2022년 현재 현대카드, 세븐일레븐, 탑텐몰, KBS 등에서 스피어 애널리틱을 사용하고 있다. 고객사 10 곳 중 7곳 이상이 재계약한다. “지난해 한 이커머스 고객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어요. 스피어 애널리틱를 통해 정밀 타깃팅 한 소비자에게 마케팅을 했더니 효율이 10배는 더 좋아졌다고요. 유명 외국계 회사를 비롯해 비슷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곳도 있지만 비개발자 마케터에게 최적화된 솔루션은 스피어 애널리틱이 유일할 겁니다.”

◇안정의 다른 이름 ‘정체’

텐디 매출은 매년 3배 이상 성장했다. 2022년 예상 매출은 15억원이다. /더비비드

매출은 매년 3배 이상 성장했다. 2022년 예상 매출은 15억원이다. “개인의 데이터 관리를 돕는 솔루션도 개발하고 싶어요. 아마 구글은 제가 몇 시에 어떤 커피를 마시는지까지 알고 있을걸요. 그런 데이터들을 사용자 주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겁니다. 자신의 생활 패턴을 들여다보면서 ‘평균적으로 하루에 커피를 몇 잔 마시는지’,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로 어떤 곳을 선호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겪으면서도 창업을 후회한 적은 없다. “솔루션을 개발하면서 자금이 바닥난 적이 있습니다. 대출을 받아 직원들 월급을 주면서 여기까지 왔죠. 그럴 때도 전 제자리걸음이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대기업에서 정해진 월급을 받던 때가 제 인생의 정체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창업을 한 이후엔 매년 성장하는 스스로를 발견합니다. 올해의 ‘나’와는 또 다른 내년의 ‘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죠.”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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