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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밴드 음악에 미쳤던 아빠, 음악 접고 4살 아이 위해 벌인 일

어린이 위한 서비스 출시한 그림 구독 스타트업

저 직업은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저 일을 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궁금한 일이 있으셨나요. 직업별 궁금증을 해소하는 ‘그 일이 알고 싶다’ 시리즈. 이번 편에선 기업 CDO(디자인 책임자)가 하는 일을 소개합니다.

핀즐 키즈라인을 론칭한 남필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더비비드

그림은 성장기 아동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림이 곁에 있으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정서 발달을 도모할 수 있다. 특히 부모가 그림에 대해 설명해주면, 아이의 의사소통 능력과 창의력을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림 구독' 스타트업 핀즐은 4~7세 성장기 아이 교육에 도움이 되면서 인테리어 효과도 있는 그림을 서비스한다. 아이가 작품을 이해하고 체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도 함께 제공한다. 핀즐에서 키즈라인을 기획한 남필우(39)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O.최고디자인책임자)를 만났다.

◇디자인 전공 후 밴드 활동, 예술은 가장 훌륭한 자기 표현 수단

핀즐은 그림 구독 서비스를 운영한다. 최근에는 키즈라인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핀즐

핀즐은 월 구독료를 납부하면 정기적으로 그림을 배송해주는 그림 정기 구독 서비스를 운영한다. 그림에 대한 저작권을 소유한 IP(지식재산권) 플랫폼 스타트업이다. 협업하는 국내외 아티스트의 그림을 국내에 독점 제공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구독자는 매월 핀즐이 자체 선정한 국내외 아티스트 1명의 작품(A1 아트포스터)과 그를 인터뷰 한 잡지를 받아 볼 수 있다 한 달 평균 구독료는 1만 9000원 정도다.

최근 ‘키즈라인’ 그림 판매를 시작했다. 아이의 정서 발달에 도움이 되는 A3 사이즈의 그림 포스터다. 작가가 직접 쓴 엽서, 스케치에 색칠할 수 있는 컬러링 페이퍼, 그림 지도에 관한 플레이 가이드, 리무버블 스티커 등도 동봉한다.

밴드 보컬 활동 시절, 직접 차린 독립 출판사에서 발행한 잡지. /본인 제공

남필우 CDO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 한 일은 음악이었다. “어려서부터 저를 드러낼 수 있는 음악이 좋았어요. 밴드 활동을 하면서 음악을 통해 저를 가감없이 드러냈죠. 감정을 실어 곡을 만들고, 노래로 그 감정을 승화시키는 게 좋았습니다. 그런데 고정적인 수입 없이 음악 활동만 할 수 없겠더라고요. 2010년 한 중소기업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들어갔습니다.”

재직 중에도 창작 욕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2016년 디자인 스튜디오 겸 독립 출판사를 차렸다. “예술이 담긴 책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모든 사진을 필름으로만 찍는 잡지를 발행했어요. 단골 구독층이 있어 지금도 1년에 2권씩 발행하고 있습니다. 미술, 음악 등 저만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표현해내는 일은 제 삶의 원동력이에요.”

직장 생활 10년 차에 접어들 때 새로운 도전에 목이 말랐다. 2015년 군대 후임이던 핀즐의 진준화 대표와 연이 닿아 디자인 작업을 도왔다. “핀즐 초창기에 브랜드의 이미지 작업을 외부에서 도왔어요. 스타트업이다 보니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하잖아요. 스스로에게도 자극이 되더라고요. 제대로 작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때마침 정식 제안을 받아 핀즐에 합류하게 됐어요.”

◇4살 아이 방에 둘 그림 고민하다 떠오른 사업 아이템

4~7세 아이들을 위한 그림을 제공하는 핀즐 키즈라인. /핀즐

2019년 입사 후 CDO로서 핀즐의 브랜드 이미지 개선 작업에 착수했다. “CDO는 브랜드의 시각적인 부분을 총괄해요. 핀즐 홈페이지에 반영된 시각적인 요소부터 제품 패키지 디자인까지 제 손을 안거치는 게 없죠. 그림 구매자에게 주는 작가 인터뷰 책자 디자인이나 구독 서비스 패키지 이미지 등 핀즐이라는 브랜드의 시각적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손봤습니다.”

‘모든 연령대의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까.’ 브랜드의 이미지를 고민하다보니 보다 근본적인 질문까지 도달하게 됐다. 그때까지 핀즐은 아동 대상의 서비스를 제공한 적은 없었다. “소비자의 생애 주기를 고려했을 때, 어릴 때 부터 핀즐의 서비스를 접하도록 하는 게 장기 소비자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4살 아이의 방을 꾸미면서 더 큰 영감을 얻었다. “아이 방을 꾸미기 위해 핀즐 그림 중에서 무엇을 걸어둘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기존 핀즐 그림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아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할 뿐더러 아이의 방과도 어울리지 않았어요. 부모라면 아이 방에 두는 물건이 성장기 발달에 도움이 되는지, 안전한지 등 여러 요소들을 고려하게 되잖아요. 저처럼 고민에 빠지는 부모들이 많을 것 같았어요. 고민을 덜어내는 일환으로 아이를 위한 그림을 판매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색감, 소재, 인테리어 3박자를 두루 갖춘 작품을 찾아라

색감, 소재, 인테리어의 3요소를 고려한 키즈라인. /핀즐

2021년 하반기부터 키즈라인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핀즐의 기본 구독 서비스는 그림을 선정할 때 작가의 작화 의도가 1순위 고려 대상이다. 작가의 의도를 소비자에게 전하는 게 중요하다. 반면 키즈라인은 철저히 아이를 위한 서비스가 돼야 했다. 작품을 해석하는 아이의 시선에 초점을 뒀다. 아이가 그림에 흥미를 느끼고 작품 설명을 이해할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까다롭게 작품 기준을 선정했다. “색감, 소재, 인테리어 등 크게 3가지 요소를 선정했어요. 빨강, 파랑 같은 선명하고 명쾌한 색이 아이의 분별 능력을 키우는 데 좋아요. 그리고 과일, 자동차 등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소재를 바탕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른 방에 둬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심미성이 좋은 작품을 물색했어요. 집에 전시하는 그림이니까 인테리어에 해가 되면 안된다고 생각했거든요.”

선정 기준을 정한 뒤 그에 맞는 작가를 섭외했다. 5명의 신진 작가를 발굴해 계약을 맺었다. “그림 선정 기준을 정하고 작가를 섭외하기까지 2달이 걸렸습니다.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은 과정이죠. 작가와 작품 선정은 보통 큐레이터가 담당하는데, 키즈라인은 저도 많이 관여했어요. 현재는 작가 5명의 21가지 그림을 제공하고 있어요. 새로운 작가 섭외를 계속 할 예정입니다.”

◇‘집은 미술관, 부모는 도슨트’

아이에게 미술관에 온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목적. /핀즐

2021년 12월 키즈라인을 론칭했다. 아이에게 미술관에 온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목적이다. 집이 미술관, 부모는 도슨트가 될 수 있도록 패키지를 구성했다. “그림 감상을 특별한 경험으로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패키지 하나에 작가의 손편지가 적힌 엽서, 드로잉 페이퍼, 리무버블 스티커 등을 담았죠. ‘선물’의 느낌을 주기 위해 편지를, 아이가 상상력을 바탕으로 채색할 수 있도록 드로잉 페이퍼를 추가했죠.

드로잉 페이퍼 상단의 작가 이름 옆에 아이 이름을 쓸 수 있는 칸을 만들었어요. 합작한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죠. 페이퍼 안에는 그림에 대한 정보와 질문이 담긴 ‘플레이 가이드’가 적혀있어요. 아이에게 그림을 설명한 부모를 위한 지침서 역할을 하죠.”

친환경 소재를 사용한 액자. /핀즐

아이들 대상의 제품인 만큼 소재에도 신경썼다.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최대한 배제했어요. 그린가드(실내 공기질에 대한 친환경 인증) 인증을 받은 친환경 라텍스로 그림을 인쇄했죠. 잉크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아요. 액자는 날카로워서 다칠 수 있는 알루미늄 소재 대신 나무로 마감처리를 했어요. 갈라짐이 적고 견고한 오리나무 원목을 사용했습니다.”

출시한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소비자 반응이 좋다.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그림을 구매한 부모가 그림과 함께 찍은 아이의 사진을 올리며 아이가 그림을 좋아한다는 감상평이 많이 올라오고 있어요. 기분이 좋습니다.”
유아기 아이를 둔 부모를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홍보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블로그, 유튜브 두 채널에서 활동할 서포터즈를 모집할 생각입니다. 육아 인플루언서를 활용한다면 파급력이 좋을 것 같아요. 육아 커뮤니티도 저희의 홍보 무대죠.”

◇캔버스를 상상력의 놀이터로

예술에도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남 CDO. /더비비드

핀즐 키즈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계속 탐구하고 있다. 제공 작품 수를 늘리기 위해 국내외 전시장 등에서 작가를 발굴하고 있다. 키즈라인 구성도 끊임없이 연구 중이다. “지금은 종이 편지로 작가와 아이를 연결하지만 훗날 영상 편지로도 만나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서비스를 구상 중입니다.”

예술을 상업 영역에 접목하는 CDO는 항상 ‘메시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예술은 작품 활동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에요. 보기 좋고 예쁘기만 한 걸 넘어서 의미가 담겨야 더 큰 영감을 줄 수 있어요. 키즈 라인에 엽서나 플레이 가이드 등을 동봉한 것도 아이들이 작품이 내재한 메시지를 체화하도록 장려하기 위해서죠.

회사 디자인을 총괄하는 자리지만 실무에서 손 떼지 않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CDO부터가 브랜드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설정해야 구성원들이 이에 맞춰 움직일 수 있죠. 앞으로도 핀즐은 메시지를 우선순위에 두고 일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서비스를 어떻게 포장할지는 나중에 고민해야 할 부분이고요.”

/윤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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