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터뷰

꽃배달 사업 처참하게 실패한 연대생이 재기를 위해 한 노력

취미생활 전문 플랫폼 '하비풀(Hobbyful)'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하비풀의 양순모 대표. /더비비드

코로나19 여파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자 취미에 몰두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취미 생활의 결실을 공유하는 게 일상이 됐다.

온라인 취미 클래스·키트(물건을 제조할 수 있도록 준비물이 갖춰진 꾸러미) 스타트업 하비풀은 여가 시간을 ‘업’으로 삼고 있다. 수공예 취미 키트와 영상 수업으로 연 2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취미 강사들이 판매용 키트를 간편하게 제작할 수 있는 플랫폼도 구축할 계획이다. 양순모(35)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국제개발협력가 꿈꾸던 연대생

2007년 필리핀 의료봉사활동을 했던 양순모 대표. /양순모 대표 제공

연세대 경제학과 06학번이다. 친구들이 대기업 입사나 고시 준비로 진로를 잡기 시작하던 대학교 2학년 무렵 필리핀 오지로 떠났다.

- 어릴 적 꿈과 관련이 있나요.

“네. 국제 개발 협력가가 꿈이었습니다. 2007년 약 3주간 필리핀 오지로 의료봉사활동을 갔죠. 짧은 기간이었지만 간이 병원을 순회하면서 취약 계층에 힘을 보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더 커졌습니다.”

- 그런데 창업을 했네요.

“군 제대 후 취약 계층을 도울 수 있으면서 전공도 살릴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했어요. 그때 ‘사회적 기업’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영리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지역 사회에 공헌하고 취약 계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이죠. 어려운 분들에게 일시적 도움이 아닌 자립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온라인 꽃 배달 사업으로 창업에 도전한 양 대표. /양순모 대표 제공

사회적 기업을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을 찾다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인액터스’라는 창업동아리에서 활동했다. "2013년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온라인 꽃 배달 사업을 창업했어요. 사회 취약계층 어르신들에게 꽃을 포장하고 배달하는 일자리를 제공했죠.”

- 첫 사업은 어땠나요.

“꽃이 생각과 달리 사업 규모를 확장하기 어려웠어요. 전문 플로리스트의 지도 하에 사업을 운영했지만, 그 이상의 업무 숙련도가 필요하더라고요. 동아리 활동으로 시작한 창업이었다 보니 의욕만 앞섰던 것 같습니다. 결국 직원들에게 급여를 주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어요. 직원들이 다른 곳에 취업하는 것을 도운 후 회사를 정리했어요. 경영 공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적 기업과 취미 생활의 교집합

사업 초기 양 대표의 모습. /양순모 대표 제공

2015년 대학 졸업 후 카이스트의 ‘사회적 기업가 MBA’ 과정에 입학해 이윤과 사회적 가치 창출 사이에서 균형 잡는 법을 배웠다. 재도전할 용기를 얻어 카이스트에서 주최한 창업 육성 프로젝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억원의 초기 투자금을 유치해 2016년 수공예 플랫폼 ‘하비풀(Hobbyful)’을 설립했다. ‘취미로 가득한 삶’이라는 의미다.

- 사회적 기업과 취미 시장, 간극이 큰데요.

“온라인 꽃가게 운영 당시 직원으로 계셨던 플로리스트분이 능력이 뛰어났어요. 그 분이 이직을 준비하는 동안 부수입 창구를 만들어주고 싶었죠. 그래서 오프라인 꽃꽂이 수업을 열 수 있도록 도와줬는데요. 막상 오프라인으로 수업을 운영하니 변수가 너무 많더라고요.

수업 신청은 했지만 개인적인 이유로 불참하면서 환불을 요구하는 일이 잦았고, 이용자의 입맛에 맞게 시간과 장소를 정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한 번에 지도할 수 있는 인원이 많지 않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도 어려웠죠. 꽃꽂이뿐만 아니라 다른 취미 활동도 마찬가지였어요. 2016년만 해도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이 활성화돼있지 않았거든요. 온라인 취미 시장을 공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직접 도전한 드로잉 키트를 보여준 양순모 대표. /더비비드

- 그래서 온라인 꽃꽂이 수업으로 출발한 건가요.

“처음에 그렇게 준비를 했는데, 잘 안됐어요. 꽃꽂이 지도 영상을 제작해서 신청자에게 준비물을 배송해주는 방식이었는데요. 후자가 문제였어요. 전국 각지로 꽃꽂이용 생화를 배달해야 했는데 꽃이 금방 시드니까요. 요즘처럼 택배가 정확한 날짜에 도착하지도 않았고, 이용자가 언제 수업을 수강할지 모르니 관리도 쉽지 않았습니다.”

-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나요.

“고민 끝에 유통기한 문제로부터 자유롭고 물류 관리가 용이한 아이템을 다뤄보기로 했어요. 시범적으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프랑스 자수와 비누 만들기 키트를 판매했는데요. 손익분기점을 목표로 한 금액의 400%나 넘기면서 펀딩에 성공했어요. 펀딩 키트를 구매한 소비자들을 직접 인터뷰했는데요. 더욱 다양한 종류의 취미 키트를 원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취미 시장의 가능성을 본 순간이었죠.”

◇수공예 전반으로 사업영역 확대

하비풀 본사에서 만난 양순모 대표. 양 대표도 실제로 취미 키트를 즐겨 한다. /더비비드

2017년 6월, 하비풀의 서비스 영역을 수공예 전반으로 확대했다. 이를 위해 취미별로 유명한 강사들을 찾아가 취미 키트 제작 협업을 제안하고, 키트에 필요한 부자재를 구하러 각지를 돌아다녔다.

- 하비풀은 어떤 플랫폼인가요.

“하비풀의 두 축은 '강연 콘텐츠'와 '취미 키트'입니다. 하비풀 홈페이지에서 취미 키트를 구매하면 프랑스 자수, 러그, 펀치니들, 드로잉 등을 집에서 시도할 수 있어요. 키트를 배송받으면 저희 홈페이지에 있는 온라인 영상을 보며 따라 만들면 됩니다.”

하비풀 본사에서 만난 양순모 대표. 인기 취미 키트 사이에 둘러싸인 모습 /더비비드

- 강사들과는 어떻게 협업하고 있나요.

“각 영역에 특화된 강사와 키트를 기획하고 제작 및 판매까지 함께합니다. 키트 제작 과정 중 준비물을 분류하고 상자에 포장하는 업무는 사회 취약계층이 담당하죠. 키트 판매와 강연료에서 발생한 수익은 강사들과 공유합니다. 캘리그라피, 드로잉 등의 분야에서 인지도 있는 유명 유튜버들과도 손잡았어요. 이 경우 소비자는 키트만 구매하면 별도 수강료 없이 유튜브 영상을 보고 제품을 만들 수 있죠.”

- 사회적 기업에 대한 목표의식은 내려놓은 건가요.

“처음부터 취약 계층을 위한 일자리 제공을 염두에 두고 사업 계획을 짰습니다. 2017년 초부터, 취미 키트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어요. 이들은 보통 OEM 업체나 취미 크리에이터에게 생산을 위탁하고, 자신의 플랫폼에 입점만 시키는 구조로 사업을 운영하거든요. 저희는 물류 관리까지 직접 했습니다. 키트에 들어가는 부품을 도매로 사와 수작업으로 분류하고, 포장했죠. 업무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꼼꼼함이 중요한 업무라, 사회 취약 계층도 충분히 접근할 수 있는 일자리라고 판단했습니다.

◇취미 강사 대상 ‘커머스 솔루션’ 구축

하비풀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크리에이터 커머스 솔루션.' /하비풀

취미에 진심인 현대인들을 겨냥한 덕일까. 2020년과 2021년 연이어 연 매출 20억원을 달성했다. 올해 초부터는 플랫폼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 키트 판매로 적잖은 매출을 냈는데 피보팅을 단행한 이유는요.

“협업하는 강사를 늘리다 보니 공급망, 인력 관리가 쉽지 않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업력이 쌓이면서 거래처 데이터는 1만개까지 늘었는데, 키트를 제작할 때 정보를 한눈에 찾기 어려웠죠. 키트를 제작하고 기획하는 과정을 자동화하면 콘텐츠 생산 속도를 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취약 계층 고용 원칙도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서비스 규모를 키워야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그래서 어떤 방향으로 틀었나요.

“‘크리에이터 커머스 솔루션’이라는 명칭을 붙였는데요. 취미 콘텐츠를 키트로 제작하고 싶은 강사들이 하비풀의 제작 사이트 안에서 부품을 주문하는 형태입니다. 일종의 B2B 비즈니스죠. 강사가 부품 주문을 하면 저희가 이를 토대로 키트를 제작해 유통 및 판매하는 방식이에요. 작년 10월에 이 아이디어만으로 IBK캐피탈, 신한캐피탈로부터 41억원의 투자금도 유치했어요. 강사 개인이 키트의 부품을 소매로 준비하는 것보다 단가가 낮아, 가격 경쟁력이 좋아요. 저희도 다양한 취미 프로그램을 빠르게 확보할 수 있고요.”

◇취미 분야의 오픈 마켓 목표

현재 30명의 직원이 함께 하비풀을 운영하고 있다. /하비풀 제공

기존의 취미 프로그램 키트 판매와 키트 자동 주문 웹사이트 제작을 병행하고 있다. 홀로 시작한 회사는 구성원 30명 규모 기업으로 성장했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욕심도 놓지 않았다. 인력 관리 사회적 기업 '두핸즈'를 통해 소개받은 취약계층 3명이 키트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

-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4월 물류 시스템 자동화를 목표로 온라인 사이트 개편과 오프라인 물류센터 구축에 힘쓰고 있습니다. 테스트 기간을 거친 뒤 6월이면 취미 강사 누구나 직접 키트를 주문할 수 있을 겁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취미 키트가 하비풀을 거쳐 제작되고 유통되는 것입니다. 마치 취미 분야의 오픈 마켓처럼요. 사람들이 더 합리적인 가격에 취미 생활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사업 규모가 커지면 물류 파트 일자리는 모두 취약계층에게 제공할 것입니다."

- 예비 창업자에게 조언이 있다면요.

“사업을 하며 느낀 건, 경영자가 추구하는 가치가 뚜렷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사회 취약계층에게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는 디딤돌을 만들고 싶다는 일념으로 버텼어요. 사업 도중 위기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데요. 그 순간 흔들리지 않을 원동력이 꼭 있어야 합니다. 방법론을 고민하는 건 그다음이에요.”

/김영리 에디터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