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재래시장 전전하던 한국 드라이기, 2년 만에 매출 100억원 꿈 이루다

더 비비드 2024. 7. 4. 16:38
40년 역사 강소기업의 패러다임 전환기


오픈마켓 전성시대입니다.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누구나 창업할 수 있고, 직장 다니면서 투잡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오픈마켓 셀러를 꿈꾸는데요. 하지만 막상 실행하려면 난관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성공한 오픈마켓 셀러들을 만나 노하우를 들어 보는 ‘나도 될 수 있다, 성공 셀러’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서울 양천구 신정역 인근에는 한자로 한일전자(韓一電子)라고 쓰여진 빛바랜 간판이 달린 3층 건물이 있다. 사무실 쇼윈도에는 수십 종이 넘는 헤어 드라이기가 전시돼 있고, 200평 규모의 공장 생산라인에선 직원들이 드라이기 모터를 조립하느라 분주하다. 한 직원이 말했다. “하루 1000~2000대, 많을 때는 한 달에 7만대 이상의 제품을 출고하느라 시간이 훌쩍 지나가요.”

한일전자의 오정현 대표. /한일전자

한일전자는 1978년 설립된 헤어 드라이기 전문 강소기업이다. 평생 드라이기 한 우물을 판 한일전자의 오정현(68) 대표는 44년째 신제품을 직접 개발하고 있다. 구성원들은 오 대표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다. 하지만 높은 기술력에 비해 회사 연 매출은 수십 년간 50~70억원 사이에서 정체돼 왔다. 재래시장∙오프라인 마트 판매에만 의존해 왔기 때문이다.

고착화된 줄 알았던 회사 성장세는 2년 전 연 매출 100억원 벽을 돌파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았다. 비결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의 비즈니스 구조 전환에 있었다. 한일전자는 2018년 쿠팡 로켓배송을 시작하면서 이듬해 매출 80억원을 냈고 2020년과 지난해 각각 연 매출 100억원 이상을 기록했다. 브랜드가 알려지면서 해외 시장 공략에도 시동을 걸었다. 쿠팡 헤어 드라이기 카테고리 판매량 1위를 달리는 오 대표를 만났다.

◇가성비 헤어 드라이기 한 우물만 40년 판 중소기업

부품을 조립 중인 오 대표. /한일전자

“평생 한 눈 팔지 않고 헤어 드라이기 하나만 팠습니다. 드라이기가 곧 제 인생입니다.”

중학교 3학년부터 가전 조립 공장에서 일했다. 1970년대에는 우리나라 1세대 헤어 드라이기 전문 기업 신우전자에서 총책임자로 활약했다. 창업 후 가정용 헤어 드라이기에 주력한 한일전자의 모토는 단순하다. ‘고객의 안전을 담보로 흥정하지 않는다. 장수하는 회사의 힘은 품질이다.’

제품 특허와 상표권만 40건 보유한 한일전자는 1991년 탈모에 도움 주는 원적외선 헤어드라이기를 발명했으며, 1994년에는 ‘파테크’(Patech)라는 자체 브랜드를 론칭했다. 현재까지 100종 이상의 가정용∙전문가용 드라이기를 개발했다. 2만원대부터 5만원 이상 제품까지 가격대도 다양하다. 특히 2만원대 가성비 제품들의 쿠팡 누적 상품평은 5만 건 이상이다.

공장에서 드라이기를 만드는 모습. /한일전자

-제품개발의 원칙은 무엇인가요.

“매년 매출의 10%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며 1년 이상 제품을 개발합니다. 제품을 실물 모형으로 만드는 목업(mock-up) 비용에만 2~3000만원을 투입하고, 2D~3D 디자인 작업도 수개월 진행합니다. 대기업 수준에 준하는 제품을 개발하지 못하면 출시하지 않는다는 게 원칙이죠. 기존 드라이기 모터보다 수명이 20배 이상인 BLDC 모터도 자체 개발했어요. 3만 시간을 버티는 힘이 있습니다. 지금 드라이기를 켜 놓으면 3년 뒤에도 작동하고 있을 겁니다. 정전기를 줄여주는 전기 이온, 모발의 적정 수분을 유지하는 원적외선 기술도 다양한 제품에 적용해 극강의 가성비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죠.”

-고객의 안전을 담보로 흥정하지 않는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바람 세기만큼 중요한 것은 접점 불량과 전선 꼬임으로 발생하는 단선 사고입니다. 40년간 제품을 만들다 보니 드라이기 제품의 만족도는 ‘믿음’에서 나오더군요. 저희 드라이기에 연결된 전선 피복을 뜯어보면 90여 가닥의 가느다란 철사로 촘촘히 꼬여 있어요. 타사의 많은 드라이기 전선은 두꺼운 철사 30가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우리는 가는 철사를 많이 쓰기 때문에 전선이 부드럽습니다. 기존 드라이어보다 전선 수명은 2배 이상 길어요. 수만 번 전선을 꼬았다 풀고 흔들어도 끄떡없습니다. 제품 출시 전 워낙 테스트를 많이 해서 도매업체에서 ‘그 정도면 안 끊어지니 제품을 빨리 납품하라’고 핀잔 줄 때도 있습니다.”

◇오프라인 판로 의존하다 온라인 판매로 튼 계기

한일전자 사무실에 붙은 드라이기 사진. /한일전자

높은 기술력을 자랑했지만 회사의 성장세는 빠르지 못했다. 2017년 기준 한일전자의 오프라인 유통 비중은 80%에 달했는데, 영업이익률이 높아야 3~4%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2만원짜리 물건을 팔아도 마진이 2000원도 남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업력에 비해 인지도도 부족했다. 오프라인 매장을 둘러봤을 때 파테크 브랜드를 알아보는 소비자가 거의 없었다. 브랜드를 론칭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이대로 가면 10년 안에 폐업할 것 같았다. 변화가 시급했다. 오 대표의 아들 오경수(41) 이사가 온라인 판매와 영업을 담당하며 힘을 보태기로 했다.

-오프라인 유통과 매출 구조는 어땠나요.

“2015년 중반부터 오프라인 매출이 점점 하락했습니다. 재래시장에서 월 7000~8000만원 수준의 매출이 나왔는데, 점점 줄다가 2~3000만원까지 추락했습니다. 마트 매출도 반 토막 났죠. 전자상거래가 뜨면서 오프라인 판매가 점점 죽어간 겁니다. 3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생산자-총판(왕도매)-대리점(도매상)-중도매-지역 도매상-소매상-소비자’에 이르는 복잡한 유통구조를 유지했는데요. 온라인에서 직접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청년 직원들과 대화 중인 오 대표. /한일전자
젊은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만든 세련된 외양의 파테크 드라이기. /한일전자

-그래서 어떤 변화를 시도했나요.

“우선 온라인 마케팅을 잘하는 20대 직원들을 뽑아 쿠팡에 입점했습니다. 처음엔 매출이 제자리걸음이었지만 믿고 맡겼습니다. 골프공도 들어 올릴 정도로 바람 세기가 강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콘텐츠도 만들고 젊은 취향에 맞게 제품을 소개했습니다. 제품 개발에만 집중한 저도 온라인 마케팅 프로세스를 젊은 직원들에게 배웠습니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제 또래인 5060 소비자도 휴대폰으로 헤어 드라이기를 사더군요. 제품에도 변화를 줬어요. 무게를 줄이고 핑크, 실버 등 청년 소비자가 선호하는 색감을 적용했죠. 온라인 비즈니스에 시동을 걸자 4년 만에 회사의 유통 판로가 바뀌었어요. 현재 온라인 판매 비중은 70%이며, 단일 유통 채널로는 쿠팡이 1등이에요.”

-온라인 채널 중 가장 집중한 곳은 어디인가요.

“아무리 인터넷에서 매출을 올려도 브랜드를 알리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무의미한 일입니다. 그래서 쿠팡의 로켓배송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당장 내일 머리를 말려야 하는 사람들은 오늘 드라이기를 시켜야 하잖아요. 이게 가능한 방법이 로켓배송입니다. 그래서 시작했더니 2만원대 가성비 제품이 불티나게 팔려 나갔습니다. 사업하고 40년 만에 처음으로 ‘가성비 좋습니다!’, ‘바람 세기가 강해 금방 머리가 마른다’ 등의 소비자 반응을 직접 접해서 신기했습니다”

◇온라인 판매 후 영업이익률 2배 껑충, 해외 15개국 수출

국내 전시회 참여 당시 모습. /한일전자

로켓배송 판매가 늘자, 증가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경기도 김포에 800평짜리 물류 창고를 매입했다. 품절을 막는 등 로켓배송 물량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다. 현재 물류창고에 다양한 종류의 제품 25만개를 보관 중이다.

-온라인 사업 시작 후 회사 운영 전반에 변화를 준 것 같네요.

“오프라인 유통에 집중하던 시기엔 지금처럼 재고관리를 하지 않았어요. AS를 문의가 들어온 제품의 재고가 없다면 답 없는 상황이 되는 거죠. 당시에는 아예 새로운 부품이나 제품을 보내는 등 대중없이 AS를 처리해서 손실이 컸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판매량에 맞춰 재고를 관리하기 때문에 그럴 걱정이 없습니다. 또한, 쿠팡 고객 후기에 나온 지적사항을 참고해서 제품을 개선합니다. AS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제품 품질도 좋아졌죠.”

-온라인 진출 후 성과는요.

“온라인에 진출하면서 회사의 글로벌 위상이 올라갔어요. 현재 미국, 인도네시아 등 해외 15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고요. 해외 바이어들의 수출 문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온라인 채널에 우리 드라이기가 노출되면서 협상력이 높아졌어요. 영업이익률도 7~8%로 종전 대비 2배 늘었고 직원도 최근 10명 이상 충원해 현재 50여명이 근무합니다.”

오 대표와 온라인 판매와 영업을 담당하는 아들 오경수 이사. /한일전자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기로에 선 중소기업에게 조언 한마디만 부탁드려요.

“기술 노하우까지 갖춘 중소기업들이 의외로 겪는 고질적인 문제가 적절한 판로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빠른 온라인 전환 전략이 필요하죠. 다양한 온라인 채널이 있지만 저는 쿠팡을 추천합니다. 특히, 로켓배송은 제품 노출이 잘 되고 소비자 유입이 높아 상품평이 쌓입니다. 그러면서 저절로 브랜드 인지도도 올라갑니다. 처음에는 직매입 방식으로 제품을 납품하는 비즈니스 전환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런데 딱 3개월만 버텨보세요. 선순환 구조에 적응돼 비즈니스가 잘 돌아가고 빠르게 성장할 겁니다.”

-앞으로의 계획은요.

“기존의 BLDC 모터를 쓰는 드라이기보다 바람 세기가 40% 강한 제품을 비롯한 여러 이미용 제품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최고의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체를 넘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한국 헤어드라이기=파테크’라는 인식을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콘텐츠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