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투자전략 마켓 ‘트레이딩뱅크’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투자해 본 경험이 없어도 ‘무릎에 사서 어깨에서 팔아라’라는 격언은 안다. 욕심부리면 사고파는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다는 의미다.
문제는 어디가 무릎이고 어디가 어깨인지 시원하게 답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데이터 기반 투자전략 거래 플랫폼 ‘트레이딩뱅크’를 만든 타임퍼센트의 장기벽(32) 대표를 만났다.
◇스티브잡스 동경한 공대생
타임퍼센트의 ‘트레이딩뱅크’는 가상 자산 투자 전략을 만들고, 그 전략을 거래할 수 있는 서비스다. 트레이딩뱅크가 제공하는 가상자산 차트 데이터를 분석해서, 나만의 투자 전략을 짤 수 있다. 그 전략을 거래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맘에 드는 전략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투자 전략 별로 모의 투자와 백 테스팅(투자 전략을 과거에 사용했다면 어느 정도 수익을 낼 수 있었는지 검증하는 작업)을 해볼 수 있다. 전략의 유효성을 검증하는 것이다.
2011년 한양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어릴 때부터 창업을 꿈꿨다. “학창 시절 우연히 읽은 스티브잡스 전기가 뇌리에 박혔어요. 사회 문제를 IT 기술로 해결하고, 그 기술을 전 세계인이 사용한다는 점에 매료됐죠. 대학에 가면 창업을 꿈꾸는 친구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공이 다양한 친구들도 만날 수 있으니 창업에 대한 견문을 넓히는 계기가 되겠다 판단했죠.”
창업 동아리에 가입하고 창업학 수업을 들으며 4년을 보냈다. 취업 생각이 없었는데 졸업 직전 마음을 바꿨다. “막상 4학년 2학기가 되니 창업 동아리 친구들 모두 대기업 취직을 준비하더라고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니 회사 생활을 해보는 게 창업에 유익한 경험이 되겠더라고요. 대기업이 돈을 어떻게 버는지, 운영 방식은 어떤지 등 경영 실무는 직접 체험해보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2018년 졸업과 동시에 한 통신사의 블록체인 연구소에 입사했다. 대기업 입사와 동시에 퇴사 시점을 스스로 정해뒀다. “2020년 5월까지 근무했는데요. 입사하면서 두 가지 목표를 세웠습니다. 사원일 때 사업 아이템을 미리 찾아두는 것과, 우수 사원으로 인정받는 거요. 사내 경쟁에서라도 성과를 보여야 치열한 스타트업 시장에서도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2년 연속 인사 고과에서 최고 등급을 받았어요.”
회사 근무 시간에는 블록체인 서비스 개발에 집중했다. 퇴근 후에는 개인적인 코딩 과제를 했다. “막연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알아 보니 자동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AI 프로그램이 있더군요. 개인적으론 투자나 주식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는데요. 무작정 주식 그래프만 보고 파이썬으로 투자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프로그램 개발이 재밌어 회사에 다니면서도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아침 8시까지 코딩하다가 출근했어요. 워낙 방대한 양의 데이터라 분석이 끝이 없었지만, 지치지 않고 너무 재밌더라고요.”
◇’퀀트’에 반해 대기업 퇴사
장 대표는 멘사 회원이다. 사업 아이템이 될만한 코딩 일감이 있을까 고민하다 2018년 11월 시험을 봐서 회원이 됐다. 멘사 회원들이 모이는 동아리 가입이 목적이었다. 그가 만들고 있는 투자 프로그램이 ‘퀀트’라는 걸 멘사의 투자 동호회에서 처음 알았다.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하지만 미국인 투자자들은 이미 70% 이상이 AI 투자 방식을 이용한다더군요.”
퀀트 투자는 인간의 개입을 배제하고 오직 데이터만 이용해서 돈을 불리는 AI 투자 방식이다. 컴퓨터 알고리즘이 주식⋅가상자산 등의 과거 지표를 수학⋅통계 기법으로 분석해서 투자 종목을 발굴하는 투자법이다. AI가 알아서 매수⋅매도 적기를 예측한다. “미국 유명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2017년 600명에 달하던 주식 트레이더(주식 거래 중개인) 중 컴퓨터 엔지니어 2명만 남기고 모두 해고했다는 이야기가 투자 업계에서 유명하죠.”
회사에 다니면서 ‘새벽 코딩’을 한 지 1년이 지났다. 투자 전략을 만들어 모의 투자로 전략을 시험해보고, 실전에 적용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제가 갖고 있던 모든 재산에 대출까지 더해 3억원을 마련했어요. 제가 만든 투자 프로그램으로 직접 투자를 해봤는데, 수익이 나는 거예요. 수익률이 15~25%를 상회하더군요. 돈을 벌었다는 기쁨보다, 직접 만든 프로그램이 작동한다는 뿌듯함이 더 컸죠.”
부업도 했다. 코딩하는 과정을 강의로 찍어 온라인 취미 강의 사이트에 올렸다. “제가 느낀 희열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강의 계획서를 통해 수강인원을 모으는 웹사이트에 강의를 올렸습니다. 1만명이 수강 신청을 하더군요. 시장성을 검증한 순간이었죠. 그 길로 퇴사하고 개발자와 편집자를 고용해 회사를 차렸습니다.”
2020년 5월부터 1년 동안 강의를 찍고 올리는 일을 반복했다. 경제학 지식 없이 투자 전략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몇년 간의 특정 주식 데이터를 모두 분석해서 매수⋅매도 시점을 가늠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됩니다. 분⋅일⋅주⋅월 단위의 주가 변동 폭을 프로그램에 입력하고, 재무제표에 있는 ROI(투자자본수익률), ROE(자기자본이익률) 등 수익성 지표를 분석해 투자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매수⋅매도 시점을 계산하는 거예요.”
◇코딩을 알아야만 퀀트할 수 있을까
강의 서비스를 이어가다 문제점을 발견했다. “코딩에 도전하시는 분이 많고, 수강자 만족도도 높은데, 완강률이 낮았어요. 30분씩 108개의 강의로 구성했는데요. 파이썬이라는 프로그램을 배우는 과정도 길고 투자 용어가 어려워 온라인 강의로는 지식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누구나 쉽게 투자 전략을 만들고 공유하는 장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투자하는 데 굳이 모든 사람이 코딩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나 쉽게 투자 전략을 만들고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배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주식 거래소처럼 투자 전략도 쉽게 거래할 수 있는 곳이요.”
2021년 5월 프로그램 개발에 돌입했다. 주식이 아닌 가상자산으로 분야를 틀었다. “가상자산이 주식에 비해 퀀트 투자에 더 적합한 자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4시간 거래돼 지속적인 데이터 추적이 가능하고, 주식보다 외부 요인에 영향을 덜 받는다고 판단했습니다. 투자자들 유형을 봐도 차트 데이터만 보고 단기로 투자하는 투자자가 많죠.”
강의 사업 이전에 만들어둔 투자 프로그램을 가상자산에 맞게 최적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디자인을 개선하고 사용법을 좀 더 직관적으로 만들었어요. 기존에는 혼자 사용할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전략을 생성하는 입력창이나 조절 버튼 등이 친절하지 않았거든요.”
지난 1월 CTO(최고기술경영자)를 뽑았다. “강의로 벌었던 돈을 모두 프로그램 개발에 투자했어요. 프로그램 고도화를 위해 개발책임자도 새로 채용했죠. 데이터를 수집하고 주문하는 시차를 최대한 좁히는 게 관건이었는데, 개발 끝에 종목 선정과 매수체결 시간 차를 1000분의 1초까지 줄였습니다.”
◇최대 규모 투자 전략 거래소가 목표
타임퍼센트는 내년 상반기 트레이딩뱅크 웹, 앱 서비스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플랫폼 구축을 50% 이상 끝냈다. 서비스의 주 수익원은 수수료다. 국내 주요 가상자산 거래소와 협업해 거래수수료를 공유할 계획이다. 이용자가 투자 전략을 만들어 모의 투자를 하거나 데이터를 분석해보는 건 무료다.
트레이딩뱅크에 접속하면 자산 보유 현황과 운용 중인 전략, AI가 전략을 실행하고 있는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전략을 수정하거나 새로 짤 때는 화면에 관심 차트를 띄워두고 지점을 선택하거나 직접 함수를 입력해 전략을 완성하면 된다. 쉽게 말해 차트의 낙폭이 크면 해당 가상자산을 매수하고, 목표 지점까지 도달했을 때 자동으로 매도하게끔 조절하는 것이다. 완성한 전략은 모의 투자를 통해 검증해볼 수 있다. 다른 이용자와 전략을 거래하는 것도 가능하다.
서비스 출시 전인데도 여러 투자 기관으로부터 서비스의 가치를 인정 받았다. 7월 은행권 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디데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해외의 경쟁 서비스들은 보통 이용자에게 100개 내지 200개의 지표를 제공해요. 반면 트레이딩 뱅크는 1000개 이상의 세분화된 지표를 제공합니다. 더 많은 정보를 이용해 유연한 투자 전략을 만들 수 있죠. 이 부분을 인정 받아 퓨처플레이 등 여러 투자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가상자산을 넘어 다양한 자산의 통합 투자 전략 거래소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다. “2025년까지 5만명의 회원을 모집하는 것이 단기 목표입니다. 서비스 안정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잘 짜인 코딩 프로그램을 보면 아직도 설렌다. “어렸을 때부터 창업을 꿈꿔왔는데도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어요. 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중간에 흔들리지 않아요. 확신을 어떻게 갖는지 물어보신다면 스스로 그 일이 정말 재미있는지 확인해보면 됩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도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일이 재밌다면 도전해보세요.”
/김영리 에디터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학 자퇴 후 이불 하나로 월 매출 5000만원 (0) | 2024.07.02 |
---|---|
농구공 꼴도 보기 싫어진 농구선수, 방황 거듭하다 택한 일 (0) | 2024.07.02 |
수백만원 대기업 제품에 도전한 한국 주부 (0) | 2024.07.01 |
28년 전 최연소 기능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현재 하는 일 (0) | 2024.07.01 |
"한국이 세계 최초 개발한 구강세정기, 美 문턱 이렇게 넘었습니다" (0) | 2024.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