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앱 스타트업 '마보'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에선 명상 열풍이 강타한 바 있다. 경기불황에 내몰린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힐링’이란 말이 유행하면서 정신적 치유와 위로·공감을 주제로 한 책이 인기를 얻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명상, 마음챙김 같은 적극적인 정신 수련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졌다. 2016년 시작한 국내 최초 명상 애플리케이션(앱) ‘마보’는 현재 가입자가 33만명을 넘어섰는데, 2020년 12월 대비 2.4배 증가한 수치다. 마보에선 월 구독료 5900원을 내고 초보자를 위한 7일 기초훈련과 기분별 마음보기, 상황별 마음보기 등 명상 콘텐츠 500여개를 이용할 수 있다.
회원의 절반 이상이 25~34세로, MZ세대가 주 이용자다. 평균 명상 참여 시간은 32분 19초로 10분대인 다른 연령층보다 압도적으로 길다. 마보를 창업한 유정은 대표는 “예전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의지력과 정신력 하나로 버텨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요즘 MZ세대는 스트레스 해소 방식도 진일보했다"며 "무작정 참기보다는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소화하려 한다"고 했다.
‘마보’를 창업한 유정은 대표 스스로도 스트레스 많은 직장인이었다. 우연히 글로벌 기업 '구글'에서 직원 대상으로 하는 마음챙김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그 개념을 국내로 가져와 마보를 만들었다. 유 대표를 만나 마보 창업기와 명상 대중화를 위한 노력의 여정을 살펴봤다.
◇책에서 찾은 인생의 전환점
2002년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한 유 대표는 외국계 회사 테일러 넬슨 소프레스(TNS)에서 마케팅 리서처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마케팅 관련 의사결정을 위해 시장조사를 하는 업무였다.
짧은 첫직장 생활을 마치고 인사조직관리 공부를 하기 위해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2005년 워릭대에서 조직인사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7년간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다. IBM GBS, 액센츄어, 삼일 PwC 등 다양한 회사를 거쳤다. “처음에는 컨설팅이 만사라고 생각했어요. 비효율·비합리적인 부분을 개선하고 구조를 바꾸면 직원의 행복도 역시 따라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더군요. 회사라는 조직은 문제의 근본 원인보다는 당면한 현안 해결에만 집중하게 돼 있어요. 무기력해지면서 번아웃이 왔습니다.”
다시 학교로 갔다. 서울대학교 조직심리학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우연히 읽은 책이 전환점이 됐다. 구글 엔지니어 차드 멩 탄이 쓴 책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다. 구글에서 직원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인 ‘내면검색(Search Inside Yourself)’이 주 내용이다. 차드 멩 탄이 스탠퍼드 뇌과학자, 심리학자 등과 함께 만든 명상 프로그램의 일종이다.
“7주 동안 20시간 진행되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이에요. 이를 경험한 구글 직원들의 업무 능력이 향상됐다고 알려지면서, 에릭 슈밋 당시 구글 CEO가 차드 멩 탄을 인적자원 부서로 발령냈죠. 2007년부터 구글의 공식 사내 교육 프로그램으로 쓰였어요. 고객 항의를 받아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다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서 큰 성과를 냈다는 등의 직원 인터뷰가 그 증거입니다. 이후 실리콘밸리에 있는 다른 회사도 내면검색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했죠.”
‘마음챙김’ 교육을 한국에 가져오기로 결심했다.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차드 멩 탄의 이메일 주소로 메일을 보냈다. “하루만에 답장이 왔어요.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져줘 고맙다며 어떻게 도와줄지를 되레 묻더군요.”
2013년 1월 유 대표는 미국에 있는 구글 본사로 찾아가 차드 멩 탄을 만났다. “왜 내면검색 프로그램이 한국에 도입돼야 하는지 사업계획서를 만들어갔습니다. 구글 카페테리아에서 차드 멩 탄을 만났는데요. 그가 사업계획서를 보자마자 내면검색리더십연구소(SIYLI)의 당시 CEO 마크 레서에게 전달해줬어요. 당시 마크 CEO가 흔쾌히 돕겠다고 했어요.”
전세계 명상 전문가를 만나러 다녔다. 잭 콘필드, 타라 브랙, 티벳의 명상 지도자 등을 찾아다니며 마음챙김에 대해 배웠다. “마음챙김(mindfulness)이란 부처님이 설파한 '사띠(sati)'에서 유래합니다. 사띠는 '알아차리다'라는 뜻으로,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훈련을 말하죠. 이 개념을 현대의 뇌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이 불교 색채를 덜어내고 만든 것이 마음챙김 명상이에요.”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객관화해서 거리를 두고 바라봄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명상은 생각을 안하는 연습이 아니라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감정을 느끼는 건지 알아차리는 게 출발점이에요. 두번째는 그걸 그저 바라보는 것입니다.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그냥 왔다 간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되죠.”
◇’명상은 비과학적’ 편견을 깨자
그동안 배운 것을 기반으로 2014년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명상 교육 강의를 시작했다. 구글에서 하던 SIY프로그램의 파일럿 격이었다. 2015년 서울 대치동에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가 생겼다. 유 대표는 그곳에서 스타트업 창업자를 위한 명상 모임을 시작했다. 혼자 운영하기 벅차 자원봉사자를 모집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문제는 기반이었다. 혼자 하는 명상은 지속하기 힘들었다. “어느 날 한분이 제 명상 가이드를 녹음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외국의 명상 앱을 듣자니 듣기평가 같아 괴롭고, 유튜브에 있는 것들은 비과학적이고 사이비 같은 게 많다면서요. 당시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명상을 주제로 한 영상을 보면 ‘믿으면 이루어진다’, ‘자고 나면 부자가 된다’ 같은 내용이었어요. 명상을 신비하고 종교적으로 생각하는 인식도 있었고요. 이건 진짜 아니다 싶었죠.”
한국판 명상앱을 만들기로 했다. 2015년 11월 초기 창업 멤버 3명을 꾸렸다. 저명한 학자와 전문가가 만든 명상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앱에 실을 콘텐츠를 만들어 나갔다. 자금이 문제였는데, 명상 강의를 하며 받은 돈으로 직원 월급을 충당하고 크라우드 펀딩으로 앱 개발금 약 1500만원을 모았다. 이 돈으로 2016년 여름 마보 베타 버전을 출시했다.
비과학적이고 신비하다는 명상에 관한 편견을 깨는 데 집중했다. “내 생각과 감정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려면, 명상 콘텐츠도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명상 콘텐츠들은 ‘불안 다스리기’와 같이 추상적이었어요. 모호함을 없애기 위해 여러 상황과 대상을 가정한 명상 콘텐츠를 개발했습니다. 예를 들면 ‘퇴근하고 회사 생각 떨쳐내는 법’같은 거요.”
귀여운 캐릭터를 만들어 명상이 일상 속에 스며들게 만들고, ‘미션 기능’도 넣었다. 일정 명상시간을 달성하면 씨앗이 발아하고 나무가 되는 식이다. “재미를 느끼고 습관이 되려면 아주 작은 장애물도 없어야 해요. 명상도 자기에게 맞는 방식이 있거든요. 하다 못해 가이드를 녹음한 사람의 목소리도 취향을 타죠. 이렇게 명상에 접근하는 데 방해되는 사소한 문턱을 없애는 데 집중했습니다.”
◇광고 없이 입소문만으로 꾸준히 성장
마보는 매주 새 콘텐츠 2개를 업데이트한다. 초창기 30~40여개였던 것이 600여개까지 늘었다. 주의력 집중 훈련, 7일 기초 연습 등 기초 콘텐츠는 물론 ‘원치 않은 일로 실패자로 느껴질 때’, ‘면접이나 발표를 앞두고 떨릴 때 명상’등 구체적인 여러 상황에 맞는 명상 가이드가 있다.
여러 사람이 마보 앱에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 기능도 있다. “명상은 여러 사람과 같이 했을 때 효과가 가장 큽니다. 마보에는 명상 일기를 쓰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능이 있고, 공감하기 버튼이 있습니다.”
2021년 기준 연매출은 4억6000만원. 주로 정기 구독료에서 수익이 생긴다. 마보의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스토어 평점은 5점 만점에 4.7점. 2018년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올해의 숨은 보석앱’을 수상했다. 마보를 사용한 후 불면증이나 분노조절장애 등이 나아졌다는 리뷰들이 눈에 띈다.
“작년 상반기까지 광고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입소문만으로 꾸준히 성장했어요. 자기가 써보고 좋으니까 주변에 추천하는 경우가 많아요. 매출 중에 선물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됩니다. 이용 경로를 물어보면 전문가, 상담사가 추천해줘서 쓰게 됐다는 비율도 높은 편이에요.”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기업들과 제휴가 늘고 있다. 직원 복지 차원에서 마보 이용권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대백화점·LG유플러스·엔씨소프트·현대자동차·SKT·아모레퍼시픽 등 100여개 기업·단체 직원들이 마보를 쓰고 있다.
◇ “우울과 불안을 털어내려면? 확실한 가치관 있어야”
스타트업이 흔히 빠지는 문제 중 ‘긍정의 오류’라는 게 있다. 대개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가 처음 출시되면 소수의 얼리어답터가 몰려든다. 이에 현혹된 나머지 수요를 낙관적으로 예측하는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유 대표 역시 크라우드 펀딩에서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고 고무돼 만사가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초기 반응이 좋다고, 여기저기서 긍정적인 반응을 준다고 해서, 착각하면 안됩니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 앞에 내놓았을 때는 또다른 차원의 세상이 펼쳐지니까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마음이 힘들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앱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불안과 우울을 겪는 이들이 늘었어요. 스타트업 창업자가 대표적입니다. 창업가 대상으로 하는 강의 의뢰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확실한 직업관과 가치관을 가져야 불안과 우울 속에서도 견뎌낼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생긴다. “스타트업은 위태로운 돛단배예요. 조금씩 커지면서 범선이 유람선도 되지만, 또 언제든 침몰할 수도 있죠. 이럴 때일수록 내가 왜 이걸 하려고 하는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더 쉽게 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거예요. 창업의 이유가 ‘성공할 것 같아서’가 돼선 안됩니다. 가치에 대한 고민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박찬희 에디터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CCTV가 실종 치매 노인을 찾아내는 방법 (0) | 2024.07.01 |
---|---|
“이 한국 청년이 페트병으로 뭘 만들었는지 보세요” (0) | 2024.07.01 |
남아공 월드컵때 민소매 응원복으로 히트쳤던 여사장님의 근황 (1) | 2024.07.01 |
“제일 오래 걸린 거요? 겨우 5년. 하하” 그렇게 받아낸 자격증 103개 (0) | 2024.07.01 |
서울대 전기공학과 82학번, 비염으로 병원 앉아 있다 개발한 것 (2) | 2024.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