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6. 17:45ㆍ인터뷰
밥이 질지 않은 저당 밥솥 개발한 카도스 이문석 대표
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서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컴퓨터, 드라이기, 청소기는 해외 브랜드를 고수해도 ‘밥솥’ 만큼은 국산을 산다. 외산 밥솥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밥맛’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산 밥솥에선 쫀득하면서도 고슬고슬한 ‘K-밥맛’이 나지 않는다.
한국 밥솥 시장에서 최근 화두로 떠오르는 기술이 ‘저당 밥’ 짓는 기능이다. 카도스의 이문석(61) 대표는 기존 저당 밥솥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진밥’ 문제를 해결했다. 이 대표를 만나 저당 밥솥 개발기를 들었다.
◇저당 밥솥의 진짜 원리는 이렇습니다

저당 밥이란 조리 과정에서 백미의 탄수화물 함량을 낮춘 밥을 말한다. 당뇨 등 식이 요법이 필요한 만성질환자나 다이어터들에게 인기다. 통상 흰쌀밥 1공기(200g)에는 65g의 탄수화물이 들어있는데, 저당 밥솥으로 조리하면 탄수화물 함량이 31%에서 최대 49%까지 줄어든다.
밥솥에 쌀과 물을 넣고 그 위에 전용 트레이를 올려주면 된다. 트레이 가운데를 보면 밑이 넓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고깔 모양의 구멍이 나 있다. 밥솥 안의 압력과 온도차를 이용해, 당질이 녹은 물이 트레이로 올라오게 만들었다.
흰 쌀은 익는 초기 단계에서 당질이 빠져 나와 물에 녹는다. 보통의 밥솥에선 쌀이 익는 후기 단계에서 그 물을 다시 밥알이 흡수하면서, 당 함량이 높게 유지된다.
반면 저당밥솥에선 당질이 녹은 물이 트레이 위로 올라오게 된다. 쌀이 당질을 재흡수하기 전에 물과 쌀을 차단시켜 버린다. 이를 사이펀(Siphon) 방식이라 한다.

트레이는 뜻밖의 부가 기능도 만들어 냈다. 트레이 위에 고기 등 다른 재료를 올려 수분을 활용한 찜 요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제 표준 인증 기관인 SGS의 시험성적서와 경희대학교 건강노화힐링케어산업 실증거점센터의 임상 시험을 통해 저당 조리 기능의 효과를 수치로 입증했다. 2021년 6월 첫 출시 후 누적 1만대 판매를 넘어섰다.
◇네덜란드어 독학하며 근무했던 열정 회사원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에서 학·석사를 졸업했다. 영문학 교수를 꿈꿨지만 학사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돌아가시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석사 졸업 후 생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특기인 영어를 살려 외국계 기업 문을 두드렸다. 1990년, 우리나라 대기업보다 월급을 많이 주고 해외 출장 기회가 많다는 말에 필립스 전자 국내 법인 제1회 신입 공채에 지원해 합격했다. 소형 가전팀에 배정돼 필립스의 면도기, 믹서기, 커피 메이커 등을 국내에 판매했다.

일을 잘했다. 회사에서 핵심 인력으로 주목받았다. “입사 2년 만에 한국 시장의 필립스 소형 가전 매출 규모를 전 세계 12위까지 올렸어요. 아시아 법인에서 유일하게 네덜란드 본사로 차출돼 파견 근무를 했습니다. 당시 저 때문에 영어로 소통하는 현지 동료들의 모습에 자극받아, 퇴근하고 네덜란드어를 독학했습니다. 그렇게 낯선 환경에서 적응했죠.”
2000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LG전자 해외마케팅의 팀장으로 12년 근무했다. “LG전자가 필립스와 합작해 회사를 설립하던 시점이었습니다. 필립스 소속으로 해외 마케팅 부서를 구축하던 시기에 LG전자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았어요. 자리를 옮겨 오디오·비디오 플레이어 등 소형 가전 기획과 해외 마케팅을 담당했습니다. 은퇴 후 2013년부터 재능 기부차 디자인진흥원에서 중소기업의 상품 기획·해외마케팅 컨설팅을 했어요.”
◇카도스의 칼로프리 저당 밥솥 개발 노트
1. 소형 가전 시장에서 아직 가공 안 된 원석 찾기

2018년 하반기 ‘한국형 저당 밥솥'을 개발해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은퇴 후 높아진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계기였다.
저당 밥솥은 ‘밥 짓는 물을 분리하는 방식’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쌀을 채반에 올려 물이 아래로 빠지게 하는 방식과 내솥 위에 트레이를 둬서 위로 올라오는 수증기를 트레이에 모으는 방식이다.
2. 전국 각지 햅쌀 모아 제품력 보완

기존 밥솥을 어떻게 개량할지 고민했다. 트레이의 모양과 취사 프로그램을 조정해 보기로 했다. 내솥 위에 올리는 트레이의 모양부터 결정해야 했다.
“밥을 익힐 때 사용된는 물을 최대한 많이 걸러내야 밥을 고슬고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기존의 트레이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원기둥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형태였는데, 수증기가 올라오는 주둥이 부분을 더 좁게 만들면 수증기를 더 많이 가두는 효과를 낼 수 있겠더라고요. 실제로 실험해보니 당질 저감 효과가 10% 이상 커지고, 밥의 물기도 과하지 않았어요. 트레이의 금형을 바꾸고, 새로운 설계도로 국내 특허를 등록했어요.”

쌀의 상태에 따라 수분 함량이 다르다. 변수를 고려해서 프로그램을 짰다. “취사 프로그램의 시간과 전압을 하나하나 분석하며 프로그램을 짰습니다. 같은 저당 밥 모드 중에서도 진밥, 일반밥, 된밥으로 선택지를 세분화했어요. 쌀마다 밥맛이 다르거든요. 전국의 쌀을 모두 사서 하나하나 물의 양, 취사 시간과 내솥 온도를 분석했어요. 연구하는 동안 쌀을 200kg는 넘게 썼더군요.”
내솥에 표기된 눈금에 정확히 맞출 필요 없이, 눈금 이상으로 물을 넣어도 된다. 자동 물 조절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물을 많이 넣으면 그만큼 많은 양의 당질이 녹아들기 때문에 탄수화물 저감 효과가 큽니다. 쌀 1컵을 기준으로 물을 6컵까지 넣을 수 있는데, 최대치로 넣은 경우에는 일반밥과 진밥의 중간 정도의 식감이 납니다. 당 함량을 많이 줄이고 싶다면 내솥에 표기된 눈금 이상으로 물을 많이 넣으면 됩니다.”
3. 국내 유일 인체 적용시험 거친 저당 밥솥

‘저당 밥솥’이라는 이름을 당당히 걸고 판매하기 위해 객관적인 자료를 마련했다. “국제 시험 기관인 SGS에 성분 분석을 의뢰했어요. 탄수화물 함량이 31%에서 최대 49%까지 감소하는 것을 확인했죠. 밥 한 공기의 탄수화물 함량이 65g이라면, 이 밥솥으로 밥을 지으면 같은 질량 대비 탄수화물 함량이 최대 33g까지로 줄어듭니다.”
‘저당 밥솥’에 대한 산업 기준이나 인증 절차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제품에 의구심을 품을 소비자를 위해 저당 밥솥 국내 최초로 인체 적용시험을 진행했다. “2022년 4월 경희대학교 건강노화힐링케어산업 실증거점센터에서 진행한 밥솥의 임상 시험을 통해 일반 밥솥과 같은 조건으로 밥을 지었을 때 열량과 탄수화물 함량이 최대 수치상 줄어든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이 시험에서 밥의 성분 분석뿐만 아니라 13명 피실험자의 식후 혈당과 식감, 포만감까지 분석했다. “피실험자들이 동일 중량의 백미 저당 밥을 먹었을 때의 평균 혈당 수치가 백미 일반 밥을 먹었을 때보다 매번 낮게 측정됐습니다. 그러면서 식감과 포만감 설문에선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죠. 혈관은 차이를 아는데, 혀는 그 차이를 모르는 셈이었습니다.”
4. 중소 브랜드 가전 신뢰도 높이는 ‘한 방’

2022년 8월, 밥솥의 효과가 진짜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한국형 저당 밥솥을 자신 있게 출시했다. 쌀과 물을 솥에 안치고 수증기를 모을 모일 트레이를 올린 뒤 취사 버튼을 누르면 된다. 터치패널로 누구나 쉽게 조작할 수 있다.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갖췄다. 저당밥, 일반밥, 건강죽, 찜, 누룽지 등 10가지 취사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교체 주기가 긴 가전제품의 특성을 고려했다. 필립스, 브라운 등 유명 브랜드 가전을 서비스하는 업체를 통해 수리가 가능하다. 수리 희망 시 카도스에 연락하면 된다. “소비자들이 중소기업 제품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수리 문제잖아요. 이 부분을 꼭 해결하고 싶었습니다. 이전 직장 동료의 도움을 받았죠. 지금은 물량이 많지 않아 서비스 센터에 접수하면 한 지점으로 모아서 수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은 걸 해야 살아남는다

‘댁에서 드시는 쌀 좀 보내주시겠어요?’
판매 초기, 시중의 모든 쌀로 밥을 지어봤다고 자신했는데 밥이 질다는 후기가 접수됐다. 해당 소비자에게 연락해 정중하게 어떤 쌀을 드시는지 물었다. “직접 농사지어 드신다더군요. 아뿔싸, 판매하는 쌀이 아니었던 겁니다.”
구매할 수 없으니 직접 쌀을 보내달라 요청했다. “갓 수확한 쌀은 수분 함량이 높습니다. 그 분의 쌀을 받아 밥을 지어보니 조금 질더라고요. 일단 된밥 모드로 설정하고, 전선을 멀티탭이 아닌 벽 콘센트에 바로 연결하라고 안내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전압이 분산되지 않아 전력을 최대한 높게 사용하면 수분을 좀더 제거할 수 있거든요. 어떤 쌀을 사용하든 맛있는 밥을 만들 수 있도록 지금도 계속 연구하고 있어요. 작은 기업일수록 문제 해결을 위해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해요. 그래야 소비자를 사로잡을 제품이 탄생합니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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