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중국 일본은 흉내도 못내, X선 검사까지 동원되는 한국 김치

더 비비드 2024. 6. 26. 17:38
농협김치 생산 현장 직접 가보니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종착역인 소요산역에서 차로 20분쯤 더 가면 한국농협김치조합공동사업법인(이하 한국농협김치조공법인) 연천지사의 모습이 보인다. 대지면적 2500평의 대형 공장이다. 이른 시간 방문했는데도 전국에서 재배한 무, 배추 등의 김치 원재료를 가득 실은 화물차들이 창고에 들어가기 위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분주한 현장을 뚫고 사무동으로 들어가니 한국농협김치조공법인의 이만수(59) 대표가 취재진을 반겼다. 한 손에 각종 통계 자료를 쥐고 있었다. 첫인상은 냉철한 기업인 같은데 반전이 있었다. 김치 이야기를 시작하니 자식 자랑에 신난 팔불출 부모 같은 모습이었다. 김치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 이 대표를 만나 한국농협김치에 쏟아부은 노력과 김치 제조 과정에 대해 들었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

연천지사에서 만들고 있는 한국농협김치의 포기김치. 손으로 김칫소를 직접 넣어 양념이 꼼꼼하게 발려져 있다. /더비비드

‘한국농협김치’는 전국 12개 지역 농협 김치 공장 중 8개 공장을 합쳐 설립한 농협김치의 통합 브랜드다. 과거에는 연천 전곡농협·북파주농협·화성 남양농협 등 3개 농협이 공동으로 김치 공장을 운영했었다. 그러다 2022년 4월, 5개 지역 농협이 추가로 합류해 한국농협김치 브랜드를 출범했다.

농협의 이름을 내걸고 판매하는 만큼 국내산 재료만으로 김치를 만든다. 필요한 물량을 한꺼번에 구입하거나 계약 재배 방식으로 재료를 수급해 외부 요인이나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생산이 가능하다. 지난해 말 배추 수급이 불안정하던 시기에도 김치를 안정적으로 공급한 바 있다. 덕분에 올해 초 한국농협김치를 급식용 김치 납품 업체로 선정한 학교가 크게 늘었다.

8개 김치 공장에서 생산되는 김치의 맛은 모두 같다. 농협의 김치 R&D(연구개발) 연구소가 조리법을 통일한 덕이다. 지역 농협별로 다른 김치 조리법을 절충해 새우젓과 멸치액젓의 황금 배합비를 찾아냈다. 밥 없이 김치만 먹어도 짜지 않고 넉넉히 발린 김칫소에선 깊은 맛이 난다. 제조하고 하루 숙성 후 출하돼 사자마자 바로 먹어도 풋내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김치 박사가 된 은행원

한국농협김치조공법인 연천지사에서 만난 이만수 대표. /더비비드

이만수 대표는 강원도 화천 출신이다. 기후가 선선한 지역이라 삼삼한 맛의 김치를 먹고 자랐다. 춘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1990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다. 입사 후 5년 동안 양구군 농협에서 금융 업무를 담당했다.

- 은행원에서 김치라. 간극이 큰데요.

“지금은 농협중앙회에서 금융 업무가 분리됐지만 과거에는 지역농협과 은행을 함께 운영해서 이동이 자유로웠습니다. 1996년 중앙회 소속 가공식품부로 발령됐죠. 김치, 고추장, 음료 등을 가공하는 전국 150개 공장 운영을 관리하고 판로를 확보하는 업무를 했는데요. 은행에서 근무할 때는 매일 같은 공간에서 일해서 지루했는데 환경이 바뀌니 일이 얼마나 재미있던지요. 새로운 사람을 자주 만났고 출장도 잦았죠. 프랑스 월드컵이 열리던 1998년, 에어 프랑스 항공기 기내식에 처음으로 60g씩 소분한 농협 김치를 공급했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발효 식품인 치즈와 김치를 비교해가며 항공사 관계자들을 설득했었죠.”

공장에 들어가 김치제조과정을 설명하는 이만수 대표. /더비비드

-농협의 여러 가공식품 사업 중에서도 김치가 가장 중요했나 보네요.

“식품 가공 사업은 농협의 핵심 비즈니스 중 하나입니다. 과잉 농산물을 가공해 농가 소득을 보전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사업이죠. 김치는 농협에서 생산하는 가공식품 중에서도 가장 사업 규모가 큽니다. 2022년 기준 농협 가공식품 시장 규모가 5000억원인데 그 중 1300억원이 김치 매출일 정도죠. 2010년 가공식품 팀장에서 자리를 옮겨 하나로 유통 마케팅 부장, 양주 유통센터 지사장을 거치고 2020년에 퇴직했습니다.”​

- 퇴직하셨다가 농협과 다시 연을 맺게 된 계기는요.

“2001년, 가공식품부에서 ‘아름찬’이라는 김치 브랜드 개발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각자도생하던 김치 브랜드를 통합해 효율적으로 판매하자는 취지였는데 잘 안 풀렸어요. 당시에는 각 지역 농협이 브랜드를 굳이 통합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아요. 농협에서 김치 사업 확장에 열과 성을 다했는데요. 그만큼 미련도 많이 남았습니다. 퇴직 후 한국농협김치조공법인 대표 모집 공고를 봤는데,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라인 구매가 활성화됐고, 점점 김장을 안하는 추세라 소매 시장이 커지고 있었거든요. 이번에는 꼭 김치 사업을 통합하고 싶었습니다.”

탈수 중인 절임배추와 이만수 대표의 모습. /더비비드

-법인 합류 후 어떤 일부터 하셨나요.

“2021년 취임 후 지역 농협을 찾아다니며 통합 김치 사업의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지역 농협이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공장 가동률은 떨어지고, 원재료 수매량도 감소해 농가 소득도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었죠. 한국농협김치에서 전문 판매 조직을 운영해 온라인 판매와 수출 등 다양한 판로를 확보하겠다며 설득했습니다. 2022년 상반기 5개 지역 농협까지 합류한 이후에는 공장별로 달랐던 김치 레시피도 일원화했습니다.”

-김치는 지역별로 맛이 달라야 특색있는 것 아닌가요.

“품질 관리의 편의를 위해 지난해 농협중앙회에서 김치 R&D 연구소를 세우고 김치의 맛을 통일했습니다. 시대 흐름에 맞춘 선택이기도 해요. 과거 김치 맛은 더운 지방일수록 짰어요. 기후에 맞춰 염도를 조절했거든요. 하지만 집마다 김치냉장고가 있는 데다 저온 유통 체계도 잘 정착해 김치맛이 보편화됐죠. 게다가 요즘 소비자들은 김치만 먹어도 짜지 않은 깔끔한 맛을 선호합니다. 각 공장에서 포기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갓김치 등을 생산하는데요. 예외적으로 묵직한 맛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위해 순천지사에서 남도식 포기김치, 갓 김치, 고들빼기 김치 등의 남도식 김치를  순천지사에서 소량 생산하고 있습니다.”

◇100% 국산 농산물로 맛깔나게 담근 김치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 산지직송된 배추를 절이는 과정. 입고 직후 반으로 갈라 통에 넣고 염수로 16시간 이상 절여야 한다. 물이 담긴 무거운 박스로 배추가 담긴 통을 누르는 모습. /더비비드

맛있는 김치 제조의 기본 중 기본은 철저한 위생이다. 김치 제조 과정을 취재하는 동안 신발만 스무번 넘게 갈아 신었다. 사무동, 공장, 창고동, 식당 등새로운 공간에 들어갈 때마다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어야 했기 때문이다. 공장 내부는 들어갈 때마다 일회용 위생복을 입고 손 세정, 소독, 바람 세척(에어샤워)를 해야 했다. 한국농협김치의 모든 공장은 해썹(HACCP: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인증, ISO22000(식품안전경영시스템의 국제 표준 규격) 인증 등을 마쳤다.

-포기김치 제조 과정이 궁금합니다.

“품질 검사를 통과한 배추가 입고되면 겉잎을 떼어내고 반으로 갈라 차곡차곡 쌓은 뒤 배추 보관 통에 염수를 주입해 16시간 이상 절입니다. 이후 세척과 탈수 과정을 거치고 생산 라인으로 투입되죠. 배추의 밑동과 무른 부분은 과감히 다듬어 내고 손으로 배춧잎을 한 장씩 넘기며 김칫소를 넣습니다. 완성된 포기김치는 최종적으로 이물질이 없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라인을 따라 X선 검사까지 마치고, 납품 업체에 맞게 포장되죠.”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김치 제조과정. 절인 배추를 세척 후 탈수한 뒤 신선한 부분만 다시 다음어내고, 잎을 한장씩 펼쳐 김칫소를 넣는다. /더비비드

-맛있는 김치의 필수 조건은 뭔가요.

“신선한 재료입니다. 배추나 무처럼 많은 양이 필요한 재료는 공장 인근의 지역 농가에서 바로 조달하고, 고춧가루처럼 가공이 필요한 핵심 재료는 고추 산지에서 원물을 구매해 농협 소속의 고춧가루 가공 공장에 맡깁니다. 계약 농가에 엄격한 잣대를 요구합니다. 주기적으로 농가에 방문해 재배 상황을 확인하죠. 거르고 거른 원재료 중에서도 싱싱하고 깨끗한 부분만 사용해요. 배추를 손질하는 과정에서 다듬어내는 겉 이파리의 양만 봐도 원료에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 수 있죠.”

원재료 창고 한켠에 품질 관리실을 두고 기준에 맞춰 품질 검사를 한다. 취재 당일은 열무가 입고 된 날이었다. 자를 이용해 열무 줄기의 지름을 확인하는 모습. /더비비드

-원재료 품질은 어떻게 확인하나요.

“원재료가 들어오면 작물이 담긴 박스를 무작위로 골라 점검표의 기준에 맞게 검사해요. 배추를 예로 들면 이물질이 없는지, 중량이 기준치에 맞는지, 속이 물러지는 꿀통 현상이나 검은 반점이 생기는 깨씨 현상이 없는지 확인하죠. 기준에 못 미치면 생산 계획을 수정하고 반품 테이프를 붙여 돌려보내거나, 폐기 후 다시 주문합니다.”

계절마다 배추의 조직감이 다르다. /더비비드

-예민한 농수산물로 식품을 만드는 일이라, 계절에 구애받을 것 같습니다.

“1년 내내 같은 맛의 김치를 생산하기 위해  제조 환경을 시시각각 관리합니다. 계절마다 배추의 모두 조직감이 조금씩 달라요. 여름 배추는 수분함량이 많아 제일 무르고 겨울철 배추는 단단하죠. 맛과 식감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절임용 염수의 농도를 기온에 따라 다르게 합니다. 냉·난방으로 절임실의 온도도 일정하게 유지하고요. 언제 구매해 먹어도 늘 같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레일을 따라 X선 검사대로 들어가는 김치의 모습과 김칫소를 배분하는 여사님의 모습. /더비비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요.

“근로자 안전과 근무 환경에도 각별히 신경쓰고 있습니다. 김치 제조는 수작업이 많아요. 배추 포기마다 양념을 손으로 버무려야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거든요. 연천지사 공장에선 약 100분이 김치를 만들고 계신데요. 근로자의 연령대가 높아 공장 바닥에 미끄러짐 방지 페인트를 바르는 등 안전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오전·오후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준수하고 휴게 공간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어요. 덕분에 10년 넘게 일하시는 여사님도 많아요.”

◇한국농협김치, 어떻게 먹어도 맛있어요

한국농협김치조공법인의 지난해 매출은 844억원이다. 올해부터 수출과 소매 판매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더비비드

협동의 성과는 달콤했다. 2022년 매출 844억원, 영업이익 9억1200만원을 기록했다. 이익금은 각 지역 농협에 배당된다. 적자로 설비 투자에 어려움을 겪던 공장들도 기계를 정비할 수 있게 됐다.

판로를 찾지 못해 공장가동률이 50~60%에 그치던 5개 지역 농협의 김치 공장은 한국농협김치조공법인 합류 이후 최대 수준으로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특히 연천지사 공장은 가동률이 100%에 육박한다. 한국농협김치조공법인에서 매년 생산하는 김치의 양은 연간 24700톤. 그 중 6000톤을 연천지사에서 만들었다.

(왼쪽부터)생산한 김치는 납품처에 맞게 포장한다. 포장이 완료되고 숙성 중인 김치의 모습. /더비비드

- 생산된 김치는 주로 어디에 납품되나요.

“매출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학교, 항공사, 한식 브랜드 등 기관 및 기업 거래입니다. 경기지역 중고등학교 급식 김치의 55%를 저희가 생산할 정도니까요. 요즘에는 수출과 소매 판매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일본과 미국에 100만달러(약 13억원)의 물량을 수출했습니다. 3개 농협이 공동으로 운영하던 시절 7억원 수준이었던 소매 판매 분야의 연매출이 지난해 60억원으로 뛰었어요.”

​-김치도 성수기가 있나요.

“성수기는 휴가철인 7~9월이고, 비수기는 1~2월입니다. 방학 기간인 데다 집에서 김장한지 얼마 안 된 시기라서요. 이 시기에는 생산량을 조절해요.”

남은 지역 김치 공장 4곳까지 통합하고 싶다는 이만수 대표. /더비비드

-어떤 김치가 가장 인기인가요.

“저도 한국농협김치를 사서 먹는데요.적당히 익은 포기김치를 가장 좋아합니다.  바로 먹어도 맛있지만, 냉장고에 일주일 정도 두고 먹으면 아삭하면서도 배추에 양념이 잘 배어든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최근 들어 파김치도 인기에요. 바로 먹어도 쪽파의 매운맛이 나지 않아 속쓰림이 덜해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요즘 젊은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 법을 잘 알던데요. 짜장라면이나 수육에 파김치를 곁들여 먹는 날에는 꼭 과식하게 되더군요.”

-남은 임기 동안 목표가 있다면요.

“임기가 마무리되는 2024년까지 남은 지역 김치 공장 4곳까지 통합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사업 규모를 키워야겠죠. 수출을 통한 매출 증대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김치라고 소비 범위를 국내 시장에 국한할 필요 있나요. 올해부터 호주와 캐나다에도 김치를 소개할 계획입니다. 수출에 도전해보니 김치 종주국으로서의 사명감이 들어요. 한국농협김치는 표면적으로는 신생 브랜드지만 23년 농협 김치의 기술력을 응축한 결정체입니다. 품질은 자신 있어요. 널리 알리기만 하면 되죠. 김치로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습니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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