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두도 살구도 아닌 이게 뭣이여” 70대 귀농 재단사가 찾은 평생 직장

더 비비드 2024. 6. 25. 16:53
순천시 해룡면 플럼코트 농장 이순휴 농부의 인생 이야기

순천농협 플럼코트 공선회 이순휴 회장. /더비비드

“아침 먹고 나면 발이 저절로 농장으로 이끄는데 어떡하나요. 힘닿는 데까지 해야죠.”

천성이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농사일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아무것도 안 하며 사는 것보다 훨씬 재밌다’는 답이 돌아왔다. 6월의 어느 날, 전남 순천시 해룡면을 찾았다. 70대 농부 부부, 그리고 서울에서 연차를 쓰고 내려온 딸이 이색 품종인 플럼코트 수확에 한창이었다.

이순휴(74) 순천농협 플럼코트 공동선별출하회(이하 공선회) 회장은 8년 전 갖고 있던 땅에 플럼코트 묘목 170그루를 심었다. 이 공선회장을 만나 인생 이야기와 플럼코트 농사 도전기를 들었다.

◇자두의 새콤함과 살구의 달콤함을 한 알에

나무에 달린 플럼코트의 모습. 수확철이라 껍질색이 붉게 물들었다. /더비비드

플럼코트는 자두를 뜻하는 영어 플럼(Plum)과 살구를 뜻하는 애프리코트(Apricot)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자두와 살구가 반반씩 교배된 품종이다. 자두보다는 크고, 성인 주먹보다는 약간 작은 크기다. 농촌진흥청 소속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남은영 박사가 처음 개발한 토종 과일이다.

플럼코트는 2013년부터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 농가에 보급됐다. 순천시는 우리나라에서 플럼코트 재배면적이 가장 넓은 지역이다. 순천에서 과잉 생산되던 매실의 대체 과일로 주목받아 널리 퍼졌다. 현재 순천에선 약 130 농가가 플럼코트를 재배하고 있다.

플럼코트는 품종별로 과육 색이 다르다. 티파니는 과육이 붉고, 하모니는 노랗다. /더비비드

플럼코트는 향이 진하고 전반적으로 달콤한 맛이 난다. 살구의 부드러운 달콤함이 자두의 새콤함을 감싼 느낌이다. 껍질이 매우 얇아 흐르는 물에 씻어 껍질째 먹어도 이물감이 없다. 살구를 닮아 안에 있는 씨앗도 깔끔하게 떨어진다.

플럼코트의 품종은 하모니·티파니·심포니·샤이니 4가지다. 품종에 따라 과육의 경도와 색이 조금씩 다르다. 하모니·심포니·샤이니는 과육이 노랗고, 티파니는 붉다.

◇친구들 은퇴할 때 플럼코트로 인생 2막 시작

이순휴 농부의 플럼코트 과수원 전경. 1800평 과수원을 부부가 돌보고 있다. /더비비드
플럼코트는 껍질이 얇아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 열매가 완전히 익기 전 수확해 유통한다. /더비비드

1949년생인 이 회장은 순천 토박이다. 벼와 배 농사를 하는 부모를 뒀는데 젊은 시절에는 농사 대신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옷을 재단하는 일이었다. IMF 외환위기 전까지가 그의 전성기였다.

-재단이라니 어떤 일인가요.

“성인이 되자마자 무일푼으로 서울에 올라가 옷 재단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후 순천으로 내려와 남내동에서 양복점을 했습니다. 그야말로 일대를 주름잡았어요. 직원을 15명까지 고용할 정도로 규모가 컸으니까요. 손님의 치수에 맞게 옷감을 자르고 다리미로 빳빳하게 펴는 일이 즐거웠어요.”

과실을 수확하며 귀농 계기를 설명하는 이 농부의 모습. /더비비드


-전업 농부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990년대 말부터 장사가 별로 안 됐습니다. 기성복 브랜드가 생겨나며 맞춤 의복에 대한 수요가 줄었거든요. 청춘을 쏟은 가게였지만 IMF 외환위기를 겪은 후부터는 중년 골프복 브랜드 가맹점으로 노선을 전환해 아내와 함께 운영했습니다. 그렇게 20년간 운영하다,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줄어 가게 문을 닫기로 했어요. 당시 제 나이가 65살이었습니다. 딸들은 이제 일하지 말고 쉬라고 했지만, 몇 개월 동안 집에만 있다 보니 너무 지루해서 병이 나겠더라고요. 노후 대비로 사둔 땅에 소일거리 삼아 과일을 심어보기로 했죠.”

잘 익은 플럼코트를 맛보고 만족스러워 하는 이 농부의 모습. /더비비드

-재배 품종은 어떻게 정했나요.

“아무리 취미로 시작했다고 해도 소득은 있어야 하잖아요. 재배면적이 넓지 않으니 값을 잘 받는 알짜 품종으로 시작하고 싶었어요. 일할 수 있는 사람도 저랑 아내 단 둘뿐이니 비교적 손이 덜 가야 했고요. 농업기술지원센터를 기웃거리다 발견한 것이 플럼코트입니다. 묘목을 심고 최초로 열매가 열리는 데 3년밖에 안 걸리더군요. 다른 과일나무 대비 묘목이 성숙기에 도달하는 기간이 짧은 편이죠. 신품종이라 단가도 높다는 말에 바로 묘목을 사 와 심었어요.”

-플럼코트 재배 시설을 갖추는 데 비용은 얼마나 들었나요.

“2015년 기준 묘목값은 한 그루당 1만원이었습니다. 나무를 지지해 줄 철근 골격과 새를 쫓는 천장 그물 등의 시설을 모두 구비하는 데 약 3000만원이 들었고요.”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 키우는 신품종

튼실한 열매를 수확하려면 가을, 겨울에도 가지를 치고 수형(나무가 뻗은 모양)을 잡아야 한다. 수확하기 쉽도록 지지대를 세워 가지를 곧게 펴주는 작업이다. /더비비드

이순휴 농부는 순천시 해룡면에 1400평, 서면에 400평 규모로 플럼코트 과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플럼코트는 1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 4월에 꽃이 피면 6월 중순부터 7월 초까지 수확한다.

-플럼코트는 품종 별 특성이 어떤가요.

“하모니·티파니·샤이니·심포니 4가지 품종이 있습니다. 과육의 색과 껍질 털의 유무, 과수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죠. 열매의 크기가 가장 커서 재배하기 쉬운 작물은 하모니인데요. 소비자에게 인기가 좋은 건 티파니입니다. 과육 색이 붉어 보기 좋거든요. 물론 제 눈엔 모든 품종이 이쁩니다.”

과수원 구석에 심어둔 살구 묘목의 모습. 이 농부가 수분수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더비비드

-농부님은 어떤 품종을 주로 재배하시나요.

“품종별 매력이 제각각이라 모든 품종을 키우고 있어요. 해룡면 밭 600평에 하모니를 재배하고 있고, 심포니와 티파니를 나머지 면적에 심었죠. 샤이니는 서면에서 기르고 있고요”

-플럼코트 재배 과정이 궁금합니다.

“수정 작업이 가장 중요합니다.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작물이거든요. 밭에서 재배하는 노지 작물이라 플럼코트 농장은 꿀벌이 생활하기 좋은 환경도 아니에요. 4월에 나무가 꽃을 피우면, 인공 수정용 송풍기에 꽃가루를 담아 과수원을 돌아다니면서 직접 인공 수정을 해줘야 합니다. 4월 한 달간 꽃이 피는 속도에 맞춰 2~3일에 한 번씩 총 3번 인공 수정 작업을 해요. 수정이 되면 열매가 맺기 시작하는데요. 이때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을 물을 주면서 열매를 키웁니다. 6월 중순부터 7월초까지 수확하면 그 해 농사는 끝입니다. 그 후부터 다음해 농사를 준비합니다. 마냥 쉬는 건 아녜요. 8~9월 초에 가지치기를 한번 해주고, 12월에 밭에 비료를 뿌리며 나무와 땅의 기초 체력을 다집니다. 겨울을 나며 가지치기 작업을 한 번 더 해주고요.”

열매가 잘 안 맺히는 나무의 경우 가지에 직접 살구 묘목을 접목하기도 한다. /더비비드

-농부님만의 플럼코트 재배 요령이 있나요.

“플럼코트 묘목 양옆에 수정을 유도하는 작물인 ‘수분수’를 심어줘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인공 수정 작업을 안 해도 되는 건 아니지만 나무당 열매가 맺히는 비율이 10~20% 정도 높아지는 효과가 있어요. 플럼코트 나뭇가지에 살구 묘목을 접목하기도 합니다. 워낙 열매를 맺기 어려운 작물이라 인위적으로 수정이 잘되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수분수는 모든 농가에서 심긴 하는데, 저는 좀 많이 심는 편이에요. 특히 티파니 품종의 수정이 정말 어려워서 티파니 묘목 주변에는 거의 한 그루 건너 한 그루씩 살구 묘목을 심었어요.”

◇플럼코트를 100% 수작업으로 선별해야 하는 이유

(왼쪽부터) 이 농부는 오전에 수확한 플럼코트 16박스를 직접 순천조공법인으로 입고시켰다. 순천조공법인 입고장에 놓인 이 농부의 플럼코트들. /더비비드

플럼코트는 껍질이 얇아 긁힘이나 압력에 매우 취약하다. 공선회 소속 농가에서 당일 수확한 과일은 그날 순천연합조합공동사업법인(이하 순천조공법인)으로 입고되는 것이 원칙이다. 순천조공법인은 매년 10~15톤의 플럼코트를 유통한다. 연 4000톤의 물량을 다루는 순천조공법인에서 비중이 큰 과일은 아니지만, 아주 조심스럽고 섬세한 손길로 다뤄야 해서 손이 많이 간다.

-플럼코트의 선별·포장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플럼코트는 후숙 과일이라 열매가 붉어지기 전에 수확해요. 과육이 물러지기 시작하면 박스에 담아두는 것만으로도 흠집이 갈 수 있기 때문이죠. 선별 및 포장도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작업으로 진행합니다. 유통처의 주문에 따라 500g, 800g 팩에 중량을 맞춰 담아요. 과실 상태는 육안으로 확인합니다. 크기에 따라 특상·상급으로만 구분하는데요. 500g 포장 팩을 기준으로 7개 미만 담기면 특상, 7~9개가 담기면 상급 제품입니다. 당도의 경우 따로 선별하지 않아도 대체로 높습니다. 소비자가 먹을 시점에는 14~16브릭스의 당도가 나옵니다.”

플럼코트 선별과 포장 작업은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더비비드

-입고 직후 포장 작업을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입고 당일 유통처로 출하되지 않더라도, 입고된 과일은 모두 포장합니다. 소분해놔야 덜 손상되거든요. 포장을 모두 마치면 저온 창고에 보관해 뒀다가, 2일 안으로 모두 출하합니다.”

출하 준비를 마친 플럼코트들. 박스째 랩핑 후 지역 농협으로 보내진다. /더비비드

-유통 준비를 마친 플럼코트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플럼코트 유통은 속도전입니다. 최상의 맛을 위해선 수확 후 7일 안에 모든 소매 판매처로 유통돼야 합니다. 다행히 제철 신품종 과일이라 수요가 높은 편입니다. 포장 작업을 마친 플럼코트들은 백화점이나 온라인 판매처, 공판장 등으로 납품됩니다. 6월에는 농협중앙회의 과일 구독 서비스인 ‘농협과일맛선’ 과실로 선정됐어요. 매일 농협과일맛선 거점 배송지인 안성 농협으로 일정량 출하하고 있죠.”

◇8번째 손주 같은 작물

이순휴 농부의 아내와 딸이 수확 작업을 돕고 있다. /더비비드

이날 이순휴 농부는 해룡면 밭에서 192kg의 플럼코트를 수확했다. 이순휴 농부 부부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해 딸도 휴가를 내고 와서 수확을 도왔다. 작년에는 약 2톤 정도 수확했는데, 올해는 2.5~3톤 정도 수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 매출이 궁금합니다.

“플럼코트 나무는 8~15살까지가 열매를 많이 맺는 ‘청년기’라더군요. 올해부터 수확량이 늘길 기대하고 있어요. 2022년 기준 약 2톤 수확해 3000만원 정도의 매출을 냈습니다. 꽃가루와 비료값 40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수익이라고 볼 수 있죠.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75살에 돈을 번다는 게 어딘가요.”

-플럼코트 맛있게 먹는 법이 있을까요.

“플럼코트는 껍질 전체가 붉은빛으로 감돌고, 살짝 말랑할 때 먹으면 가장 맛있어요. 흐르는 물에 살짝 씻어 먹으면 상큼 달콤해요. 저는 비품을 모아 매일 주스로 갈아 마시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피부 좋다는 소리는 정말 많이 듣습니다.”

이순휴 농부와 그의 아내 박옥자 씨. 플럼코트가 손주 같다고 했다. /더비비드

-귀농에 도전하려는 이에게 조언이 있다면요.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요. 혼자 혹은 부부가 할 거면 1000평 정도가 적당해요. 욕심내서 1800평으로 시작했더니 조금 버겁네요. 이번 수확기에도 딸들이 와서 안 도와줬다면 다 수확하지 못했을 겁니다. 너무 욕심내지 말고, 작은 규모로 시작하는 것을 권합니다.”

-농부님에게 플럼코트란 무엇인가요.

“자식들한테 손 안 벌리고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고마운 작물입니다. 명절마다 손주 7명에게 용돈까지 쥐여줄 수 있어요. 어깨에 힘 들어가게 해주는 작물입니다. 자식들은 넘어진다, 위험하다며 농사일을 말리는데요. 마지막 힘닿는 데까지 플럼코트를 기를 겁니다.”

/김영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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