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먼지로 더러워진 창밖에서 슥삭슥삭 "내가 창문 로봇 청소기의 선구자"

2025. 6. 23. 10:16인터뷰

창문 로봇청소기 윈클봇 개발한 파워가드 김보형 대표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본보기가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창문 로봇청소기 윈클봇 개발한 파워가드 김보형 대표. /더비비드

풍수지리에서 ‘창문’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외부의 좋은 기운을 집안으로 들여오는 통로이면서 동시에 내부의 나쁜 기운을 외부로 배출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창문의 크기, 배치, 인테리어 소품에 따라서 기운이 달라진다고도 한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건 ‘청결 상태’라고 한다. 먼지나 때가 쌓인 창문을 통해 부정적인 에너지가 들어올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 다만 깨끗한 창문이 ‘집’이라는 공간의 가치를 더욱 올려줄 수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창문의 상태 하나로 창밖 풍경이 달라 보인다. 소형 가전 전문 기업 파워가드의 김보형(50) 대표는 힘들이지 않고 창문을 투명하게 청소할 수 있는 로봇 청소기의 선구자다. 김 대표를 만나 창문을 닦아야 하는 이유를 들었다.

◇창문 로봇 청소기계의 선구자

파워가드 윈클봇 울트라. /파워가드

파워가드는 국내 최초 창문 로봇 청소기 제조사다. 2021년 1세대 창문 로봇 청소기 ‘윈클봇’을 출시한 이후 매년 새로운 버전의 제품을 내놓고 있다. 2025년에는 6세대 제품인 ‘윈클봇 울트라’를 출시했다. 이전 세대와 비교해 흔들림과 소음은 줄였고 힘과 안정성은 높였다. 필요한 기능을 모두 담아 두께 5.7㎝로 설계했다. 이중창 틈도 무리 없이 청소할 수 있다.

허공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춘 후 반대 방향으로 다시 청소한다. /파워가드

인공지능(AI)이 창문의 크기와 창문 상태, 환경에 따라 최적의 흡착력을 조절한다. 허공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춘 후 반대 방향으로 다시 청소한다. 창틀이 없는 유리나 거울에서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끈적한 이물질이 있어도 열풍으로 녹이고, 사방으로 물을 분사한 뒤 닦아내면 창문이 금세 깨끗해진다.

◇대표이사로 불리다 진짜 대표이사가 된 사연

김 대표는 컴퓨터·TV 등 제조 기반의 회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더비비드

2001년 서울의 한 컴퓨터 제조 회사에 입사하면서 고향을 떠나 상경했다. “영업·마케팅을 담당했습니다. 매달 경쟁사와 대리점 수를 놓고 줄다리기를 했어요. 보통 한 달 평균 3개 정도의 지점을 확장했는데요. 2~3년 정도 발로 뛰니 월평균 7개 지점을 확장할 수 있었죠. 이후 TV 제조 회사의 신사업 개발팀, 그룹 계열사의 마케팅팀으로 이직해서도 꾸준히 실적을 냈습니다.”

독특한 이력도 있다. 제3자 법정관리인으로 대표이사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채권자의 추천을 받거나 대기업 임원 출신인 경우 법정관리인의 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전자였어요. 법정관리했던 기업은 전원공급기를 생산하는 업체였습니다. 첫 출근날 회사 통장 잔액은 700만원이었어요. 처음부터 회생보다는 ‘질서 있는 퇴장’을 계획했습니다. 3년 뒤 잔액을 20억원까지 만들고 채권자들에게 최대한 변제하며 일을 마무리했죠.”

대표이사직에 있으면서 ‘내 사업’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직장 생활을 했던 곳들이 모두 제조 분야였어요. 독자적인 한 제품을 개발해 출시하고 해마다 업그레이드해서 새로운 버전을 내놓는 것을 봐왔죠. 남들이 만들지 않았던 나만의 아이템을 개발하고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법정관리인으로 일하면서 사업 실패에 대한 각오도 다질 수 있었어요. 그렇게 2020년 9월 파워가드를 설립했습니다.”

◇창문 로봇 청소기 ‘윈클봇’ 개발노트

​1. 아이디어는 늘 가까운 곳에 있다

김 대표가 리모컨을 조작하며 윈클봇의 작동 방법을 시연하고 있다. /더비비드

‘나만의 아이템’을 찾기 위해 주변을 먼저 둘러봤다. “실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을 개발하고 싶었어요. 전동 커튼, 스위치 전용 로봇 등을 떠올렸지만 ‘새로움’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그러다 얼룩이 묻은 창문에 시선이 갔습니다. 창문을 청소하고 싶었지만 아파트 관리실에 문의해 단체로 업체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던 일이 떠올랐죠. 가정에서 흔히 쓰는 로봇 청소기를 창문 전용으로 쓸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다다랐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창문 청소기는 한계가 뚜렷했다. “기다란 밀대는 고층 건물에서 도저히 쓸 수 없었어요. 자석을 이용한 창문 청소기도 있었지만 흡착력이 너무 강해서 성인 남성인 제가 쓰기에도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이 흡착 방식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관건이었죠. 단순하게 접근했어요. 진공청소기처럼 공기를 빨아들이는 방식을 떠올렸죠.”

​2. 세상에 완벽한 ‘1세대’는 없다

공장에서 윈클봇을 제조하는 모습. /파워가드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기능과 디자인을 보완해 나갔다. “창문에 붙어있는 상태에서 청소하려면 상하좌우로 움직여야 합니다. 강력한 모터가 필요한 이유죠. 어릴 때 학교에서 창문을 닦을 때를 떠올려보면 신문지를 뭉치고 물을 묻힌 다음 창문을 닦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마른걸레나 신문지로 한 번 더 닦아야 물 자국이 안 남아요. 그 구조를 그대로 담았습니다. 둥근 걸레 2개를 나란히 놓아서 윗바퀴가 한번 닦은 자리를 아래 바퀴가 한 번 더 닦도록 했죠.”

물 분사 기능은 제외했다. 소비자를 설득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창문 로봇 청소기를 낯설게 여기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처음 보는 물건이 비싸기까지 하면 절대 손이 가지 않겠죠. 창문 청소에서 ‘물 분사’는 정말 중요한 기능입니다. 하지만 물통을 넣고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만들기까지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겠더군요. 과감히 생략했습니다. 이런 제품이 있다는 걸 소비자에게 보여주고, 한 번이라도 써 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게 약 1년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1세대 창문 로봇 청소기, 일명 ‘윈클봇’을 완성했습니다.”

​3. 처음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와 같다

김 대표가 윈클봇을 직접 분해·조립하는 모습. /더비비드

정식 출시를 앞두고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전자제품을 제조하고 판매하려면 한국제품안전관리원에 공급자 적합성 신고를 해야 합니다. 당시만 해도 ‘창문 청소기’라는 항목이 없었어요. 국가인증센터, 한국산업기술시험원(KTL), 국민신문고 등 여기저기에 문의해 봤지만 명확한 답을 들을 수 없었죠. 어쩔 수 없이 가정에서 쓰는 ‘로봇 청소기’로 신고했더니 분류가 잘못됐다며 신고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카테고리가 없어서 손쓸 수가 없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피력한 끝에 결국 ‘창문 청소기’라는 항목이 생기며 상황이 일단락됐습니다.”

​같은 문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받을 수 있는 ‘인증’이란 ‘인증’은 죄다 받았다. “가장 기본적인 인증은 KC 안전 인증입니다. 제품이 인체에 무해한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검증하는 단계죠. 그 외에도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와 유럽의 상품규격인증(CE)에서도 안전성을 인증받았습니다. 유럽으로 수출되는 전자제품에 대해 ‘지정한 유해 물질의 함유량이 기준치 이하’일 때 받을 수 있는 마크인 ROHS도 확보했어요. 이만하면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했죠.”

​4. 경쟁사의 추월을 두려워 말라

(왼쪽부터) 파워 윈클봇과 윈클봇W. /파워가드

마침내 2021년 윈클봇 1세대를 세상에 선보였다. “첫 생산량이 1000대였는데요. 2021년 한 해에만 3만5000대를 판매했습니다. 반응이 뜨거웠어요. 하지만 경쟁사에서 금세 비슷한 제품을 만들어내더군요. 위기감을 느끼진 않았습니다. 따라 하고 싶을 만큼 잘 만들었다는 생각에 뿌듯했어요. 대신 빠르게 2세대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매년 문제점을 개선하거나 기능을 추가해 새로운 버전을 출시했다. “2세대부터 물 자동 분사 기능을 넣었어요. 우리나라엔 이중창이 많아서 창문 사이로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청소기의 두께를 줄이는 것도 새로운 과제였습니다. 6.9㎝, 6.5㎝, 5.7㎝로, 차례로 줄였죠. 또 흡입력을 2400~3800㎩(파스칼) 사이에서 자동으로 조절되도록 했어요. 끈적한 이물질에 걸리면 청소기가 잘 움직이지 않더군요. 그런 부분에선 흡입력이 줄어들고 매끈한 부분에선 다시 흡입력이 강해지게 설계했습니다.”

​5. 점수 차를 벌려야 하는 ‘타이밍’을 잡아라

윈클봇 울트라는 6세대 창문 로봇 청소기다. /파워가드

2024년까지 윈클봇은 5가지 단계를 거쳐 진화했다. “야구 경기에서 스코어가 1:0일 때, 지고 있는 팀보다 이기고 있는 팀이 더 조급합니다. 점수를 더 내지 못하면 언제 따라잡힐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기기 때문이죠. 이럴 때 큰 점수를 내야 합니다. 창문 로봇 청소기 시장에서 윈클봇도 비슷한 상황이었어요. 선두 자리를 지키려면 뭔가 확실히 달라야 했습니다. 금형(대량 생산을 위한 금속 틀)부터 다 뜯어고쳤습니다. 금형에만 1억 5000만원을 투자했어요.”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온 제조 공장도 과감히 바꿨다. “더 섬세한 공정이 필요했어요. 이를테면 같은 물 분사 기능이지만 토출구를 추가해 4방향을 물이 나오도록 했고 분사 거리도 늘렸습니다. 끈적해진 창문을 더 확실하게 닦을 수 있도록 열풍 기능을 넣었어요. 처음으로 앱 연동 기능도 더했습니다. 이후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면 앱에서 터치 몇 번만 하면 자동으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할 수 있어요. 그렇게 2025년 6세대 윈클봇 울트라를 완성했습니다.”​

◇처음 느낌 그대로

창문 로봇 청소기 윈클봇을 개발한 김 대표. /더비비드

수년간 창문 로봇 청소기에만 올인한 것은 아니다. “어릴 때 할머니께서 항상 걸레를 바닥에 두고 뭔가 보일 때마다 닦으시던 기억이 있는데요. 걸레질은 대청소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해야 하는 일이죠. 기능을 단순화해 언제든 버튼만 누르면 걸레질을 할 수 있는 ‘땡큐봇’을 만들었습니다. 청소기를 만들며 터득한 ‘모터’에 대한 노하우를 응용해 착즙기도 개발했어요. 일상 에서 꼭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만들면서 제품군을 넓혀갈 계획입니다.”

파워가드는 7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혼자일 때보다 어깨가 무겁습니다. 직원들은 물론 그 가족들까지 책임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죠. 윈클봇을 개발하는 여정은 정말 쉽지 않았어요. 가보지 않은 길이라 두려웠지만 그래서 더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초심을 잃지 말자’는 말을 자주 되뇌고 있어요.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봤을 때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도록, 처음 결심 그대로 끊임없이 제품을 개발하겠습니다.”​

/이영지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