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23. 10:20ㆍ인터뷰
법무법인 BHSN 김현근 변호사
대중 매체 속 ‘사내 변호사’는 ‘정의’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경영자의 비리를 감춰주거나 탈세·부정상속 등 각종 위법적인 일을 돕는 역할로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내 변호사는 기업이 법을 지키며 경영을 하는 데 없어선 안되는 존재다.
법무법인 BHSN 김현근(48) 대표 변호사는 13년간 삼성에서 사내 변호사로 일했다. 컴플라이언스(Compliance·기업이 자발적으로 법규를 준수하도록 하기 위한 시스템) 전문가로 통한다. 중견·중소기업도 컴플라이언스가 필요하다면서 관련 기업 운용에도 참여하고 있다. 김 변호사를 만났다.
◇준법 경영이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
2002년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곧장 법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아버지께서 경제부처 공무원이셨습니다. 그 영향을 받아 큰 고민 없이 전공을 선택했는데, 막상 강의를 듣다 보니 적성에 잘 맞지 않았어요. 경제학이 문과 중 가장 이과다운 학문이더군요. 그보다 관심을 뒀던 건 뉴스였습니다. 여러 사회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변호사’라는 공인 자격을 갖추면 사람들이 내 말에 더 귀 기울여 주지 않을까란 생각에 법조계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5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40기를 수료한 2011년은 우리나라에 ‘준법지원인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해다. “모든 상장기업은 준법지원인을 임명하고 임직원이 그 직무를 수행할 때 따라야 할 준법 통제에 관한 기준·절차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문입니다. 그때를 기점으로 대기업에서 사내 변호사를 적극적으로 채용했어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도 마찬가지였죠. 크고 복잡한 법률 분쟁을 다양하게 경험해 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안고 주저 없이 지원했습니다.”
처음 들어간 곳은 삼성중공업 준법경영실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2017년 5월에 있었던 ‘크레인 충돌 참사’를 꼽는다. “사망자 6명, 사상자 25명이 발생했던 대형 참사였어요. 발생 직후 거제도 조선소로 내려가 3~4개월간 상주하면서 경찰·노동청의 수사에 대응했습니다. 당시 조선소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었는데 빠르게 법리를 검토하고 대응 논리를 세워 결국 영장 청구를 기각시켰어요. 새벽에도 연락을 받을 때가 잦아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죠.”
한국·노르웨이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연락사무소(NCP)들의 조정 절차를 거치며 사건을 마무리했다. “안전환경팀과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판결문에서 나타난 회사 안전관리의 미비점을 근로자에게 설명했습니다. 추후 안전 관리 정책을 어떻게 바꾸고, 어떤 기준을 개선시켜야 하는지 분석해 그대로 도입했죠. 불행한 사고가 있었지만, 준법 경영 시스템을 통해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근로 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중공업에서 삼성물산으로 옮겨 수석 변호사로 근무했다. “주총·이사회, 영업비밀, 인사 등 주요 기업 법률 자문은 물론 공사대금 분쟁, 입찰담합, 통상임금 같은 복잡한 소송들을 다뤘죠. 사내 변호사나 준법 경영팀을 ‘사측’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요.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경영진의 뒤를 봐주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전자기기와 SNS, 각종 커뮤니티 등 눈과 귀가 얼마나 많은데요. 경영진으로서도 위법 행위를 했다가 큰 손해를 입느니 준법 경영을 실천하는 것이 훨씬 이득입니다.”
◇작은 기업일수록 리스크 관리는 필수
2023년 12월 홀로서기를 결심했다. “그동안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 이름을 건 로펌을 세울 계획을 세웠습니다. 삼성의 컴플라이언스를 담당하면서 기업 내 준법 통제 체제 구축의 중요성을 절감했어요. 공익적인 취지에서 우리나라 기업 전반에 컴플라이언스 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포부를 키웠습니다. 부동산·건설 분야에서 가성비 있는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어요.”
그 무렵 대학 친구였던 BHSN 임정근 대표를 만났다. 임 대표는 변호사 출신으로 리걸테크(Legal-Tech)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인공지능(AI) 전문가, 개발자들과 함께 기업 계약 관리 솔루션(CLM)과 법령·판례·정책 검색 솔루션을 만들었더군요. CJ제일제당 등 여러 대기업에 납품까지 하고 있었죠. 그때 직감했습니다. 앞으로 법률 산업이 가야 할 방향이 AI와 IT에 있다는 사실을요. 이 기술이 컴플라이언스 문화 확산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가 생겼습니다.”
2024년 BHSN에 정식으로 합류했다. 법무법인 BHSN 대표 변호사이자 주식회사 BHSN의 최고성장책임자(CGO)직을 맡았다. “두 조직은 엄연히 다릅니다. 임 대표가 기획·개발한 AI 서비스는 주식회사 BHSN에서 주도하고 있어요. 법무법인 BHSN은 2024년 3월에 설립한 조직으로 삼성·검찰·대형로펌 출신의 변호사 17명이 포진해 있습니다. 저는 건설·부동산 분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행사·시공사·금융기관 등의 고객사를 대상으로 다양한 법적 분쟁에 대한 소송·자문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BHSN은 컴플라이언스 업무에 특화돼 있다. “기업에서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구축할 때 가장 오랜 시간이 드는 단계는 ‘업무 프로세스 숙지’입니다. 임직원 계층별로 어떤 업무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각 산업별 표준 법령·규제 등을 확인할 수 있죠. 삼성 중공업·물산에 있으면서 건설·유통·관광 등 다양한 산업군을 경험했습니다. 가령 유통업이라면 하도급, 대리점법 등에 특화된 체크리스트를 이미 보유하고 있죠. 적은 인력으로도 빠르게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고객사의 범위는 산업은 물론이고 기업 규모별로도 확장되고 있다. “작은 기업일수록 ‘준법 경영’이 곧 ‘리스크 관리’입니다. 간혹 사내 구성원들이 악의적으로 범법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법률에 위반되는지 모른 채 업무를 하다가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전에 정기적으로 내부 교육을 하거나 재고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법률 리스크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죠. 대기업과 비교하면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드는 시간·비용이 5분의1 수준이에요. 충분히 투자할 만하죠.”
◇마약과 도박 그 사이에서
컴플라이언스도 AI·IT 기술과 결합이 이뤄지고 있다. “AI·IT 기술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에요. 법무법인 BHSN에서 중견·중소 기업들도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컴플라이언스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컨설팅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기술이 더해지면 더 혁신적인 방법으로 준법 경영을 실현하고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을 박차고 나오는 결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오랜 망설임 끝에 내린 결단이었다. “정해진 날에 따박따박 들어오던 월급이 ‘마약’같았습니다. 누가 나를 믿고 한 달에 몇백만원씩 내면서 법률 상담을 받으러 오겠냐며 낙담했던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전 이 ‘도박’을 선택할 겁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시도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저를 이끌어주고 있어요.”
/이영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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